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제1장 무서운 천재(天才)들 안개(霧)가 짙다. 그 곳은 늘 안개에 휘어 감기어 있었다. 아침이 되면 태양(太陽)의 광휘로움에 모든 것이 화 려찬란하게 타오르기 마련이었으나, 그 곳의 새벽은 어둡게 시작되곤 하였다. 모든 것은 절진(絶陣)의 영향 때문이었다. 본시 그 곳은 천 년(年)의 성지(聖地)로, 천 년 전 일대 삼만 리(里)를 지배한 대몽국(大蒙 國)의 성지였다. 대몽국은 백 년의 짧은 역사만에 붕괴되었으며, 그러다가 철목진(鐵木眞)… 바로 징기스칸에 의해 원(元)의 위대한 성지(聖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십 년 전, 천하의 오백 영재(英才)가 일천 무장(武將)과 더불어 그 곳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무려 십삼 개(個) 성상(星霜)에 걸친 초인수업(超人修業)이 피와 주검 가운데 시작이 되었다. 초인수업 가운데 생존자는 오직 십 인(人)에 불과했다. 갈대가 무성하다. 바람이 불면 갈대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인다. 갈대의 바다 한가운데에는 장원(莊園) 한 채가 서 있으며, 그 곳의 하늘은 언제나 검게 찌푸 려져 있었다. 이 곳은 잠룡비전의 북쪽 지역으로 내부에서는 외부를 볼 수 없고, 외부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도록 기문대진이 펼쳐져 있었다. 무수한 관(棺)들. 주홍색 칠이 발리어져 있어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들을 십 년 내내 침상으로 사용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공포로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곳에 머물러 있는 소년소녀들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것은 거의 매일 닥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에 불과한 것이다. 초인(超人)이 되기 위해 극한의 훈련으로 십 년을 보낸 소년소녀들. 이들은 천하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목숨들이다. 또한 나이가 많아 봤자 스물 정도이나, 다른 사람들에 비할 수 없이 생사(生死)에 대해 달관 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크크… 어서 두어라." 팔짱을 끼고 있는 소년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이나 아홉 정도, 안색이 밀랍처럼 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밀랍인형처럼 보인다. 그는 새까만 유삼(儒衫)을 걸치고 있으며, 팔짱을 끼고 앉아서 맞은편에 앉은 냉막한 인상의 소년을 바라보고 키득키득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또 졌군!" 입매를 일그러뜨린 소년. 한 덩어리 얼음(氷)을 깎아서 사람의 형상을 만든다면 이렇듯 차가운 느낌을 흘릴 것인가? 얼굴에 칼자국이 무수하며, 어떠한 칼자국은 눈 위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짙게 이어져 있다. 사앙(史仰). 늘 검을 껴안고 있는 녀석이다. 반면, 그를 유혹하여 지겨운 바둑판 앞에 앉게 한 소년은 여불군(呂不君)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여불군은 늘 고서(古書)를 껴안고 있으며, 언제나 자신이 소년소녀들 가운데 최고의 연장자 라고 자부하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걸어다니는 장경고(藏經庫)라 불릴 정도로 독서량이 많은 소년이며, 잠룡비전의 무경고 (武經庫)에 들어 있는 오천(五千) 비급을 모조리 암기하고 있는 세 명의 기억력 천재 가운 데 하나였다. 암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려 하지 않는 문귀(文鬼). 그는 교두들이 일제히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빙혼(氷魂)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앙 을 바둑판 앞에 끌어다 놓고 연전연패(連戰連敗)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무려 스무 점(點)을 접어 두고 바둑을 두는 데에도, 사앙은 언제나 불계(不計)로 패하 고 마는 것이다. 여불군은 자칭 중원국수(中原國手)이며, 그의 소원은 천하의 제일기성(第一碁聖)을 상대로 하여 열 점을 접어 주고 나서 바둑을 두어 이기는 것이었다. "지겨워. 더 두지 않겠다!" 사앙은 몹시 화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비검(比劍)을 한다면 열 번 싸워 열 번 이길 자신이 있는 사앙이 아닌가. 한데 바둑을 두면 늘 여불군에게 참패를 당하곤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크… 큰 싸움은 병기(兵器)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앙! 