홍제천 역사의 길 '홍지문 ~ 포방터(시장)' 첫번째 구간입니다.
1. 홍지문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1413년 폐쇄된 숙정문 대신 실질적인 북대문의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그 역할을 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어 왔다. 이에 서울시에서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화강암으로 중앙부에 월단(月團, 아치)이 꾸며지고,
그 위에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석축 윗 부분 둘레는 여장(女牆)이 있고, 문루는 평면이
40m2로 우진각 지붕이다.
* 여장(女牆) : 성곽에서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 우진각 지붕 : 건물 사면에 지붕면이 있고 추녀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게 되는 지붕.
2. 탕춘대성( 蕩春臺城)
종로구 홍지동 산 4번지에 있는 탕춘대성은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인왕산 동북에
위치한 창의문 서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을 향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홍제천을 건너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약 4km에 달하는 산성이다.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 하였다.
3. 오간대수문 (五間大水門)
홍지문 북쪽으로 홍제천(모래내, 사천)을 가로질러 홍지문과 같이 설치하였던 오간대수문
(五間大水門)도 1921년에 홍수로 유실되었으나 1977년 홍지문 복원 때 길이 26. 72m,
폭 6.8m, 높이 5.23m, 수구 폭 3.76m, 수구 높이 2.78m의 5간의 홍예교 (虹霓橋)로 복원하였다.
* 홍예교 : 무지개다리/ 교량 밑이 무지개 같은 반원형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교량.
총안 (銃眼)
여장에는 성 외부를 향해 총 등을 쏠 수 있게 하나마다 세 개의 구멍을 뚫어 두었는데, 좌우로 양쪽에
뚫은 것을 원총안(먼 곳을 보는 총안, 총안의 바닥이 평면이다), 가운 데 뚫은 것을 근총안(가까운
곳을 보는 총안, 총안의 바닥이 경사면이다)이라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