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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교수님! 우선 인터뷰에 앞서, 본인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A. 언론홍보영상학부 김경모 교수입니다. 83년도 신문방송학과 입학했고, 대학원 석사까지 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후에 99년부터 2002년까지 부경대학교 신방과에서 교수로 있다가, 2002년부터 지금까지 모교에서 봉직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 관련 과목 가르치고 있고, 통계나 방법론 관련 과목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뭐.. 저널리즘 관련 영역에서 대외 봉사 활동, 예를 들어, 네이버 뉴스 편집 자문위원, 연합뉴스Y 시청자 위원, 채널A 공정보도위원장, 한국언론학회/방송학회 총무이사 등등 여러 일을 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을까요?
Q. 감사합니다. 이제 소개하시려는 책의 제목을 간단하게 언급해주시고, 책에 대해서 자유롭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제가 추천하는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최근 한국 언론 상황과도 연관되어 있고, 현직 기자들이 주로 수강하는 야간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미디어 윤리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수업의 강의노트 준비에도 참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예전에 읽었지만, 요즘 다시 꼼꼼하게 읽으며 공부하는 책입니다. 최근 들어 저널리즘 윤리가 특히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매체나 지역에 무관하게 옛날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윤리 위반과 그 폐해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저널리즘으로서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없는 거죠. 세월호 사건의 경우에도, 현장 취재한 기자들이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그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은 언론계 내부에 아무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취재하며 얻어낸 고급 정보들을 자신의 사적 이익으로 사용하는 등 각종 문제들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야간 대학원 수업을 통해 다루는 중입니다.
책의 내용을 좀 소개하자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내려오는 고전적인 덕 이론을 다룹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그 탁월성을 가장 잘 발휘해야 할 고유한 능력이 바로 ‘이성’입니다. 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우면서 가장 바람직한 삶, 개인 차원이든 공동체 차원이든 행복을 보장합니다. 이성을 통해서, 욕망과 용기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지혜로운 삶이 이성 본위의 삶이며(이성 중심 사고에 대해선 물론 심각한 논란이 있지만), 이러한 삶을 통해 이성이 최고도로 발휘될 때 ‘에우다이모니아’(행복), 곧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런 이성적 삶과 윤리적 삶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하고 교육하고 성찰해서 덕(arete)을 쌍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습관적으로 좋은 품성이 몸에 배도록 반복적 교육을 강조한 겁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너무나 울림이 크고, 결코 허투루 해석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고전이 좋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죠. 제가 젊었을 때 읽었던 때와, 현재 언론 윤리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다시 읽으며, 이 책이 제게 주는 가르침이 다르면서도 너무나 크기에 모두에게 가치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해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하는 학생을 포함해서, 제자들의 인생에서 삶의 풍부함을 고양시켜주는, 대단히 유익한 책입니다.
Q. 고전으로서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저를 포함한 언론홍보영상학부의 재학생들에게는 삶의 풍부함을, 언론 윤리에 대해서는 가치 있는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언론 윤리와 관련하여 예를 들면 어떤 내용이 연관이 있을까요?
