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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 윤홍식의 화엄경 강의 2강 - 10지품( 보살의 길을 밝히다)(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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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주住 (보살의 안주, 참나를 밝힌 공덕에 안주)
① 발심주發心住(바라밀을 닦아 자리이타를 이룰 것을 발심) ② 치지주治地住(수행의 토대를 닦음) ③ 수행주修行住(출세간의 지혜를 얻음) ④ 생귀주生貴住(출세간의 지혜에 근거하여 세간법을 닦음) ⑤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세간법에서 방편을 원만하게 함) ⑥ 정심주正心住(세간법과 출세간법이 둘이 아님을 깨닫고, 공성의 지혜로 마음을 바르게 함) ⑦ 불퇴주不退住(무생법인의 광명을 얻어 출세간과 세간에 집착이 없어짐) ⑧ 동진주童眞住(공성에 노력 없이 안주하며 자연스럽게 자리이타를 행함) ⑨ 법왕자주法王子住(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자유로이 설법하는, 법왕의 태자가 됨) ⑩ 관정주灌頂住(관정을 받고 여래의 지혜를 성취)]
발심주까지 했죠. 그래서 이 참나를 정확히 깨치면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고 남도 어떻게 도와줘야겠다는 답이 나와요. 참나대로만 하시면 되니까요. 참나 안에는 6바라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이 다 있습니다. 그걸 아는 자리이기 때문에 발심을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발심을 못 해요. 참나를 알아야 진짜 발심이 되지 여러분이 발심한다고 해 보십시오. 그냥 참나도 모르는데 “중생을 이롭게 해야지. 어떻게 해야지? 뭐 나는 과연 올바른가?” 막 이제 혼동이 옵니다. 명확히 알 때 발심이 돼요. “음 이렇게만 하면 되겠구나” 할 때요. 그래서 1지보살의 경지고요. 치지주(治地住) 그다음 발심을 하고 난 다음에는요 땅을 잘 닦습니다. 즉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잘 닦는다는 얘기는요. 뭘까요? 치지주는요 발심주는 참나가 정확히 이렇게 생겼다는 걸 알았죠. 치지주는요 이거를 일상에서 실천해가지고 토대를 만듭니다. 굳건한 일상에서의 토대를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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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즉 생활화하는 겁니다. 6바라밀의 실천을 생활화하는 겁니다. 이걸 쓰시면 돼요. 이걸 쓰시면요 6바라밀을요 매일매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6바라밀로 다 체크하게 돼 있습니다. ○ △ ×로요. 보시했는가? ○, 지계 △, 정진 ×. 만약에 이렇게 하면요 ○○○ 면은 뭘까요? 자명. 4개로 분간하게 해놨습니다 그 결론을. ①자명 ②자찜. 자명이 찜찜보다 많다. 6바라밀 그래도 꽤 한 것 같다 할 때 ③찜자. 찜찜함이 더 크다 하긴 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안 됐던 것 같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④찜찜 캄캄하다. 전혀 신경 안 썼다. 6바라밀에 전혀 하나도 신경 안 썼다. 그러면 이거 써놓으시면 그냥 보입니다. ○○○면 ①자명. ○○○△△△면요? ②자찜이죠. 찜찜함이 좀 있잖아요. 세모가 있으니까. △△△×××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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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찜자. × 쭉 ④찜찜. 직관적으로 파악 가능하시겠죠. 이걸 매일 체크하시면요 경전에 나온 “생각마다 6바라밀을 구족(具足)했다”를 아시게 됩니다. 그러시겠죠. 그래서 6바라밀 노트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재를 만들면서 1지부터 번역을 하는데요 1지경 다음 달에 할 때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놀랐어요. 똑같은 얘기를 해요. 응작(應作) 불응작(不應作) 해서 될 일과 해서 안 될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남한테 뭔가 행위를 할 때도 남의 역량과 덕성과 습기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가지고 대처하고, 이게 쭉 나옵니다 화엄경 1지에. 제가 저는 이거 먼저 만들었는데요. 그래서 역시 영성 계발하는 단계에 대해 제가 그동안 연구한 게 있는데 “이게 정확히 맞게 돼 있구나” 하고 저도 또 놀란 내용인데요. 그래서 2지는 간단합니다. 2지보살은요 이렇게 적어놓은 이유가 1지보살은 보시를 제일 잘해요. 이게 그 지(地)에 제일 잘 아는 걸 적어놓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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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0지까지 가면 지바라밀(智波羅蜜)은 10지나 가능해요. 