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마지막 날인 어제는 서울에서 친구가 찾아오더니 2024년 새해 첫 날인 오늘은 가까이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 강원대 미대 학장을 역임하고 이제는 은퇴하여 고향(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활동 중인 한기융교수다. 그는 이 지역의 거인으로 매우 분주하게 살고 있다. 그의 마을 여미리를 6차 산업의 모델로 탈바꿈시켰고 지금도 변신시키고 있으며 '내포디자인포럼'을 설립하여 지역사회에 디자인의 가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또 지역에 있는 세한대학교에 농업디자인전공을 개설하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가 바뿐 시간을 쪼개어 공방을 찾아주었다는 것도 좋고, 또 약간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가 가진 방대한 지역 인맥이 공방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그의 방문에 더욱 의미를 두게 된다.
한교수와 동행한 분은 뜻 밖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예상밖의 주문에 놀라는 나를 보며 한때 까페를 운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를 맛보며 '참 맛있다' 고 평했다. 그리고 당진에서 이런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카페는 석문공단에 있는 한 카페 밖에 없었다며 거듭 거듭 맛을 칭찬했다.
이 에스프레소의 원두는 내가 2013년에 블렌딩한 것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등 4종의 원두를 배합하여 만들었다. 나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 맛을 좋게 평가했고 고객들이 그 맛을 좋아해 그 블렌딩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때에 따라, 산지에 따라 맛에 크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면 배합비율을 소폭 조정할 뿐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블렌딩을 선보이고 싶지만 그 맛에 익숙해진 고객들을 생각해서 감히 바꾸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드립해 마시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구로 원두로도 판매하고 있는데 판매량이 '예가체프' 다음으로 많다.
그러니 당진에서 이 커피에 대해 듣는 긍정적인 평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 그의 평에 안도감이 일었다. 이 블렌딩은 '라 마르조꼬 머신'에 17g의 바스켓으로 투 샷(two shot)을 내는 것을 기준하여 개발한 것이다. 용연공방에는 그 비싼 장비를 설치하지 못했다. 장비가 다르면 맛이 다르고 경험상 '라 마르조꼬 머신'으로 내는 맛을 따라가는 장비는 드물다. 나의 공방에 있는 저렴한 실험적 수준의 한국산 장비로 그런 평가를 받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