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빈자리 /김 은숙
몇십 년 만에 찾아온 폭염과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던 8월 1일 새벽,
아흔셋의 노모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 섰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어떤 폭염과는 비교가 안 되는 불덩이가
내 가슴속으로 훅 들어오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따스한 봄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던 사월,
넘어져 다치셨다는 연락을 받고, 119를 타고 안동병원으로 갔다. 고관절 골절이란다.
다행히 수술은 잘 받았는데,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통증을 호소하고 섬망 증세를 보이며,
행동하는 것과 하시는 말씀에 가족 모두를 당황시켰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 지길 기대했지만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래도 서너 달은 버텨주셨는데 임종면회를 오라는 간호사의 전갈, 작별할 시간이 온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많은 자식을 키우느라 호강 한번 못하고 고생하신
엄마의 일상을 되짚어보니 가슴이 아리고 쓰려온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연세가 있으시니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주월사 법당에 엄마를 모셨다.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드려 영가가 집착을 놓아버리고 참회와 발원의 마음을 지니게 하며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신다는 49제의 마지막 날,
그때서야 살갑고 착한 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생전에 잘해 드린 게 하나도 없었음이... 좀 더 잘해 드릴걸,
때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젠 모든 끈을 놓고 기쁘게 보내드려야 한다고.
여기까지가 우리의 인연이었고,
엄마가 편하게 가시길,
더는 아프지 않은 좋은 세상에 가시라고 인사해야 한다고.
며칠 후 친구가 이젠 좀 괜찮냐고 물었다.
'숙아,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내 안의 모든 것이 다 빠져버린 허수아비 같아'
"이젠 엄마라고 불러볼 엄마가, 네 곁에 계시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맞아, 그거였어.
말없이 지켜주던 엄마의 그늘이 사라지고 빈자리만 남았다.
언제쯤이면 그 자리가 채워지면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첫댓글 은숙씨~
실감있게 쓴 글 잘 읽었어요.
가슴이 아리고 쓰려온다는 그 마음이 울컥하게 했어요
짧은 인연을 마감한 내 어머니 생각에 눈가에 촉촉한 애정이 다녀갔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