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대학에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을 개설하였고 심리학 강좌를 통해서 심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확립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3] 그는 심리학을 직접경험 학문이라 정의하고,[4] 의식의 내관(內觀)에 따라 분석적으로 포착되는 부분의 기술(記述)에 전념하였으며,[5] 심리학 역사상 가장 많은 글을 쓴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2]
분트는 1832년 8월 16일 독일 연방바덴 대공국의 네카라우(현재의 만하임)에서 루터교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 교회의 한 젊은 성직자가 분트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13세가 되던 해에 브루흐잘 김나지움에 입학했는데,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체벌도 많이 받았으며 담임선생님은 분트를 학문적으로 실패한 학생으로 취급하였다. 이후 하이델베르크 리케이온(독일어: Heidelberg Lykeion)으로 전학한 후 학업과 학교생활에 열중하였다.[2]
이 실험실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심리학자들이 모여들어 실험 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후에 그는 민족 심리학도 연구하여 비교 심리학과 문화 인류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생리학적 심리학 강요》(3권, 1873~1911), 《민족 심리학》(1900~1920), 《심리학원론》(1896), 《철학 세계》(1889) 등이 있으며[7] 약 49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8]
라이프치히 대학에 교수로 재직할 때에 대학 강당을 실험실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과학으로써의 심리학이 처음 탄생하게 되었다고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전의 심리학이 오직 철학의 한 부분으로서 과학적이지 못한 탐구방법에 의해 인간의 마음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반면 분트의 실험실에서는 객관화된 수치, 다시 말해 측정이 가능한 형태로 조작된 정의와 정확한 통계를 통한 과학적인 방법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실험실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1) 정신 과정의 속도 측정, 2) 시간에 대한 감각, 3) 감각에 대한 분석 4) 주의, 기억, 사고의 연합 등이다. 이로써 심리학은 과학으로써의 학문으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분트의 실험실에서 공부한 많은 제자들은 서양 학계에서 활발한 심리학 연구와 교육활동을 할만큼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은 심리학의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다양한 심리학 분과가 발달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따라서 현대 심리학의 시초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세계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이 설치된 1879년으로 보고 있다.[9]
분트는 과학적인 심리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세상과 정신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을 분석해야 된다고 믿었다. 화학자들이 어떤 물질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물질을 몇 가지 기본 요소로 쪼개는 것을 보고 분트는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구성주의(Structuralism)라는 접근 방법을 택했다. 여기서 구성주의란 인간의 의식을 기본적인 감각과 느낌이라는 구성요소로 쪼개어서 분석하는 방법이다. 또한 어떠한 시점과 상황에서도 인간은 다양한 의식 상태가 공존하는데, 분트는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내성법(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관찰, 자기의 내부 성찰법)(Introspection)을 사용했다. 이처럼 주관적인 측정과 실험 제어를 통해 정신과 의식의 영역을 보다 구성적인 측면으로 분석한 분트는 심리학과 철학을 구별시키는데 일조했다.[10]
분트가 진행한 연구의 배경은 생리학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연구가 반응 시간이나 감각 과정 혹은 주의에 대한 것에 대한 것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일반적인 자극, 예를 들어 메트로놈의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맡는 것에 노출된 후 그들의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시말해, 분트는 내성법을 이용하여 의식적인 정신 상태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트의 내성법은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보다는 정교한 자기 관찰법의 일종이다. 그래서 그는 심리학 학생들이 개인적인 해석 또는 과거 경험에 의해 한쪽으로 편향되는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관찰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으며 그 결과를 이용하여 의식에 관한 이론을 발달시켰다.
