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한 현상 - 어떤 병에 걸렸을 때
그 해 여름방학도 끝나고 2학기 수업에 들어갔을 때였다.
나는 별로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매일 밤 8시가 되면,
정기적으로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정지되어 오체(五體)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기묘한 병에 걸려,
학교에도 온전히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모친은 미친 사람처럼 되어, 작은 내 몸을 안고 통곡하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또 하나의 나”가 되어 육체를 벗어나,
어머니와 “육체의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자유자재로운 나였으며 정말로 기묘한 체험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입에서 입으로 약을 먹여 주었는데,
그때의 내 입술은 포도색으로 변했고 육체는 경직되어
입으로 전해 주는 약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자유로운 나는, 부자유로운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안심하도록 어머니에게 옆에서 힘껏 소리쳐 불러도 통하지 않는다.
그때의 초조함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것이었다.
육체에서 뛰어나온 “또 하나의 나”는,
도저히 어머니의 마음과 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다른 형제자매들 누구도 어떻게 손써볼 수도 없이 울면서
그냥 이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발작을, 내가 여러 번 반복하자, 의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던지
아버지는 “여러 절에 가서 참배”하는 것이 좋다고 들으면 고향의 신사는 물론,
멀리 군마현, 사이타마현에 있는 신사까지 참배하러 갔고,
침뜸이 좋다고 하면 금방 그것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도 내 머리는 침뜸때문에 울퉁불퉁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나”는 가족의 걱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있는 세계,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친절한 노인의 손을 잡고 큰 건물 안을 견학한 적도 있었다.
그곳에는 일본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치 올림픽처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정말로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깝게 “또 하나의 나”는 내 육체에서는 떨어져 있지만,
떨어져 있는 의식은, 틀림없이 새로운 육체를 가진 나 자신이었다.
이 육체는 벽을 비롯하여 어떤 장애물이라도 내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원래의 육체로 돌아올 때에는
무언가 강한 약초의 냄새가 코를 찌르며,
큰 호흡과 함께 심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 몸이 됨과 동시에 의식은 소생하는 것이었다.
내 주위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양친이랑 형제자매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하여 내 얼굴을 살피면서
<괜찮니? 이제는 걱정할 것 없어>
라고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면서 기뻐하였다.
원인을 모르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 병은, 이렇게 매일 밤 반복된 것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현상에 익숙해짐에 따라
어린 마음에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던 것인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점차 엷어져 갔다.
나는 부모형제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당황하고 있는 것도,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대답할 수 없었어요>
인간이라고 하는 동물은 정말로 불가사의한 것으로,
의식이 신체에서 벗어나 버리면,
자신의 육체는 자유롭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병도 육 개월 정도 지나 나았지만
아버지는 이 일로 나를 특히 귀여워하며 애지중지 키우셨다.
나는 너무 응석받이가 되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서 상당히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 병을 계기로 나는, 집 가까이에 있었던 곤겐님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작은 신사에 참배하게 되었다.
건강의 기원과 “또 하나의 나”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참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경내 청소를 비롯하여 신전 내부에 걸레질도 하였다.
엄동설한에는 손이 얼어 버리는 일도 있었다.
어느샌가 이 절이 내 집처럼 되어,
나는 공부에 필요한 도구를 가져가 혼자 공부하는 일도 있었다.
이삼 년이 지난 어느 겨울 저녁
눈으로 덮인 신역(神域)에 가래로 통로를 만들고 신전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돌연 절 옆에 있는 큰 삼나무에서 하얀 덩어리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나는 놀란 나머지 맨발로 신전을 뛰쳐나와 숨을 허덕이며 집에 돌아가
<아버지, 하얀 덩어리가 삼나무 위에서 떨어졌어요.
무서워서 참배를 할 수가 없어요>
라고 말하며 새파랗게 되어 떨고 있었더니,
아버지는 회중전등을 갖고 내 손을 잡고 신사로 갔다.
