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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호 거내영이론의 필요성
1. 거룩한 내맡김 영성 이란?
2. 끊임없는 화살기도
3.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
4. 거내영 출판 역사 (출판, 음반)
[맺음글] 내 신앙의 반석이 된 거룩한 내맡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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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뼈대가 된 책
누가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가
moowee 17.07.27 21:25
【"내맡김의 영성"은 한글이며,
한자로는 "委托(위탁)의 靈性"이다.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의탁의 영성"이 <위탁의 영성>이며,
위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 더 정확히 말해서
하느님께 맡기기에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다.
이 내맡김의 영성은 그 사제(이해욱 신부)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하느님 신앙의 영성>이다!
또한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이다! 】
저는 감히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곧,
아브라함과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 예수님이 사신 삶(영성)을 부정하는 행위"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위탁)하는 삶"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제가 "위탁(의탁)의 영성"을
우리말로 "내맡김의 영성"이라는 말로 사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만들어준 책이 바로 <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인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살았던 이 책의 저자 프랑스의 영성가
예수회의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 신부님'의 영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책소개>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을 중심으로 한 영성서.
저자인 코사드의 요한 베드로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살았던 프랑스의 영성가로서,
당시의 합리론과 계몽주의 사상에 신중심주의인 기회 원인론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영성을 종합하였다.
그러한 영성의 종합이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하느님 섭리에 내어맡기는 위탁의 자세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길로 바라보고,
매순간을 현존의 성사로 받아들이는 그의 영성을 통해
하느님 중심주의로 사람과 사물,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옮긴이 김현태(루가) 신부는
1981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
로마 교황청립 안토니안 대학교 철학부에서 수학하였으며
동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이후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수도자 신학원에서 철학을 강의하였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강화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있다.
지은 책으로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 사상](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4)
엮은 책으로 [종교철학](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6)
옮긴이의 글 - 김현태 신부
서론 - 요한 비버스
제1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관하여
제2장 거룩함이 끊임없이 샘솟아나는 원천인 현 순간을 감싸안음에 대하여
제3장 하느님께 순종함은 모든 덕을 실행하는 것이다
제4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제5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다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6장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성녀 소화 데레사>에 대한 영성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성녀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작은 길(Little Way)"이야 말로
<내맡김의 영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곧,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에 대해 돌을 던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pp. 24-27
성녀 데레사는 1873년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코사드의 책은 1861년에 이미 발행되었고 많은 편집들이 뒤따랐다.
내가 지금 쓰는 것은 순전히 추측이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
성녀 데레사의 가족은 신심이 깊었고 많은 영적 독서를 하였다.
혹시 코사드의 책은 그 책들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성녀 데레사의 아버지 마르탱(Martin)씨가 리지외의 가정집,
뷔소네에 있는 2층 서재에서 그것을 사려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 가르침은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온몸을 적셔 주고 말끔하게 해 주었음이 확실하다.
코사드에 관한 탁월한 현대적 권위자로서
예수회의 올프-갈리아(Olphe-Galliard)신부는
코사드가 지난 세기 말의 신학자들 -그들 역시 저술가였다- 에게 끼친
지대한 공로를 아주 또렷하게 밝혀 준 바 있다.
그래서 성녀는 강화(講話)에서 또 고해 신부들을 통해
자아포기에 대해 들었으리란 편이 훨씬 더 가합하다고 말해야 옳다.
성녀가 14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예수회의 알미르 피숑(Almire Pichon)과
10년 동안 긴밀한 연락을 취했음도 기억해야 한다.
그 신부는 이전에 여러해 동안 마르탱 가족의 친구였고 고해 신부였다.
그 후 그는 캐나다로 떠나갔지만,
성녀 데레사는 편지로 계속 그와 연락을 취했다.
성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피숑 신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저의 온 영혼이 이 속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피숑 신부는 성녀의 모든 편지를 없애버렸으니 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점을 겸허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예수회 신부가 코사드에 관해 무지하지 않았고,
이 18세기 사제에 대한 그의 지식이 성녀 데레사를 통해 길러졌다는 것도
상상해 본다.
이제 우리는 추측과 상상을 끝내고 분명한 것을 살펴 보도록 하자.
