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815 영혼의 거울(2) - 볕뉘
햇볕의 그림자나 그 빛을 ‘볕뉘’라 한다.
‘뉘’는 본시 세상, 평생, 한 세대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보잘것없고 미천하고 작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볕뉘’는 대수롭지 않은 햇볕을 은덕으로 여기며 고마워함을 뜻한다.
조선 명종 때,
조식의 「三冬에 뵈옷 입고」라는 시조에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이라는 구절이 있다.
조식은 현실 정치를 멀리하고 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으며 처사의 길을 걸었다.
시조에서 그는 임금의 은덕을 입은 적은 없지만,
추운 겨울날 삼베옷을 입고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임금의 은덕으로 백성이 살아간다는 것이 유교의 이념이다.
하지만 시공의 제한을 받고 편애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임금한테
모든 백성이 골고루 은덕을 입을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식의 시조에 나타난 ‘볕뉘’에는 사실 임금으로부터 은혜를 입기가 어렵지만,
그의 은덕을 바라는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여도 자신의 소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있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기도를 하면서도 얼마간의 불신을 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장마철에 무기수처럼
교도소 독방에 갇혀 손바닥만 한 볕뉘라도 일말 들길 바라는 심정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망과 하느님의 뜻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른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망할 때 늘 서두르게 된다.
우리의 소망과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긴장과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을 정화하신다.
그리고 그 정화에 필요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소망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엄동에 삼베를 입고 볕뉘를 바라는 인내는
소망뿐 아니라 신앙까지 정화하고 굳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