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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여기 올라오니까 되게 떨리는데요 다시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대치2동 본당신자 정민선 마리아라고 합니다. 부족한 제가 이렇게 신앙의 대선배님들앞에 서게 되니 많이 떨리는데요, 부족해도 잘 들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강의에 앞서 깍두기 역할로서 아직은 내맡김 영성에 있어서 왕초보이지만 제가 만난 내맡김 영성에 대해서 나눔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사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알기 전에는 어떤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 맡겼다, 맡겼다 하면서도 여전히 걱정하고 안달복달하는 그런 성격이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제 뜻대로 되던 안되던 조바심을 내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께 제 모든 것을 내맡겨드리고 화살기도를 하면서 기다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친정은 딱히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선물을 많이 준다는 그 이유로 집 가까이에 있는 개신교회를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저보고 성당을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 가게 되었는데 어린 저에게 비친 성당은 굉장히 밝고 환하고 뭔가가 거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에 제가 이 다음에 결혼을 하면 꼭 성당에서 결혼을 해야지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현재 개신교의 그 요란한 환영식과는 달리 성당에서는 제가 처음 갔는데도 별로 관심을 안가지는거예요. 심지어 친구가 줄을 서서 뭔가를 먹기 위해서 앞으로 가는데 혼자만 맛있는거 먹고 들어오는데 나누어주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다음 주에는 꼭 와서 먹으리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니고 싶었어요. 근데 그 이후에 친구는 가자고 얘기를 안하더라구요. 그래서 성당은 그렇게 초등학교 때 처음 갔었구요. 그러다가 드문드문 개신교회를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대학에 와서 다시 개신교회를 다니게 되었어요. 그리고 학교 써클인 CCC라고 해서 대학교 학생연합회라는 곳에 가입을 거기서 그분들이 하는 찬양도, 예배도, 때론 단식기도, 수련회도 참석을 했습니다. 그땐 뭐가 뭔지 몰랐지만 찬양을 하면 마음이 너무 기뻤고 기도를 하면 마음이 참 편안했었던것 같애요.
하지만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제가 작은교회인 개신교에 머무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제 사랑하는 인생의 동반자를 통해서 큰집인 천주교회로 드디어 이끌어주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같은 과 선후배 사이인데 그야말로 과커플이거든요. 남편은 경상도 남자인데도 굉장히 싹싹하고 성격이 아주 자상했습니다. 사실 저희 오빠들이나 아빠도 다 경상도 남자들인데 무뚝뚝하고 그렇게 뭐 정을 주고 이런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을 보니 신세계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편은 무엇보다도 장점이 저의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는게 저는 그게 참 마음에 들었었던것 같애요.
저희 아버지는 사업적으로는 크게 성공은 하셨는데 아버지는 사실 가족들에게는 많이 소홀하셨던 것 같애요. 저희가 2남 4녀인데요, 위로 오빠 둘, 언니 둘, 그리고 저와 동생 이렇게 6남매인데 제가 초등학교 때 둘째언니가 배다른 언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집안의 우셋거리라는 생각에서인지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했으며 아빠와는 별로 대화를 안했었던것 같애요.
그래서 저는 결혼을 하면 아이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아빠, 그리고 저를 외롭게 하지 않을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남편은 만나면 만날수록 저의 배우자감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보다 6살이 많은 큰 오빠가 오랜 연애끝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외도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혼의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저역시 그렇게 파혼을 당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이 생겼고 그래서 고민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서 저희 남편에게 저의 가정사를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은 다소 충격을 받는 듯 했지만 괜챦다면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버지의 외도사실이 시댁에 들어갔고 역시나 결혼을 심하게 반대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시부모님들을 설득을 했고 결국 우리는 결혼승낙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시댁은 남편이 4대째 천주교 집안이라서 저의 세례는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디어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거룩한 성전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야말로 저에게는 일타쌍피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제가 처음에 성당을 갔을 때 가졌던 마음의 소원이 15년만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더라구요.
저는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이 아주 오랜 시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서 받은 훈장처럼 너무너무 자랑스러웠고 정말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저를 더 아버지께로 가까이 오도록 해주시기 위해서 큰 축복의 선물을 마련해 놓고 계셨는데요, 근데 그 포장지는 고통과 눈물이더라구요.
