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출발
정 동 식
인생이란 무엇일까?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에서 일어나는 C의 연속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B는 출생(birth)을 D는 죽음(death)을 의미하며 C는 선택(choice)을 가리킨다.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는 어디론가 출발을 하게 된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많은 출발과 도착을 하며 살아간다.
출발은 언제 이루어질까? 일상화된 출발도 있고, 인생의 변곡점에서 국면을 전환하고 방랑의
끝을 위해 떠나는 중요한 순간도 있다.
루틴화 된 출발은 거의 기계적이지만 뭔가 목표가 있는 시작은 충분한 성찰 끝에 묻어 나오는
것이라 허투루 출발할 수 없다.
지도교수님께서도 첫 강의시간에 ‘좋은 출발이 반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출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의 출발이 더 중요한가를 의미한다고 본다.
작심삼일도 출발은 출발이다. 우스갯소리로 ‘작심삼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계속해서 1년을 반복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고도한다.
그러나 잦은 출발은 에너지 낭비이고, 중도에서 자주 포기하는 출발은 좋은 출발이 아니다.
좋은 출발은 멋진 출발이다. 멋진 출발은 자기 성취는 물론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성공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성취에 뿌듯해하고 행복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순을 훌쩍 넘은 내 인생에도 좋은 출발을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81년 2월 하순경 군복을 입은 채 입시학원을 찾았다.
접수하는 아가씨가 물었다. ”누가 다닐 건데요?”, “학원에 등록할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또렷하게 대답을 하면서 수강료를 지불했다. 아마 아들을 대신해서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이 흔히 보는 막대기 계급장이 아니라 부사관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 입대는 76년 2월에 했으니 5년간의 군 복무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었다.
나의 군 입대 과정은 다음과 같다.
73년 3월, 구미에 있는 금오공고에 입학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자였다.
전국 중학교에서 공부 꽤나 하는 학생들이 까까머리를 한 채 입학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공업입국의 선봉에 설 유능한 기능공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교하였다.
학생들은 제301 학군단에 소속되어 군사훈련도 병행했다.
처음엔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다고 했다가 3학년 2학기 시작할 무렵에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내려와 입대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고등학교에서 3년간 장학금을 받았으니 졸업 후 바로 입대하여 총 5년을 복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아직 애송이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나이에 육해공군으로 스며들었다.
5년의 세월은 너무 길었다. 요즘 복무기간의 3~4배가 되니 지겹고 암흑기 같았다.
한참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때로는 낭만과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 할 시기였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한 번은 서울 무교동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S대 배지(badge)를 달고 나왔다.
공부할 기회를 놓치고 군복을 입은 나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초라함이 흘러내렸다.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지만 ‘다시 돌아가라 하면 못 가요. 나는 못 간다.’
학원에 오기 전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제대가 가까워졌을 때 선친과 마주 앉아 장래를 의논하게 되었다.
선친께서 한번 부르시면 어릴 때부터 2시간은 기본이었다. 대화라기보다 일방적 훈시가 많았다.
오늘 장기전은 안된다. 빠른 시간 내에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내리라 다짐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제대하고 공부 좀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그러면 돈 벌 까요?” , “....... ”
“아 그러면 돈 벌면서 공부할게요.” 침묵이 흘렀다. 적막을 깨고 선친은 의외의 답변을 하셨다.
“한 가지만 해라. ”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결론을 말씀드렸다.
”아버지! 그러면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렇게 선친과 의미 있는 독대를 한 뒤,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하늘이 도운 것이다. 내가 책가방을 다시 들다니!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 부산의 B대학교에 합격했다. 땅거미가 지는 소운동장 벽면에 내 이름이 빛났다.
또래들보다 많이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82년 3월은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 잊을 수 없는 좋은 출발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두 번째 얘기는 대구·경북에서 살게 된 이야기다.
91년 1월에 안동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어 시행되지 않지만 서울에서 승진하면
지방으로 전보되는 순환근무가 있었다. 고향과 가까운 청도를 희망했지만 발령은 안동으로 났다.
