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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년 위소보(少年 韋小寶) 양주성(揚州成)은 예로부터 이름난 명승지였다. 옛 사람들은 인생에 서 가장 즐거운 일은 '허리에 십만관(十萬貫)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에 날아가 노는 것'이라고 했다. 수양제가 운하를 개설한 이후 양주는 운하의 중앙에 지리잡고 강서성 과 절강성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명나라 이후에는 각지의 소금 장수들과 큰 장사치들이 모여 살게 되어 그야 말로 천하에서 으뜸가는 부(富)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청(淸)의 강희제(康熙帝) 원년(元年)의 일이었다. 양주 부근의 수서호(瘦西湖) 호반은 명옥방(鳴玉坊)이라고 불리는 기루(妓樓)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늦은 봄의 해는 저물고 집집마다 등불이 ㅂ혀질 무렵 명옥방의 모든 기루에서는 기생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가야금을 뜯는 소리가 어우 러저 한껏 흥청거리고 있어 태평성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 다. 여춘원(麗春院)은 명옥방에서도 몇 번째 안에 드는 기루였다. 지금 여춘원에서는 십여 명의 염상(鹽商)들이 세 개의 탁자에 나누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한명의 기녀를 옆자리에 앉히고 권커 니 자커니 술을 들이키면서 기녀를 희롱하기도 했다.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는 너댓명 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문을 여시오!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왔소" 술을 마시던 염상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근거렸다. "어떤 사람들이 와서 시끄럽게 굴지?" "관가에서 조사하러 왔나?" "도대체 무슨일이야?" 여춘원의 하인은 전례에 없었던 일이라 어쩔 줄 모르고 염상들의 눈 치만 살필 뿐이었다.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엉거주춤해 있었 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밀어 제쳐지면서 십 칠팔 명의 대한들 이 와르르 몰려들어 왔다. 나타난 대한들은 하얀 띠를 머리에 질끈 동 여맸고 허리에는 푸른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손에는 시퍼런 칼을 들거 나 쇠로된 자나 막대기를 들 고 있었다. 염상들은 그들이 바로 소금을 밀매하는 염효(鹽梟)들임을 알아 보았다. 그 당시에는 소금에 부과하는 세금이 너무나 과중했다. 그래서 누구 든지 소금에 대한 세금을 포탈한다거나 사사로이 팔고 사게 된다면 큰 이익을 보았다. 양주지방은 소금의 잡산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망명 도배들이 떼를 지어 세금을 내지 않고 소금 밀매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 염효들은 지극히 흉악했다. 많은 수의 관병(官兵)을 만났을 때는 뿔뿔이 흩어지고 적은 수의 관 병들과 만나게 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부 에서는 한 눈을 뜨고 한 눈을 감고서 간섭을 하지 ㅇ을 때가 많았다. 술을 마시던 염상들은 염효들이 사사로이 소금을 밀매할 뿐 행상인을 턴다거나 나쁜일은 하지않고 평소에도 백성들을 상대로 소금을 팔더라 도 무게를 속이지 않으며 자기네들의 세력을 믿고 사람을 괴롭히지 않 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흉악하게 명옥당으 로 뛰어드는 것을 보자 모두들 당황해 하는 한편 의아하게 생각했다. 염효들 가운데 오십 여세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여러 친구들 실례된 것을 사과드립니다." 그리고는 포권을 하고 왼족에서부터 오른쪽에 이르기까지 공손히 예 를 하고는 낭랑히 말했다. "천지회의 가여섯째가 이곳에 안 계시오?" 그리고 눈을 들어 염상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ㅎ어 보았다. 염상들은 그의 시선을 받자 모두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염효를 이끌고온 그 노인은 음성을 높여 소리쳤다. "가여섯째 오늘 오후 너는 추서호 옆 술집에서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었다. 양주 소금 밀매업자들이 용기가 없어 감히 관부에 대들지도 못하고 반역을 도모하지도 못하며 다만 소금이나 밀매하면서 세금을 포 탈하는 겁 많은 장사치들에 불과하다고 했다. 너는 술을 잔뜩 마시고 큰 소리로 우리 양주의 소금 밀매업자들이 너의 말에 승복할 수 없다면 언제든지 명옥방으로 와서 너를 찾으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 게 왔다. 가여섯째 그대는 천지회의 호걸이라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자 라처럼 목을 움츠리고만 있는가?" 그러자 십여명의 염상들도 덩달아 외쳤다. "천지회의 호한이 어째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있는가?" "제기랄 도대체 너희 천지회 놈들은 모두 자라 흉내만 내는 것들 뿐 이냐?" 이 때 노인은 말했다. "이것은 가여섯째 한사람만이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일 뿐 천 지회의 다른 친구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네. 우리 소금 밀매 업자는 밥 한끼 얻어 먹는 데만 신경 쓸 뿐이니 어찌 천지회의 영웅 호걸들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들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는 짓은 하지 않지" 한참을 기다려도 천지회의 가여섯째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 다. 