성녀 데레사가 늘 주장하기를,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행위의 탁월성이나 위대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행하는 보잘것없고 가장 하찮은 일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라면
그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는 사랑에 따라
그분이 판단하신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행위들을 실천할 수 있음을
성녀는 선언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200여 년 전에 코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고의 성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 여러분은 삶을 눈여겨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삶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행위들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만족해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행위가 되어져야할 때 행한다는 것은
우리가 완덕을 추구하는데 연출해야 할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성녀 데레사에게 되돌아가 보자.
성녀는 한 조수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매님의 생활은 겸손하고 숨겨진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앞에서는 아무것도 미소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자매님은 사랑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행하도록 하십시오."
병상에서,
성녀는사람들에게서 이 세상을 하직한 다음
성녀에게 맡겨진 모든 영혼들에게 무엇을가르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즉시 이르길
"신뢰와 완전한 위탁의 길인,
영적 어린이의 길에 그들이 나서도록 권고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성녀의 자서전 안에 언니 마리아에게 보내는 글,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셨던 비밀들" 을 말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이러하다.
"예수님은 결코 드러나시지도 않고
당신의 목소리를 나로 하여금 듣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은밀히 저를 가르치시지만
당신 사랑의 신적 용광로에로 이끄는 유일한 통로를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품 안에 두려움 없이 잠든 아기처럼 완전한 위탁과도 같습니다.
... 예수님은 위대한 행동들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자기를 온전히 내맡김이며 감사드림입니다.
... 오! 예수님,
당신의 측량할 수 없는 자애에 대해
모든 '작은' 영혼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보다 더 연약한 영혼을 만나신다고 하고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를 굳게 믿어 그 자신을 온통 내맡긴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즐겨 넘쳐흐르도록 내려 주실 것 같이
생각됩니다."
우리는 코사드가
"현 순간의 성사(the sacrament of the present moment)" 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
주장하는 바를 고찰해 보고 있노라면,
성녀 데레사가 남긴 다음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제가 매순간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면,
저로서는 인내심을 갖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현재만을 바라볼 수 있고
과거를 잊으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무척 조심합니다.
우리는 실망하고 또 실망감을 느끼는데,
이유는 과거와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조용히 쉬지 않고
안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작은 길(Little Way)" 의 전 목적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이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만인이 하느님 뜻에 조금도 남김없이 내맡김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것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성녀는 성녀 체실리아를 두고 자기가 좋아하는 성녀라고 말했다.
"저를 특별히 기쁘게 한 것은
성녀가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긴 것이었고,
그분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심이었습니다."
위탁과 신뢰,
이것은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열쇠가 되는 두 개의 단어들이다.
* * *
moowee 작성자 17.07.27 21:39
첫댓글
다시 말하지만,
저는 제가 만난 하느님,
< 내맡김의 삶을 통하여>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알리고 전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선포>입니다.
왜 제가 체험한 하느님을 전하는데,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전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왜,
무엇을 누구에게 허락받고 전하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위탁의 영성,
내맡김의 영성은 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니,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이들은
<하느님 신앙에 대한 근본 영성>에 먼저 돌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면,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꼭 그렇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큰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또한,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는 분께
그분이 <하느님을 체험했는가?> 물어보시고,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한 적이 있는가?>와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을 증거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는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참으로 거룩하게 살고 있다면,
내맡김의 영성에 돌을 던지라고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
*******
★거룩한위탁
역자 후기(後記) pp..614-615
저 영해 예수의 귀여운 소화 「데레사」성녀가
최근 온 세계의 신자에게 그처럼 탁월한 솜씨로 가르친
「영적 유아(靈的幼兒)의 길」은
사실은 거룩한 위탁의 길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유아(幼兒)의 본성은 온전히 그리고 조금도 남김 없이
착한 어머니의 품안에 그 몸을 맡겨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의 착한 어머니란, 바로 천주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본서는
단지 「리쥬」의 사랑스러운 성녀에 의하여
현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이 불러 일으켜진 길을
이론적 교의(理論的敎義)와 다른 많은 성인들의 생활한 모범에 의해서 증명
하는데 불과합니다.