A. 칸트의 의무론적 관점과 비교해 설명해보지요. 칸트는 ‘정언 명령’, 즉 무조건적 명령을 강조합니다. 어떤 조건이 붙는 명령이 아닌, 어떠한 예외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도덕적 명령인 것이죠. 이러한 정언 명령의 아이디어가 적용되는 부분으로 저널리즘에서 “TUFF 원칙”이 있습니다. 존 메릴이 주장하는 언론의 윤리적 원칙인데, Truthfulness(진실성), Unbiasedness(비편향성), Fullness(완전성), Fairness(공정)의 네 가지 개념입니다. 이 4가지 원칙이, 저널리스트라면 꼭 따르고 실천해야 할 규범적 가치라는 겁니다. 메릴은 앞의 3가지 T, U, F에 대해서는 정언 명령의 해석을 강조합니다. 언론은 진실하고 불편부당하며 충실한 정보를 담고자 노력해야 하고, 여기엔 어떤 상황적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메릴은 Fairness(공정성)에 대해서는 정언 명령이 아니라 목적론적 해석을 해야 할 영역이라 언급합니다. 언론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당사자 양측의 주장과 목소리를 공평하고 치우치지 않게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적 평등 또는 무게중심잡기와도 유사할 수 있겠네요. 예컨대, 강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양적으로 동등하게 담는다고 해서 그게 공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 약자의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더 담고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진정한 공정성, 곧 정의에 가깝죠.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공정성 문제에는 그 상황적-문화적 요인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 혹은 조건인지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동등하게 보도하는 것이 아닌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공정한 언론입니다. 이 부분이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언론 윤리가 연관되는 대표적인 지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성(arete)을 지적 덕성과 도덕적 덕성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어떤 균형을 찾는 것에서 이성을 발휘할 대목을 중용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언론의 공정성 덕목을 이해하려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이 지향하는 가르침의 울림이 매우 크다 하겠지요. 사실, 윤리는 억지로 어떤 틀에 맞추는 학문이 아니고, 실천 과정에서 정답이라는 걸 찾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윤리를 대학 입시 과정에서 정답을 외우는 식으로만 배웠을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 다시 제대로 된 윤리학을 배우고 진지하게 사고할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언론계 진출이나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Q. 감사합니다. 앞서, 현재 한국 언론과 저널리즘의 윤리는 많이 추락한 상태이고 저널리즘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기자들도 많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특히 최근 들어서 기자들과 언론이 옛날 8-90년대 민주화 투쟁 당시에 비해 더 쇠퇴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그 시대의 언론인들은 오늘날의 언론인에 비해 기자로서의 품위나 직업의식을 더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품위와 직업 정신이 사라진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입장으로서 제 견해를 말하자면, 질문자의 견해와 조금 다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완벽하게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70~90년대 우리나라는 정치적 정통성이 떨어지는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던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억압적이었고, 언론 자유 지수 또한 매우 낮았으나, 한편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가 급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철저히 탄압 당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언론사가 성장할 수 있는 호조건이 만들어지던 때였습니다. 좋은 시기를 맞아 당시 언론사들은 어떻게든 사세를 확장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것에 몰두하였고, 회사의 목표 또한 언론사 자체의 성장과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으로서 품위를 지킨다거나 윤리를 준수하는 것이 당시 그들의 최우선 목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윤리강령이나 품위 같은 것은 실천이 결여된 구두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독재정권 하에서 언론의 자유 수호를 위해 투쟁하고 노력했던 점은 상당 부분 인정할 수 있고, 또 눈물 나는 얘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불안과 혼란 속에서 언론사들이 언론 윤리나 언론의 품위에 대해 성찰하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대단히 제약적인 환경이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언론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반성”은 일반의 생각과 달리 그 당시 언론사에게는 핵심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탄압을 피해 활동하면서 경제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는 것이 그들의 주 관심사였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것이죠. 이후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자 정치적 폭압의 정도는 낮아졌지만 그를 대체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고스란히 경제적 압박이 강화되는 환경에서 각종 미디어와 매체가 마구 여론시장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독재정권이라는 ‘절대악’이 공격 목표로 뚜렷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게 사라지면서 한순간에 전례 없는 “시장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 닥친 것입니다. 