그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집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져서 그 바다 자라처럼 움츠리고 있는 형 씨를 만나게 되거든 밖으로 모셔오도록 하게. 그 친구는 얼굴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으니 알아보기 쉬울걸세." 그러자 염효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한 칸 한 칸 방을 뒤지기 시 작했다. 별안간 동쪽 객실에서 걸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떤 놈이 이 곳에서 큰 소리로 짖어대서 내 흥을 깨는 것이냐?" 염효들이 다투어 부르짖었다. "가여섯째가 저기에 있구나!" "가여섯째 빨리 기어나와라." "빌어먹을 개도적이 매우 당돌하구나." 그러자 동쪽 객실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하하하! 나는 가씨가 아니다. 다만 네 녀석들이 함부로 천지회를 욕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을 뿐이야. 나는 천지회 사람도 아니지만 천지회 친구들이 하나같이 영웅호걸들인 것을 알고 있다. 너희들 같이 소금이 나 몰래 팔아먹는 것들은 그들의 신발을 닦아주거나 뒤를 닦아 줄 자격 도 없다." 그러자 염효들은 성이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서너 명의 사내가 손에 강철 칼을 쳐들고 동쪽 객실로 뛰어 들어갔 다. 그런데 '아이쿠''어이쿠'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덤벼들었던 염효들 이 방 밖으로 내던져 ㅈ다. 다시 여섯 명의 염효들이 다투어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잇달아 호통 소리가 들리면서 여섯 명은 하나같이 그 방에 있는 사람에 의해 내동댕이 쳐졌다. 염효들은 여전히 호통을 지르 고 욕질을 했으나 감히 그 방으로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염효를 이끌고 온 노인은 천천히 다가가서 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한명의 구레나루를 기른 대한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 수 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얼굴에 칼자욱이 없는 것을 보아 가여섯째 는 아니었다. 노인이 말했다. "귀하는 솜씨가 꽤나 좋은데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차갑게 대답했다. "네 녀석의 애빈 나의 아들이다. 네 녀석은 할아버지의 이름도 모르 느냐?" 그러자 옆에 선 기녀들 가우데 별안간 삼십 여세의 중년 기녀가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한 명의 염효가 그 기녀에게 다가가 '찰싹 찰싹' 두대의 따귀를 갈겼 다. 따긔를 갈긴 염효는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갈보년이 웃기는 왜 웃어." 이 때었다. 옆에서 열 두어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네가 감히 우리 어머니를 때려? 이 후레자식! 거지 같은 자식! 벼락 맞아 되질 자식! 네 손등과 손바닥에는 부스럼이 나서 손을 못쓰게 될 것이고 혓바닥 마져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을 삼키고 창자까지 썩어 죽 게 될 것이다!" 그러자 염효는 크게 노해서 어린애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 어린애는 한 명의 염상 뒤로 몸을 숨겼다. 염효는 왼손으로 염상을 바람벽에 떨 어지도록 만들고 오른손 주먹으로 어린애의 얼굴을 힘껏 후려치려고 했다. 그 중년의 기녀는 깜짝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으리 용서하세요." 그런데 그 아이는 매우 재빨랐다. 몸을 움츠리더니 염효의 사타구니 아래로 빠져나가는가 했는데 손을 뻗쳐 염효의 고환을 움켜 잡고 힘주 어 당겨 버렀다. 이 바람에 대한은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는 그 순간 도망을 쳐 버렸다. 고환을 잡혔던 염효는 화풀이 할 상대를 찾지 못하게 되자 한대의 주 먹으로 중년 기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기녀는 대뜸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아이가 달려와 그녀 몸 위에 엎드리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 그 염효는 어린애의 덜미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리고 주먹질을 하려 고 했다. 이 때 염효를 이끌고 온 노인이 호통을 내질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어린애를 내려 놓아." 그 염효는 소년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함껏 걷어찼다. 그 바람에 소년 은 몇번 데굴데굴 윗 쪽으로 굴러가더니 '쿵'하고 머리를 벽에 부딪쳤 다. 노인은 그 염효를 한변 흘겨 보더니 방문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청방(靑幇)의 형제 들이외다. 우리는 가여섯째라는 친구가 공공연히 청방을 헐뜻고 또 명옥방에서 우리들이 따지러 오는 것을 기 다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외다. 귀하는 천지회 사람도 아니고 또한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어찌하여 욕을 하는 것이오? 귀하의 성명을 대 주시오. 방주께서 나중에 추궁을 하게 된다 면 우리도 변명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방 안의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천지회의 친구들을 찾아 따지는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 다는 거야? 