이 길은 근본에 있어,
그리스도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그 영웅적인 모범과 그 숭고한 가르침에 의해서
제시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진 신부 약력
▲1922년 황해도 출생
▲41년 동성상업학교 졸업
▲44년 일본 동경 명치대학 상학부 2년 중퇴
▲44년 학도병 입대
▲50년 사제서품
▲50년 잠실본당 보좌
▲52년 양평·용문본당 주임
▲57년 가톨릭대 조교수
▲66년 성신중고등학교 교장
▲74년 화곡본동본당 주임
▲79년 후암동본당 주임
▲83년 아현동본당 주임
▲85년 법원리본당 주임
▲90년 서울대교구 영신지도
▲96년 은퇴
2. <끊임없는 기도모임>의 출발
▣ 보조교사방<거룩한 내맡김 영성>안내글
무심.보조추천 0조회 51321.06.29 06:57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서울대교구 사제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1982년 서품)에 의해
2009년 12월 다음(Daum) 포털에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 카페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신부는 몸에 병을 얻고 "이러다가 죽는 것이구나!"를 체험한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2006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5년간 살면서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하게 되었고,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란 용어는 이 신부 자신의 체험과 놀랍게도 흡사한,
마치 자신의 체험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두 가지 저서
장 피에르 드 코사드 신부(프. 예수회 1675–1751)의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과
동 비딸 러오데 신부(프. 트라피스트회 1857-1948)의 '거룩한 위탁'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신부는 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자신이 만들어 낸
영성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과거 수많은 성인들이 추구해 오던 '하느님 신앙의 근본 영성'이며,
더 나아가서는 구약의 <아브라함의 영성>이며 또한
신약의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며,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성>인 것이다.
하느님 신앙이란
창조주 하느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것,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참으로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겨 드리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인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 재산, 명예, 일, 취미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뜻(의지)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이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 두 가지 있다.
첫째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 '굳은 결심'을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는 것이다.
둘째로, 루카 복음의 예수님 말씀(루카 18, 1;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과
사도 바오로의 말씀(1테살 5, 17. 18;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대로
하루의 모든 시간을 화살기도 성가를 통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끊임없는 기도모임>이라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 단체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고
2018년 8월 8일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립)단체 승인을 받았다.
2021년 현재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끊임없는 기도모임>에서는
이해욱 신부의 저서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2쇄)와 그 저서를 읽고
하느님 체험을 한 신자들의 증언집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7쇄)를 발간했고,
더불어 '끊임없는 화살기도' 성가를 10개 국어로 제작하여,
온 인류의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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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기도모임> 단체 승인을 위한 담당사제 의견(2018. 05.27)
4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방문으로 한국교회는
신자수, 사제수 증가 등 교회성장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 교세 통감을 보더라도 '프란치스코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가 갈수록 주일미사참례자 수(19.5%)는
줄어들고 각 교구 신학교와 수도회 입회자 숫자도 다름이 없는 실정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성당이나 교회가 다른 용도로 팔려 호텔, 식당, 연주회장, 창고,
심지어 술집으로 변모하는 성당과 교회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인데
가장 큰 원인은 신자수 감소라고 한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이런 현상을 신앙의 위기로 판단하시고
이미 지난 2012년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이하여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었다.
그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교회는 그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 한 마디로 <탈종교화 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종교에서 저마다 '탈종교 원인'을 여러 면으로
분석하여 발표하였지만, 저는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탈종교의 원인을, "자신의 종교가 싫어져서!" 라고!
저는 다른 종교를 차치하고 우리 가톨릭 입장에서만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을 <하느님 체험>에 두고 있다!
하느님을 체험한 신자들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체험>이 매우 중요하다.
체험, 그것도 <깊은 체험> 없으면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오래 갈 리 만무하다.
적지 않은 영세자들이 세례 후 1, 2년 내에 성당에 발길을 끊는다.
재미가 없다, 아무리 재미를 붙이려 노력해 봐도 너무 재미가 없다.
아니 교회밖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널려 있다.
그것은 신앙체험 즉 <하느님 체험>,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제가 몸에 병을 얻고 산으로 들어간 것이 2006년 2월,
약 12년 전 저는 병으로 "죽는 것이 별거 아니구나!"를 체험한 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갔다.
