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계(巖溪) 최연손(崔連孫) 묘갈명(墓碣銘)
· 유형분류· 내용분류· 작성주체· 작성시기· 작성지역· 형태사항· 소장처
고문서-시문류-묘문 |
개인-전기-묘문 |
발급자 : 최명룡(崔命龍) / 수취자 : 최연손(崔連孫) |
|
|
32.4 x 36.4 |
현소장처 : 부안 연곡리 유절재 / 원소장처 :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
정의
모년에 최명룡이 작성한 암계공 최연손의 묘갈명 병서 초안
해제
모년에 최명룡(崔命龍)이 암계공 최연손(崔連孫)의 평생 사적(事蹟)을 작성한 묘갈명(墓碣銘) 병서(幷序) 초안(草案)이다. 최연손의 자는 자윤(子胤), 호는 암계(巖溪)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합격하였는데, 생원시에서는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판결사(都承旨判決事)를 역임했다. 암계는 청렴하고 결백한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릉(江陵)에는 그의 추모비[去思碑]가 세워져 있다. 암계는 어렸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히 대하며 말을 부드럽게 하고 봉양하였다. 그의 유순하면서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행동거지가 한 고을의 모범이 되었으며, 사방에서 그의 행실에 탄복하였다. 또한 그는 경전(經傳)의 깊은 뜻과 하락(河洛)의 도서(圖書)가 지닌 심오한 이치에 대하여도 통달하였을만큼 학식이 깊었다. 공의 부인은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전주최씨는 병마절도사 최전(崔湔)의 딸이며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증손이다. 부부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윤조(潤祖)이고, 작은아들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감찰(監察)을 역임한 엄조(渰祖)이다. 딸은 좌랑 정기수(鄭期壽)에 시집갔다. 그리고 손자 2명과 손녀 1명이 있다.
巖溪公諱連孫墓碣銘幷序
噫我崔氏出自淸河來此東土卜居全州自高麗至本 朝科甲連出簪纓相
繼湖南人物誌云完山崔李壯元郎又云叅議崔霮之父子諸人淸顯無比爲
州人之所景慕則完山謂之客山者良以此也門閥之源來久矣中始祖侍中
諡文成公諱阿生中郎將諱龍鳳中郎將生司醞直長諱乙仁直長生檢校戶
曺叅議集賢殿直提學諱霮是生藝文舘直提學號烟村諱德之是生護軍諱
淍是生長興庫副使諱岱是公之考妣陽城李氏吏曺叅判季茂之女生公公
諱連孫字子胤號巖溪成廟庚子爲生員壯元己酉登文科仕宦至都承旨判
决事以淸白著世江陵有去思碑公自少至老孝於親恭於兄怡聲下氣而養
之旣和且湛而事之動靜爲一鄕之矜式言行爲四方之歎服而且於經傳之
蘊奧河洛之玄■〔微〕旁通而曲暢雖傳道承統之老師先輩庶乎其優與而深獎
之矣公有存養之祖山堂之叔則其淵源之力薰灸之效豈云少哉配全州崔
氏兵馬節度使湔之女大提學晩六先生瀁之曾孫也生二男一女男長曰潤
祖通德郞次曰渰祖文科監察女適佐郞鄭期壽潤祖娶淳昌薛氏忠蘭之女
生一男曰琬將仕郞渰祖娶南原梁氏生一男一女男曰秉忠女適金世圭命
龍爲旁孫聞公行業習且詳矣今於請銘之日豈可以文之不足辭乎銘曰操
何淸白文及菽栗孝斯父母信厥朋友性成薰陶業慕程朱南州夫子東國善
士天慳吉地欝彼乳峙慶及雲仍庶期千春
旁孫 命龍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