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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1:1~21)
1.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이스라엘 민족(1:1, 2)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갈 당시는 이스라엘 주변 세계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력이 극도로 약화 된 유다 왕국은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바벨론과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던 애굽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처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울어 가는 힘 없는 약소국이 막강한 세력을 가진 두 강대국 모두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유다 왕국의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 왕국을 멀리하고 친애굽 정책을 취하는 편이 현실적인 국익을 위해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다.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이방 왕국인 애굽을 의지함으로써 그들이 처한 위기를 넘기려 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악행이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유다 왕국의 친애굽 정책은 앗수르 제국을 물리치고 패권을 장악한 바벨론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마침 그때는 신바벨론 왕국의 초대 왕이었던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이 왕위(BC 605-562)에 오른 시점이었다.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느부갓네살 왕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 왕 느고를 격퇴하고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왕하24:7; 렘46:2~12). 느부갓네살 왕은 그와 더불어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그때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즉위한 지 삼 년이었는데, 이때가 BC 605년이었다.
그 해에 있었던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다 왕국의 유력한 지도자들과 많은 기술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렘24:1; 27:20; 52:15).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도 이방 지역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바벨론 왕국을 배신하고 애굽을 선택한 유다 왕국에 대한 강력한 응징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나아가 그 사건은 이사야, 미가, 스바냐, 하박국 등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이미 예언된 예루살렘 패망의 시작이었다.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패망이 단순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배도에 빠진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빠지도록 하셨으며,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구들을 바벨론 왕국에 빼앗겨 바벨론 지역인 시날 땅에 있는 이방 신전의 창고에 보관되도록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자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유다 왕국은 BC 597년과 586년에 두 차례 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다. BC 605년 제1차 포로 사건이 있은 지 8년 후인 BC 597년에 두 번째 침략과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선지자 에스겔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는 무리 가운데 섞여 있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형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며 유다 백성들의 영적인 삶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포로 사건이 있은 지 11년 후였던 BC 586년 유다 왕국은 바벨론으로부터 세 번째 침공을 받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결국 왕국은 패망하게 되었다.
우리가 다니엘서의 본문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당시 바벨론 왕국의 전투력이 강했기 때문에 유다 왕국을 위기에 빠뜨려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지닌 이방 국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유다 왕국을 패망에 빠뜨릴 수 없다. 본문 가운데 ‘주께서’(1:2) 그렇게 하셨음을 밝힌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경륜이 담겨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 바벨론 왕국의 융화정책(1:3~5)
(1) 이스라엘 자손의 인재 발굴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왕국에 대한 지배권을 쟁취한 후 자신의 왕궁 행정책임자의 위치에 있던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피지배국 소년들 가운데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특별교육을 시키도록 명령했다. 유다 왕국 출신의 소년들 가운데서도 왕의 명령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왕족이나 귀족 가문 출신 소년들 중에 용모가 준수하고 재주가 뛰어나며 총명하여 지식과 학문에 익숙한 인재들을 찾고자 했다.
이방 출신에 대한 인재 정책은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여러 족속들 가운데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바벨론 제국의 전체적인 융화정책 의도와 더불어 궁극적으로는 민족 말살 정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제국을 편성하기 위해서 피지배국 백성들 중에 유능한 인재들을 뽑아 친바벨론화 하는 것은 절실히 요구되는 전략이었다. 왕은 그들에게 왕궁에서 진행되는 특별한 교육을 통해 이방인 출신으로서 왕의 직무를 돕는 공직자로 양성하고자 했다.