이건 전지전능이니까요. 9지만 해도 전지보다는 못한 겁니다. 왜 1지는 보시라고 하느냐? 참나를 알아가지고요 에고의 세계가 아니라 참나를 알아가지고 참나대로 살아야 된다는 걸 알아가지고 너무 환희에 넘쳐서요 남한테도 되게 에고를 많이 비워가지고 남한테 진짜 무상보시(無相布施), 아낌없이 주는 그 힘이 생긴 겁니다. 보시. 물론 보시도 뒤로 가야 더 잘하겠죠. 그런데 1지가 다른 건 몰라도 보시는 잘한다는 거예요. 에고 너무 기쁘니까요. 이해되시죠. 참나를 알아서 너무 기뻐서 남한테 베푸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2지는 뭐냐면요 그럼 이제 이건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건 참나를 알았다는 얘기고 2지는 뭘까요? 10지를 이해하는 또 중요한 겁니다. 각각 세트로 이해하세요. 1지는 홀수는 양수죠. 양수에는 치고 나가고 음수에는 다집니다. 이건 제가 천부경 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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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인데 천부경의 원리 그대로 적용해 보시면 맞아요. 이 수리(數理)에 대한 우주의 수리의 원칙이 여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참나를 알았으면 그다음에 뭐 해야 될까요? 생활화 하는 겁니다. 습관화. 참나를 알아서 환희를 느끼는 단계는 반드시 그다음엔 치지주(治地住) 땅을 다져라는 말이 나오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땅을 다져라. 즉 니 발밑을 조심해라. 확 참나 환희에 넘치니까 그 가족들이 뭐라고 할까요? “방이나 치워라”라고 하겠죠. 묵묵히 방을 치우는 단계가 2지입니다. “아 그래서 방을 치워야겠다” 하고. 이해되세요? 계율을 지킬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래서 2지보살은 계율을 잘 지켜요. 실천, 참나를 알아서 기뻐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생활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지보살 정도까지만 우리나라에 나오면요 우리나라는 망할 리도 없고 이 우주가 지구가 든든해질 겁니다. 생활화까지 하신 분이 나와야 도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왜 우리 지구상에 영적인 도인들이 많다고 해도요 참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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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참나에 6바라밀 들어있다는 거 알기가 또 어렵고요. 참나를 24시간 참나랑 머무른다고 해도 1급입니다. 참나가 거기서 도덕성이 나올 때 영성이 이제 인격으로 표현될 때 1지고요. 그게 이제 땅을 갖출 때 굳건해질 때 2지보살에 들어갑니다. 2지보살까지만 나오시면 돼요. 일단 급하신 게요 우리나라에 전 세계에 급한 게 2지보살이 없습니다. 실천까지 하는 분이 없어요. 1지보살은 말은 많겠죠. “참나가 야 그거 다 내려놔 했는데.” 우리가 듣기에는 “방이나 치우지. 먹은 거나 좀 닦지.” 이런 마음이 들게 한다면 2지가 안 된 겁니다. 생활화를 해야 돼요. 그래서 그럼 얼마나 참나를 6바라밀을 더 훨씬 깊게 이해하겠죠. 1지보살은요 내가 하는 행위가, 이거 노트 쓰시면 알 겁니다. 1지보살은요 이걸 체크하면 어떨까요? 1지보살은요 참나를 정확히 알고 참나가 6바라밀 작용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엄청 잘할 것 같지만 생각 생각마다 만약에 점검해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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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마다 이게 잘 안 돼요. 알아도 안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게 조금 더 나오기 시작하면 2지보살이고요. 1지보살에서는요 6바라밀 다 맞으면 그 행위가 올바라야겠죠. 안 그래요. 1지보살이 하는 건 실수가 많아요. 뭐냐면 6바라밀을 다 체크했는데도 남이 볼 때 비판이 들어오는 일이 생겨요. 왜 그러냐면요 1지보살이 보는 그 6바라밀의 이해도가 얕아서 그래요. 부분적인 자명함에 많이 빠져요. 이해되십니까? “그래 이건 베풀 일이지” 하면 거기에 꽂혀버린다든가. 그러니까 6바라밀을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작업을 잘 못해요. “아 저 불쌍해서” 이러면 불쌍함에 치우쳐 버리는 거죠. 계율을 놔버려요. 보시를 지키려다 계율을 놓고, 계율을 지키려다 또 남하고 싸우고 있고. 이렇게 분명히 6바라밀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 알고 하는데도 이게 이걸 1지 가면 제가 자세히 다시 설명드릴 겁니다. 간략하게만 말씀드리면 부분적인 자명함에 많이 빠져요 1지는. 