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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동생의 죽음 <공동파> 감숙성의 공동산에 위치한 구파일방의 명문파. 전설상의 기인인 태황진인(太皇眞人)과 광성자(廣成子)가 은거해서 만들었다는 도가계열의 문파이다. 현실의 명리를 멀리 하고 진리(眞理)와 도(道)를 터득하는 것을 지상 명제로 삼는 수도자들의 천국이다. 어느 초상집이나 마찬가지로 이곳도 매우 침통한 분위기였다. <구파일방의 핵심문파인 공동파의 장문인과 수제자가 살해당했다.> 사람들의 얼굴이 침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복수의 불길을 태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살벌했다. 어쩌면 이것은 공동파가 생긴 이래로 가장 커다란 사건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워낙 중원의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세상의 일에 관여하기 싫어하는 도사들이 많은 곳이다. 공동파는 웬만한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살인사건은 물론 조그마한 충돌사건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헌데 장문인과 수제자가 한꺼번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대단했겠는가? 문제는 단순히 살해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욱 큰 고민거리는 살해사건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장문인으로 임명된 독고자(獨孤子)는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고는 일주일만인 내일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장로회의를 비롯한 내부에서는 다소 불만이 있긴 했지만 워낙 파급력이 큰 사건이라 사람들은 빠른 시간 내에 매듭짓기를 원했다. 땡땡땡땡......! 조용한 장원에 우렁차고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비상시에 울리는 종소리였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이런 소리가 장원을 울려퍼진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커다란 일이 벌어진 줄 알고 '우루루' 정문으로 몰려들었다. 퍼버벅! "커억!" 연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문에서는 수십 명의 공동파 무사들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앞에서는 다시 십여 명의 무사들이 한 사람과 싸우는 것이 보였다. 동물가죽으로 만들어진 겉옷과 긴 머리에 지팡이를 든 사나이. 긴 머리카락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은 이십대 말이나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복장이나 외모로 봐서는 무사라기보다는 사냥꾼이 더 적합해 보였다. 공동파에는 광성자가 남겼다는 복마검(伏魔劍)이라는 독문무공(獨門武功)이 있다. 혼자서는 물론이고 합공으로도 가능한 이 검법은 이름 그대로 악을 제거하는 무공으로 유명하다. 어떤 악의 세력도 이 무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 공동파의 무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복마검이다. 이들은 거의 매일 합공을 연습하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방을 차단하고 무사들은 각기 다른 동작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열 명이 각기 상대 신체의 다른 부위를 공격했기 때문에 수비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복마검이 뛰어나다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사내는 공동파의 무사들에 의해서 발바닥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도 물러나는 것은 오히려 공동파의 무사들이었다. 공동파의 무사들이 잘 훈련된 무사들이라면 상대는 화난 맹수였다. 그는 무사들의 공격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맞대응했다. 무사들의 검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막무가내로 공격을 했다. 그가 살인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문상을 하러 온 사람은 더욱 아닐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이라면 이렇게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문상 을 왔다면 정중하게 해야지 왜 이런 난동을 부리겠는가? 이미 주위에는 임시장문인 독고자를 위시해서 수많은 문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상대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도 못하고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저 자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초상집에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걸까?" "글쎄 말이야? 보아하니 나쁜 뜻을 가진 것 같지는 않은데... 헌데 저 자의 무공은 어느 문파의 것 같은가?" "나도 그게 궁금하네. 난 지금껏 저런 무공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 수적으로나 무공으로 본다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오히려 우세를 점하고 있으니 말이야."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사내의 무공에 대해서 감탄을 했다. 그렇다고 그의 무공이 화려하거나 엄청난 위력을 지녔기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상대가 공동파의 무사들을 가혹하게 공격했다면 모두들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내는 가능한 무사들과 충돌을 피하려 했다. 이미 몇 차례 옷자락이 짤리는 위험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다. "나는 분명히 당신들에게 내 동생의 일로 왔다고 했소. 헌데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소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밝히겠소. 나는 내 동생 마진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 왔소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형인 마정이라고 하오." 사내는 자신을 마정(摩正)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살해당한 장문인의 수제자 마진이 자신의 동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동파의 무사들은 그의 말은 들을려고 하지도 않았다.