나는 이 곳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나의 흥을 깨뜨렸단 말이야. 내 충고 한 마디 하겠는데 욕을 먹었어도 어쩔 수 없 는일 차라리 꼬리를 감추고 순순히 물러가 돈이나 벌도록 하란 말이 다." 노인은 분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강호에서 너처럼 도리를 따지지 않는 놈은 정말 처음 본다." 바로 이 때 문 밖에서 세 사람이 달려 들어왔다. 모두 소금 밀매업자 의 차림이었다. 손에는 연자창(鍊子槍)을 든 비쩍 마른 사람이 물었다.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는구만. 하지만 말 끝마다 천지회를 높이 칭찬하는 걸 보니 어쩌면 그 가여섯째가 저 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자 비쩍 마른 사내는 연자창을 흔들거리더니 머리를 끄덕여 보였 다. 노인은 허리 춤에서 한 자 길이의 쌍 단검(短劍)을 손에 들었다. 별안간 네 사람이 일제히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방안에서는 무기 부ㄷ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와지끈''뚝딱'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을 보아 방안의 가 구들이 하나 둘 부숴져 나가는 모양이었다. 방 안에 뛰어든 네 명의 염효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방 안의 사람은 아무 소리도 내지않고 있었다. 대청에 남아 있는 염상들은 멀찌감치 서서는 방안의 싸움에 귀를 기 울이고 있었다. 무기 부딪히는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별안간 방안에서 한 사람의 처절한 비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의 염효가 죽어가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였다. 이 때 소년을 걷어찼던 염효는 어전히 고환이 무섭게 아파왔다. 그런데 소년이 담장가에서 몸을 일으키는게 아닌가? 그 염효는 주먹 을 쥐고 소년에게 다가 갔다. 염효는 한대의 따귀를 후려 갈겼다. 소년의 몸이 빙글 한 바퀴돌며 쓰러질듯 비틀거렸다. 염효는 다시 오른쪽 주먹을 쳐들고 소년의 얼굴을 내려치려고했다. 그 소년은 피한다는 것이 그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객실 안으로 뛰어 들게 되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아'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염효는 감히 방으로 ㅉ아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닫힌 방 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이 방안에 들어가니 욀칵 피비릿내가 끼쳐왔고 방안은 캄캄했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불꽃이 어지럽게 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침대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를 베로 칭칭 감고 있어 그보습이 어둠속에서 기괴한 느낌을 주었 다. 불꽃이 튄 후 방 안은 다시 캄캄해졌다. 그러나 대청의 둥근 빛이 문 틈으로 흘러들어 흐릿하게 사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을 사람은 손에 칼을 쥐고 휘두르며 싸움을 벌이 고 있었다. 네 명의 염효들은 이제 두 명만 남아있었다. 단검을 손에 든 노인과 체격이 우람한 사내는 여전히 흰 베로 머리를 감은 침대 위 의 대한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머리에 중상을 입고 있는데다가 다리를 다쳤는지 일어서 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 소금 밀매업자들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러니 나는 빨리 도망을 쳐야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하지?) 그는 어머니가 남에게 구타당한것을 상기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 하여 객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욕을 해댔다. "이 돼지 같은 후레자식아!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네 십 팔대 조상 까지도 소금장사나 해 먹은 잡종 녀석아! 네 놈은 소금이 많아서 할머 니나 마누라가 죽었을 때 소금에 절여서는 거리에 내다 암퇘지 고기처 럼 속여서 세 근에 한 푼을 받고 팔려고 했겠지? 그러나 아무도 그렇 게 썩은 고기는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청의 염효는 매우 악독한 욕지거리를 듣고 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당장 방 안으로 들어가 주멱으로 소년을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감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 ㄸ 방안의 그 대한은 갑자기 팔을 한 옆으로 휘둘렀다. '퍽'소리 와 함께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왼 팔을 잘리고 크게 비명을 지르며 쓰 러질 듯이 비틀거렸다. 이 때 노인이 쌍검을 내뻗어 침대 위의 사람을 향해 힘껏 내질렀다. 그러자 침대 위의 사내는 왼손을 홱 뒤집으며 기 묘하게 내질렀다. 그러자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나면서 노인의 늑골이 부서지며 곧장 방 밖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게 아닌가? 