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에 그분의 창조적 능력을 넣어주셨습니다. 당신의 상상력이 바로 당신의 창조적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 오직 사람만이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도 염소도 그 어떤 짐승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상상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상력이라는 특별한 선물로 당신을 축복하셨습니다. 이 상상력이 바로 당신의 창조적 능력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1-2절에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말합니다.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2절)
이때의 세상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혼돈 상태(CHAOTIC)입니다. 세상은 혼란 덩어리였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해서 무언가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당신의 가정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고 당신의 생각이 혼란스러운 삶의 환경으로 당신을 이끌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문제들은 끝이 없어 보일 수도 있고 그것이 당신의 심장을 정상 이상으로 더 빨리 뛰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재창조하셨는지 말해 줍니다.
창세기 1:2-3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거니시더라’(moved)의 히브리어 원어는 ‘라카프’(RACHAPH)인데, 이 단어는 ‘품다’(to brood) 또는 ‘퍼덕이다’(to flutt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면서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품고(brooding) 계시며 생각해 내고(conceiving) 계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품고 계셨고 이 땅이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할지를 품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이 아름다워지고, 이 땅에 빛이 있기를 갈망하셨고, 그분이 온전히 그 갈망을 잉태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그것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의 아름다움을 말씀하심으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긍정적인 갈망의 능력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원리를 따라 기능하고 계셨습니다. 이 원리는 야고보서 1장 14-15절에서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욕심(lust)의 결과물이며 욕심은 강하고 긴급하고 악한 갈망(desire)을 뜻합니다.
이 성경 구절은 부정적인 갈망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 원리들이 부정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영역에서도 기능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 그의 욕심, 즉 그의 잘못된 갈망이 그를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결국에 그가 생각 속에서 그 잘못된 갈망에 동의하게 될 때 그는 시험을 당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욕심에 끌릴 때 처음에는 씨앗이 심겨집니다. 긍정적인 갈망도 잉태(conceive)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원리는 부정적인 영역에서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한 갈망이 잉태할 때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빛은 어둠보다 강하고, 선한 것이 악한 것보다 더 좋고 위대하고 강합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악한 갈망이 무언가를 잉태하고 탄생시킬 수 있다면, 선한 갈망도 잉태하고 그 종류에 따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창세기 1장 11-12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땅 위에 풀과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 맺는 씨를 가진 과실수를 내라.’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땅이 풀과 그 종류대로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는 씨를 가진 나무를 내더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이것은 또 다른 원리입니다. 모든 것은 그 종류대로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욕심이 죄를 탄생시키는 것같이 선한 갈망이 잉태할 때 자연적으로 그 갈망은 선한 것들을 탄생시킵니다. 이것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시는 지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잉태하셨을 때, 그분은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그대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씨가 위대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3:16
“내가 네 씨를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씨도 셀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 같은 노인이 자녀를 갖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사라(그때는 사래였죠.)같이 늙은 여자가 어떻게 자녀를 나을지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5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밤에 깨워 그를 천막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다면 그 별들을 세어보아라.’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더라.”
창세기 15: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싶으셨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도 없고 아직도 감각을 통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씨가 땅의 티끌같이 셀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지성에 호소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그에게 별들을 보여주시며 별들을 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시야를 넓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별들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그는 하나님의 생각을(idea) 붙잡았습니다. 그는 별들 대신에 얼굴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각각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 별들 속에서 그의 자손들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별들을 세어보려고 했지만 셀 수도 없이 너무 많아서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의 상상력이 이것을 붙잡았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람’, 즉 ‘고귀한 아버지’에서 ‘아브라함’, 즉 ‘만민의 아버지’로 바꾸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자신 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비전을 지니고 있기 전에는 그를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의 이름도 ‘논쟁을 좋아하는’ 이라는 뜻의 ‘사래’에서 ‘왕자들의 왕비’ 또는 ‘왕자들의 어미’라는 뜻의 ‘사라’로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심령 속에 확립한 그림이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아브라함에게 전달되었고, 성경은 아브라함이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기 때문에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4:18
“그가 소망이 없는데도 소망 가운데서 믿었으니 ‘네 씨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혈루병 앓은 여인
마가복음 5:25-34
“십이 년 동안 유출병을 앓고 있는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여러 의사에게서 많은 고통을 받았고, 또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 허비하였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악화된지라,
그 여인이 예수에 관하여 듣고, 무리 속에 들어와 뒤에서 주의 옷을 만졌으니 이는 여인이 말하기를 ‘만일 내가 그분의 옷만 만져도 낫게 되리라.’ 고함이라. 그러자 즉시 피의 유출이 마르고, 자기가 그 병고에서 나은 것을 몸으로 느끼더라. 그때 예수께서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즉시 스스로 아시고, 무리 속에서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누가 나의 옷을 만졌느냐?’고 하시니, 제자들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께서는 무리가 주를 밀치는 것을 보시면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말씀하시나이까? 라고 하니라. 주께서는 이 일을 행한 여인을 보려고 둘러보시니, 그 여인이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 떨며, 와서 주 앞에 엎드리어 모든 사실을 말씀드리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도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네 병고로부터 온전해지라.’고 하시더라.”
이 여인은 끔찍한 출혈로 시달리고 있었고 많은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그분의 옷자락만 만질 수 있다면 나는 온전해 질거야.” 그녀는 치유되기를 갈망하면서 자신이 온전해지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이 갈망은 그녀 안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자라났습니다. 그녀의 상상력으로 그녀는 머릿속에 자신에 관한 새로운 그림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고 있었고 그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오직 이 여인의 치유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와 똑같은 갈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갈망을 정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번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이 의도하신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특성을 당신 안에 넣어주셨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인생(world)을 재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갈망이 이것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세상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가정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그림을 당신의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품기 시작하십시오.
그 그림으로 당신의 생각을 가득 채우고 당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당신의 상상력에 생기를 줌으로써 성령님께서 당신을 도우실 수 있도록 허락하십시오. 그러면 곧 천지창조 때처럼 당신은 당신의 말로 그것들이 존재하도록 불러내게 될 것입니다(speak it into being).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갈망과 상상력이 일한 결과였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마치셨을 때 그분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갈망을 가지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그림을 당신의 머릿속에 가지고 계십시오. 당신의 갈망이 강력한 원동력을 창조할 것이고, 이 원동력은 당신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며 당신이 갈망하는 목표들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모든 갈망은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갈망이나 불가능한 꿈은 없습니다.
꿈은 상황과 상관없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생명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씨앗입니다. 당신의 꿈이 자라도록 허락하십시오.
(크리스 오야킬로메 『당신의 인생을 재창조하라』 Paula Kim.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22. pp.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