(2) 교육의 구체적인 내용
왕궁에서 이루어지는 특별교육은 삼 년 과정이었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 피정복민 출신 소년들은 바벨론의 정체성에 연관된 갈대아인들의 학문을 익혀야 했으며 그들의 일반적인 풍습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넓혀야 했다. 그런 교육 과정을 통해 그들은 바벨론 문명과 문화에 점차 친숙해져 가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바벨론의 언어를 습득해야만 했다. 바벨론 제국에 필요한 공직자가 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를 익숙하게 습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의사소통뿐 아니라 자유롭게 문서 작성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높은 수준에 도달해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그들이 나중에 일반 공직자가 아니라 바벨론 제국의 최고위 공직자에 이르는 것을 보아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느부갓네살은 그 젊은 소년들이 자신이 세운 특별 왕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그들을 통해 피정복민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다. 비록 포로로 잡혀 온 자들의 나라가 패망했거나 패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기 종족 중에 훌륭한 인재들이 왕궁에서 교육을 받아 고위 공직에 오르는 것을 보며 저들의 마음이 바벨론에 동화되기를 바라는 정치적인 의도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3) 최고의 대우
느부갓네살 왕은 패망한 왕국 출신의 인재로서 특별히 선발된 소년들에게 최선의 대우를 하도록 명령했다. 왕은 자신이 먹는 진미(珍味)와 특별한 포도주를 저들에게 제공하게 했다. 나아가 그들이 날마다 사용하는 일상 생활용품 일체를 풍족하게 공급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왕과 왕궁의 부근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비록 바벨론 출신의 인재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왕과 왕궁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피지배국의 이방인 출신 신분으로 왕의 가까이에서 그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당시 피정복민인 패망한 국가의 백성들은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누리게 된 특권이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 하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저들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담겨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왕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허락하신 것은 저들의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3.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
(1) 왕립학교에서의 교육과 민족말살정책(1:6, 7)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의 많은 지도자의 자녀들 가운데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느부갓네살의 왕립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선발되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이라면 그것을 두고 매우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아가 그런 부모들이라면 자식의 출세를 위한 길이 활짝 열렸다고 좋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자세는 근본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신앙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궁에서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거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앙이 없고 어린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왕립학교에 입학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소년들은 먼저 원래 속해 있던 민족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는 바벨론 왕국이 그들을 바벨론 왕국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바벨론 제국은 그것을 위해 저들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바벨론식 이름으로 개명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역시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꿀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환관장은 다니엘을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고 이름을 고쳤다(단1:7).
바벨론식 이름으로의 개명은 외견상 왕궁에 거하며 왕립학교에서 공부하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 관한 것이지만, 실상은 모든 유다 백성들이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포기할 지경에 놓여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들은 바벨론 왕국의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민족말살정책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왕립학교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외견상 저들의 장래가 보장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유다 왕국이 패망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지역에 흩어졌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잘살아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저들에게 대단한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런 관점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2) 음식거부 결심과 신앙의 지조(1:8, 9)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왕립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었던 문제는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왕궁에서 그들을 위해 제공하는 음식은 최고급 음식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값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이 금하는 부정한 음식물이라면 먹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왕명에 의해 마련된 특별한 음식물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왕궁에서 제공된 음식이 부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음식 자체가 레위기에 기록된 규례에 어긋난 음식이었음이 분명했다. 따라서 성경이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음식물은 먹어서는 안 되었다.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그에 대해 분명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여야 한다. 부정한 새와 정한 새를 구별하여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부정하다고 따로 구별한 그런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어 다니는 어떤 것으로도, 너희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뭇 백성 가운데서 골라서, 나의 백성이 되게 하였다”(레 20:25~26)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적인 목적을 위해 친히 구별하여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정한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지 말도록 명령하셨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지역에 억류된 상태라 할지라도 결심 여하에 따라 그런 음식을 피하여 먹지 않을 수 있었다. 특정한 음식물은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그것을 먹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한 음식물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저들에게 제공된 동물의 고기 자체가 부정한 것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동물을 도살하는 과정에서 이방신에게 먼저 바쳐지는 의식을 거친 동물의 고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왕이 마시는 특별한 포도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의 고기든 마시는 포도주든 간에 이방신 제사와 연관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성별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몸을 부정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왕이 제공한 음식물을 종교적인 이유로 거절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건 매우 위험한 모험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음식에 관한 저들의 의사를 최고 관리자인 환관장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용감한 행위였다.
다니엘을 비롯한 그의 세 친구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이 제공하는 음식과 음료를 거부한 것은 저들의 몸을 부정한 음식물로 인해 더럽히지 않으려는 생각과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온전한 신앙의 자세 때문이었다. 그들이 만일 음식에 관한 모세 율법의 규례를 어기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어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민족의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음식으로 인해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할지라도 여전히 그 위험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동시대의 선지자였던 에스겔은 그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지역으로 쫓겨나 부정한 음식을 먹게 되리라고 예언한 바 있다.