침대 위의 사내 역시 사력을 다해 반격했기 때문인지 입으로 선혈을 내뿜으며 온 몸을 휘청거렸다. 그런데 그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비록 왼 팔을 잘린 상태 였으나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강편(鋼鞭)을 들어 대한의 머리통을 내 려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대한은 대항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우람한 체구의 염효 역시 마지막 기력을 내쏟고 있는 듯 강편이 떨어지는 기세가 느리기 짝 이 없었다. 소년은 이광경을 보자 적개심이 치솟아 올라 질풍같이 달려나가 우람 한 사내의 두다리를 힘껏 뒤로 잡아당겼다. 이 체격이 큰 사내의 몸 무게는 적어도 이백근은 나갈 것 같았다. 그 소년은 비쩍 마르고 조그마한 체구를 지니고 있어서 평소 같았으면 그 대한을 어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중상을 입고 있는 그 사내는 그야말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던 참이라 소년이 잡아당기자 풀썩 쓰러 지면서 피가 흥건항 바닥에 눕게 되었고 일어나지 못했다. 침대 위의 대한이 크게 숨을 몰아 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용기가 있으면 모두 들어와 덤벼라!" 그 소년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대한에게 밖에 있는 사람에게 도전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조금 전 그노인이 방 밖으로 날아가게 되었 을 때 방 문에 부딪혀서 방문이 열였다 닫혔다 하고 있었으며 방문은 계속 흔들 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대청에 있는 불빛이 흘러들었다가는 막혀 버리곤 했다. 불빛은 그 사람의 잡초처럼 무성한 구레나루를 비추 게 되었는데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흉 칙해 보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청의 염효들은 방 안의 사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자 방 안의 대한은 호통을 쳤다. "후레자식들! 들어오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면 내가 나가 하나하 나 죽여주겠다!" 그러자 염효들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메 고 다투어 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대한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소년에게 나직이 말했다. "애야, 문을 걸어 잠그도록해라." 소년은 속으로 문은 반드시 잠궈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예." 그는 방문을 닫고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는 피비린 내만이 물씬물씬 풍기고 었었다. 그 대한이 말했다. "너는 ......." 한마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대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금방 이라도 침대 아래로 덜어질 것 같았다. 소년은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부축했다. 그리고 대한의 머리를 베개 위에 놓이도록 눕혔다. "그 소금 밀매업자들은 다시 들어닥칠 것이다. 내 힘이 회복되지 않 았으니.....빌어먹을 피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손을 뻗쳐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상처에 자극을 준듯 나직 이 신음 소리를 냈다. 소년을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소년은 다가가서 그의 왼쪽 어깨를 부축했다. "나를 부축하지 말아라. 그 염효들이 발견하면 너마저 죽일 것이다." 소년은 말했다. "죽일태면 죽이라지. 뭐가 겁나요? 우리 친구들 끼리는 의리를 지켜 야 되지 않겠어요? 나는 반드시 당신을 부축해야 겠어요." 그러자 그 대한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웃는 동안에 잇달아 격렬히 기침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에게 의리를 지키겠다고?" "의리를 지키지 못할 것도 없지 않아요? 좋은 친구끼리는 복이 있으 면 같이 나누고 화가 있으면 같이 당하는 법이라구요!" 양주의 거리에는 찻집이 많았고 그 찻집에는 책을 읽어주는 이야기군 들이 많이 있어서 삼국지나 수호지 대명영렬전(大明英烈傳)같은 책을 읽어 주곤 했다. 이 소년은 밤낮 없이 기녀원이나 도박장 찻집 술집을 들락거리며 심 부름을 해주고 돈푼이나 얻어서 쓰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찻집 탁자 옆에 앉아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찻집의 다박사(茶博士:차 심부름을 하는 사람 )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라 다녔기 때문에 다박사는 소년을 ㅉ아내지 않았다. 소년 은 그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ㄸ문에 고사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을 매우 숭배하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오늘 이 사람이 중상을 입은 처지 에서 다시 염효들을 무찌르는 것을 보자 속으로 앙모하는 마음이 싹트 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영웅들의 말투를 내뱉게 된 것이 다. 이 때 대한은 싱긋 웃었다. "그 말은 참 그럴듯 하구나. 나는 많은사람들로부터 그같은 말을 수 없이 들어왔다마는 복이 있어 함께 나눌 사람은 보았으나 환난을 당했 을 때 같이 감수하자고 나서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리 나가자꾸나." 