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설렘과 잔인함> 청야 김민식/캘문협 고문
4월,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습니다.
펜데믹의 세상풍파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이 순간에도 스멀스멀 밀려 오고있습니다.
뒷뜰의 포플러 나무, 양지바른 언덕에도 봄은 이미 잦아 들어 새 생명이 잉태하고 삐죽 거리고 있습니다.
4월 2일, 노인회 소속 카지노 봉사 팀의 일원으로 교민 젊은이들과 한 팀이 되어 야간 자원 봉사를 했습니다.
젊은이들의 봉사에 대한 열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자정을 넘기고 이른 주일 새벽녘에야 귀가했습니다.
나의 첫 4월 맞이는 소중한 자원봉사로 시작되었으니 감사의 조건이 늘어만 갑니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카지노 자원봉사 제도가 있는 알버타 교민으로 생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앨버타주 정부가 인정한 3,000여 자원봉사 단체에 주 정부의 엄격한 사용 관리지침에 따라 매 2년에 한 번씩
60,000불정도의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고 합니다.
내 고향의 봄은 나비 앞장 세우고 훨훨 춤을 추듯 화사한 여인, 천진 난만한 어린아이 처럼 앙증스러운 봄이라면,
캘거리의 봄은 다소곳하지만 우람한 청년의 기상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 처럼 봄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4월의 노래> 중에서-
팬데믹 기간의 4월은 새로운 생명을 싹 띄우며 존재의 성스러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는
생활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4월은 빛나는 꿈의 계절, 무지개 계절, 설렘의 달입니다.
4월의 지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달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미친 전쟁광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자비하게 도시는 파괴되고 매일 헤아릴 수 없이 죄없는 수많은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우크라이나 비대면에서 실시간 중계를 보고 있습니다. 예고 없이 미사일이 날아들고 거대한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주민이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있는지 아비규환의 생생한
중계 현장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종식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과감하게
전쟁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푸틴을 지지하는 러시아 최대 종교단체 정교회도 사탄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어
속수무책입니다. 러시아에는 종교의 정의가 무너지고 진리가 저물어가는 어둠의 세계가 확보되고 있습니다.
4월 중에 물가는 더욱 폭등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고, 생활 필수품은 고갈 상태에 이를 것 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4월은 잔인한 달’ T.S.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입니다.
순환되는 계절의 쇠사슬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잉태하는 힘겨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추위의 망각으로 에워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왔지만 다시 움트고 봄 속에서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채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그릇된 정신세계를 일깨우는 시입니다.
나의 넋두리를 넘어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를
보여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런 절망의 황폐함을 이기고 견디어 이겨내고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놀라운 생명의 강인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전쟁은 잔인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 또한 잔인합니다.
그러나 그런 죽음과 절망조차 이겨내는 라일락의 소생과 마른 구근의 부활은
가장 잔인한 4월의 역설적 고백입니다.
4월은 두려움을 넘어 희망과 설렘의 계절로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합니다.
*T.S. Eliot (1888~1965)
황무지(The Waste Land)로 노벨문학상 수상
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433행의 난해한 시(에즈라 파운드가 정리해준 시)
1부: 죽은자의 매장
2부: 체스놀이
3부: 불의 설교
4부: 수사
5부: 천둥이 한 말
1차세계대전 유럽 상황은 사망자와 부상자로 비참한 현실에서
정신적 메마름이 드러난 그 길고 긴 서사시
4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세월호 참사 등
청야선생님의 수필에서 볼 수 있듯이
Eliot은 프랑스인 사랑하던 친구가 1차 세계대전 중 1915년 4월에 전사한 상황에서
스위스 요양원에서 1부 죽은자의 매장 시를 쓰다.
전사한 친구가 라이락 피는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오는 듯한 환상에 몸서리치듯
오랫동안 방황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