맡은 임무는 안동경찰서 방범순찰대장이었는데 대원이 많을 때는 180명에 이를 정도로 경북지방청 의무경찰의 보충대 역할을 하는 조직이었다.
내가 이곳으로 부임한 뒤 두 달 만에 아내와 가족들도 이사를 왔다.
바쁘긴 했지만 다양한 캐릭터의 대원들과 운동도 하고 음악활동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일 즐거움이 넘쳤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산서원, 주왕산 등 인근의 문화유적과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여건이 된다면 가급적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었으나
운명은 역주행했다. 해가 바뀌어 임신년이 되었다. 울진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 대비를 위해 현장으로 출동 중, 서울로 복귀 발령이 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울진에서 부대원들과 송별인사를 할 때 울컥하여 할 말을 다 못 했다. 그날 저녁, 나는 1살, 3살 된 두 아들과, 아내를 안동에 두고 혼자 밤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첫 번째 대구·경북과의 인연은 이렇게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미완성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10년 뒤 우여곡절 끝에 경정으로 승진하여 대구로 발령이 났다.
물론 처음에 내가 원했던 곳은,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이었다.
이사하지 않고도 가족들과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는 차선의 선택이었고 안동에 이어 대구·경북과 두 번째 인연이 맺어졌다.
이번에는 지난 안동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고 제대로 충전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2년간 순환근무를 마치고 1년 더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처갓집 텃밭의 감나무에 발그스름한 이파리가 몇 장 남지 않았을 무렵,
서울 방배경찰서 옛 동료들을 만났다.
정기모임이었지만 나의 향후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내년에 서울로 복귀하느냐 대구에 잔류하느냐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회원은 나 포함 7명이었는데
3명은 더 상위직으로 올라가려면 아무래도 서울로 복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고, 나머지 3명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바쁜 서울보다는 지방생활이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3대 3! 팽팽하게 의견이 나뉘었고,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선친 병환 등 많은 것을 고려하면서 장고를 거듭한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이후 최선을 다했고, 총경으로 승진하여 대구 성서경찰서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퇴임했다.
공무원의 정년퇴임은 영광이며 자랑이다. 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대구에서 했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좋은 출발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최근의 멋진 출발은 대경 상록 수필 강좌를 듣게 된 9월 5일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문자메시지를 받고 수필창작분야에 수강신청을 하였다.
최근의 침잠에서 깨어나, 무언가 활력소를 얻기 위해 찾던 소중한 기회인지라 설레기까지 했다.
오기를 잘했다. 누군가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수익의 1%는 책을 사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소개해 주셨고
‘다작이 대작을 만든다.’
‘준비와 연습이 완벽함을 만든다.(PPP이론)
특히 일기를 60년간 쓰고 계신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그만큼 글쓰기 소재가 풍부하니 좋은 글이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필자도 일기 쓰기를 시도해 본 바가 있다. 아들의 사춘기 시절에 100일도 못 가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고,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부랴부랴 일기를 몰아 썼던 추억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년 이상 일기를 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초인적 능력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첫 강의가 끝날 무렵, 참석자들의 자기소개가 있었는데, 국어 선생님, 연설 원고 담당 공무원 출신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하신 훌륭한 분들이 많으셨다.
이런 문우들과 함께 좋은 출발을 했으니 이미 반은 이루어졌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 반은 꾸준한 책 읽기와 서로를 배워가면서 수필창작활동을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좋은 출발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은 확실하니까!
2022.9.11
첫댓글 좋은 출발을 하셨습니다. 글도 숙성이 필요합니다. 계속 다듬고 퇴고와 교정을 하여 좋은 글이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글 속에 진솔한 향이 베어 있습니다. 지나온 발자취의 여운이 독자로 하여금 관심을 끌게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B와 D 사이의 C란 말에 공감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 선택을 슬기롭게 하여 정년까지 근무를 마친 일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진솔한 이야기를 글로 많이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운 왕성을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Pc부근을 서성이고 있는데....
김무완선생님! 시작이 반입니다. 카페에 제일 먼저 가입해주시고 PC 부근에서 서성이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