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그와 닮지 않았고, 또한 평소 마진이 자신의 형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마정? 그렇다면 얼마 전 대막에서 대막사왕을 물리친 그 '마정랑(摩正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 역시 동생을 찾아서 중원으로 떠났다. 자세히 보면 얼굴에 수염이 사라지고 옷차림을 바꿨지만 풍기는 인상은 그와 비슷했다. 강인한 인상에 동물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무공, 그리고 무엇보다 마정이 사용하는 지팡이는 그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았다. "네놈이 무슨 목적으로 공동파를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지금 즉시 떠나지 않는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사들 중의 한 사람이 마정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좋다. 나도 더 이상은 용서치 않겠다. 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형인 내게 이런 행패를 하다니.... 에잇!" 마정의 태도는 돌변했다. 지금까지는 수비만 하다가 갑자기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그의 공격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자신도 위험에 빠졌다. 나머지 아홉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그에게 공격을 했다. "얼마나 많은 실전 경험이 있으면 저렇게 감각이 발달할까? 등뒤에서 공격하는 것을 간단히 피하다니......."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공격은 계속한다? 저건 동물적 감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야." 구경을 하던 공동파의 무사들은 마정을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무공에 대해서 얘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사들의 얘기처럼 마정은 벌써 세 명의 무사를 쓰러뜨렸다. 자신의 목표물을 방패 삼아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것도 대막에서의 싸움 때와 비슷했다. 목표물을 제외한 나머지 무사들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면 어느새 목표물의 뒤로 위치를 옮겨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화가 나더라도 자신의 동료를 공격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다섯 명의 무사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두 명이 쓰러지고 나자 합공은 무너지고 무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마정은 무사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퍼벅'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한 사람씩 쓰러졌다. 특히 마정은 손과 발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적절히 이용해서 무사들의 급소를 공략했다. 그것은 결코 무공의 초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손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 손을 이용하고, 발과 팔꿈치를 이용하기 좋은 상태면 그것들을 사용했다. 지팡이는 비교적 멀리 있는 무사들의 급소를 노렸다. 한 번 넘어진 무사들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 다. 임시장문인 독고자가 놀라 싸움을 중지시켰을 때는 이미 여덟 명의 무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멈추어라!" 그의 목소리는 광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광장에는 열 명 중 두 명과 방금 가세한 다섯 명의 무사들을 합쳐서 일곱 명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독고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미 마정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 한 싸움은 중지될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마정은 독고자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섯 명의 무사들을 더 쓰러뜨렸다. 이어서 독고자를 위시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장로로 보이는 다섯 명의 노인들이 그의 앞을 막고 섰다. "네놈은 누군데 감히 공동파에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장로 중 한 명이 마정에게 소리쳤다. "영감, 나는 이미 마진의 형이며 시신을 가지러 왔다고 했소. 헌데 행패라니? 그건 또 무슨 개같은 말이오?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러 공격을 했다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혹시 벌써 노망이 든 것은 아니오?" 마정은 험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수제자의 형이라고는 하지만 대문파의 장로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장로들이 화를 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뭐, 뭐라고? 여, 영감!" "어린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반면에 마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아니 처연하다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혼자말을 했다. "죽음이라? 그것도 괜찮겠군. 이제 하나뿐인 동생마저 저 세상으로 보냈으니... 자, 오시오! 공동파의 장로들과 저승길 동무를 한다면 쓸쓸하지는 않겠지?" 그는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는 장로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죽음이라도 각오한 사람 같은 행동이었다. 그때야 상황이 심상찮음을 눈치챈 장로들이 마정을 제지했다. "자, 잠깐! 멈추게!" "얘기 좀 하... 우웃!" 하지만 이미 시작된 마정의 공격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팡이처럼 생긴 검집에서 검까지 빼들어 공격해 들어왔다. 다섯 명의 장로들이 흩어지자 그중 가장 가까이 있던 장로에게 덤벼들었다. 