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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5:29-32,40-42]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 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말씀나눔]
제가 군 생활을 할 때 함께 근무하던 선임하사는 매주 월요일이면 복권을사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는 매주 빠짐없이 복권을 샀습니다.
문론 과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한두 장 정도 구매합니다.
이 선임하사가 복권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말은“당첨 될 뻔 했다”는 것입니다.
당첨 될 뻔했다는 것은 당첨이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떨어질 뻔 했다”는 말이 나오면 좋았겠지만, 매주 그 선임하사는 “당첨 될 뻔 했다”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성경에서도 ~ 될 뻔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난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며 아쉬워합니다.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아그립바 왕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습니다.
왜? 아그립바 왕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다가 말았을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말고도 그리스도가 많이 있습니다.
베스도 총독 전임 벨릭스도 그리스도인이 될 뻔했습니다.
바울을 자주 불러서 복음을 들었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이 아니라 돈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그립바 왕이나 벨릭스의 메시야는 권력과 재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누가 참 그리스도인지 다시 확인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참 구주가 되셨음을 선포하며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대 제사장과 그 무리들은 사도들을 전하는 복음이 듣기 불편하였습니다. 사도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메시야를 죽인 장본인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 제사장과 그 추종자들은 사도들에게 백성들의 인기가 집중되는 것을시기하여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밤중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성전에 세워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새벽부터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예수가 참 그리스도이심을 전파 합니다.
대 제사장과 그 무리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을 다시 잡아와 산헤드린 공회에 세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지 말라고 했던 자신들의 경고를 지키지 않음을 질책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던 산헤드린 공회에서 대 제사장과 그 무리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예수가구주이심을 증언합니다. 이 말을 들은 대 제사장과 무리들은 예수님께 행하였던 것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을 죽이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공회 회원 장로 중에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던 율법 교사 가말리엘이 그들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지고 무너졌음을 상기시키고 만약에 사도들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쇠퇴하여 사라질 것이고, 이 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면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가만히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들은 모두 가말리엘의 말을 옳다고 여겨서 사도들을 채찍질을 하여 놓아주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나 말도 행하지 않도록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채찍을 맞은 사도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은 것에 대해 기쁨으로 생각하고 산헤드린 공회를 떠난 이후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가 참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며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박해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게 만들었으며, 그들이 멈추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하였을까요?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을 당할 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박해를 받음으로 인해서 선지자 급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오를 때 죽음이 두려워 도망을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그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으며, 자신들의 믿음이 선지자 수준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심으로 그들의 박해가 곧 천국을 향하는 보증 수표가 되었음으로 기뻐할 수 있었으며, 예수님을위해 박해 받음으로 인해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사도들이 기뻐할 수 있는 모든 원인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천하에 구원을 이루시는 참 그리스도는 예수님 밖에 없음을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라 하는 자는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신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참 그리스도이심이 확실하기 때문에 사도들은 집에 있을 때들지 성전에 있을 때든지 기회만 되면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사도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참 그리스도이시며, 사도들이 전하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가말리엘의 논리를 통해서도 명확하게 증거 되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논리를 폈는데, 그리스도교는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러 더 점점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말리엘의 말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그동안 2,000여 년이 흘러오면서 그리스도인들은 흩어지고 교회는 무너졌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그 때보다 오히려 더 성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말리엘의 논리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사도들을 이렇게 적극전인 복음의 전사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1. 사도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지혜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습니다.
가말리엘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가말리엘은 율법 교사로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과 미쉬나, 탈무드와 같은 유대 경전을 연구하는 과정을거쳐야 합니다.
보통은 9세에 시작하여 10-15년간 공부하고 어려운 시험과 엄격한 절차를 통과하여 율법교사가됩니다.
가말리엘의 집안은 정통 랍비 가문입니다.
조부는 힐렐 학파를 창설한 사람입니다.
