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희망의 희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되어 마침내 상속받게 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 가운데
살아가는 인천 교구 신천성당 공동체의 모든 교우들께 하느님 아버지의 평화와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성탄 전야로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것으로 보편 교회의 희년이, 그리고 우리
교구는 지난 성가정 축일에 답동 주교좌 성당의 성문을 여는 것으로 정기 희년이 시작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한 해를 희년으로 살아가게 되었는데, 이번 희년의 주제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희년의
한 해를 이끄는 말씀은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로 정해졌습니다. 이 희년의
주제 성구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본당 공동체가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순례자’라는 주제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보편 교회가 스스로를 규정할 때 ‘지상의 나그네’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히브 11,13)”
하였으며,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히브 11,38)”이라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다
(히브 11,38)”고 말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라면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처량한 것입니까?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바대로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이란 풀꽃과 같은(이사 40,6)” 것이니 허무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나그네로서의 본질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번의 정기 희년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묵상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통의 나그네가 아닌, ‘희망의 순례자’라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들 삶의 여정이 한평생 광야를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과 같을지라도, 그리하여 우리네
행색이 아무리 꾸미고 단장해도 ‘질그릇’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라는 보물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기에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2코린 4,8-9)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 삶의
현실이 당장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 메마른 대지와 같아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2코린 4,18)”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나아가는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올 한해 ‘희망의 희년’을 지내면서, 이 세상이라는 ‘귀양살이 가운데 살아가는 떠돌이’가 아닌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는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로 ‘희망의 순례자’는 희릿하여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호한’ 정체성이 아닌, 분명하고 확실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해준 대로 누가 우리의 “희망에 관하여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1베드 3,15)” 두는 이가 바로 ‘희망의 순례자’인 것입니다. 그는 마치 겨자씨만큼이나 작은 ‘복음’의
씨앗을 ‘낙타 털옷’에 잔뜩 묻히고 다니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음의 씨앗’
이 떨어져 싹을 틔우고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니, 그야말로 ‘광야에 길을 내는 사람’이라, ‘세례자 요한’이라
불릴 만 합니다. ‘희망의 희년’을 살아가는 교우들 모두가 그렇게 여러분이 지닌 복음으로 ‘생명의 길’을 내는
순례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지 복음을 읽었고 들었고 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말씀이신 성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심을 고백
하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도로부터 이어진 교회’의 정수가 담긴 ‘성사’와 ‘계시 그 자체’인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둘째로 ‘희망의 순례자’는 하느님을 만난 ‘증인’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과 ‘함께’ 걷는 ‘동반자’입니다.
이번 ‘희망의 희년’을 살아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에 대한
이해입니다. 수많은 복음의 증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기뻐하는 ‘참 기쁨’의 한 해를 살아냈으면 합니다. 하느님과의 동행이란 마치 많은 이들이 함께
성지순례를 하는 중에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말 한 마디도 섞지 않고, ‘그래도’ 함께 했다고 말하는
동행이 아닌, 자격 없고 부족한 우리를 하느님께서 시작부터 마침까지, 이고 지고 업고 달래며 마련하신
구원으로 이끌고 계심을 체험하는 동행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보편 교회에는 하느님의 동행을 체험하는 탁월한 기회,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은총의 시간이 ‘성체성사’라고 한다면, ‘고해성사’는 ‘과거’ 하느님의 현존을
일깨워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누구든 원한다면 면담 고해를 받고 누릴 수 있는 자리, 부담되는 본당
사제와의 고해성사가 아닌, 영성이 풍부한 여러 사제를 통해서 ‘고해성사’의 자리가 더욱 많은 본당
교우들에게 열렸으면 합니다.
‘희망의 희년’을 통해 우리가 믿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구원 여정이 새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교구
주보이기도 한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순례길’을 걸어가는 우리 공동체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노동자 성 요셉 신천성당 공동체
동반 사목자
이병찬 아우구스티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