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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준비(準備)의 장(章) 금마곡(禁魔谷)! 금마곡에는 천하최강(天下最强)의 마두들만이 존재한다. 그곳을 찾는 자, 천하마종(天下魔宗)의 지존(至尊)이 되어 천하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 금마곡의 가장 최하의 무공이라도 강호상에는 최강무공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신주팔대마존의 실종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천하를 뒤흔들었다. 찾아라! 나도 천하에 군림(君臨)하리라! 하나 그 누구도 금마곡의 위치는 커녕, 실존여부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세월여류(歲月如流), 물과 같이 흘러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것도 하나의 전설로 화해갔다. 금마곡은 과연 있는 것인가? 이제 실존여부조차 믿는 사람이 적어졌다. 좀 더 세월이 흐르게 되면 그것은 아득한 전설일 뿐이리라. 그러나…… 달빛(月光), 천지간 어딘가에 우뚝 솟은 암벽(岩壁)! 그 암벽에 달빛이 비추이기 시작하자 그 곳에 천천히 희미한 글자가 나타나고 있었다. 禁……魔……谷……! * * * 달(月). 달이 뜬다. 천지간에 가장 음기(陰氣)가 왕성(旺盛)해지는 보름달(滿月)이다. "아! 아아……" 숨막히는 여인의 교성(嬌聲), 춤을 춘다. 등불이 춤을 추고, 뒤엉킨 육체가 춤을 춘다. 미친 듯한 욕정(欲情)이 활화산처럼 몸부림친다. 심금을 떨어울리는 육체의 부딪침 소리와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신음과 교성이 뒤범벅이 된 석옥(石屋)의 뒤뜰에는 한 노인이 조용히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동안학발(童顔鶴髮). 가히 신선같은 모습의 청수(淸秀)한 노인이다. 그의 눈길은 자지러질 듯한 교성이 터져나오고 있는 석옥을 향하고 있었다. "아흑……! 아아…… 아!……좀, 좀 더어……!" 그 소리는 어찌나 음탕한지 듣고만 있어도 욕정이 치밀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석옥을 쳐다보는 노인의 안색은 의외로 담담했다. 욕정은 커녕 오히려 미간에 한 가닥 수심을 띠우고 있었다. '이십 년…… 지난 이십 년 동안 이들은 마(魔)의 씨앗을 잉태하기 위해 만월을 전후해 저주받은 정사(情事)를 벌여왔다. 만약 이들의 마성(魔性)을 이어받은 마인이 태어난다면……' 생각을 굴리는 노인의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혔다. 그때였다. "가군자(假君子)! 당신도 드디어 생각이 있어졌는가?" 그의 등 뒤에서 음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흠칫,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안색이 얼음과 같이 차가운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전신에 걸친 옷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금방이라도 삭아내릴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이 얼어붙도록 차고 맑았으며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는 질식하도록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처음 있었던 노인, 가군자라 불리운 노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노부는 늙어 이미 기력이 쇠잔한 터…… 어찌 여인에게 관심이 있겠소이까……" 냉면노인(冷面老人)이 차갑게 웃었다. "당신의 나이 이제 겨우 백 삼십 구 세…… 겨우 그걸 가지고 늙었다고 말하는가?" 가군자는 고소를 머금었다. "냉형(冷兄)과 같은 고수와 어찌 같을 수 있소?" 이들의 대화를 듣자니 가공하다. 가군자라는 노인은 이미 세수 백 삼십을 넘겨 백사십을 바라보는데도, 이들은 그것을 겨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그 나이…… "노부도 처음에는 그랬었지. 하나, 그 요물(妖物)은 정녕 사람이 아니야. 검에 평생을 바치며 계집을 몰랐던 노부가 이제는 보름달만 기다리고 있으니……" 냉면노인이 내뱉듯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실로 귀신이 곡할 신법이었다. 한 가닥 어슴푸레한 불빛 속에 희뿌연 동체(同體)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뇌쇄적인 나신(裸身)이었다. 얼굴은 길게 드리워진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으나, 기린의 목인듯 학의 목인듯 가늘고 긴 목에 이어진 동그스름한 어깨는 벽에 기대여 있다. 