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글쎄요. 저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면, 직장을 갖게 되기를 희망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반대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것을 여전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떤 신비로운 존재로 바꾸어버렸습니다. 누군가 “하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셔서 그분의 이적을 행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비에 쌓인 분이 아니십니다. 신비롭다는 것은 이해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행하셨던 것, 행하고 계시는 것 그리고 앞으로 행하실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상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으십니다.
물론, 신비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신비를 해명하셨습니다.
골 1:22-27
이제는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의 육신의 몸 안에서 그가 화해케 하셨으니 그가 보시기에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드리고자 함이라. 만일 너희가 자리 잡고 정착된 믿음 안에 계속 있으며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것은 너희가 들었고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된 것이니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들을 기뻐하고 또 그리스도가 고통 받으신 이후에 있는 것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에 채우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졌다가 이제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오. 곧 영광의 소망이라
바울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그 신비가 여러 시대에 감추어졌던 것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그 신비는 ‘영광의 소망이신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Christ in you, the hope of glory)’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신비였던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된 것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사 55:8-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없는 구약의 백성들에게 해당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구약의 백성들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한 자가 된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져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엡 2:6). 그곳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감각 지식의 사람들(구약의 사람들 - 역자주)에게 말씀해 주신 것을 캐내려고 구약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문맥을 벗어나서 그것들을 해석한 다음, 신약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적용시키려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다른 언약 아래서 작동해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니라”(막 14:24)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8:13에서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체결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첫 언약은 옛 것이 되었고, 낡아지고 오래된 것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신약에 속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수준(His level)으로 데려가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과 새 언약의 관계를 가집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당신에게 계시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십니다. 당신은 원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것을 선택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절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뜻이 당신 안에 또 당신에게 계시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웃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웃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당신을 볼 때 하나님을 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표현(His expression)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시(the revelation of Almighty God)이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본 자는 누구든지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9). 나를 지켜보시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가 그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에게 빌려온 옷을 입히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사도행전 22:14에서 우리는 타소의 사울이 간증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겪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즉 그가 어떻게 하늘로부터 온 밝은 빛에 눈이 멀었는지, 그 후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아나니아라는 한 사람을 보내셨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손을 얹고 “사울 형제여, 보게 되라.”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시력을 되찾았고, 아나니아는 계속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그에게 전했습니다.
행 22:14-15
그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의로우신 분을 보게 하시며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음성을 듣게 하셨느니라. 이는 네가 보고 들은 일에 관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
당신은 그것을 알아채셨습니까? “네가 그분(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이제, 당신은 이 말씀이 오직 바울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말해왔던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선택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것이 바울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선택받았습니다.
누가복음 4:18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 회당에 계셨고, 오늘날 몇몇 교회에서 행해지듯이 봉독하시려고 성경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회당에서 일하던 자들이 “예수 요셉, 앞으로 나가시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나오셨을 때 성경 두루마리가 예수님께 건네졌고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펴시고 이사야 61장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읽던 식으로 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 그(이사야)를 기름 부으셨으므로 주의 영이 그(이사야)에게 임하셨다고 읽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식 - 주님이 이사야에게 기름 부으셨으므로 주의 영이 이사야에게 임하셨다고 - 으로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 후 그들은 주님과 주님의 거룩한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을 축복했고, 그들 자리로 돌아가 앉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읽기 시작하셨을 때, 예수님은 “주의 영이 내게(이사야 선지자가 아니라) 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 읽고 나신 후에는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 귀에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영이 자신 위에 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일까요? 성경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마 5:18). 이사야는 영광으로 넘어갔지만, 주의 말씀은 땅 위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들어가서 “주의 영이 내게 임하시니”라고 말하게 합시다. 그러면 성령님은 반드시 당신 위에 머물러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게 된다면, 당신은 제자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구약의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우리를 위한 모형(ensample)으로서 기술되었지만, 신약의 진리는 오늘 우리가 믿고 행동하도록 기록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광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도행전 22:14이 말씀하는 것 안으로 걸음을 내딛고,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자신을 선택하셨다고 선언하게 합시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것을 갈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것을 갈망하십니다. 이 말이 당신이 지금 바울과 같은 오중사역 중의 하나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선택받았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 앞으로 그것을 고백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 나는 혼란스럽지 않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선택받았다.”고 말하십시오.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부름 받았지만, 선택받은 자는 소수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지만,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즉 무슬림교도와 불교도와 이교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모든 사람이 부름을 받았지만, 그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님께 오는 자(거듭난 자)들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선택받았습니까?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 영생(eternal life)이 당신의 인간 영에 전이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선택이 되며, 즉 하나님의 선택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부름을 받았지만, 당신이 그 부름에 응답할 때, 당신은 선택됩니다.
(크리스 오야킬로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의 권리』 Paula Kim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10. pp.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