그 소년은 오른쪽 어깨로 그 사람의 왼 팔을 부축하고 방문을 열었 다. 그리고는 대청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아연실색해서 사방 으로 피했다. 소년의 어머니가 크게 소리쳤다. "소보(小寶)야 어디로 가는거냐?" "이 친구를 대문 밖까지 바래다주고 오겠어요." 그 사람은 껄껄 웃었다. "이 친구라고! 하하하.....내가 너의 친구가 되버렸구나." 소년의 어머니는 소리를 쳤다. "가지 말아라! 너는 빨리 몸을 숨겨야돼!" 소년은 싱긋 웃어보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대청을 나섰다. 두 사람이 대청을 나서게 되었을 때 골목안은 조용할 뿐 아니라 아무 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염효들은 강적을 만나게 되자 구원을 청하러 간 모양이었다. 그 대한은 골목길을 벗어나자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서쪽으로 가자." 두 사람이 얼마쯤 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한 대의 노새가 끄는 마 차가 달려왔다. 그 대한은 큰 소리로 불렀다. "마부 이리 오시오." 그러자 노새를 몰던 마부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마차를 세웠다. 두 사람이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에 두려운 빛을 띠 었다. 대한을 품 속에서 한 덩이의 은자를 꺼냈다. 약 너 댓냥은 되어 보였다. "이 은자를 선불로 드리겠소." 그 마부는 은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고는 즉시 두 사람이 올라 탈 수 있도록 발판을 내려 놓았다. 구레나룻의 사내는 몸을 숙여 수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품 속에 서 열 냥의 무게가 나가는 원보(元寶)를 소년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 봐, 꼬마 친구. 나는 가겠네. 이 원보를 자네에게 주지." 소년은 커다란 원보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큰 돈이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가 급히 거두어들였다. 의리에 죽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 온 그는 영웅호걸들은 친구를 사귈때 금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했던 것이다. 영웅호걸 노릇을 할 기 회가 모처럼 생겼는데 끝까지 영웅호걸 행세를 하고 싶었으며 바보같이 주는 돈이나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의젓하게 말했다. "우리는 의리로 맺어진 친구가 아니오? 돈은 필요없소. 당신이 나에 게 원보를 준다는 것은 나를 업수이여기는 것이 아니겠소? 친구가 몸에 상처를 입었으니 만큼 내가 당신을 위해 안전한 곳까지 바래다 주겠 소." 구레나룻의 사내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좋아! 좋았어 !정말 재미있는 친구로군!" 그리고는 원보를 품 속에 집어 넣었다. 소년은 수레 위에 올라 구레 나룻 사내의 옆에 앉았다. 마부는 물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그 사람은 말했다. "성의 서쪽에 있는 득승산(得勝山)으로 갑시다." 마부는 어리둥절해졌다. "득승산으로요? 이 야밤에 성 밖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소." 구레나룻의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탁탁 소리가 나도록 두르렸다. 마부는 속으로 겁을 집어먹고 재빨리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갑니다.가요." 그리고는 마차의 휘장을 내리더니 성 밖으로 마차를 몰았다. 대한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는 듯했는데 숨 소리는 여전히 거칠었고 때로는 기침을 하기도 했다. 득승산은 양주성에서 서북 쪽으로 삼십리쯤 들어간 대의향(大儀鄕) 이라는 시걸에 위치해 있었다. 남송(南宋) 소홍(紹興)연간에 장군 한세충(韓世忠)이 이 곳에서 금 (金)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 이름이 득승(得勝)이 되었다. "손님 득승산에 도착했읍니다." 구레나룻 사내는 산이 불과 칠팔장 높이에 불과하여 산이라기 보는 하나의 언덕과 같은 것을 보고는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이 곳이 득승산이란 말이오?" 마부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죠." 소년은 말했다. "이 곳은 확실히 득승산이예요. 우리 어머니와 누님들이 영렬부인묘 (英烈夫人廟)로 와서 불공을 드릴 때 나는 항상 뒤따라 왔어요. 그리고 이 곳에서 논적도 있어요. 조금 더 들어가면 영렬부인묘가 나와요." 영렬부인묘는 한세충의 부인인 양홍옥(梁紅玉)을 모시는 사당었다. 양주의 사람들은 이창묘(異娼廟)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홍옥은 젊었을때 기녀 노릇을 한적이 있었다. 그 풍진 세상에서 한 세충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양주의 기녀들은 매년 영렬부인묘에 와서 향불을 피우고 소원을 빌었 다. 즉 송나라 때의 안국부인(安國夫人)인 양홍옥의 영령이 있으시다면 후배 기녀들을 돌보아 주십사고 비는 것이었다. 구레나룻의 대한은 말했다. "그렇다면 틀림 없겠지. 내려 가자꾸나." 소년은 재빨리 내려서서 대한을 부축해 내려서도록 했다. 그런데 사 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곳은 황량한 곳이니 이 곳에 숨어 있으면 그 염효들이 도저히 찾 아 낼 수 없을 것이다.) 마부는 황급이 떠나려고 했다. "이 봐, 잠깐만! 이 꼬마 친구를 성으로 대려다주게" 구레나룻의 사내가 소리치자 마부는 급히 마차를 멈추었다. "예. 그렇게 하죠." 소년은 말했다. "나는 그냥 있을래요. 