마치 폭발할 듯 팽팽히 부풀어 오른 젖가슴은 땀에 젖어 가늘게 출렁이며, 양지유가 엉긴 듯 매끄럽게 빛나는 배에 꺾어질 듯한 허리에서 숨막히게 퍼져나간 둔부…… 거기에 이어진 두 다리는 흡사 백옥을 깎아놓은 듯 말할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한쪽 다리는 가볍고 기이한 각도로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매우 미묘하게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완전무결한, 무서운 매력을 지닌 여체였다. 그녀의 앞에는 방금 사라졌던 냉면노인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조금의 감정도 없는 듯 차가운 눈으로 그녀의 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호호호……" 돌연, 절염한 그 나녀가 까르르 웃으며 옥수를 들어 머리를 쓸어넘겼다. 경악(驚愕)! 그녀의 얼굴을 보고 넋을 잃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리라. 아미(蛾眉), 봉목(鳳目)…… 폐월수화(閉月羞化), 경국지색(傾國之色)…… 모든 형용사가 부족하였다. 아름다움을 넘어 오직 요기(妖氣)스럽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매력을 지닌 여인의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무엇을 태울 듯이 괴이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와 동시에 비스듬히 올려져 있던 그녀의 옥각(玉脚)이 스르르 벌어졌다. 순간, 두 다리 사이에서 짙은 어둠을 드리운 마궁(魔宮)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불빛에 괴이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미 한 바탕 격렬한 방사(房事)를 치른 직후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독하…… 군! 백 년이 넘어도 변함이 없다니……" 냉면노인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그의 몸은 여인을 덮치고 있었다. "오호호호……" 말할 수없이 음탕한 웃음소리가 여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것은 정녕 인간의 웃음소리가 아닌 듯했다. 그토록 유혹에 찬 웃음소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후……" 밖에서 가군자가 무거운 탄식을 불어내며 걸음을 떼었다. 순간, 그의 몸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한 수는 이미 강호상에서 수백 년 간 나타나고 있지 않은 축지신행(縮地神行)의 초절정 경공이다. 대체 그들이 누구이기에…… * * * 낙엽(落葉)이 떨어진다. 그 낙엽과 함께 세월은 흘렀다. 한 달…… 두달…… 그리고 열 달…… "아아…… 아아악…" 자지러질 듯한 여인의 비명. 거대한 돌을 쪼개만든 한채의 석옥,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오는 석옥의 주위에는 깎아세운 듯한 인영들이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침묵. 숨막힐 듯한 분위기가 사방을 찍어누르듯 지배하고 있었다. 누구 한 명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석옥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석옥 안에서 노인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바로 가군자라 불리던 그 노인이었다. "가군자! 어찌 되었나?" 단구(短軀)의 대머리 노인이 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담담한 녹광이 흐르고 있었다. 공력이 더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증거였다. 가군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멀었소! 방금 것은 전진통(前陣痛)으로 내일 이맘 때 쯤 되어서야……" "흐흐흐…… 백 살이 넘은 천하의 요부가 애를 낳는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희끄무례한 환영을 이루고 있는 자가 음산히 웃었다. "크흐흐흐…… 빌어먹을! 만약에 계집년이라도 태어난다면……" 백발이 성성한 흉맹무쌍한 생김의 노인이 듣기 거북한 음성으로 내뱉았다. "닥쳐라! 네가 감히 그따위 재수없는 아가리를 나불거리다니!" 냉막한 안색의 흑의중년인이 얼음같은 음성으로 백발노인의 말을 잘랐다. "으……" 백발노인의 흉맹한 얼굴이 소름끼치게 일그러졌다. "천---마존! 네가 감히 본 마군을 이토록 능멸할 수 있단 말이냐?" 그의 백발이 은침(銀針)과 같이 빳빳이 곤두섰다. 천마존! 천마존이라니, 그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설마…… 흑의중년인이 냉막히 웃었다. "데리고 있던 다람쥐 새끼마저 없는 지금에 네가 감히 본 군에게 맞서려 한단 말이냐?" 순간, 괴이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왔다. 우르르…… 방금 가군자가 나온 오 장 밖의 석옥이 진동했다. 