마정의 무공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신체의 여러 곳을 동시에 사용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검을 사용할 때는 검을 중심으로, 권법을 사용할 때는 손과 발을 그리고 장법을 사용할 때는 내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헌데 마정은 검을 사용하면서도 손과 발을 물론이고 머리까지도 사용했다. 상대에게 약점이 보이면 그 어떤 곳이라도 공략을 했다. 첫번째 장로는 검집에 의해서 옆구리를 맞고는 주저앉았고, 두번째의 장로는 검의 손잡이에 턱을 얻어맞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사태가 이쯤되자 독고자의 옆에서 사태를 관망하기만 하던 수염이 허리까지 내려온 노인이 나섰다. 그는 몸을 날려서 단숨에 마정의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젊은이, 나는 공동파의 대장로일세. 공동파가 자네에게 보인 행동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하네. 잠시 공격을 멈추고 얘기를 나눌 수는 없겠는가?" 공동파의 입장에서는 마정의 행동은 장문인과 수제자의 살해사건에 이어서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런 것을 두고 설상가상(雪上加霜), 즉 엎친 데 덮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잘못은 공동파가 했다. 수제자의 형이라고 하는 사람을 외모가 초라하다는 이유만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공격을 했으니 커다란 실수였다. 하지만 강호의 생리가 강자에게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공동파가 우기면 그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장로의 행동은 매우 겸손했다. 마정도 대장로의 정중한 행동에 일단 공격을 멈추었다. "대장로라? 헌데 노인이 공동파의 대장로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소? 나이가 많다고 다 대장로일 리는 없고, 그렇지. 공동파의 대장로쯤 되면 무공도 뛰어나겠지. 최소한 저 허수아비 같은 장로들보다는......." 그는 공동파의 무사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을 그대로 대장로에게 했다.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을 것을 질타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곧바로 대장로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마정에게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건 그가 이십 명에 가까운 무사들과 장로들을 단신으로 물리쳤기 때문이다. "미안하이. 다시 한 번 사과함세. 나는 자네가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하네. 하지만 자네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주기 바라네. 우리는 지금 개파 이래도 가장 큰 난관에 봉착했네. 대외적인 위신은 고사하고라도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는 실정이라네." 대장로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을 했다. '후후, 역시 웃는 얼굴에 침을 못뱉는다는 말이 맞군. 저 영감으로 인해서 공동파의 연륜을 확인할 수가 있군.' 마정도 할 수 없이 한 발 물러서서 부드럽게 말했다. "좋소, 나는 노인이 공동파의 대장로라는 것을 인정하겠소. 그런데 저기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확인하오리까? 나는 분명히 내 동생이 공동파의 수제자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모두들 아니라고 하니 어떻게 하오? 혹시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오? 만약 이곳이 공동파가 아니라면 나는 오늘 저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했으면 하오. 대장로도 말을 했다시피 나도 매우 화가 났소이다. 부모과 일가친척들이 돌아가신 이 후로 세상에는 우리 두 형제밖에 없었소.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십이 년 동안 헤어져 있었소. 나는 그 동안 중원을 떠나 있었지만 오로지 동생만을 생각했소. 헌데 돌아온 지금 나를 반기는 것은 동생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란 소식이었소. 대장로 당신 같으면 심정이 어떨 것 같소? 당신을 제외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들에게 동생을 잃은 슬픔을 풀어야겠소. 나는 지금도 저들이 혹시 동생의 죽음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소. 어서 결정하시오. 저들이 모두 공동파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을 제시하시 오. 어서!" 부드럽게 시작된 그의 말은 울분으로 바뀌었다. 침착하던 감정이 동생의 얘기를 하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또한 그는 공동파의 무사들이 자신을 살인범과 빗대어 하는 말을 들었다. 그것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저 아이는 지금 동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공동파 전체에 돌리려 하고 있다. 물론 저 아이는 우리 모두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저 아이의 무공실력이라면 우리도 많은 희생자를 낳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만약 저 아이가 진짜로 진이의 형이 맞다면 우리는 또다시 강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대장로는 현명하게 판단을 했다. 그리고는 임시장문인 독고자에게 눈짓을 했다. 독고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마대협, 나는 공동파의 임시장문인을 맡고 있는 독고자라고 하오. 대장로께서 이미 말씀을 하셨듯이 저희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매우 흥분된 상태라서 실수를 하게 되었소이다. 임시장문인의 이름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리다. 대신 마대협이 마진의 형이라는 것이 확인만 된다면 시신을 인도하겠소이다." 독고자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먹혀들지 않았다. "이것보시오. 지금 누굴 놀리는 거요? 내가 진이의 형이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당연히 시신을 가져갈 권한이 있는 거요." 쾅! 마정은 화가 나서 발로 바닥을 내려쳤다. 그러자 바닥에 깔려있던 돌들이 모두 산산이 부숴지고 말았다. 즉시 다시 대장로가 나섰다. 그는 독고자를 한 번 노려보고는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마진의 시신을 들고 오너라! 