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례자 성 야고보와 함께 걷는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9세기 초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아 사도 성 야고보의 무덤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신자들은 영적 힘에 이끌려 자신들이 살던 자리를 떠나 사도의 무덤을향해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각자 집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프랑스 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여 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걸어갑니다. 이름 모를 순례자가 걸은 길을 따라 또 다른 순례자가 걸으면서 탄생한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들’이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길이 ‘프랑스 까미노’(Camino Frances)인 것입니다.
점차 순례자들이 많아지면서 야고보 사도에게도 ‘순례자 성 야고보’(Santiago prergrino)라는 새로운 이미지와 호칭이 생깁니다. 12세기 중엽부터는 야고보 사도의 성상이 중세 순례자의 복장으로 꾸며집니다.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추위를 막아주는 ‘망토’와 ‘긴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어깨에는 작은 ‘보따리’를 매고, 한 손에는 ‘복음서’를, 다른 손에는 ‘호리병’이 매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호리병은 갈증을 해소할 포도주나 물을 담기 위한 것이고, 지팡이는 걷는 데 힘을 보태고 짐승이나 강도의 위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자와 양 가슴에는 산티아고 순례의 대표적인 표시인 ‘조가비’가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순례자들은 목이나 배낭에 조가비를 달고 걷습니다. 지금은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 사무소에서 13세기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순례완료증서’(la Compostela)를 받지만 초기 순례자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순례를 완료했다는 증표를 받길 원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바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어패류가 흔합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성직자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조가비에 축복을 하고, 사도의 무덤을 참배한 순례자들에게 영적 기쁨의 선물로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조가비는 순례를 완료했다는 증표로 순례를 온전히 마친 사람들만이 지닐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점차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도 조가비를 달고 가기 시작하면서 이제 조가비는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의 특별한 표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조가비에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선 조가비는 ‘애덕 실천’을 상징합니다. 순례자는 사도의 무덤을 향해 걸어가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실은 펼친 손바닥처럼 보이는 조가비의 모양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빈손인 순례자가 순례 여정의 마지막인 사도의 무덤 앞에 와서 기도할 때 마침내 자신의 빈손에 주님의 은총의 선물을 넘치도록 담아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순례자의 빈손은 가득 찬 손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선물은 순례자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나눠주어야 할 사랑입니다. 이웃과 나눌 때 은총의 선물은 더 커집니다.
또한 조가비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뜻합니다. 중세 서양에서 조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이나 여성의 성기를 상징했습니다. 1486년 보티첼리가 그린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에서도 비너스 여신이 큰 조가비 위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축복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조가비를 달고 가는 순례자는 새로운 탄생을 향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길 위에서 옛 자기는 죽고 사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자기로 태어나는 체험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길’이며 ‘참다운 자아 발견의 길’인 것입니다.
까미노는 세기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11-13세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전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왕, 귀족, 성직자, 수도자와 평민 등 신분에 상관없이 산티아고 순례를 하였습니다. 이때 가장 유명한 순례자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 까미노 곳곳에는 아직도 성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다양한 수도공동체들이 순례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클뤼니 베네딕도회에서 까미노에 많은 수도원을 세워 순례자들에게 영적 물질적 쉼터를 제공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도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관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뿌리를 두고 있던 성전 기사 수도회도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까미노 곳곳에 여러 성당과 성채를 세웠습니다.
16-20세기를 거치면서 까미노는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여러 원이 있지만, 1348년부터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여파와 16세기와 17세기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일어난 종교 전쟁 등으로 인해 순례길은 점차 황폐화됩니다. 순례자의 발길이 끊기게 되자 18세기부터 까미노에 있던 많은 수도원들과 순례자 쉼터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1960년대부터 까미노는 점차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198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콤포스텔라 공식방문을 시발점으로 하여,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람들에게 다시 널리 알려집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끊겼던 길들이 다시 이어지고 정비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친숙한 ‘노란 화살표’가 이때 만들어지고, 속도는 느리지만 알베르게 숙소도 숫자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사도 성 야고보는 살아 있을 때보다 순교하신 다음에 더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동기는 각자 다르지만 같은 길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순례자들에게 성 야고보는 다양한 모습의 순례자로 다가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를 동행하신 주님처럼, 야고보 성인도 순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순례자들과 함께 거룩한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길 위에서 순례자들이 가장 어려울 때 순례자 야고보 성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어떤 때는 눈을 맑게 하는 구름과 시원한 바람으로, 어떤 때는 흐르는 눈물과 고된 땀으로, 또 어떤 때는 뜨거운 햇살과 세찬 빗방울로 순례자들의 모든 발걸음에 함께 합니다.
순례자 성 야고보는 순례자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까미노는 가짜라네,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이 순례를 다 마치고, 그대가 떠났던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짜 까미노가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하게나. 참된 순례길을 위해 이 가짜 순례길이 존재하는 것이니 이 길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길이라네. 일상 삶이라는 진짜 까미노를 걸을 때도 내가 그대와 함께 걸으니 걱정하지 마시게나!”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9년 겨울호(Vol. 48),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