처절한 마기가 희오리치며 주변 수십 장에 뼈를 깎을 듯한 한기가 소용돌이쳤다. 단지 기세(氣勢)! 정작 발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쏟아지는 기세의 위력이 이러니 흑의중년인의 무공이 어느정도 이겠는가? 그때였다. "이십 년 적공을 망칠 참이오?" 한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그 가운데에 나섰다. 그 역시 오랜 세월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한 듯 몹시 남루한 행색이었다. 그러나 그 깊은 눈빛은 그의 심기가 얼마나 초절(超絶)한 것인지 말해주고 남음이 있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흑의중년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그의 기세는 조금도 악화되지 않았다. "태어날 아기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며 장차 마종지존(魔宗至尊)이 될 것이오. 하나! 그것은 차후의 일! 갓난아이는 당신의 수라열천빙백마공(修羅裂天氷魄魔功)의 기세를 감당치 못할 것이오." 그 말에 흑의 중년인은 자신도 모르게 간간이 신음이 들리고 있는 석옥을 바라보았다. '내 수라열천빙백마공은 백 장 밖의 사람도 얼음덩이로 만들 수 있지……' 순간, 그의 몸에서 쏟아지던 가공스러운 기세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가군자가 나섰다. "모두 초조하겠지만 참고 돌아가서 노부가 부를 때까지는 절대로 거처에서 떠나지 말아주시오. 여러분들이 무의식중에 내뱉는 기세만으로도 갓난아이는 즉사하고 말 것이오!" 가군자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여덟 사람의 무공은 그토록 가공스러운 것이다. '모르리라! 아무도 모르리라! 신주팔대마존이 기련산 금마곡에 모두 건재함을……' 가군자는 납덩이같이 굳은 안색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맙소사! 그렇다면 좀 전 석옥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이 정녕 그 공포의 신주팔대마존이었단 말인가. 그러했다. 지난날 신주팔대마존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것이다. 금마곡(禁魔谷)! 그 신비의 골짜기는 바로 신주팔대마존이 갇힌 곳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십 년…… 신주팔대마존의 그 가공할 능력으로도 복마천강대진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복마천강대진(伏魔天 大陣)! 펼칠 수는 있으되 거둘 수없는 절대금진(絶代禁陣)! 마기(魔氣)를 제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상고금진(上古禁陣)이 바로 복마천강대진이다. 그 위력이 어느정도인지는 신주팔대마존이 이십 년 간이나 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지 않으랴. '영원히…… 영원히 그 누구도 복마천강대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무서운 계휙을 세웠다……' 천마요희 희령봉, 신주팔대마존은 그녀의 승락을 얻어냈다. 그들의 마기를 이어받은, 이어받을 아이를 그녀의 몸에서 얻어내기로. 그리하여 시작되었다. 저주받은 그 패륜의 정사(情事)가 이십 년 동안이나…… '드디어 천마요희는 내일이면 악마의 자식을 낳게 된다! 아버지도 모르는……' 어찌 아버지를 알 수 있겠는가? 천마요희는 보름날을 전후한 이틀 동안에 일곱 마존과 관계를 했고 그 외에도 거의 매일을 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아이는 나머지 칠대마존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그들 신주팔대마존의 모든 것을 이어받게 된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만에 하나라도 그가 금마곡을 벗어날 수가 있게 된다면……' 그처럼 평정하던 가군자의 얼굴에 식은 땀이 솟아나 비오듯 흘러내렸다. 어찌 그렇치 않겠는가? 신주팔대마존 개개인 한 명으로도 천하에 그 적수가 없는 지경이고, 천하가 초토가 되었었는데 그들의 모든 것을 한몸에 지닌자가 있다면 그는 정녕 천하무적의 지존(至尊)이 될 것이다. 신주팔대마존의 계획은 바로 마중지존(魔中至尊)의 탄생(誕生)이었다. 가군자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신주팔대마존이 키운 자식은 불세(不世)의 대마왕(大魔王)이 될 것이다. 만약 그가 금마곡을 벗어난다면 천하는 정녕 피에 잠기고 말리라!' 가군자의 자애(慈愛)한 얼굴이 굳어졌다. '그럴 수는 없다! 내 한 목숨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없애고 말리라!' 가군자(假君子)! 그는 누구인가? 신주팔대마존이 가장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군자일 것이다. 지난날, 금마곡의 가공할 대폭발에서 신주팔대마존은 중상을 입었다. 