질병에서 빠져나오려 그렇게도 열심히 많은 건강법들에 매달렸건만,
<하느님 섭리 앞>엔 그 어떤 약제도 요법도 그 무엇도 다 무용지물이었고
마침내 < "아, 이러다 죽는 모양이구나!">를 외치게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제직>에 대한 꿈을 갖고 소신학교 3년, 대신학교 6년
그리고 사제생활 24년, 전문인으로서의 33년을 뒤로 하고 산으로 들어간 나는
오랜세월 너무도 허망하게 살아온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이러다 죽는 모양이구나!> 하는 체험 앞에선
<어떤 거짓>도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바로 내 앞에 와 계시기 때문이다.
죽음과 마주한 지리산 생활에서
나는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그 화살기도를 어떤 일이 생길 때나 어려움에 처한 누구를 떠올리며
가끔가끔 바치는 <짧은 기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화살기도란 <끊임없이 반복해서 바치는 짧은 기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의 오랜 전통 중의 하나가 바로 화살기도이다.
<초기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공동기도 시간 외의 일하는 시간에도
그들의 입에서 기도가 떠나지 않게 생활했다.
그들은 일할 때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짧은 성경구절>이나 <주님의 기도>나
<거룩한 짧은 말>을 끊임없이 계속 되풀이하였다.
현대 영성의 대가 <토머스 머튼>신부님의 말씀, "자꾸자꾸 반복하여 말하고 되뇌어라! 수시로!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이 기도이고, 기도는 하느님과 깊은 관계이다."는 바로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18, 1절 이하>에 제자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지 않으셨고, 분명히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하시면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들려주셨다.
바오로 사도 또한 <1 테살 5, 17>에서 테살로니아인들에게 그냥
<기도하십시오 또는 열심히 기도하십시오,>하지 않으셨고,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바로 <끊임없는 화살기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를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바치는 이들도 나와 똑같이 누구나 <하느님을 체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나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 <끊임없는 기도모임>이다.
회원들은 기도 체험을 심도있게 나누고 하느님 체험을 주고받으면서
신앙생활의 기쁨과 활기를 더해 가고 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복음의 기쁨 31항)의 믿을만한 방법 중의 하나로
<끊임없는 기도모임>을 제안하는 바이다.
신앙의 해 개막미사 강론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언급하신 말씀 그대로,
오늘날 <복음화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증언>하고 그 증언을 통하여
<나아갈 길을 가리켜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기도모임>은 하느님을 갈망하는 신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안내할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고,
그 체험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참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에
마음과 정신을 열도록'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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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추천 0조회 25317.12.04 23:46 1.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이 발생한 사유 2009년 12월 on-line 다음 카페 <마리아처럼>이 설립되었다. 회원들은 카페를 통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접하고, 무엇보다 하루의 모든 생활 속에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 참조)'을 살아가게 되었다. <마리아처럼>에서는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살아가는 회원들의 영적성장을 위한 후속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알맞은 각종 신심서적들을 선정하여 '신심서적 읽기와 나누기'를 시행해 오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off-line 나눔을 원하게 되어, 회원 자발적으로 처음에는 번개팅 식으로 모임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모임은 카페를 통해 알려졌고, 차츰 오산, 부산, 거제, 인천 등 전국적으로 회원들 스스로 모임을 갖기에 이르렀다. 모임에서 회원들은 카페에서 나눈 신심서적을 더욱 심도 있게 나누고 하느님 체험을 나누면서 신앙생활의 기쁨과 활기를 더할 수 있었다. 모임은 번개팅에서 규칙적인 나눔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회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으므로 나눔에 관한 영적지도를 위해 그 자리에서의 나눔 내용을 빠짐없이 적어 카페에 올리고 지도 사제의 영적지도를 받았다. 2.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 증언집 보급 내용에 대하여 2016년 9월 가톨릭출판사에서 출판된 증언집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는 첫 출판 3,000권(9,800,000원), 2017년 1월 2판 2,000권(4,200,000원), 2017년 5월 3판 3,000권(5,700,000원)해서 총 8,000권을 발행하였다. 