형님이 찾아왔으면 동생이 맞이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 그는 마진의 시신을 가지고 마정을 진정시킬 심산이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마정은 마진의 시신이라는 말에 표정을 바꾸고는 대장로에게 말했다. "대장로, 장문인과 동생의 사인은 무엇으로 밝혀졌소? 내가 듣기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걸로 들었습니다만......." 마정은 다시 곤란한 질문을 했다. "그건 우리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라네. 워낙 중대한 일이라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네. 자네가 직접 동생의 시신을 보고 조언해 주기 바라네. 그건 그렇고 다소 형식적인 절차이긴 하네만 자네가 진이의 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우리도 좀더 자네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네. 사실 나도 사태를 수습하기에 바빠서 시신을 보지 못했다네. 헌데 자네가 시신을 본다면 다소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대장로는 어려운 질문을 피하고 마정이 언짢지 않게 신분을 확인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친근하게 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말을 낮추었다. 마정도 대장로를 잘 보았는지 말투에 시비를 걸지 않고 순순히 응했다. "오래되어 많은 기억은 없지만 동생의 몸에는 어린시절 저와 수련을 하다가 생긴 상처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특히 엉덩이와 사타구니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저희 가족이 아니고는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그것은 부인이나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은밀한 것이었다. 게다가 마진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를 마진의 형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좋네. 자네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자네를 진이의 형으로 인정하겠네. 저기 나오는군." 대장로가 말을 하는 사이에 멀리서 여섯 명의 무사들이 어깨에 관을 메고 나타났다. 수백 명에 이르는 공동파의 제자들은 모두 길을 터주었다. 어떤 이는 관을 보는 순간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아마 마진이 생전에 무사들과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부르르......!' 관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정의 몸은 다른 사람의 눈에 드러날 정도로 흔들렸다. '하긴 형제라면 어찌 침착할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저 아이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마 나는 저 아이보다 침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장로는 마정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마정은 매우 침착했다. 몸이 떨릴 정도로 흥분했으면서도 관이 내려지고 대장로가 자신이 한 말을 확인할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자네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네. 이제부터 공동파는 자네를 진이의 형으로 대우할 것일세. 자네가 직접 확인해 보게나." 잠시 후 대장로의 말이 들려왔다. 감정을 다스리느라 마정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관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우우우...!" 마정은 동생의 시신을 보는 순간 마치 야수들의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주위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처절한 절규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창백한 얼굴에 감겨진 두 눈. 죽은 지가 일주일이 됐지만 보관상태가 좋아서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대장로가 마정의 얘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수의를 벗겨놓았기 때문에 나체의 시신이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보통 사람의 벗은 모습을 보면 아름답거나 욕정이 생기게 마련인데 시신의 벗은 모습은 오히려 한기가 들 정도로 섬뜩했다. "으으흑, 진아! 이 형아가 왔단다. 꿈 속에서도 너만을 그리며 오늘을 기다렸건만 너는 왜 말이 없느냐? 그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진아...!" 마정은 관을 부여안고 한참 동안 흐느꼈다. 그순간만큼은 아무도 말리거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어떤 이는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는 아무도 마정을 의심치 않게 되었다. 이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마정은 동생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만졌다. 마정으로서는 동생의 생전의 모습을 되새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멈칫! 그가 막 시신의 목부위를 만지고 있을 때였다. 이미 한 번 지나쳤던 곳인데도 그의 손은 그곳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지켜보고 있던 대장로도 이상했는지 다가서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혹시 이상한 것이라도 발견했나?" 쓰으으윽....... 대장로가 말을 하는 순간에 마정은 시신의 목을 들어올리고는 뒤에서 손의 길이만한 커다란 침을 하나 뽑아냈다. 침은 전체가 붉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침은 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오랫동안 들어있으면 녹이 슬어서 쉽게 발견된다. 헌데 이 침은 붉은색에 재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녹도 슬지 않아 눈으로는 분간이 어려웠다. 마정도 직접 손으로 만져보지 않았더라면 확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이가 긴 것으로 봐서는 목뒤로 들어가서는 머리의 신경을 자극해서 절명케 한 모양이다. 무서운 암기였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암기를 사람의 급소에 정확하게 명중시키려면 극도의 수련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으로 이번 사건이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장문인,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히 철저히 조사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 대장로는 독고자를 몰아세웠다. 