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11일(목) 이사야 1:18-31 찬송 406장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개역 개정)
- 사죄를 위한 하나님의 변론에로의 초청 -
오늘 말씀은 죄악된 생활로 인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상실하고
단지 외식된 제사에만 치우쳐 있던 남유다 백성을 책망했던
어제 말씀에서의 강경했던 어조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한 심정으로
남유다 백성들을 사죄를 위한 변론에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피어린 사랑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먼저 18-20절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과
그로 인해 일어난 모든 문제들의 근본 원인인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변론에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시면서
그 초청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축복 또는 저주를 주실 것을 말한다.
이어 21-23절에서는 본래 신실하던 성읍이요 순수한 은과 포도주와 같던
하나님의 백성이 창기와 같고 불순물이 섞인 은과
물섞인 포도주같이 되어버린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을 기록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탄식에는 다시 그 백성을 순결한 신부처럼
돌이키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배어있다.
끝으로 24-31절에서는 남유다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한 측면은 택한 백성의 찌끼와 불순물을 제거하여 청결하게 함으로써
다시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는 곧 연단을 위한 징계(24-27절)이고,
다른 한 측면은 끝내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죄악의 길을 고집하는 자들을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나
삼오라기처럼 불로 태우시는 멸망을 위한 징벌(28-31절)이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① 죄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죄는 오직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 놓고 토로할 때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18절; 요일1:9)
② 비록 범죄하였을지라도 한번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며,
오히려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을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찾으시고
불러 회개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바 범죄한 자는 속히 회개함으로써
이같은 애절한 하나님의 사랑에 부응해야 한다.(롬5:8; 요일4:10)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서로 변론하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바로잡다’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이는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을 바로잡게 하겠다는 의미의 말씀이다.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회개가 쉬운 일이라면 성경에 그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많지 않을 것이다.
또 회개하지 못하여 망하는 길로 가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회개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하여 준다.
그렇다면 왜 회개가 그처럼 어려울까?
우선 사람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강팍함 때문이다.
즉 죄를 짓고도 그것을 죄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의 강팍함이 회개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런데 사람들이 회개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러한 마음의 강팍함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죄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죄가 공개되었을 때 오는 비난과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과 처벌을 두려워하여 회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죄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죄로 인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죄가 그 사람을 지배하여 또 다른 죄, 더 큰 죄를 범하게 한다.
죄는 누룩과 같아서 쉽게 번식한다.
그리하여 회개하지 않고 놔둔 죄는 마침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당장의 비난과 처벌이 두려워 회개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 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영혼과 삶을 영원한 파멸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회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당장은 비난과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죄는 비록 수치스럽고 비난과 처벌이 따른다 해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옳은 대처 방법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너그럽게 대하신다.
뿐만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거룩한 능력을 공급하시며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신다.
이 거룩한 초대 복된 부르심을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시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