정가 12,000원, 공급단가 7,200원(40% 할인)의 조건이었다. 2판부터는 75%의 할인액으로 판매하였다.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이 애초에 이 증언집을 출판한 목적은 이익을 남기는 데에 있지 않고 각자 주어진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도구로 거듭난 내맡긴 영혼들의 기쁨에 찬 신앙생활을 전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에서는 단가에 연연하지 않고 회원들의 동의하에 교정사목부와 미혼모 시설, 그리고 원하는 각 성당 등에 선교 차원에서 무료 배부와 파격적인 할인 배부를 실행하였다. 증언집을 출판한 기금은 on-line 카페 '마리아처럼'의 가상카페 이용료 (가상으로 마시는 차 판매 이익금, 한 잔에 천 원)와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 발전기금으로 충당하였다. 3.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이 '소공동체 모임'(반모임)과 다른 사유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이 발생한 사유에서 설명한 것처럼 회원들은 on-line 카페 '마리아처럼'을 통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접하고, 무엇보다 하루의 모든 생활 속에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사실, on-line 카페 '마리아처럼'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알고 싶어서 가입하고, 더 나가서 그 가르침대로 살고 싶어서 카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는 남아 있을 수 없는 카페가 바로 '마리아처럼'이다. '마리아처럼'은 참으로 엄격한 카페이다. 가입만 하고 들어오지 않거나, 가입 후 몇 달이 흘러도 댓글이 없거나, 특히 가톨릭적이 아닌 주장을 하면 그 사유를 설명하고 바로 강제 탈퇴를 실시한다. 2009년 12월 설립 이래 지난 7년 동안 5천명이 넘는 회원들이 강퇴되었다. 카페 안의 게시글들은 모두가 신앙에 관계되는 글들로 하다 못해 본명 축일 축하 글조차 지양해왔다. 회원들이 '마리아처럼'을 '무형의 성전'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기도로 들어가고 올리는 글은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달고 그 댓글들을 통해 하느님을 더욱 더 느끼며 하나가 되고 있다. 하느님을 알고 싶고 좀 더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희망으로 막연히 가입한 회원들은 날이 갈수록 처음과 다르게 참 신앙의 진수를 알아가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회원들의 '증언'들이다. 회원들의 증언들을 묶은 책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의 결실이다. 이 증언집을 통해 비신자가 세례를 받고 냉담자들이 성당을 찾고 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사는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가 바로 끊임없는 기도모임이다. 이 모임이 소공동체 모임과 다른 이유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통해 '내맡김'이라는 공통 영성을 특별히 체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의 삶의 한계에 대해 이미 깨달은 이들의 공통 주제는 시종일관 '하느님'이다. 어떻게 하면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 뜻에 내맡겨드리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은 정말로 진지하고 거룩하다. 진행자의 특별한 간섭 없이 자연스럽게 찬미와 복음 나누기, 신심서적 나누기를 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하게 된다. 왜 그렇게 마음이 열리는지 고백하면서 놀라고 들으면서 놀라고 그렇게 하나가 되면서 놀라며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자리이다. 겉으로는 멀쩡했으나 속으로는 수많은 상처들로 그야말로 처절한 삶을 살아온 영혼들이 그 자리에서는 부끄러움 없이 나눔을 한다. 성추행, 이혼, 알콜 중독, 도벽, 낙태 등등의 심도 있는 고백과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고백은 반모임에서 하기에는 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신앙의 눈높이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반모임이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데 비해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은 참으로 마음으로 나누는 자리이다. 그렇기에 이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상담소를 끊고, 병원 약을 끊고, 마음 없는 이런저런 모임들을 끊고 아무리 멀어도, 비기 오나 눈이 오나 찾아오는 것이다. 소공동체 반모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입이 되고 참석을 의무로 한다면, <사단법인 끊임없는 기도모임>은 회원 본인의 영적성장과 필요성에 의해 참 신앙을 살고자 하는 의지로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차이점이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변화된 사람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듯이 끊임없는 기도모임을 통해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신 새 삶'을 살아가게 된 신자들은 기쁨과 확신에 차 자신도 모르게 평신도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다. 복음의 풍요로움을 증언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며, 가정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무엇보다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전교하는데 큰 기쁨을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교회의 성장에 공헌하는 교회의 참 일꾼이 되는 것이다. |
< 후속 > 18. 왜, 내맡김의 영성이 최고라고 떠드는가?