“주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다른 민족들 속으로 내쫓으면, 그들이 거기에서 이와 같이 더러운 빵을 먹을 것이다”(겔 4:13).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이 통치하는 지역에 강제로 흩어져 거주한다는 사실은 음식에 관한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백성들이 저들의 부정한 종교적인 제사의 과정을 거쳐 음식물을 준비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없다. 그런 음식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왕실 음식을 거부한 것도 그 가운데 섞여 있는 부정한 음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부정한 동물의 고기뿐 아니라 이방 종교의 제사에 사용된 음식물과 고대의 풍습에 따라 이방신에게 제사행위를 한 후에 도살된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3) 음식물 거부와 환관장의 시험(1:10~14)
다니엘이 왕립학교에 관련된 모든 것을 총괄하는 환관장에게 음식물에 관한 그들의 뜻을 전달했을 때 환관장은 그들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이 먹고 마셔야 할 음식물을 직접 지정해 주었다(단1:10). 이는 그들이 아무 음식이든지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갓 왕립학교에 입학한 이스라엘 민족 출신의 몇 소년들이 그에 대한 곤란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만일 환관장이 그 소년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준다면 그것은 왕의 특별 법령을 어기는 범법 행위가 된다.
그렇지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환관장에게 저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른 음식물을 통해 시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앞으로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주어 마시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즉 동물의 고기로 만든 진미 대신 채식을 하고, 왕이 제공하는 포도주 대신에 그냥 물만 마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결과 다른 소년들과 건강을 비교해 보아 그들보다 건강 상태가 못하다면 처벌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것은 쉽게 용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환관장은 왕이 음식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만들어 두고 그렇게 명령하게 된 원래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를 위한 음식 규정이 아니라 왕립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소년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환관장과 그의 부하들은 스스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다니엘이 말한 대로 열흘 동안 시험해서 저들의 건강 상태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일 건강이 좋아지지 않으면 달리 대응하면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다니엘이 요구한 대로 한시적으로 열흘간 채식과 물로 그들을 시험하게 되었다.
4.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1:15~21)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환관장의 허락 아래 열흘간 채식과 물만 섭취하면서 생활하고 공부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난 후에 비교해 보니 왕의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다른 소년들 보다 채식을 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훨씬 더 건강하게 보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었다.
환관장과 왕립학교의 음식을 담당한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간섭에 의한 것인 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로 드러난 분명한 사실로 인해 음식 담당자는 그들에게 왕이 정한 음식과 포도주 대신 저들이 원하는 채식과 물을 섭취하도록 허락했다. 그들은 삼 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졸업할 때까지 줄곧 왕이 정해준 음식이 아니라 채식과 물만 마시면서 공부하며 생활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생활을 위한 건강뿐 아니라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명철을 더하셨다. 그리하여 함께 공부하는 다른 소년들보다 지식이 더했으며 저들의 모든 학문과 재주가 뛰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특별히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하는 은혜를 더하셨다. 그것은 그의 학문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결과였다.
삼 년간의 모든 교육 과정이 끝난 후 환관장은 이방 출신의 교육생들을 느부갓네살 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왕은 그들과의 면담을 통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다른 소년들에 비해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그들에게 질문하며 시험한 결과 저들의 지혜와 총명이 다른 교육생들보다 월등할 뿐 아니라 바벨론에 있는 여러 마술사들과 주술사들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이에 왕은 그들로 하여금 왕궁에 있으면서 자기를 위해 보필하도록 명령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그들에게 바벨론 제국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특별히 다니엘서 1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대로 다니엘이 바벨론의 패망 이후에도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원년까지 있었다고 한 말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언급은 다니엘이 바벨론이 왕궁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최고위 공직에 오른 것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변 여러 왕국들 위에 군림하며 막강한 세력을 떨치던 바벨론 제국은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여전히 최고위 공직자로 있으면서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더불어 페르시아 제국의 정책을 통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연관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역을 위해서는 이방 왕국에서 지도자 격인 지위에 있는 유대인들이 필요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 그 일을 실행해 가신 것으로 보인다. 후에 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패권을 장악한 후, 피지배국 사람들의 본토 귀환을 허용하게 될 때 그와 같은 사실이 엿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재건이 허락되었을 때 그들을 본토로 이끌고 돌아가 구체적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할 인물들은 다니엘의 지위와 간접적으로나마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느헤미야 같은 인물은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로서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공직자였다(느1:11; 2:1~8). 그는 직접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다니엘의 성실한 공직 수행 자세로 말미암아 유대인으로서 이방 왕국의 지도자들의 인정을 쉽게 받았을 것이라 추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역사 가운데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경륜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