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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레위기 8:22-36]
22 또 다른 숫양 곧 위임식의 숫양을 드릴 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24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모세가 그 오른쪽 귓부리와 그들의 손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들의 발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모세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25 그가 또 그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과 오른쪽 뒷다리를 떼어내고
26 여호와 앞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병 한 개와 기름 섞은 떡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가져다가 그 기름 위에와 오른쪽 뒷다리 위에 놓아
27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두어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게 하고
28 모세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 있는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위임식 제사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29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에서 잡은 숫양 중 모세의 몫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30 모세가 관유와 제단 위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31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령하시기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
32 고기와 떡의 나머지는 불사를지며
33 위임식은 이레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끝나는 날까지 이레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34 오늘 행한 것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이니
35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36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
[말씀 나눔]
옷이 날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이고 옷만 바뀌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제복을 입으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신병교육대에 신병들이 들어오면, 똑 같은 훈련생일 뿐입니다.
서울대를 다니다 왔든, 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왔든지 상관없이 훈련복을 입혀 놓으면 훈련병일 뿐입니다.
신기한 것은 마치 복장에 능력이 제한받는 듯이 모든 사고와 행동이 딱 훈련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도 군 생활을 할 때 제복을 입으면 내 어깨의 계급과 직책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상복을 입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도 제복을 입으면 조심스러워집니다.
옷이 사람을 바꾸고 옷이 사람의 행동을 통제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 중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의복을 입히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지 못할 순간들을 몇 가지 꼽으라면 여러분은 언제, 어떤 순간을 꼽으시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결혼식이나 졸업식, 초등학교 입학식, 또는 해외여행 등을 꼽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군에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결혼 기념일은 잊어버려도 영원히 기억하는 숫자가 있습니다.
바로 군번입니다.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받게 되는 군번은 죽을 때까지 잊혀 지지 않는 숫자입니다.
저 또한 학번은 가끔 잊어버리지만 군번은 각인되듯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저는 임관식에서 소위 계급장을 달 때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장교로서 첫 발걸음을 딛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임관식이라는 예식이 주는 특성이 있어서 매우 특별한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후 군 생활 하는 동안에 임관식만큼 감동을 주는 예식은 없었습니다.
옷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예식은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의복과 예식을 통해서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배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자격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특히 아론은 모세가 하나님께 계명을 받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전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사 대제사장으로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위임식을 위해서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준비하게 하셨고(8:2) 모든 회중을 회막 문 앞으로 불렀습니다(3절).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매우 성대한 위임식을 거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는 대제사장 의복을 입히고(7-9절) 머리에 기름을 붓고 발라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12절). 또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제사장의 옷을 입혔습니다(13절).
이들에게 이러한 의복을 입힘으로 인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나아가 그들의 마음가짐도 새롭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송아지를 잡아 안수하도록 하고 속죄 제물로 드립니다.
수송아지 피를 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제단을 거룩하게 하였고 모든 것을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또한 숫양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잡아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번제 절차에 따라 숫양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번제로 드렸습니다.
속죄제와 번제는 화목제와는 다르게 제물 모두를 불에 태웁니다.
이것은 제물이 예배를 드리는 자신을 대신하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 드린 다는 상징적인 제의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의를 통해서 제사장은 거룩한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임을 각성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 숫양을 잡아서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그 피를 아론의 오른쪽 귓 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그의 오른쪽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도 데려다가 그 오른쪽 귓 부리와 그들의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그들의 발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게 하였습니다(23-24절).
이로서 그 피로 그들의 몸을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름과 콩팥과 오른쪽 뒷다리를 요제로 드리후 화제로 드렸으며나머지고기는 화목제로 회막 문에서 삶아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었습니다(31절). 하나님의 거룩한 식탁에 참여한 것입니다.
위임식은 총 7일 동안 드려졌습니다.
매일 수송아지 한 마리가 속죄제로 바쳐져 그 피로 제단을 씻어냈으며(출29:35-37).
매일 아침과 저녁에 1년생 양을 한 마리씩 상번제로 바쳐야 했습니다(출29:38-40).
상번제는 위임식이 끝난 이후 가장 중요한 직무가 되며 그들은 항상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습니다(6:9).