moowee추천 0조회 1,96910.04.16 11:50
< 왜, 내맡김의 영성이 가장 탁월한 영성인가? >
"교회 역사상, 수많은 성인들이
저마다 자신의 영성이 최고의 영성이라 생각하여
수도공동체를 세워 나름대로의 여러 수덕방법과 기도방법과
덕행방법을 내세우고 펼쳐왔는데---
내맡김의 영성이 왜,
하느님과 일치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과의 일치에는,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접근 방법이 있는 것인데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만이
꼭 유일한 접근 방법이 아니지 않느냐?"하는 질문입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내맡김의 영성"만이 하느님께 나아가고 그분과 일치하는 데에
꼭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는 길은
우리 교회 역사상 참으로 훌륭한 많은 성인들께서 그분들의 삶으로
이미 우리에게 직접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4,17)
하느님께 나아가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길이 아무리 많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모두의 공통적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말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 ,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은,
그 사랑을 닮은 "작은사랑"입니다.
하느님은 "큰사랑"이십니다.
작은사랑은 큰사랑을 본받아 점점 커져야 합니다.
작은사랑이 큰사랑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큰사랑에 내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서로의 사랑을 "믿고" 내맡길 줄 압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랑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샘솟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지 못하는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며,
그러한 사랑에는 "걱정과 두려움 더나아가 절망"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참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참주인"이십니다.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 내맡기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분께 내맡기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가끔,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을
"구속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서로에게 구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에게 묶이고 구속되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삶"입니다.
사랑으로 서로에게 묶이길 원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사랑"입니다.
거짓 사랑은 "무책임"합니다.
끝이 있습니다.
일시적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기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자유의 근원이신 당신의 "참사랑이라는 자유"에 묶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미래를 영원히 행복하게 책임져 주십니다.
끝이 없습니다.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기 뜻을 기꺼이 희생할 줄 압니다.
서로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인 것입니다.
"왜, 내맡김의 영성이 가장 탁월한 영성인가?"에 대한 답은 "사랑"에 있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사랑만이 답입니다. 정답입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면,
당신의 뜻이 우리 안에 오셔셔 우리를 살아주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리심(통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2,20)
"하라, 하지말고 하라!
하지마라, 네가 하지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없이 살라!
살지마라, 네가 살지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사시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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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한다.
moowee추천 3조회 1,67110.08.03 00:51
자유의지를 다른 쉬운 말로 "나의 의지, 내 뜻"이라고 한다.
내가 "내 뜻"이 있듯이, 하느님도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 뜻"이 계시다.
내 뜻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망가뜨려 놨으니,
이제 내 뜻, 쓸모없는 내 뜻을 하느님의 뜻에 내맡겨 드리고
이제 앞으로는 하느님 뜻대로만 살아갈 것을 하느님 대전에서 약속드리고
그 굳은 약속을 봉헌하믄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믄 끝이다.
그렇게 하믄 하느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 더러움까지도 몽땅 다 받아 주시고,
그때부텀, 하느님 당신의 뜻대로 그 부족한 나를 대신 살아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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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강의록 >
moowee추천 0조회 65710.11.18 08:04
전능하신 하느님이 무엇이 부족하시다고
우리 인간의 부족한 기도와 우리의 행위들을 바라실까?
우리가 매일미사에 참여하고 매일 묵주기도 백단씩을 받으신다고
하느님이 매우 기뻐하시며 엄청 흡족해 하시겠는가?
매일미사를 하지 마시라는 것이 아니고,
매일 묵주기도를 하지 마시라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이사1,13)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으며 바치는 모든 기도는
하느님께 역겨움을 느끼게 해 드릴 뿐이다.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만이 "참 기도"이며,
참 기도만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에 대한 "진실한 사랑"밖에 없다.
하느님이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만을 원하신다.
겸손한 이의 기도, "화살기도"!
moowee 10.10.20 10:54
< 댓글 >
moowee 10.10.21 08:10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불림을 받고 수십년 뒤,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께 불림을 받고 십여년 뒤에야
하느님의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기도란,
무슨 기도를 해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안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어떤 기도(묵주기도 등)를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해나가는 순간에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하느님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주 중요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통 영신수련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3개월, 100일 정도를 집중, 전력을 다하면 효과를 본다는
어떤 영신 수련자의 말(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중에서)을 참고로,
또 저의 경험으로
100일이나 3개월 정도를 "화살기도"에만 집중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100일 후 더 깊고, 높은 어떤 경지로 끌어 주실지 어떨지도
모두 맡기고 해야 합니다.