<어디에 떨어졌니>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고 내 얼굴에 빛을 비추었다.
내가 삼나무의 뿌리를 손으로 가리키자,
눈 덩어리가 눈 위로 낙하하여 움푹 파인 자국이 잘 보이게 한 후 나를 꾸짖었다.
<바보같이, 눈이 떨어진 거야.
남자가 이런 걸로 놀라 도망 오는 것은 말도 안 돼>
또 어느 날은 큰 바람에 날린 허수아비의 옷이
기도하고 있는 내 등에 덮이는 무서운 경험을 한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잘 보면 허수아비의 옷이지만
혼자서 기도하고 있는 아이의 마음에는,
작은 일이라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신역이었던 것이다.
사오 년 간 참배는 계속되었지만 신과의 대화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도대체 신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기도라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하지만 나의 의문은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갔다.
몸은 완전히 좋아졌지만 어린 마음에도 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도에의 길이었다.
들리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완전히 무언의 세월이 흘러갔다.
소나무에 부는 바람소리나 오래된 삼나무를 스치는 바람의 소리 이외에
어떤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무렵의 순진한 어린이 마음, 거짓이 없는 내 모습을 생각해 내었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의 자신을 추구하고 탐구한 세월은 삼십 년이나 흘러갔다.
추억에서 깨어난 내 옆에는, 참게가 논두렁을 가로지르려고 하고 있다.
실개천에서 논으로 주거를 옮기는 것이다.
검은 두 개의 눈알을 세운 참게는 뛰어가듯이 빠르다.
이런 작은 참게라 할지라도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리고 죽으면, 오체의 자유를 잃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 버리거나 흙으로 돌아가 동화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심어진 모도, 자연의 비바람을 견디며,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을 하고, 마침내 황금색의 벼 이삭으로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는 벼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보존의 사념만이 강하고,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
타인이나 동료를 깔보고, 자신의 머리를 숙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이 식물에게조차 뒤떨어지는 것일까?
대자연은, 인생의 본질에 대해, 도(道)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바르게 세상을 보는 눈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허무하게 논리를 좇아, 어려운 철학서적 안에서 도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도(道)일까?
나는 자연 속에서 그 잘못을 절실히 느꼈다.
이미 석양은 지고, 하늘은 적황색으로 물들었고,
동쪽의 한 그루 소나무 위에는 일몰 후의 금성(金星)이 빛나고 있다.
어느새 개구리의 합창이 시작되어 하루가 끝나려고 하고 있다.
나는 흙투성이가 된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회사의 기숙사로 돌아간다.
한 톨의 쌀은, 이러한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노동이라고 하는, 피와 땀의 결정체에 의해, 우리들은 한 톨의 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쌀이라고 하는 식물은 또,
그 생명을 던져 우리들의 피와 살이 되는 공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의 마음, 그것이 불쑥 몸속에 용솟음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감사하는 것은, 보은이라고 하는 행위가 있어야만이 그 의의(意義)도 있다.
즉 보은의 마음이 있다면,
음식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의 보시라는 형태로도 될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종업원이 만들어 준 식사를 하면서도 그 마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 후 밖으로 나가자,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멀리 작은 네온과 함께 도시가 보였다.
하지만 여기는 도쿄의 아사쿠사의 야경과는 달리, 아직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인간은, 신이 준 그대로의 자연과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안식이 있다.
잡음 하나 없이 정숙하고 공기가 깨끗한 밤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환경을, 도시의 사람들에게 맛보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빌딩 숲, 스모그로 오염된 잿빛 도시, 정서도 윤택함도 없는 도시.
하지만 우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이 도시를 아름답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신의 자식이라는 자각에 눈뜨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잠자리에 들어가는 대신 마루 위에서 명상에 잠겼다.
오고 가는 것은, 지난날의 추억이며,
내 가슴에는, 또다시 추억의 세계가 전개되어 가는 것이었다.
마음의 발견 (현 증편) -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