내일 아침 내가 친구에게 만두를 사다 줄꼐 요." "정말 나와 함꼐 있을태냐?" "시중드는 사람이 없다면 잘못될지도 모른다고요." 그러자 구레나룻의 대한은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마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가보시구료." 마부는 황망히 수레를 몰고 떠낳다. 그 대한은 커다란 바위에 걸터 앉았다. 노새가 끄는 수레가 멀리 사라지자 사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별안간 구레나룻의 사내가 호통을 쳤다. "두 녀석은 이리 썩 나서라!" 소년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나 다를까? 뒷 쪽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하얀 띄를 머리에 동이고 푸른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염효들이었다. 두 사람은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번뜩이며 한 걸음 두 걸음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구레나룻의 대한은 호통을 내질렀다. "이 후레자식들! 기녀원에서 이 곳까지 미행을 해 왔으면 앞으로 나 와서 죽여 주십사 하고 진작 머리를 내밀어야 할 게 아니냐?" 그러자 두 명의 염효는 나직이 뭐라고 소근거리더니 갑지기 몸을 돌 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의 대한은 급히 몸을 일으켜서는 추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 하는 신음을 내뱉으며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부는 이미 가고 없다. 우리 두 사람은 멀리 피할 수도 없는데 도 망친 두 사람은 염효들에게 알려 주게 될 것이고 곧 많은 사람들이 달 려 올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큰 일이다.) 갑자기 소년은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이구! 어쩌다가 죽었소! 죽으면 안돼! 당신은 죽을 수 없단 말이 오!" 두 명의 염효는 미친듯 달려가고 있다가 소년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 게 되자 어리둥절해져서 즉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때 소년은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이렇게 되자 두 명의 염효는 놀랍고도 기뻤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 악질이 죽은 모양이군!"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놈이 심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얼마 견뎌내지 못할거라고 믿고 있었지. 조그만 녀석이 저렇게 우는 것을 보면 죽은게 틀림없어." 바라보니 그 대한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한 명의 염효가 말했 다. "설사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네. 우리가 그의 머리를 잘라서 가지고 간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거 묘하군." 두 사람은 칼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이 ㄸ 소년은 주먹으로 가슴 을치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노형, 어찌하여 갑자기 죽는단 말이오? 그들 소금 밀매업자들이 ㅉ 아온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나겠소?" 두 염효는 다투어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 사람의 염효가 소리를 내질 렀다. "이 악질 참 잘 죽어 주었다." 그리고는 소년의 목덜미를 잡고 높이 쳐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구레 나룻 사내의 목덜미를 칼로 내려치려고 했다. 파란 칼 빛이 번쩍하고 어둠을 갈랐다. 그 순간 칼을 내리치던 염효의 머리통이 떨어졌고 소년 을 잡은 사람의 가슴팍이 아랫 배있는 곳까지 깊이 갈라져서 오장육부 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구레나룻의 사내는 껄껄 소리를내어 웃으 며 몸을 일으켰다. 그 어린애는 울부짖었다. "아이고! 이 소금 밀매업자 친구의 머리통은 어디로 날아가고 보이지 않지? 당신 두분 어르신께서 염라대왕을 만나러 갔으니 아이고!큰일났 네! 또 누가 염효들에게 전달을 하러 가느냐 말이오! 정말 큰일이 났구 나!" 그리고 나서 낄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의 대한은 웃으 며 말했다. "정말 내 녀석은 재미 있구나! 정말 그럴듯 하게 우는데 그래! 네가 조금만 서툴렀어도 이 두 후레지식은 이 쪽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 다."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능청떠는 것 쯤은 문제 없어요! 우리 어머니가 채찍으로 나를 때릴 때 나는 채찍이 내 몸에 닿기도 전에 이미 죽을 동 살동 하는걸. 그럼 엄마는 채찍질을 심하게 하지 못한다구요." "너의 어머니는 너를 왜 때리지?" "대중 없어요. 때로는 내가 돈을 훔쳤기 때문이고 때로는 여춘원의 민씨 아주머니나 오씨네 아저씨를 골탕 먹었기 때문이예요" 대한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만약 이 두 후레지깃을 죽이지 못했다면 정말 큰일날뻔 했다. 그런 데 이봐. 조금전 거짓울음을 울ㄸ 어째서 나를 나으리나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고 노형이라고 불렀지?" 소년은 말했다. "당신은 내친구가 아니오? 그러니 자연 노형이라고 불러야지. 당신이 무슨 아저씨란 말이오? 만약 당신이 나에게 나으리라고 부르도록 시킨 다면 내가 당신을 상대할것 같소?" 