나중에 얼마든지 묵주기도를 하루에 100단씩 바치시고요~~~
묵주기도가 시작된 것은 우리교회 역사상 5세기도 안된 기도이고,
화살기도(만트라 식)는 교회 초기부터 시작된 기도입니당~~~
moowee 10.10.21 21:35
제가 "만트라의 힘과~~~" 등의 책을 알려 드려도
내맡긴 사람들조차 시쿤둥합니다.
저를 잘 믿지 못하는 것인지,
제가 말씀드린 과거의 지식과 경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저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과거 성인들의~~~" 등의 글을 올려 드려도 도통~~~?
묵주기도를 하지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미사참례를 하지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은 내맡김에로 이끌어 드리려함에도~~~
묵주기도가 구원의 한 수단인양 묵주기도에 모든 걸 거는???
제가 하루에 묵주기도를 200단 까지 바쳐 보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이 하루에 묵주기도 그 절반인 100단,
아니 그것의 절반인 50단을 바치려면?
뻔합니다!
그냥 묵주알을 돌려 댑니다, 머리 속에서는 온갖 잡념!
어떤 신부님이 "잡념도 기도"에 포함되니 걱정말라는 안도의 말씀에
계속 머리 속으로 외워댑니다.
저의 경험으로 보통 정상적인 가정주부가 50단을 바치기란?
여유있고 집 안 생활만, 그것도 출가시킨 소수의 가정 주부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수십단을 바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가십니까?
묵주기도는 죽을 때까지 우리의 친구와 같은 기도가 되어 줄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화살기도"는
지금 청원기도니 화살기도니 하는 화살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인
"하느님 아버지,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
입니다.
다른 누구를 이끌어 주십사 청하기전에 먼저,
"나"를 아버지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화살기도 아니면,
성가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시기 바랍니다.
지금, 적지 않은 분들이 제가 화살기도를 강조 하니까,
마치 다른 기도를 무시하라고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데.
그것은
이 카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몇 번 읽어 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화살기도는 "주님의 기도"의 보충이며,
주님의 기도를 생활 속에 생활이 되는 기도입니다.
화살기도만 100일 동안 바쳐보시리는 것은
100일 동안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만 바쳐보시라는 말인데도
정말 빙신같이~~~
예수님이 직접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의 뜻을 모르니~~~ ㅉㅉㅉ
오호! 애재라!
분명한 것은 다른 잡 것들이 사라지고
"예수님"이 님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실 겁니다.
아님말고!
오ㅒ?
하느님의 때가 다 다르기 때문에!
100일 전에 자리하실 수도?
moowee 10.10.22 08:34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이며,
성모님께서도 화살기도 기간에는
당신 아드님께 집중하는 내맡김의 화살기도에
성모송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주님의 기도보다 뛰어난 다른 어떤기도가 또 없습니다.
"성모송"은 하느님이 아닌, 성모님께 "代禱"하는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가브리엘 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삿말,
그리고 우리 죽을 때를 위한 기도 요청(대도)"로 이루어진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완죤히 "예수님의 기도"로만 이루어진 기도이고요.
성모송을 바치지 않는 개신교 신자들은 한편으로 불쌍하기도 하지만
성모송 바치지 않는 그들도 다 구원 받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밝혀진 것처럼,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것뿐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 하는
"주님의 기도"가 중요할까요?
천사와 인간의 인삿말과 자신의 죽음을 위해 빌어달라는
"성모송"이 중요할까요?
반드시,
성모송을 통하여 주님의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저는
주님의 기도 10번보다 못한 기도가 "성모송"이니,
묵주기도할 때,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10번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중요성으로 따지면 사실은
주님의 기도 1번에 성모송 100번을 바쳐도
비교가 안되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모님은
당신 아들께 집중하는 "주님의 기도" 에 빠지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는 화살기도는 "주님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100일 동안이 아니라,
1000일까지 아니 그 이상, 죽을 때까지라도
다른 모든 기도를 끊고 주님의 기도만 바쳐도
하느님이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기도 외에 다른 기도가 그 자리를 빼앗아서는 절대 아니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토록,
성가로 주님의 기도가 머리에서 끊기지 않게 하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저는 기도를 이렇게 생각한다."와
"과거 성인들의 기도 방법에 반기를 듭니다."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오죽했으면,
"주님의 기도"만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다른 기도들이 마치 "구원의 기도(도구)"인양
주님의 기도를 대신 하는 영적 어리석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빨리빨리!