이와 같은 위임식 절차를 통해서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먼저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거룩함을 유지하여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위임식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내용이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배에 관한 매우 중요한 성경적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9 상반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주님께서 선택하사 이 땅에 세우신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위임식 예배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예배 중에 집중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살펴 본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예배의 바른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상번제로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모습은 예배자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배는 특정 시간에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드려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는 거룩이 생명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1을 통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드리는 영적예배는 분별함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분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구별하다는 의미로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구별하다는 것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나눈다, 또는 갈라놓는다는 의미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거룩’과 연관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2절 말씀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거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11-13에 보면,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제물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열심히 드리지만 일상이 불의로 가득하다면 이들이 드리는예배는 의미가 없고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는 것이 됩니다.
열심히 모든 공 예배에 참석하고 새벽기도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오지만 일상에서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열심히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다해 교회는 다니지만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 생활도 게을리 하며 제자로서 헌신도 없는 무늬만 성도인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행위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이 거룩의 시작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7일 동안 회막 안에서 머물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대로 준행하였습니다.
9절, 13절, 17절, 21, 29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의 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세하게 말씀해 주신 방법에 따라서 시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 어떤 것도 임의로 시행하여서는 안 됩니다.
즉, 이 모든 의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 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주일 예배도 임의로 순서를 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과 신약에 근거한 것으로 예배의 부름에서 축도까지 그 순서를 준용하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예배의 초청, 고백의 기도, 말씀 선포, 봉헌/헌신 결단, 축도라는 큰 틀에서의 순서는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서는 유대의 회당중심의 예배와 초대교회의 예배, 그리고 중세,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개념이 잡히고, 현대에 들어서 예배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권장되고 개신교 교단에서 준용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8장에 기록된 제사장 위임식은 상당히 많은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긴박하게 진행됩니다.
34절에, “오늘 행한 것”이라는 구문을 통해서 앞에 기록된 모든 절차들이 하루 동안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많은 일을 행한 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게 하시려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왜 속죄를 해야 합니까?
35절 하반부에 보면 그 이유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매우 긴박하게 이 모든 절차를 진행 한 것입니다.
즉, 죄 문제 해결이 그 어느 것 보다 시급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사하셨음으로 내게 죄가 없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 번에 속죄제와 화목제물로 드려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죄를 범하고 살아갑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죄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포함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으로 짓는 죄도 되입니다.
저번 주에 우리가 나눈 것처럼 내가 모르고 행한 것 중에서도 죄가 되는 언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짓는 죄는 하루에 몇 가지나 될까요?
하루에 한 가지만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가지의 죄가 1년이 되면 365개가 되고 10년이 되면 3,650개가 됩니다.
즉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전과 1만 범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흉악한 죄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가면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죄 사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하나님께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예배드릴 때 우리는 사망이 아니라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옷 입기 위한 의식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거룩’이며 우리들이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상실한 예배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월삭과 정한 절기에 불과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속죄제와 번제, 화목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담긴 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합니까?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위임식을 하기 위해서 회중들 앞에서 준비 되어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속죄제와 번제를 드릴 때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몫으로 남기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지는 않습니까?
위임식의 예배는 화목제를 드림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껍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는 예배는 목적을 상실한 예배입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서 교회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한 그리스도의 식탁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모임을 가질 때 함께 식사를 나누며 친교를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은 그 자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화목의 식탁이라는 의미를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알 수 있습니까?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통해 변화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 한절이라도 내 삶에서 이루어 낼 때, 그 삶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지체들과 친교를 누리는 것은 그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배를 언제 얼마나 드려야 합니까?
위임식 때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의 예배는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의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이 말씀도 예배의 연속성이라는 개념에서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는 참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위해서 정성껏 몸과 마음을 다해 드려야 하는 것 입니다.
예배는 살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배에 소홀히 하다 보면 내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게 죽게 됩니다.
우리의 신체 기관 중에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릅니다.
간의 70%가 손상되어도 증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은 재생능력이 있지만 이정도 손상되면 간은 재생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영성도 그렇습니다.
죄를 인지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면 회복되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죄에 민감하지 않으면 내가 죄 중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육이 강건하게 살아가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예배를 회복해야합니다.
무엇보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켜야 할 목장의 자리, 기도의 자리, 가정의 자리 모두가 큰 범주 안에서 예배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예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회복되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위해 세워진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의 옷, 즉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들 모두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거룩한 예배자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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