물론 이 모든 실험 과정이 개인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고 그것을 단지 관찰할 뿐이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 그래서 분트는 실험의 조건을 체계적으로 다양화시키는 것이 관찰의 일반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분트는 감각이나 감정 이상의 고등의 정신 과정은 실험법을 적용할 수 없는 영역이라 보고 이것에 대신하는 것으로서, 민족 심리학이라는 개념을 썼다. 즉, 신화, 언어, 사회, 풍속, 종교, 예술 등 오늘날의 문화인류학이 대상으로 삼는 여러 현상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원시 시대, 토템 시대, 영웅과 신의 시대, 인간성의 시대의 순으로 문화가 전개해 온 모습을 더듬어 올라가는 일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어린이에서 어른으로의 발달을 추적하는 일인 동시에 정신발달 연구의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분트는 실험 심리학과는 별도로 정신 발달의 일반법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원시민족의 정신적 특성을 대상으로 해서 그 문화적 소산인 언어, 예술, 종교, 신화 등에 관하여 연구한 10권에 이르는 대작 《민족심리학》을 저서하였다. 또한 분트는 《국민과 그 철학》(1875)에서 각국의 철학적 특성도 고찰하였다. 민족 심리학에서 다루어진 여러 문제는 오늘날 각기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문화심리학, 문화인류학, 민족학 등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현재는 민족 심리학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11]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은 심리학만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독립된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다. 그의 실험 심리학은 이후에 행동주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많은 실험적 방법들은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또한 그는 정신 기능의 세 부분에 대하여 집중 연구했는데 그것은 생각(thought), 이미지(image), 그리고 감정(feeling)이다. 이것들은 오늘날의 인지심리학에서 연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즉, 인지 과정에 대한 연구는 분트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분트가 심리학 발달에 기여한 것 중 하나는 그의 연구가 아주 잘 통제된 조건(예를 들어 실험적 방법)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행동주의자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도 실험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년 3월 20일 ~ 1990년 8월 18일)와 같은 오늘날의 현대 심리학자들은 내성법의 실험 방법론이 과학적이더라도 그것은 실제로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스키너는 내성법으로부터 얻은 결과는 주관적이고 오직 관찰 가능한 행동만 측정하기 때문에 정확히 검증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후 분트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Bradford Titchener, 1867년 1월 11일 ~ 1927년 8월 3일)는 분트의 구성주의를 주도하였으며 ‘마음의 요소’들을 발견하고자 자기 반영적인 내성법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구성주의는 내성법의 쇠퇴와 함께 퇴색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성법이 똑똑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결과가 사람마다, 그리고 경험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날 정도로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성주의는 퇴색되었다.
분트 연구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내성법이라는 측정 도구의 주관성이다. 그래서 구성주의와 내성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행동주의라는 새로운 흐름의 심리학 패러다임이 나타나게 되었다. 행동주의는 구성주의보다 더욱 객관화된 심리학의 분야인데, 그 이유는 행동주의가 오로지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 자체만을 연구하고자 하는 학파이기 때문이다. 분트의 구성주의에서는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의 요소"를 내성법을 통해 측정하려 했지만, 행동주의에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후에는 인지주의등으로 심리학계의 패러다임이 계속 발달하며 변화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분트의 자연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기존에 존재했던 철학과 유사한 심리학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었다는 점과 동시에 실험 심리학을 통해 현대 심리학의 토대를 쌓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빌헬름 분트는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분트는 과학적인 심리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세상과 정신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을 분석해야 된다고 믿었다. 화학자들이 어떤 물질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물질을 몇 가지 기본 요소로 쪼개는 것을 보고 분트는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구성주의(Structuralism)라는 접근 방법을 택했다. 여기서 구성주의란 인간의 의식을 기본적인 감각과 느낌이라는 구성요소로 쪼개어서 분석하는 방법이다.
또한 어떠한 시점과 상황에서도 인간은 다양한 의식 상태가 공존하는데, 분트는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내성법(Introspection)을 사용했다. 이처럼 주관적인 측정과 실험 제어를 통해 정신과 의식의 영역을 보다 구성적인 측면으로 분석한 분트는 심리학과 철학을 구별시키는데 일조했다.[1] 내성법은 자신의 심리 상태나 그 변화를 내면적으로 깊이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자기 관찰에 의한 보고를 근거로 하여 연구하는 방법이다.[2]
빌헬름 분트는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역대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심리학자로 꼽힌다. 이 글에서는 그의 명언 10가지를 소개할 예정이다.