2003년도에 남편의 직장 관계로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큰 애는 전학으로 인한 적응이 힘들었는지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랑 싸우고 문제를 일으켜서 제가 담임 선생님들께 자주 불려갔습니다. 심지어 같은 엄마들로부터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그런 항의 전화도 자주 받곤 했습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들한테 꾸중한번 안듣고 자란 제가 처음 겪는 일이나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큰 애가 정말 미웠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뭣때문에 큰 애가 그러는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사를 가면 주로 기도내용이 '하느님, 토마스 아퀴나스 좀 변화시켜 주세요, 제가 너무너무 힘들어요'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제 기도를 이뤄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레지오 단장, 반장, 복사단자모회, 성경공부, 주일학교교사, 성령기도회 봉사등 여러 가지 봉사 활동을 했고, 철야미사도 틈나는대로 다녔습니다. 또 큰 아이도 복사를 서게 했고, 주일학교는 절대로 못 빠지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큰 아이를 변화시켜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큰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황과 반항이 더 심했고 저는 아이의 변화와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더욱더 성당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애가 난데없이 성악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남자애가 공부를 해야지 무슨 성악을~이런 마음으로 당연히 부정적인 마음을 보였고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큰 애의 집요함 끝에 저희 부부는 아이를 밀어주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성악공부를 하면서 큰 아이는 참으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입에서는 흥얼흥얼 성악곡과 허밍이 끊이질 않았고 반항도 많이 줄었습니다. 큰 애 덕분에 저희 집에는 자주 성악곡이 흘러 나왔고, 큰 애가 노래를 하고, 제가 반주를 하고, 또 남편도 같이 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큰 애는 성악을 하면서 성격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큰 애의 입시가 다가왔고, 저는 어리석게도 하느님의 뜻을 가장한 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제 계획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우리나라 최고의 음대를 졸업해서 유학을 간 다음에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되어 하느님께 영광드리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의 더 깊은 속마음은 큰 애를 통해 구겨진 저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저를 더 드러내보이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는 불순물 섞인 지향 그 자체였지요.
하지만 저는 성당활동도 기도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대학입시를 앞둔 큰 애에게는 분명히 주님의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한마디로 제 뜻을 제가 원하는 시간에 받고 싶은 자판기식 하느님 축복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니나다를까! 저의 간절한 바램과는 달리 큰 애는 입시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허탈했어요. 레슨비도 엄청 들어갔는데 하는 본전 심리도 생각이 났구요, 그러나 어리석은 저는 큰 애의 입시실패 이유가 제 노력과 공이 부족했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는 더욱더 성당활동과 기도와 매일미사를 하면서 하느님께 공을 들였고 거기다가 하나 더 첨가 해서 하느님께서 정말 기뻐하실거라는 생각에 선교도 틈틈히 했습니다.
큰 애 역시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발로만 신자생활을 벗어나서 청년성가대에 자진해서 들어가고 성가대원끼리하는 성경공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상황처럼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입시만 성공하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재수때도 큰 애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든 발표가 끝난 후 저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며칠동안을 울면서 지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목소리로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하느님께 정말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때당시 만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네팔 지진사건이 저의 머리에 떠오르면서 제가 지금 처한 상황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쉽게 추스렸습니다.
그리고 넘어져 있는 저를 일으키는 하느님 사랑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애는 삼수끝에 결국 목표한 대학은 아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하느님께서는 대학입학을 허락하셨습니다. 큰 애를 통해 저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뜻안에서, 하느님의 때에, 하느님의 방식으로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큰 애를 키우면서 정말 말도 다 할 수 없는 많은 눈물과 고통이 있었지만 복더잉 큰 아이 덕분에 저는 하느님께 더가까이 갈 수 있는 축복과 은총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작년 주임 신부님께서 연례피정을 다녀오시고 난 후 여러번 죽음의 고비를 넘어 하느님을 만나신 어느 신부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저는 그 신부님을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신부님이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이해욱 신부님이심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레지오늘 갔다 온 남편이 딸랑 이거 하나로! 저 입구에서 팔고 있는 책인데요, 저에게 주었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하느님께 내맡김 봉헌과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하면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 땅에서 천국을 살 수 있다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은 특별히 선택된 성인들만 가능한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저와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책 속의 신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처럼 살고 싶다라는 큰 열망이 제 안에서 끓어올랐습니다.