큰 싸움은 두뇌(頭腦)로 하는 것 이다.""흥!" "훗훗… 보다 고수자가 되려 한다면, 두뇌를 보다 크게 써야 한다. 훗훗, 너는 검도 수련은 이제 그만하고… 머리를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여불군은 늘 이러한 식으로 말을 하곤 했다. 그는 이기적이며 냉소적인지라,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와 더불어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여간, 사앙은 일곱 판 내리 진 다음에야 손발을 다 들고 바둑판에서 멀어져 갔다. 아마도 그는 독실에 들어가 사흘 전에 새로 전수받은 생사십천절검초(生死十天絶劍招)를 연 마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앙! 날카로움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나, 유(柔)가 없다. 그래서 저 놈은 천하제일이 되지 못한다. 천하제일인은… 능조운(凌照雲), 그뿐이다."여불군은 꽤나 심심한 듯 일대를 휘휘 둘 러보기 시작했다. 이 곳은 십여 개의 연무실 가운데 있는 석실로서, 평상시라면 교두들이 이 곳을 차지하고 앉아 바둑을 두거나 밀담을 나누기 마련이었다. 하나 일백 명의 교두들이 이틀 전 모조리 잠룡비전 안으로 들어간 이후, 드넓은 장원 안에 는 소년소녀들만이 남게 된 것이다. 여불군은 외톨이가 되자 특유한 냉소를 입가에서 으스러뜨렸다. 그의 표정은 전과는 달리 실로 우울하고 어둡게 변화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전과 다르다!" 그는 입술을 질겅 깨물고 있었다. 그의 지혜는 가히 초인적이었다. 어쩌면 일백 교두들 가운데 육예교두(六藝敎頭)나 경서교두(經書敎頭)라 하더라도, 그에게 훨씬 뒤지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교두들은… 일제히 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이 곳이 멸 망하는 경우에만 있다."여불군은 실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구석진 자리, 그 곳에도 하나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체격은 매우 왜소했으며 언제나 타인에게 등을 보이지, 앞얼굴을 보여 주는 적이 없었 다. 소도(小刀)를 들고 철목(鐵木)을 깎고 있는 녀석. 꼽추이며 얼굴이 박박 얽은 곰보이다. 게다가 그의 신체에는 십 년의 연무 가운데 생긴 무수한 상흔(傷痕)이 있는지라, 그의 얼굴 은 두 번 다시 바라보기 싫을 정도로 역겨운 추안(醜顔)이었다. 구양풍운(歐陽風雲). 하루 가운데 한 마디 말도 토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 고독한 소년이다. 그러나 십대잠룡 가운데 그보다 미학(美學)에 능한 소년소녀는 없을 것이다. 외모는 실로 추악하나, 그의 가슴에는 실로 미묘한 장인(匠人)의 혼(魂)이 스미어 있었다. 그를 원황실의 내시(內侍)로 내다 판 그의 숙부(叔父)가 장인(匠人)이고, 그가 한 살 때 죽 은 그의 아버지가 당세 제일의 거장(巨匠)이었기 때문일까?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늘 무 엇인가를 만들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구양풍운은 하나의 조각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 새기어지는 것은 한 소녀의 얼 굴이었다. 눈이 크고, 콧날이 오똑한 미소녀. 환상 가운데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 듯 아름다 운 소녀. 해어화(解語花). 조각으로 깎이는 소녀는 해어화라는 소녀였다. 구양풍운은 어렸을 때 거세(去勢)되었는지라, 육체의 사랑은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그 대상이 바로 해어화라는 소녀였 다. 슷-! 목도가 흔들린다. 단단한 나무의 결이 벗어지며, 해어화의 얼굴은 완성이 되어 간다. 단단한 나무를 깎아서 그리도 부드러운 초상(肖像)을 만든다는 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눈(眼)을 잘 깎아야 산다." 구양풍운은 목도를 정성을 다해 거머쥐고 있었다. 눈만 파면, 조각은 완성이 된다. 두 개의 눈에 눈동자만 패인다면……. "바보 자식! 똑바로 하란 말이야." 한 소녀(少女), 너무나도 요염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연무하는 가운데 여복(女服)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이 곳의 규칙이다. 여자 아이들도 사내 아이들처럼 빛이 칙칙한 옷을 걸쳐야만 하며, 수 년 전부터는 도톰하게 부풀어오르는 젖가슴을 검은 무명천 젖가리개로 단단하게 졸라매야만 했다. 하나, 묘묘(猫猫)라는 소녀만은 늘 이단자였다. 얼굴이 지극히 희고, 어두운 데에서 보면 눈빛이 까맣게 반짝이기보다 파랗게 반짝이는 고 양이의 눈을 갖고 있는 소녀이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묘묘라고 불렸다. 황실의 나이 어린 내인(內人)이었으되, 천재적인 재질을 갖고 있음이 판명되어 잠룡비전으로 잡혀 온 것이다. 현재의 나이는 열일곱, 시정의 일반 소녀였다면 한창 시집갈 꿈에 부풀어오를 나이이다. 