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세상이 하나로 되어있다고 느끼는 영.유아 시기를 지나 1~3학년까지 자신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조금씩 분리하게 된다.
천상에서 이탈 된 것만 같은 3학년 시기.. 지구라는 별에 그리고 그 딱딱한 땅에 발을 내 딛는 이때에 농사와 집짓기를 통해 땅의 본질을 경험하고 창세 신화를 통해 천상에서 분리된 것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이 시기를 잘 보냈다면 땅에 굳건히 설수 있게 되고 걸음걸이가 안정되며 시선의 확장과 더불어 입체적인 사고를 할 준비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주변의 환경이 집과 학교에서 벗어나 내가 주로 지내고 있는 동네를 탐구 할 수 있게 되고 탐험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그렇게 4학년의 동네학이 시작된다.
우리 반은 작년 각자가 사는 동네 이름의 유례와 동네만의 전설을 알아 오는 것으로 동네학을 시작했고 화곡동의 화가 ‘꽃 화’가 아닌 ‘벼 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김포평야에서부터 이어진 화곡동은 옛적에 농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살았다는 것으로부터 학교의 주산인 봉제산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흙을 이용해 봉제산의 형태를 쌓아 올려 보기도 했다. 봉황은 대나무 숲에만 알을 낳는 다는 전설을 듣고 나서 봉제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나무 숲은 우리를 동네학 속으로 깊게 이끌어 주었다.
지리학의 시작을 알리는 동네학은 비단 동네의 지리에 대한 것만 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외에 지역의 문화와 집의 형태, 골목의 방향을 보면서 예부터 현재까지 연결된 관계를 찾아가는 시간이고 그로부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고 동사무소로 찾아가 이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해주실 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어슬렁’ 이라는 선생님을 소개 받았다. 그 분은 봉제산과 까치산 인근 동네에서 마을 활동가로 일하시면서 동네의 소소한 것부터 역사까지 연구를 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업으로 하고 계셨다. 그분의 발길을 따라 그냥 힘든 고갯길이 아닌 하늘 길이란 이름을 새긴 길에 들어서니 우장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까치산으로 가는 길 중간 중간 유명 가수가 살았던 집과 언덕에 있긴 하지만 길이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리가 되고 그 길을 따라 마당이 딸린 집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서울시 최초의 계획 마을 이라고 한다. 3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자취가 남겨진 것을 보면 어쩌면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마을이라는 생각도 든다. 담벼락에 관심이 많다는 말씀과 함께 까치산에 올라 관악산을 바라보니 뒤로 화곡역이 눈에 들어오고 그제야 방향감각이 살아났다. 이렇게 ‘나’의 위치를 가늠하고 학교로 돌아와 마을 지도를 그리고 실제 하는 순간들을 그림과 글로 표현 하며 내면에 담아낸다.
내 주변 관계는 마을뿐 아니라 나의 방과 교실의 모습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3학년 수학 시간에 측정으로 배우면서 자신의 방을 측정하는 것을 확장해서 이제는 방향을 담아 그려내는 것이다.
또 하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가계도를 그려가며 주변의 친인적의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고 촌수가 어떻게 계산이 되고 호칭에 대한 연결도 시도한다.
이렇듯 동네학은 내비게션을 잘 따라가는 것을 익히는 것을 너머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여 목적지를 찾아가는 오리엔티어링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학년 말에 강서구를 지나 서울지역까지 확장한다. 역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 이신 최창우 선생님의 도움으로 서울의 중심 경복궁에 들러 경복궁이 만들어지는 모습에서부터 일제 시대 어떻게 침탈 되었는지까지 설명을 들어보고 학교로 돌아와 다시 조선 초기로 돌아가 위화도 회군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왜 그 자리에 경복궁이 들어섰는지 풍수지리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지하철역 이름 혹은 국보라고만 알고 있던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 북대문 등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나니 서울의 중심이 어디이고 강서구가 어디쯤에 있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이후 서울의 25개 구가 한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따서 이름 지어진 곳 사대문과 연결된 곳 주변의 산과 연결되어 명명된 것도 알게 되었다. 이름의 유례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적인 위치와 그 지역의 특색을 엿 볼 수 있었다.
5학년에 들어서면서 우린 한강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그저 자전거 타고, 라면 먹고 가끔 불꽃놀이 할 때 정도만 관심을 갖던 한강은 어디서부터 흘러오는가? 한강과 서울은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섬인 듯 아닌 듯 한강에 존재하는 섬인 여의도는 과연 어떻게 탄생 하였을까? 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갔다.
한강의 줄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자전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방학 동안 자전거 면허를 취득한 우리는 자전거 연습에 돌입을 했고 아직 자전거 경험이 적은 한 친구는 아침마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하여 운동장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습을 했다. 한 달 가량 땀과 눈물을 흘리며 연습을 하자 서로에게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드디어 한강을 탐험 할 준비가 되었다.
첫 목표는 ‘성수동 마르쉐 장터 – 지렁이를 사수하라’
4월 날이 좋은 토요일 오전 학교에서 출발 긴장감을 가지고 한강에 도달하니 안심과 함께 자신감이 생긴다. 맹훈련을 한 친구는 자전거를 제법 탈 수는 있었지만 체력이 올라오지 않아 친구들의 응원과 선생님의 독려가 계속 이어져야 했다. 여의도에 들어섰을 때는 샛강 쪽으로 들어가서 여의도가 한강이 흐르는 모양에 따라 퇴적되어 생성되었고 삼각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추후 이집트 나일강의 삼각주와 연결되는 다리를 놓았다.
중간에 자전거가 넘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눈물이 글썽이는 순간도 있었다. 점심의 달콤함도 맛보고 또 한참을 달리고 나니 성수대교 남단에 도착 드디어 한강을 자전거로 건너면서 반짝이는 한강의 모습을 만끽 할 수 있었다. 서울의 숲을 지나 마르쉐 장터에 도착 하지만 지렁이는 모두 분양이 되어 사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ㅠㅠ
돌아 올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온 것 보다 더 힘들게 지하철에 자전거와 함께 몸을 싣고 학교로 돌아와 옥상에서 고기를 구우며 힘을 내더니 월요일에 학교를 쉬게 해 달라고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했지만 가정에서 바로 제압당하며 불발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전거가 서툰 친구의 진심어린 노력과 그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준 친구들이 함께 했다는 것에 감동했고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멋지게 발현되는 순간을 경험 할 수 있었다. 이는 지식을 쌓는 것보다 값진 기억들이다.
이렇게 한강의 크기를 온 몸으로 느낀 우리는 우리나라의 또 하나의 큰 물 줄기인 낙동강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
행. 복. 하. 세.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