유대에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샴마이 학파와율법을 융통성 있게 지킬 것을 주장하는 힐렐 학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가말리엘은 이 두 학파에서 존경받는 율법교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가말리엘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사도바울이 자신이 가말리엘의 문하임을 자랑스럽게 밝힐 때 자신의 스승인 가말리엘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을 할 때는 3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예루살렘 백성들 앞에서 말한 것으로 주후 57년 이후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이미 주후 52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가말리엘이 침례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가말리엘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었다고 보아야합니다. 가말리엘이 회심하였다면 사도 바울이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는자신의 스승의 회심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그리스도교가 망하지 않고 점점 더 왕성해 가는 것을 보고도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가말리엘은 구원에 가깝게 접근했으면서도 구원 받을 뻔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가말리엘이 지혜가 많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후에는 성인으로 추대될 정도였지만, 아그립바와 벨릭스 총독과 비교하여 볼 때이들은 모두 구원 받을 뻔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도들을 이렇게 적극전인 복음의 전사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2. 사도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가말리엘의 문하 중에 가장 뛰어난 제자가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이 회심하지 않았다면 율법교사가 되어서 산헤드린 공회 회원으로서 명예와 권력을 자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7-9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회심 전에는 대 제사장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로는 변화되었습니다.
회심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 가두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면, 회심 후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회심한 후에 사도바울은 목숨을 걸고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20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진 제자들에게 있어서 세상 그 무엇도 예수님을 대신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을 이렇게 적극전인 복음의 전사로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3. 사도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말리엘과 그의 제자 사도 바울의 차이점은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을인정하였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의 차이에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우두머리라고 고백합니다(딤전1:15).
또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할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밝히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24에 보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에서 건져내신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밝힙니다(롬8:1-17).
사도바울의 유일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사도들은 한 결 같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으며 구원받을 뻔한 가말리엘 또한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임을 증명 하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의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사도바울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여러분을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주님이 부르신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자신이 있습니까?
천국 문 앞에서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가야 할 이유를 대야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성도들은 천국 문 앞에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입니다. 천국은 내 아버지 집이고 곧 내 집입니다.
내가 내 집에, 내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예수님이 구주이자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치 귀한 진주를 발견한 진주장수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그 진주를 구매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다고 동의한다면 여러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주님과 다른 것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수련회 중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A4 용지에 내가 소중하다고생각하는 것을 다 기록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머리를 싸매고 적어보았습니다.
문론 저의 아내와 자녀들의 이름도 적었습니다.
당시에 열심히 타고 다니던 자가용도 적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남겨주고 가신 유품도 적었습니다.
한 20~30분 쯤 지나자 이제 더 적을 것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10여 분을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이제 적은 것 중에서 한 개씩 지워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쓱쓱 잘 지웠습니다.
그런데 10여 개 쯤 남게 되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하나 지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가용도 지우고,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품도 지웠습니다.
이제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예수님만이 남았습니다.
이제 부터는 한 줄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지식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남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간이 다 되도록 더 이상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때 내가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100% 순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 전체가 다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그 안에 단 0.1%라도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100%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정말 100%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빈틈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파트 시세나 주식 시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식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있다면 100%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동시에 우리의 왕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내 주권을 100%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 구원자가 하나님이라고 100% 확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앉아 계실 왕좌에 다른 무엇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왕좌는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내가 의지하고 믿는 구원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 중의 하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방면에 전문가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힘으로 하다하다 해결이 안 되면 마지막으로 기도의 자리를 찾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오늘부터라도 무슨 문제이든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먼저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결정 못하고 엄마의 결정을 바라는 사람을 마마보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무슨 일이든 주님의 결정을 바라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예수보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사도들과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들의 주인이시며 오직예수님만이 이 땅에 보내신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또한 예수님만이 참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예수보이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천찬양]
예수 늘 함께 하시네(C-D), 십자가의 전달자(D), 하늘 위에 주님 밖에(A), 예수 이름이 온 땅에(A), 그리스도의 계절(A), 온 땅의 주인(A) //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 결단찬양: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