그러나 묘묘는 지난 십 년 내내 권장검지(拳掌劍指)를 터득하는 데 바쳐야만 했으며,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이성(異性)에 대한 상념을 갖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가르침 받은 바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묘묘의 아름다움은 감추어지지 않았으며, 타오르듯 부풀어오르는 풍만한 몸뚱이와 더불어 뭉클뭉클 치솟아 오르는 기이한 원초의 욕망 또한 감출 수 없는 일이었다. 묘묘는 완벽한 미인형의 소녀이다. 만에 하나, 이 곳에 다른 두 명의 미소녀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뭇소년들의 우상이 되었을 것이다. 해어화(解語花)와 포약빙(鮑若氷)이라는 소녀만 없었더라면……. "똑바로 들란 말이야!" 묘묘는 눈에 쌍심지를 곤두세웠다. 그녀에게서 삼 보 앞쪽, 그 곳에는 바로 그녀가 서 있었다. 잘 닦이어진 거대한 동경(銅鏡). 그 곳에 묘묘의 얼굴과 몸매는 거기 비추어지고 있었다. 구리 거울은 상당히 육중한 것인데, 그것을 두 손으로 쳐들고 있는 자는 실로 장대한 체격 에 기나긴 팔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육중한 구리 거울을 낙엽 한 장 들 듯이 가볍게 쳐들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히죽히죽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소년. 철거(鐵巨). 천재와는 거리가 먼 반 백치이다. 아마도 그는 십대잠룡 가운데에서 가장 무지한 자일 것이 다. 그는 이 곳에서 유일한 문맹(文盲)이었다. 글도 못 쓰고, 글도 못 읽는 백치. 하나 그의 근골(筋骨)은 천생신력(天生神力)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의 피부는 철갑금종조(鐵 甲金鐘早)로 발달되었는지라 도검(刀劍)이 뚫지 못한다. 키가 무려 일 장(丈) 오 촌(寸).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한 자는 더 자랄 수가 있다. 어리숙하기 이를 데 없는 바보 소년 철거. 그는 묘묘의 영악함에 말려들어서, 묘묘가 자신의 몸을 잘 비춰 볼 수 있게끔 벌써 한 시진 전부터 구리 거울을 번쩍 껴안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묘묘가 야단을 칠 때마다 그의 두 뺨은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구리 거울을 오랫동안 들고 서 있는 것은 젓가락을 들고 서성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하나, 아리따운 소녀에게서 꾸중을 받는 것은 실로 참지 못할 일인 것이다. "미안해, 묘묘." "철거, 우측으로 조금 걸어봐라. 그래야 내 모습이 잘 보이겠구나.""그렇게 할께." "호호… 너는 운이 좋은 녀석이다. 나는 항차 천하제일인의 아내가 될 인물이니, 내게 잘 보 이면 훗날 대성할 수 있다. 호호……!"묘묘는 까르르 웃자, 백 관(貫)이나 되는 구리 거울을 들고 있는 거인 소년 철거 역시 히죽거리며 웃는다. 거울 속의 묘묘. 비록 웃기는 하나, 그녀의 두 눈동자에는 짙은 우수가 서려 있었다. '진짜 바보는 철거가 아니야. 진짜 바보는 조운(照雲)이야. 그 놈은… 늘 어화(語花)에게만 빠져 있지. 바보 자식! 내게는 다정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묘묘의 눈망울이 습기에 젖고 있었다. 그 어떠한 모진 악형을 받는다 하더라도, 웃을 수 있도록 훈련받은 그녀의 눈빛이 뿌예지다 니……?어쩌면 그녀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를 사춘기의 소녀로 만든 세월로 인해, 그녀의 눈망울이 습무에 휘어 감겨 가는 것일 것이다. 또 하나의 소년이 있다. 그는 몹시 음침한 낯색을 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무복을 걸친 괴소년, 그는 하나의 잔(盞)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잔에는 그가 교두들 몰래 담근 밀주(密酒)가 그득히 담기어 있었다. 철태랑(鐵太郞). 그는 중화인이 아니다. 그는 왜국(倭國)의 소년이다. 그가 천재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피납되어 잠룡비전에 들어오지 않고, 지극히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분명… 망(亡)한 것이다!" 철태랑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늘 허리에 매달고 있는 두 자 여덟 치 길이 장도(長刀)의 자루를 왼손으로 꽈악 거머 쥐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가문지도(家門之刀)이며, 이름하여 신풍혼(神風魂)이다. "원은 망했다. 틀림없이! 그리고… 우리들은 이 안에서 떼죽음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철 태랑은 아껴 두었던 밀주를 모조리 꺼내 놓고, 허리띠를 끄른 채 실컷 퍼마시고 있는 실정 이었다. 