사실 독고자는 이틀간의 조사 끝에 증거가 없다면서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었다. 게다가 독고자는 객관성을 높인다면서 난주성의 관리들까지 대동해서 조사를 했다. 그래서 대장로가 그를 추궁했다. "죄, 죄송합니다. 분명히 제가 보았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런 침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그의 변명에도 일리가 있었다. 보통 시신의 상태를 확인할 때는 독상이나 상처를 중심으로 본다. 그리고 침이 꽂혀 있을 경우에도 철의 독기에 의해서 하루만 지나도 그 주위의 피부가 변색되어 쉽게 구분된다. 헌데 이것은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였다. 웬만한 전문가도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살인극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독고자가 지나치게 당황했다는 점이다. 대장로는 단순히 마정에게 미안해서 한 말이었 는데 마치 질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당황했다. 마정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또 다른 요구를 했다. "대장로, 이렇게 된 바에는 장문인의 시신에 대해서도 확인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정당한 요구였다. 헌데 독고자가 반대를 했다. "그건 곤란하오. 진이의 경우와는 달리 장문인의 시신은 아무나 함부로 만질 수가 없소이다. 그리고 이미 관이 봉해졌기 때문에 열 수가 없소이다." 이건 더욱 이상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공동파의 운명이 좌우될 중대한 사안을 절차상의 이유로 반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자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약 이런 사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다음에 자네가 누군가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네. 그러기를 바라는가?" 대장로는 독고자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 "자, 그럼 모두 대전으로 들어가세. 장문인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는 없질 않은가?" 대장로는 아예 독고자의 말을 듣지 않고 대전으로 발걸음을 돌려 버렸다. 우뚝! 하지만 그는 마정 때문에 세 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멈춰 섰다. 마정은 동생의 시신을 어루만지다 대장로가 대전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자신의 털옷을 벗어서 정성스레 동생에게 입혀주었다. 이승에서 그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옷을 다 입혀준 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관의 뚜껑을 닫아주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몸을 돌렸다. "가시죠!" 그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장로에게 말을 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다. 원래는 저렇게 차가운 아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동생의 죽음으로 따뜻한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어쩌면 저 아이에 의해서 이번 사건은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헌데 독고자의 행동이 이상하다. 왠지 이번 사건에 소극적이다.' 대장로의 생각처럼 마정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변해 있었다. 미소나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진의 관을 앞세우고 일행은 대전으로 향했다. 헌데 일행이 대전에 도착하기 직전에 대전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럴 수가?" 이어서 한 사람이 급히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냐?" "웬 호들갑이냐? 천천히 말해 보아라." 대장로와 독고자가 그 사람을 나무랐다. 뛰어나온 사람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자... 장문인의... 자, 장문인의......." "뭐라? 장문인의 시신에......." 대장로를 위시한 장로들은 화급히 대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장문인의 시신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관은 열려 있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장로조차도 멍하니 관 속을 보고만 있었다. "으음!" 마정은 관 속을 보고는 신음성을 발했다. 공동파의 대전에서 장문인의 시신이 목이 잘린 채로 누워 있었다. 이것은 장문인이 살해당한 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었다. 불과 백 장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도 범인은 유유히 나타나서 목을 가지고 사라졌다. 이것을 통해서 두 가지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하나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붉은 침이 살인의 무기가 되었고, 유일한 증거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는 공동파를 능가하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공동파를 이 정도로 농락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그들보다는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들은 살인사건이 난 후에도 계속해서 공동파를 감시해 왔으며 마정이 나타나서 붉은 침을 찾아내자 바로 장문인의 목을 잘라서 증거를 인멸했다. 쾅! 모두가 멍하니 있자 마정이 대신해서 관의 두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그는 바로 발걸음을 밖으로 돌렸다. "어디로 가는가?" 대장로 혼자서 따라나오며 물었다. "대장로께서는 저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동생의 장례식은 대장로께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마정은 대장로에게 인사를 하고는 공동파를 나섰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