그러면 화살기도를 하지 말고,
다른 기도를 다 끊고 "주님의 기도"만 100일 동안 하라면,
그 말은 제대로 알아 들으실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거부감이 생기지 않나요?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6,7이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어떤 사람들처럼 이 기도 저 기도에 매달리지 말라.
그들은 이 기도 저 기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기도들을 많은 시간에 걸쳐 해대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사랑하고 많이 기도하여라!
moowee 10.10.24 23:29
"주님의 기도"의 깊은 뜻과 그 효력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철부지"입니다.
철부지만이 "주님의 기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은
연인의 아주 짧은 말 한마디도 전혀 놓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그 님의 말이나 글을 외울 정도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그 님, 예수님,
아니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남겨 주신 "주님의 기도"를
우리는 늘 입으로 외울 뿐만아니라
진실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그 님이 가르쳐 주신 그 기도를 도저히 멀리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기도보다
사랑하는 님이 가르쳐 주신 그 기도에 더 마음이 가게 됩니다.
진실로 그 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보다 주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기도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어떤 훌륭한 성인이 사적 계시를 통해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어떤 훌륭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하더라도,
그 기도가 예수님께서 "공적으로"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윗 자리에 서거나 더 훌륭한 기도라 우기면
그것이야말로 "이단"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 1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님의 "주님의 기도"를 듣고 계실 뿐 아니라
님은 더 깊은 주님의 기도 속으로 빨려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 * * * * * *
무위행이해욱 11.06.15 16:41
제가 다른 기도를 다 끊고 내맡김의 화살기도만 바치라고 말씀드린 것은,
분명히 3달 정도(100일)만을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면 그때서부터 기도가 생활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그때부터는 주님께서 해야 할 기도를 이끌어 주십니다.
성경과 가까워지고 묵주기도도 더욱 감미로워지고
기도하는 것이 재미있어지게 됩니다.
화살기도로 내 안에 오셔서 자리 잡으신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moowee 11.07.01. 16:59
제가 화살기도 성가를 모든 기도를 끊고 3달간 하시라는 이유는
이곳의 여러 곳에 이미 말씀드렸지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이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다른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이며
주님의 기도 이외에 사실 다른 기도는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모든 기도를 다 끊어도 좋을 만큼
'주님의 기도'가 가장 완벽한 기도이며
그 기도의 핵심요약이기에 불안해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단 3개월 동안만입니다.
무슨 일이든 3개월을 집중하면 그것이 아주 몸에 베이게 되며,
그 효과도 3개월이 지나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3개월 후에는
잠을 자면서도 화살기도가 저절로 입에서 마음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내맡김의 영성(삶)'을 살기 위한 각오와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함
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원하시는 대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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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가 현황(보기좋게 정리)
5. 2016년에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살며 변화된 신자들 33명이
'가톨릭출판사'를 통해 증언집을 출간했고 지금까지 8쇄, 1만 6천 권을 발행했습니다.
(가톨릭출판사 역사상 가장 많이 발행한 증언집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6. 2018년 8월에는 평신도 (사립)단체 승인을 받았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민범식 신부님의 감수가 있었습니다.)
7. 2019년 10월 '가톨릭 출판사'에서 이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이름으로 출판되었고 지금까지 4쇄, 9천 부를
발행하였습니다.
(이 책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께서 해외 신자분들을 위해
영어로 번역해 주신 덕분에 6월 말 영어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8. 2020년 11월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의해 <온라인 화상 나눔>을 시작하였고
이 화상 나눔에는 서울대교구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 또 해외 신자들까지
함께 하여 뜨거운 나눔의 장을 이루었는데,
온라인 특성상 교구를 망라한 이 화상나눔은 단체 사목을 관장하는
교구 행정지원팀의 허락과 지원을 이미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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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에는 평신도 (사립)단체 승인을 받은 후,
2019년 5월 <끊임없는 내맡김 화살기도 성가> 모든 곡이
서울대교구 출판검열위원회로부터, 출판 승인을 받았어요.
화살기도문 감수는 물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