그는 본능(本能)이 발달한 소년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잠룡비전을 휘어 감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누구보다 짙게 느끼고 있는 것 이리라. "전서구들이 떨어져 내렸고, 그 직후 거만하고 포악하던 교두들은 사색이 되어 평의회장으 로 몰려갔다. 큿큿, 그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이 곳이 파멸되는 때 뿐이다!"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죽음 따위는 무섭지 않지만,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원(元)의 사람이 아 니다. 나는 신풍(神風)의 무사(武士)가 되어야 할 운명인데… 운이 나빠서 붙잡혀 초인수업 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철태랑의 얼굴은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죽을 수 없다. 가문의 명예를 일으켜야만 하는 처지이기에… 나의 가문 신풍도(神風刀)가 천하제일의 무사 가문임을 천하에 알려야 한다. 한데, 여기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큿큿, 육 신이 찢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공포스럽지는 않다. 다만, 나의 할 일을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울 뿐이다."그는 중얼거리며 잔을 들었으며, 술잔에 가득 찬 밀주는 모조리 그 의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는 하늘(天)을 믿지 않는다!" 갈대 무성한 구릉(邱陵)이다. 등신대(等身大)의 석상(石像)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석상들의 요혈(要穴) 부위에는 파흔 (破痕)이 수없이 남아 있었다. 어떠한 것은 검흔(劍痕), 어떠한 것은 지력(指力)에 의해 뚫린 구멍이고, 어떠한 것은 예도 (銳刀)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이 곳 천석릉(千石陵)은 잠룡비전에 산재한 연무장 가운데 하나로, 소년소녀들이 석상을 상 대로 검장권지(劍掌拳指)를 연마하는 곳이었다. 석상들 가운데,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고즈넉이 서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감정이 절제된 표정, 그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 아름다운 눈빛. 차디찬 표정을 하고 있기는 하나, 실로 아름다운 용모는 달라지지 않았다. 포약빙(鮑若氷). 말수가 별로 없는 소녀이며, 나이 십칠 세에 이미 백파무도(百派武道)를 완벽히 터득한 십대 잠룡 가운데 한 소녀이다. 지금 포약빙의 굴곡 완연한 동체를 휘감고 있는 옷자락이 검은 나비 날개 마냥 나풀거리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체이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미의 여인이다. 잘강… 포약빙의 딸깃빛 입술이 깨물리고 있다. 어이해, 이리도 매서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그는… 나의 남자(男子)야. 묘묘도, 어화도 그를 차지할 수 없다. 조운(照雲), 그는 나의 남 자여야 한다. 조운의 선부(先父), 능대선생(凌大先生)과 돌아가신 아버님과는 결의형제였다. 우리 두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정혼(定婚)되었다. 한데, 조운은 나를 멀리하고 있다."소녀들에 게 중요한 것은 야망(野望)이 아니다. 소녀들이란 야망(野望)을 천시하며, 묘한 환상을 추종하는 속성이 있다. "능조운… 우리는 부부로 맺어져야 한다. 이 곳의 율법이 독신(獨身)을 강요하고, 요망한 해 어화가 너를 유혹하나… 너는 독신으로도 살 수 없고, 해어화를 취할 수도 없다. 너는 나를 신부로 맞이해야 한다."포약빙은 며칠 전부터 분노에 휘말리고 있었다. 늘 감시해 왔던 그가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능조운(凌照雲). 소년소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신(神)으로 불리는 녀석이다. 가장 강하며 가장 뛰어난 녀석. 그는 교두들 삼십육 명이 연수(連手)하여 펼친 대천강검진(大天 劍陣)을 눈 감고 돌파한 바 있는 절정고수(絶頂高手)이다. 비록 강호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나, 능조운의 무예(武藝)는 이미 대륙천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그는 지난해 겨울, 십팔무관(十八武關)을 모두 통과하고 출관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런데 그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체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
첫댓글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