이전까지 정부의 언론 탄압에 저항하고 그 저항 속에서 사세를 키우는 것에 열중했음에도 실제로 닥친 치열한 시장 경쟁 상황에서 경영 경험이나 경쟁 실력도 없었고, 그런 걸 배우기에 급급한 사정이다 보니 90년대 이후에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언론사의 비윤리적 행태가 선정성 경쟁 형태의 사회문제로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독재 권력이라는 절대악에 맞서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정작 그 시간 동안 저널리즘 윤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윤리적인 밑바탕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시장경쟁에서 윤리적 판단을 타율적으로 내려야 하는 일종의 무원칙한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죠. 7-90년대가 언론의 자유 투쟁 측면에서 치열했던 시기인 것은 맞지만, 시장 경쟁이 격화하면서 미디어 윤리 측면에서 적절한 준비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Q. 말씀하신 우리나라 언론의 윤리적 밑바탕을 늦게라도 최대한 마련하고 쌓기 위해, 교수님께서는 앞서 본인 소개 때 말씀하신 각종 학회 활동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막연한 질문일 수 있지만, 그런 윤리적 밑바탕의 마련을 위해 교수님 본인이 하고 계신 것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학교에서 저널리즘에 관심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교육을 잘 하는 것이죠. 저는 여건이 된다면 대학원뿐만 아니라 학부 차원에서도 미디어 윤리 관련 과목을 개설해서 가르치고 싶습니다. 예전과 달리 연세춘추 같은 학내 언론에서 활동하는 우리 학부 학생들이 적고, 또 언론계로 진출하려는 학생들도 적어진 것 같아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미리미리 언론 윤리와 관련하여 준비시키고 관련 커리큘럼을 짜보려 노력 중입니다. 채널A 같은 언론사에 가서 보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그 연장선의 노력입니다. 학교에서의 교육이나 학회, 언론사 보도위원 등의 활동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나, 저는 미디어 윤리의 밑바탕을 쌓아올리는 일이 굉장히 오래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단칼에 뭘 베듯 금방 결과가 나오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한 명의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미디어 윤리에 있어서 봄이 오도록 열심히 노력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학생들에게도 잘 전달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연구자가 아닌 학부생들의 차원에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우선 저널리즘과 언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공식 커리큘럼이든, 비공식적 활동이든 일단 언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매일 우리 곁에 있는 언론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좀 더 비판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학부생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요. 사실 본인이 언론에 관심이 있다면 뭐라도 먼저 찾아보고 스스로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언론사에 입사하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목표였기 때문에, 스터디 그룹부터 학술제 등 여러 언론 관련 활동이 있었습니다. 요새는 그런 게 잘 없는 것 같고 ... 관심을 일단 가지면 어떻게든 방법은 다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저널리즘 관련 과목들이 우리 학부 전공 수업에 더 많이 배치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련 과목에 대해서도 많이 관심을 갖고 수강해주기를 바랍니다.
Q.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언론홍보영상학부 학생들에게 책과 관련하여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요즘 책 말고도 영상 미디어가 많지만, 영상 미디어로는 다양한 상상력의 작동이나 추론 능력의 최대 발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그 긴 호흡 속에서 관조(사색)와 추론은,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입니다. 특히 한창 머리도 좋고 가장 열정 넘치는 20대 초반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 청춘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날마다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서던 시기였습니다. 학교에서 연애하는 것, 전공 책을 읽는 것 등등이 모두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시기였지요. 어른들이 괜히 대학생들 보면서 연애도 실컷 하고 책도 실컷 읽으라고 말하시는 게 아닙니다. 정말 다시는 오지 않을 이 피 같은 청춘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봅시다. 책을 읽고 혼자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거듭하고 토론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지적 산파(intellectual midwife)가 되어주는 겁니다. 책을 두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훈련은, 서로가 서로의 산파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혼자서 독서를 하는 intrapersonal communication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적 산파가 되어주는 interpersonal or small-group communication을 통해 비판적 독서력을 쌓고 함께 지혜를 가꿔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제가 여러분께 끝으로 권하는 당부입니다.
Q. 저희 학생회에서 책을 읽고 소감문을 공유하는 학생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그 이벤트와 잘 들어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좋은 답변 해주셔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A. 그러죠. 너무나 유명한 책이지만 그만큼 좋은 고전이니, 꼭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