그래서 작년 11월 17일 무형의 성전 마리아처럼 카페에 가입을 했고, 이해욱 신부님의 유투브 동영상을 전부 듣기 시작을 했습니다. 과거에 제가 이냐시오 영신수련을 하겠다고 했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신부님께서 몸소 체험하신 방법은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쉬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삶의 자리 어디에서든 누구나 다 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정말 게으르고 부족한 저에게는 딱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는 우선 화살기도부터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차를 타면 화살기도 성가를 계속 틀어놓았고, 일할 때나 그리고 집안에서도 계속 화살기도를 듣고 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할 때, 길을 걸어갈 때, 화살기도 생각이 떠오르면 계속해서 틈틈히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때때로 분심이 들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었지만 다시 화살기도로 돌아와서 정말 끊임없이 할려고 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알려주신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테살로니카 전서 5장 17절 말씀인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는 그 말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화살기도 중에서 특히 제게 와닿은 기도는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기도보다 이 기도를 특별히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하느님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해야되겠다는 마음이 제 안에서 차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7시 미사를 봉헌하는데 미사중에 '아버지,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성전안이고 미사중이라 소리는 못지르고 제 안에서 속으로 소리없이 계속계속 '하느님, 당신을 뜨겁게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얼른 집에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도 계속 혼자서 성전에 앉아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어요. 정말 밤이라도 새고 싶었고 성전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또 한번은 밤늦게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어떤 동요가 떠올랐어요.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
초등학교 때 이후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이슬비>라는 동요였습니다. 저는 그 동요에다가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개사를 해서 불렀습니다. 좀 쑥쓰럽고 미안했지만 오밤중에 남편에게도 불러주었습니다.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면 온전히 아버지를 알게 되리~온전히 아버지를 닮게 되리~♬'
이렇게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제게는 정말정말 강력했으며 힘이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처음에 하느님께 내맡김에 대해 들었을 때, 저는 내 자신이 하느님께 잘 맡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내맡김 영성에 있어서의 내맡김은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들, 내 자식, 내 남편, 내 뜻, 내 재산, 내 일, 내 취미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바치는 맹세수준의 굳은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막상 내맡김의 결심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굳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갈등이 심했습니다. 제게 있어서, 거룩한 내맡김 영성에 있어서의 최대의 관문이자 고비였지요. 그리고 말과 머리로는 제가 다 맡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하느님께 내어맡기지 않았다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봉헌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 화살기도와 미사봉헌, 그리고 무형의 성전 카페를 방문을 해서 댓글을 열심히 달고 내맡김의 영성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저는 봉헌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의 모든 것의 참주인이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것은요 제가 마음으로 결심을 했을 뿐인데 그때 이후로 제 마음에 해방감이 느껴지고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번지점프에서 고민하다 뛰어내린 사람처럼요, 그리고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8,32)는 말씀이 그대로 제 마음에 탁 와 닿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올 1월 28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봉헌식을 했고, 그 이후 크고 작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는 친정 아버지와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딸로써 아버지 손도 잘 못잡아 드리고 눈도 잘 맞추지 않았고 대화도 거의 형식적이었던거지요. 그랬던 제가 올 2월 처음으로 친정아버지를 어색하지만 안아드렸습니다.
그동안 딸로써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무심하게 대한 것이 너무너무 죄송했기 때문에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할말이 없어서 피할려고만 했던 아버지와의 전화통화도 이제는 일부러 더 길게 합니다. 이번 추석에는 또 어떻게 이끌어주실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저의 둘째 아이 현재 고3입니다. 제가 큰 애때와는 달리 둘째는 하느님께 온전히 다 내맡겼기 때문에 안달복달 하지 않아요. 이번주가 수시접수 기간이었는데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너무 평화롭게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정말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내맡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결과를 감사히 받고싶을 따름입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가끔씩 제 뜻대로 안될 때 속은 상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더 화살기도를 하고 이때가 하느님 아버지의 작업시간이시구나 생각하며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저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아이를 내맡기고 뜨겁게 계속해서 화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안건욱 미카엘을 당신께 맡겨드리오니 이끌어주소서.'
이렇듯 하느님의 사랑이 차오르면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옮겨짐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저를 거울보듯 너무너무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는 예상하지도 못하는 희한한 방법과 사건들을 통해 어떤 느낌과 저도 모르는 배짱과 용기, 측은지심을 주시어 더 사랑하게 하시고 더 이해하게 하시고 때로는 앙금없이 용서를 하시게 하시더라고요.
심지어 반찬메뉴, 입을 옷, 물건구매,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안배를 해주시는 아주 디테일한 하느님이심을 체험을 했습니다.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통해서 만난 하느님은 정말 막연하게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시고, 또 교황님이나 대통령님처럼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분도 아니시더라구요. 제안에 함께 하시면서 저를 끊임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시더라구요.
하느님 아버지를 생각하면 때로는 애인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설레고, 가슴이 벅차고, 기쁨이 넘칩니다. 마치 연애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똥싸개인 저의 사랑만을 원하신다는 것을 저는 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주만물을 다 창조를 하셨지만 세상에 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그것을 모르고 살고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요, 그래서 이제 전 영원히 변치 않으실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또 저는 하느님 아버지께 제 짐 보따리 전부를 맡기고 아버지의 손을 꼭잡고 이끌어주시는대로 기쁘게 이끌려드릴 뿐입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생활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만나는 방법은 정말 정말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영적인 갈증을 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과 끊임없는 화살기도라는 이 야곱의 우물로 저를 이끌어주셨습니다.
저는 철부지처럼 와서 마시기만 했을 뿐인데, 하느님께서는 황송하게도 저를 기꺼이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정말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영적인 갈망이 분명히 있으시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함께 이 생수가 넘치는 야곱의 우물 드시고 목마름을 해소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들도 삶이 신앙이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여러분들도 여러분안에서 여러분들을 정말 간절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셔서 뜨겁게 사랑하시고 또 그분과의 찐한 러브스토리를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어지는 신부님의 강의를 통해서 아마 그 두레박을 선물로 받으시리라고 믿는데요, 그래서 같이 이 야곱의 우물에서 영적인 목마름을 해소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아버지께 내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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