그 대한은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좋아 꼬마 친구. 자네의 이름은 뭐지?" 소년은 말했다. "당신은 나의 존성대명(尊性大名)을 묻는 거요? 나는 소보라고 하 오." 구레나룻의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너의 대명이 소보라고 한다면 존성은 어떻게 되지?" 소년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의 존성은 위(韋)라오." 이 소년은 기녀원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위춘화(韋春花)라고 했다. 그의 부친이 누구인지는 그녀 역시 모르는 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 든 사람들은 그를 소보라고만 불렀고 그의 성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대한이 질문을 하게되자 어머니의 성을 들먹거리게 된 것이 다. 소년 위소보는 기녀원에서 태어나 기녀원에서 자랐으며 한 번도 글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존성대명이라 칭했는데 그것은 우 스게 소리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찻집에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종종 존성대명 이라 들먹거리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 말이 남을 높이 부르는 말인 줄도 모르고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데 쓰게된 것이다. 위소보는 곧이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지?" 그 대한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으니 너를 속일 순 없지. 나의 성은 모 (茅)이고 열여덟째라서 모십팔(茅十八)이라고 한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아! 들어본일이 있다. 관부에서 잡으려는 그 사람. 당신은 바로 큰 도적이 아니오?" 모십팔은 냉소를 날리며 입을 열었다. "맞아 넌 내가 두려우냐?"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금도 두렵지 않아. 내게는 금은 보화가 없거든.빼앗고 싶어 도 빼앗을게 없을 걸.그리고 또 큰 강도라면 또 어떻소? 수호지의 임충 (林沖)이나 무송(武松)같은 영웅호걸들도 모두 큰 강도들이 아니겠소?" 모십팔은 크게 기뻐했다. "네가 나를 임충이나 무송같은 영웅에 비교하다니 그야말로 정말 멋 있는 말이구나. 그런데 관부에서 나를 잡으려고 한다는 말은 누구에게 서 들었지?" 위소보는 말했다. "아이고. 양주 안에는 곳곳에 방(榜)이 붙어 있소. 대도적 모십팔을 잡는 사람은 뭐라더라? 죽이면 상금 이천냥을 내린다고 하던가? 그리고 당신이 있는 곳을 관가에 알려 주면 천냥이라고 사람들이 찻집에서 말 하더군.형씨가 그같은 큰 재간을 지니고 있는데 형씨를 잡는다거나 죽 일 수는 없고 그저 행방이나 알아내어 관부에 알려주고 천 냥의 상금을 받는 것이 현명한 방볍이라고 수근댑디다." 모십팔은 고개를 갸웃하며 위소보를 빤히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내가 만약 천 냥의 상금을 얻는다면... 나와 어머니는 한번 쯤 뽐낼 수 있을탠대. 돼지 갈비와 오리 고기를 사 먹을 수도 있고 놀음을 한 판 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십팔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 고 짐짓 노성을 질렀다. "당신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요? 내가 관가에 밀고해서 상금이나 받으려고 하는 줄 아시오?" 모십팔은 말했다. "그렇지. 허연 은자를 누가 싫다고 하겠냐?" 위소보는 슬그머니 분한 생각이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쳤다. "빌어먹을! 친구를 팔면서 어찌 강호의 의리를 논할수 있단 말이 오?" "그래도 누가 알아?" "당신이 믿을 수 없다면 어째서 진짜 이름을 말해 주었소 당신은 머 리와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방에 그려진 모습과는 딴 판이었소! 당신이 모십팔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알아 보겠소?" 모십팔은 말했다. "너는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당하자고 했지 않느냐? 그런데 내가 성명과 신분마저 감춘다면 어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털어 놓았던거야!" 위소보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정말 옳은 말씀이야! 만냥이나 십만냥의 은자를 준다고 해도 난 결 코 친구를 배반하지 않아."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만 냥이나 십만 냥의 은자를 준다면 친구를 배신하지 않을까?) 그는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모십팔이 말했다. "좋다. 우리 한숨 자도록 하자. 내일 오시(午時)에는 두친구가 나를 찾으러 올거야. 우리는 이양주성 서쪽 득승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 지 그야말로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죽음의 약속을 한것이지." 위소보는 오늘 크게 소란을 피운나머지 이미 지칠 대로 치쳐 있었다. 대한이 그말을 할 때는 이미 옆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댄채 잠이 들어 있었다. 이 튿날 위소보가 잠에서 깨었을 때 모십팔은 웃으며 마했다. "일어났냐? 이 두녀석의 시체를 나무 뒤로 끌어다가 숨기고 세자루의 칼을 잘 갈아 놓도록 해라." 위소보는 그 말대로 죽은 사람들을 나무 뒤로 옮겼다. 