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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정산종사 12상
① 서원입지상誓願立志相
9세경에 《통감通鑑》을 배우다 문득,
“대장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나라를 바로 세우는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면 어찌 후세에 장부라 이름 할 것인가!” 생각하였다.
11세 무렵 《사서四書 》를 공부하다가 다시 생각이 커져,
“대장부가 어찌 한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만족할 수 있으랴. 천하창생을 널리 구제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건설하리라.” 하였다.
② 구암기원상龜巖祈願相
박실 집 뒤뜰에 있는 거북바위에 제물과 촛불, 정화수를 놓고 ‘천하창생을 제도하는 큰 사업’을 이루고자 천지신명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거북바위에서 기도하던 일을 어머니인 이운외는,
“옆 골짜기에 흐르는 물에 웅덩이를 파 맑힌 후 정갈한 그릇에 떠 거북바위 앞에 진설하고 기도하는 정산종사의 모습은 경건하였고, 범상함을 넘어서 천상에서 내려온 동자가 수도하는 모습 같았다.”고 회고했다.
③ 구사상도상求師上道相
정산종사 14,5세 무렵 ‘해붕천리고상우海鵬千里翶翔羽 농학십년칩울신籠鶴十年蟄鬱身(바다붕조 천리 날 깃을 가지고도 조롱 속 학으로 십년 세월 보냈구나)’이라 시 한 수를 지었다.
여 처사를 찾아 가야산을 찾았다가 기도를 하다 정신이 맑아지며 ‘지금까지 공부길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떠올라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뜻을 밝혔다.
“전라도에 가서 참 스승을 만나야만 정법을 배워 큰일을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④ 화해제우상花海際遇相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서 수행 적공할 때 육도사생에 대한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우연히 육도사생의 변화하는 이치가 나타났다.
김해운을 만나 화해리 집으로와 기도·주문 등으로 수행 정진하다 원기3년 음3월 대종사 김광선을 앞세우고 김해운의 집을 찾아 정산종사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⑤ 중앙서임상中央敍任相
정산종사가 영산에 오자 대종사는 여러 제자들에게,
“우리 회상의 법모法母이며, 전무후무한 제법주制法主이다. 이제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 만나려던 사람이 왔으니 우리 회상 창립의 일이 반이나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하며, 교화단 중앙에 내정됨으로써 단 조직이 완성되었다.
⑥ 변산조법상邊山助法相
대종사는 정산종사를 변산으로 보내며 “학명스님을 모시고 살되 불경은 보지 말라.”고 하자 불경은 물론 경상經床까지 외면했다.
머물던 월명암에서 실상초당까지 험한 길을 밤으로 대종사를 찾아뵙고 새 회상 교법제정과 교서편찬을 신성으로 보필했다.
⑦ 영산원각상靈山圓覺相
원기9년 익산 신룡동에 총부기지를 확정하고 총부를 건설하자 연구부장으로 대종사를 보필하였다. 원기13년 영산지부장에 임명되어 인재양성을 담당하며, 원기17년 깨달음을 노래한 ‘원각가圓覺歌’를 발표하였다.
⑧ 법통계승상法統繼承相
원기28년 대종사 열반에 들자 후계 종법사로 추대되어 종법사에 취임하였다. 종법사에 취임한 당면한 난관은 패전이 짙어져 가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 군부를 앞세운 황도불교화皇道佛敎化에 대처하였다.
⑨ 교명선포상敎名宣布相
원기9년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후 임시교명으로 사용해 오던 ‘불교연구회佛敎硏究會’란 이름을 원기33년 1월 ‘재단법인 원불교’로 등록인가를 받고, 그해 4월 ‘원불교圓佛敎’라는 정식교명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⑩ 성존추모상聖尊追慕相
원기34년 ‘대종사 성탑’을 봉건하고, 제1대 성업봉찬사업을 한국전쟁이 끝나고, 다시 추진하여 원기38년 ‘대종사 성비’를 세울 때 친히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竝序〉의 비문을 지어 대종사께서 주세불主世佛임과 세 회상이 주세회상임을 천명하고 공덕을 찬양하였다.
⑪ 교서편찬상敎書編纂相
회상성업을 계승하는 가운데 7대교서 전반을 친감親鑑하시어 교단 만대의 전 교서를 정비하고, 교단 3대 사업인 교화 · 교육 · 자선기관을 설립하는 동시에 그 기초를 확립하였다.
⑫ 임인열반상壬寅涅槃相
열반하시기 직전에 게송을 전해주시니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 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는 인류의 대 윤리를 제창하시고 원기47년 1월 24일 오전, 열반에 드시니 세상 인연 63세, 법납 45년, 종법사 재임 20년의 생애였다.
결어結語
송규는 정규의 지량으로 능히 측량할 사람이 아니로다. 내가 송규 형제를 만난 후 그들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한 일과 두 번 시켜본 일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나니라.〈대종경〉 신성품 18
☆ 정산종사 12상은 필자의 임의로 나누고 설명을 붙인 것임
■출처 : 원불교이해 -원불교문화학교 교재 -원기95년 9월 1일 서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