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호(號) 운곡(雲谷) 휘(諱) 방주(方柱) 선조께서 안천에
최초로 허(許)문의 뿌리를 내리시다.
하양허씨(河陽許氏)는 가락국 수로왕비인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許皇玉)의 후손으로 시조는 고려 호부랑장 강안(康安)이시며 중시조인 12세조 간숙공(簡肅公) 주(周)로 부터 후손들이 번창해 왔다. 14세 호(號) 연천(蓮川) 휘(諱) 철견(哲堅)은 병조정랑으로 계시다 단종이 폐위되자 사육신과 자진한 호(號) 응천(凝川) 휘(諱) 조(慥)와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화(禍)를 당하셨고, 아들인 15세 운곡은 당시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 폐위시키자, 단종의 왕위 복위에 연루되어 화(禍)를 당할 처지에 이르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1456년 10월 용담현 이곳 顔川에 피신함으로써 최초로 許문의 뿌리를 내리신 분이시다.
운곡은 조정의 엄한 감시로 두문불출 은둔생활을 하시면서도 단종의 기일에 제단을 설치하여 평생토록 챙기신 충절(忠節)을 지키신 정의적인 충신이시다. 56세에 영면하시어 직동에 안장하였으나 묘소를 찾을 길 없다. 16세 사헌부장령 호(號) 만송(晩松) 휘(諱) 옥동(玉棟)님은 세상 일이 그릇됨을 보시고 산천에 종적을 감추어 경학(經學)을 즐기시다 영면하시어 직동에 안장하였지만 역시 님의 묘소도 찾을 길 없다. 17세 운봉현감 호 이요(二樂) 휘(諱) 필(弼)님도 선친들과 같은 은둔생활을 하시다 영면하시어 직동에 안장하였다하나 님의 묘소도 확인할 수 없다. 당시 선조님들은 조정의 엄한 감시 때문에 묘소는 물론 묘비까지도 나타낼 수 없는 처지였으리라 추측된다.
雲谷 晩松 二樂 3대에 이르는 선조님들은 단종에 대한 충절을 굽히지 않은 충신으로 만인의 귀감이 되었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후손들은 선조들의 거룩하신 충절의 넋을 이 비에 새겨 높이 받드오니 영락하옵소서.
서기 2015년 10월 일
대종회장 完 圭 외 후손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