빌헬름 분트는 독일의 의사이자 심리학자, 개신교 가정 출신의 철학자였다. 취리히 대학에 있어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로 200개 이상의 박사 논문을 감독했다. 또한, 500권 이상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물리심리학 원리(1874년)와 10권짜리 민속 심리학(1900-1920)이다.
빌헬름 분트: 심리학과 생리학의 결합
23세에 그는 의학 박사학위를 수석으로 받았다. 2년 뒤 그는 생리학자인 뮐러와 함께 공부한 뒤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분트는 심리학과 철학, 생리학을 결합한 선구자였다. 그는 두 학문 모두를 사용하여 육체와 정신 사이의 경계를 연구했다.
“감각과 감정에 대한 생리학적 태도는 전반적으로 심리학의 태도로 간주된다.”
생리학은 우리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반면 심리학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이 두 가지 학문에 대한 연구는 생리 심리학의 시작이었다.
광고
“생리적 심리학에 대한 연구는 감각에 대한 분석과 동일하다. 심리학과 생리학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연구의 대상: 의식
그는 당시 심리학을 빙빙 돌던 철학적 질문들을 뒤집으려 했다. 이는 데카르트와 로크의 말처럼 세계를 보는 것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방법보다는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심리학은 지배하는 정신과 규칙을 연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빌헬름 분트가 연구한 것의 한계와 주요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요점은 마음의 구조와 함께 측정할 수 있는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정신은 다행히도 최소한의 지식 없이도 우리의 생각을 위한 기초를 만들어준다. 다만 결과만 의식불명이 된다.”
광고
그는 구조론적, 자기 성찰적 심리학은 의식적 마음을 관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빌헬름 분트에 따르면 정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험적 자기 관찰이다.
“마음을 구별하는 특성은 주관적인 것으로, 우리의 의식으로부터만 파악할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디어
분트는 마음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자기 중심적 힘이라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마음의 부분이나 고정된 구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했다.
“생각은 감정이나 느낌보다 일정하지 않다. 변화하고 일시적 이념적 과정만 있을 뿐, 영구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마음이 움직이는 방법을 바라보며 이해해야 한다.
광고
“우리는 미덕, 명예, 이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이런 개념들 중 어떤 것도 실질로 바꾸지 않는다.”
민족적, 민속적 심리학
빌헬름 분트는 심리학에 있어서 순수한 자연적 집중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생리적 심리가 다른 요소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민속 심리학 또는 민속 심리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민족 심리학의 결과는 복잡한 정신 과정의 일반적 심리에 대한 주요 정보 출처를 구성한다.”
민속심리학은 집단생활의 산물(언어, 관습, 신화)을 연구한다.
빌헬름 분트는 실험적 심리학이 우리 마음의 표면에만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민속 심리학은 훨씬 더 멀리 나아갔다. 이를 인간의 심리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광고
“민속 심리학은 복잡한 정신 과정의 발달 형태가 문제일 때, 항상 개인 심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심리학의 과학적 단계의 전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879년 라이프치히에 첫 실험 심리실험실을 개발한 것이다. 그 연구 때문에 심리학은 학문적 전문화라는 지위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이는 더 많은 사회적 그리고 제도적 지원을 의미한다.
이는 심리학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심리학의 과학적 단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심리학적 분야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그가 과소평가 한 부분은 그가 영감을 준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 심리와 동물 심리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경미하다. 온토겐과 식물성 문제를 다루는 과학에 비한다면 더욱 그렇다.”
심리학에 빌헬름 분트만큼 중요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독일 연구자는 과학 심리학에 기초를 두었고, 실제적이고 증거에 기초한 방식으로 정신적 과정을 연구하면서 문제에 맞선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