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프랑스 파리 7구, 뤼 드 박(Rue de Bac) 128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뤼 드 박은 우리말로 나룻배의 길이란 뜻이다. 10여 분만 걸어가면 배를 탈 수 있는 센 강으로 연결된다. 프랑스 선교사들도 이 길을 통해 항구로 가는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7구는 파리 정치ㆍ행정의 중심지다. 한마디로 고급 동네인 셈이다. 심지어 본부 건물은 프랑스 최초의 백화점인 르봉 마르셰(Le Bon March)와 마주하고 있다. 가장 가난해지려는 사람들과 물건을 팔고 돈을 벌려는 이들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풍경, 본부에 도착한 첫인상이었다.
본부 성당과 수도회 정원 그리고 전시실 등 몇 군데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있다.
가. 파견 화 『출발(Le Depart,1868) 』
▲ 샤를르 루이 드 쿠베르탱의 그림, 선교사들의”출발”(Le Depart,1868)은 해외로 파
견되는 선교사와 가족들의 송별식을 그린 그림이다.
앞을 돌아보는 소년은 올림픽창설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이고, 이 그림은 그의 부친 쿠베르탱이 세 선교사(신부)가 1866년 조선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 것이다.
파견되는 선교사는 가운데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 볼리외 신부, 그 좌우에 도리 신부, 브르트니에르 신부이며, 선교사를 포옹하고 있는 사람이 구노(Gounod)라한다.
오른쪽에 주교님과 왼쪽 가에 파견되는 선교사 가족들이 보인다.
나. “순교자들의 모후” 경당.
▲ 본부 정원에 있는 ‘순교자들의 모후’ 경당. 동료 회원들은 이곳에서 선교사를 위해
파견가를 노래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의 순교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파리외방전교회 모든 신학생과 성직자들은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찬미 기도를 바쳤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직할 선교단체인 파리 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 책임을 맡겼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조선 선교의 책임을 맡은 1831년부터 병인박해가 일어나던 1866년까지 35년간 21명의 선교사를 조선에 파견했다.
브뤼기에르ㆍ페레올ㆍ다블뤼ㆍ베르뇌ㆍ리델 주교와 모방ㆍ샤스탕ㆍ메스트르ㆍ프티니콜라ㆍ페롱ㆍ랑드르ㆍ위앵 신부는 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또 앵베르 주교와 장수ㆍ조안노ㆍ칼레ㆍ오메트르ㆍ볼리외ㆍ도리ㆍ브르트니에르 등 8명의 선교사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 교육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았다.
“먼 곳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에 대한 봉사로서 선교사의 피를 받으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신학교의 모든 성직자는 정원의 나무 아래에 모여서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의 증거자가 되고자 준비하는 모든 지망생은 자신들의 선배가 하느님 곁에 받아들여진 것에 감사하면서 테 데움의 찬미가를 약식이지만 설득력 있게 불렀다.
”(조현범,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115쪽 참조)
다블뤼 신부와 구노는 동갑내기로 어렸을 적부터 절친했습니다. 구노 또한 약 2년간 신학 공부를 했으며, 구노가 파리음악원을 졸업한 후에 로마에서 종교음악을 공부하고 있을 때, 다블뤼는 신부 서품을 받고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떠났다.
바로 그 구노가 작곡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파견가를 이 팔각정 앞에서 부르며 헤어졌으며, 파리 외방전교회 회원들은 동료 선교사들의 순교가 알려지면 함께 모여 감사의 송가인 '테 데움(Te Deum)'을 이 경당 앞에서 불렀다고 한다.
천국에서 만나길 !
“떠나라! 복음의 군대여, 그대들의 소망을 이룰 날이 왔다. 선교사들이여, 그대들의 발자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친구들이여, 이생에서는 안녕을.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파견 가 중).
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정원 순교자 현양 비
▲ 본부 정원에 설치된 한국 순교 성인 현양 비.
2003년 서울 대교구 명동 본당에서 기증.
라. 전시관
▲ 성당 지하에 전시관
마. 선교사 파견 경로
▲ 파리외방전교회 정원 “순교자들의 모후” 경당.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지금까지 아시아 지역에 파견한 선교사는 4300여 명. 전교회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는 날이면 본부 정원은 동료를 선교지로 먼저 보내는 전교회 회원들의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동방으로 나가는 선교사는 빠짐없이 이 파견식을 치렀다. 조선이란 작은 나라의 신자들을 위해 길을 나섰던 선교사들도 그랬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선교 지역으로의 출발은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194항)이라고 회칙에 정해놨다.
그래서 파견 예식은 더욱 의미 있다. 죽음을 각오한 그들이 동료들과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던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는 프랑스 파리 7구 뤼 드 박(Rue de Bac) 128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뤼 드 박은 우리말로 나룻배의 길이란 뜻이다.
10여 분만 걸어가면 배를 탈 수 있는 센 강으로 연결된다. 프랑스 선교사들도 이 길을 통해 항구로 가는 나룻배에 몸을 싣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항으로 간다.
1) 마르세유 항구 언덕 위 노틀담 성당
▲ 프랑스 마르세유 노틀담 성당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de-la-Garde)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당이며, 도시의 상징으로도 유명하다. 마르세유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성모 승천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마르세유(프랑스어: Marseille, 오크어: Marselha)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과 부슈뒤론주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프랑스와 지중해 모두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한국에서 마르세유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이 도시의 정확한 프랑스어 발음은 '막세이'에 가깝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은 19세기에 신 비잔틴 양식에 영향을 받아 대성당 상단 부분에 거대한 돔과 특이한 줄무늬로 프랑스 풍의 건축양식과 구별이 되는 독특한 건축물로 마르세유에서만 볼수 있는 건축양식이다.
꼭대기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금빛 성모마리아상이 있어 마치 마르세유 전체를 보살피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방문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느낌을 주었다. 프랑스에서 유난히 노트르담이라는 말을 대성당 이름에 많이 쓰이는데, 그 이유는 노트르담이란 의미가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존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마르세이유 도시의 상징물로 161 m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1214년 첫 성당을 건축했다. 1524년에 프랑수와 1세(François 1er) 가 요새 건축을 명령했다.
현재 바실리크 성당은 로마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가 에스페랑디유 (Espérandieu)의 설계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나폴레옹 3세 치하의 대형 공사의 한 부분이었으며 1864년에 완성되었다.
46m의 종루는 도금된 성모 마리아의 동상으로 유명하며 11.2m에 이르는 도금된 성모상(9,796 kg)을 마지막으로 이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성당은 화려하게 채색된 대리석과 모자이크 벽면으로 화사함을 더해준다.
이 성당은 마르세이유를 해적들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수호성당이다.
성당안에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배 모형을 메달고 성모마리아에게 기도를 한다. 성당의 벽에는 엑스포토라고 성모마리아가 도와준 것을 기념하여 선주들이 그림을 기증하였는데 그림의 상단 위에는 성모마리아의 그림이 있다.
▲ 노틀담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마르세유항구
파리 외방전교회 해외파견 선교사들은 이곳에서 잠시 머문 뒤 아시아 각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고국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