이 때서야 햇살 이 막 떠올라 모십팔의 모습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사십세 가량의 나 이에 손과 팔은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에서는 횃불과 같이 형형한 빛이 감돌고 있어 매우 위맹스러워 보였다. 위소보는 세 지루의 칼을 개울가로 가져가서 돌에 한참 동안이나 문 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소금 밀매업자를 상대하려면 한 자루의 칼이면 충분할 것이다. 나머 지 두 자루의 칼은 어디다 쓰지? 설마 남에게 주어 이 위소보를 죽이려 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는 평소에 매우 게을렀다. 그는 칼을 대충 갈아서는 모십팔에게 갖 다 주었다. "내가 튀김이나 만두를 사가지고 오지." "튀김이나 만두를 파는 곳이 어디지?" "저 쪽으로 얼마 가지 않으면 작은 마을이 있어. 돈이 있으면 좀 빌 려줘." 모십팔은 웃으며 원보를 꺼내며 말했다. "자네와 나 사이에 네것 내것이 어디 있겠나. 마음대로 가져가 쓰도 록 하게. 빌린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친구는 정말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구나! 정말 만 냥의 상금을 준다해도 나는 관가에 고발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십만 냥을 준다면? 이거야말로 골치가 아프군. 쳇!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그토록 많은 현상 금이 걸릴 가능성은 없어. 그러니 골치를 썩힐 필요가 없지.) 그리고는 은자를 받으며 말했다. "상처에 바를 약은 사지 않아도 되겟소?" "필요없다. 나에게 약이 있으니까." "좋아. 내 갔다오지. 노형은 푹 쉬고 있으라구. 만약에 관부에서 나 를 잡아 죽인다 하더라도 난 결코 당신이 모십팔이라는 걸 말하지 않을 태니까." 모십팔은 소년이 진지하게 말 하는 것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두 분의 친구가 온다고 했으니 한 주전자의 술이 있어야 겠지? 그리 고 익은 고기 몇근하고..." 모십팔은 기뻐서 말했다. "술과 고기가 있다면 더욱 좋지. 빨리 갔다오게. 뭘 먹어야 잘 싸울 게 아닌가." 위소보는 놀라 물었다. "소금 밀매업자들이 당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ㅉ아온단 말이 오? 싸우게?" "아닐세. 나는 다른 사람과 이 득승산에서 싸우기로 약속이 되어 있 어 그렇지 않으면 왜 내가 이곳으로 달려 왔겠는가?"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몸에는 상처가 있는데 또 어떻게 싸울 수 있단 말이오? 이번 싸움은 상처가 치료된 이후에 싸우도록 하시오. 약속을 한 사람들이 허 락할런지 모르겠군." "쳇! 상대방은 유명한 여웅호걸인데 어찌 응하지 않겠나? 그렇지만 내가 응할 수 없다네. 오늘은 삼월 스무 아흐렛 날이 아닌가? 반 년전 에 이번 싸움을 약속했지. 그 후 나는 관가에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는 데 이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탈옥을 하여 달려 온 것일세. 탈옥을 할때 포졸 몇 명을 죽이게 되었지. 그렇기 때문에 양주성 안이 발칵 뒤집히고 시끌벅적하게 된 것이고 상금을 내걸고 나를 잡으려는 거지. 그런데 재수없게 그저께 만난 포졸들의 재간이 매우 뛰어나더란 말이야. 그 들을 죽이긴 했지만 나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그야 말로 재수 옴 붙은 격이지." "좋아. 내가 가서 먹을 것을 사오지. 밥을 먹은 이 후에 잘 싸우도록 하라고." 그리고는 즉시 걸음을 빨리하여 산등성이를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욱 칠 마장을 달려가자 조그만 고을이 나타났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형은 상처를 입어서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남과 싸우려고 그럴까? 상대방은 유명한 영웅호걸이라고 했으니 무공이 반드 시 뛰어날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을까?) 그는 손에 은자를 들고 있으려니 손이 근질근질 해졌다. 한 평생 이 토록 많은 은자를 만져본 일이 없었다. 어떻게 하든 크게 돈을 써 보아야 속이 시원할것 같았다. 그는 고기 를 파는 가게에 가서 두 근의 구은 쇠고기를 사고 한 마리의 튀긴 오리 를 샀다. 그리고는 두 병의 황주(黃酒)를 샀는데도 여전히 많은 은자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스무 개의 만두와 여덟 조각의 유과 (油果)를 샀다. 그와 같이 샀는데도 겨우 이십푼 밖에 들지 않았다. 갑 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밧줄을 좀 사야겠다. 그리하영 땅바닥에 반마삭(絆馬索)을 펼 쳐 놓는다면 싸울 때 상대방이 조심하지 않았다가 밧줄에 걸려 쓰러지 게 될 것이다. 그 때 노형이 한 칼에 그를 죽일 수 있을거야.) 그는 이야기 책에 나오는 옛날의 싸움을 머리에 떠올린 것이었다. 장 수가 싸움터에 나가 싸울 때 말발굽이 반마삭에 걸려 엎어지게 되면 장 수도 덩달아 나가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장수는 칼을 들 어 쓰러진 장수를 번개같이 두동강이 내지 않던가? 그는 신이나서 밧줄 을 사러갔다. 그런데 한 잡화 가게 앞을 지나다가 네 개의 커다란 항아 리가 한 줄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한 항아리에는 하얀 쌀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항아리에는 석회가 들어 있었다. 그는 생 각했다. (작년 선녀교(仙女橋)에서 소금 밀매업자들이 다른 사람과 다툴때 상 대방이 뿌리는 석회가 눈에 들어가자 이기게 된 싸움을 지고 말았다. 내가 어째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는 즉시 한 주머니의 석회를 사서 등에 짊어지고 모십팔에게 돌아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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