곧이어 발동한 복마천강대진의 복마지기(伏魔之氣)에 휩쓸린 그들의 마공은 거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위기를 해소시켜 준 사람이 바로 가군자였다. 신주팔대마존이 최강고수라면 가군자는 의도(醫道)의 최고봉이었다. 가군자는 강호상에서 생불(生佛)이라고 전하는 성심수명노인(聖心守命老人)이었던 것이다. 그 어떤 흉신악살이라도 상처입은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은 반드시 구해 준다는 신비의 의선(醫仙)! 천하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런 그이기에 죽어가는 여덟 명의 절대마흉(絶代魔兇)들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복마천강대진이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진임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살아나도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 터, 다시는 세상에 해를 끼칠 수는 없으리라!' 그의 생각이었다. 더우기 신주팔대마존의 그 초강한 무공으로 미루어 그들 중 몇명이 살아나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는 절세의 의술로 신주팔대마존을 살렸다. 그러나 그는 되살아난 신주팔대마존의 의심을 받았다.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며 어찌하여 여기 있으며, 너만 왜 멀쩡하냐?" 그들의 의심은 당연했다. 성심수명노인이란 이름은 그들이 사라진 후에 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산 대격전이래 절치부심, 상처회복과 무공연마에 주력한 그들이 후배의 이름을 들었을 리 없었다. 설혹 들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그까짓 후생소배의 이름에 신경을 쓸리가 없는 것이다. 기련산에 약초를 구하러 왔다가 신주팔대마존의 종적을 발견하고 금마곡으로 따라 들어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들어선 곳의 폭발이 경미했고, 그의 무공은 선가(仙家)의 것이라 복마지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그의 해명은 신주팔대마존에게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의심은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성심수명노인을 부르는 가군자라는 호칭은 그가 군자(君子)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신주팔대마존은 어느정도 기운을 회복하자 서로를 의심하고, 걸핏하면 가공할 격전을 벌였다. 그것을 막고 그들이 싸움중에 입은 상처를 헌신적으로 치료해준 사람이 바로 가군자, 그였다. 결국 신주팔대마존이 으르렁대면서도 오늘날까지 균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가군자라는 완충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주팔대마존은 각기 그 누구도 믿지 않으나 가군자만은 믿었다. 그가 공평무사(公平無私)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내 한몸보다는 천하가 중하다……' 가군자의 얼굴에 괴로운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평생을 제세구민(濟世求民) 하는데에만 바쳐온 그였기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해쳐야 한다는데 가슴이 아픈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응애…… 응애……" 느닷없이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가군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벌써 아이를……? 아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방향이 틀리다!" 순간, 그의 몸은 번개처럼 왼쪽으로 쏘아가고 있었다. "이, 이럴수가……?" 그리고 순식간에 그 소리가 들려온 곳에 도착한 가군자는 대경실색하여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의 눈 앞에는 깎아지른 절벽과 맞닿은 복마천강대진의 소용돌이치는 운무(雲霧)가 하늘을 휘감고 있다. 그런데, 그 절벽 밑에 피투성이의 인영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여인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신주팔대마존이 연합해도 안 되는 복마천강대진을 뚫고 어떻게 여인이……?" 그의 의혹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가 더 생각을 굴리기도 전에, "응애…… 응애……" 피투성이의 여인의 품 속에서 다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거대한 탄생을 의미하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