환희심은 넘치지만 하려고 하면 문제가 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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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 가면, 그래서 실천을 많이 해봐야 돼요. 6바라밀 노트를 부지런히 이거 한 몇 권씩 떼면서 생활화를 꽤 하면은 2지보살 경지가 옵니다. 2지보살까지는요 누구나 가실 수 있기 때문에 제가 권하는 겁니다. 참나 깨치고 6바라밀을 노트 쓰시면요 그러면서 자기 삶을 점검하시면 누구나 생전에 2지보살까지 갑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거 다 잊어버리세요. 무량겁 어쩌고 한 것. 좋은 의견 내주셨는데 “일념이 무량겁이다”라는 그걸 생각하시고 “찰나가 무량이다” 하고 넘어가 버리셔야 됩니다. 그렇게 해버리셔야 돼요. 그래서 2지보살까지는 무조건 갈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다른 수단 없이 참나와 6바라밀만 가지고요. 그런 분들이 우리나라에 많으면요 도를 물으러 우리나라에 오게 돼 있습니다. 이해되시죠. 이거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여러분 안에는 신성이 있고 신성을 구현한다는 겁니다. 그럼 3지는 뭐가 다를까요? 3지는 인욕바라밀 정말 잘한다고 하는데 인욕이라는 건요 참아주는 겁니다. 수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3지보살에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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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참아주는 거는요 1~2지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인욕을 여기다 왜 넣었을까요 3지에? 3지는요 되면요 뭘 알게 되냐면 6바라밀을 해보고 실천해보고 나니까 안목이 트여요. 홀수에서는 한 번 비약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6바라밀에요 전체적인 자명함을 잡을 줄 알게 돼요. 이제 3지보살 정도 되면요 이제 일을 딱 6바라밀에 맞게 처리하면요 하자가 안 들어오게 해버릴 수가 있어요. 단 매사에 그렇게 못해요. 안목이 지금 넓어졌다는 거지 바뀐 게 아니에요. 즉 이해도가 엄청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인욕은요 단순히 남을 참아주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참아주는 걸 말합니다. 인가라고 하죠. 인가(忍可). 칼날 인(刃)자 써서 불교에서 이 칼날 인(刃)자 쓰면요 반드시 이 심장에 칼이 꽂힌 거죠. 그걸 참아내는 거죠. 남이 여러분 괴롭히시면 심장에 칼 맞으신 것 같죠. 그게 인이에요. 참을 인(忍). 그걸 참고 있어요. 그러니까 심장에 칼로 찌르는 통증이 오는 걸 참고 있는 게 인(忍)인데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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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만이 아니고요 인욕바라밀은 많은 경전에서 인욕바라밀 설명할 때 꼭 인간관계로 얘기 안 해요. 뭘 얘기하냐면 진리의 수용이요. “정말 이건 맞는 얘기다” 할 때 그걸 받아들이는 힘이 생겨요 3지는. “내가 정말 에고가 아프고 힘든데 그 말은 참 맞다. 거부할 수가 없다”가 인욕바라밀이에요. 그걸 참 잘한다는 얘기는 듣고 다 알아버려요. “그 말이 맞군. 그 말이 맞군. 6바라밀을 그렇게 했어야 됐군.” 이게 안목이 비약적으로 성장해버립니다. 이해되십니까. 이게 신기하죠. 유교에서 1지 2지를 뭐라고 하나요? 지우학(志于學) 그럽니다. 학문의 뜻이 섰다. 지학(志學). 지(志) 하면서 설 립(立)자 쓰는 건 뭘까요? 지학(志學). 왜 1지 2지를 열 살이라고 안 하고 지우학을 15세라고 하냐면요 인생 나이가 사실 여러분 계제(階梯)입니다. 인생의 단(段)들이 한 단 하나 올라갈 때 많이 바뀌시는 거 느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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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도 인간도 똑같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요. 이건 우주의 법계에 있는 진리이기 때문에 이 수리(數理)원칙은요 인생에도 그대로 들어가요. 10살에 정신 좀 차리고 20살 돼야 좀 사람 됩니다. 서른 돼야 자립을 하죠. 이게 다 원칙이 있습니다. 40이 돼야 좀 전후좌우 사방을 볼 줄 알고. 이게 다 돌아가는 공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님이 공자님 본인은 이렇게 안 했어요. 공자님은 70 전에 이미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다 했던 양반인데요. 30대부터 이미 제자를 다 가르치고 했거든요. 이거는 인생 나이에 일반적으로 그럴 거다 하고 한 겁니다. 왜 그러냐면 15세라고 벌써 맞춘 것부터가 공자님이 15세에 뜻을 세운 게 아니고 15세가 옛날 대학 들어갈 나이입니다. 고등교육 들어갈 나이. 초중등은 뭘 잘 모른다는 겁니다. 대학 들어갈 정도 나이가 되면 딱 학문이 뭔지 알게 되고 내가 이 학문을 닦아서, 유교는 뭡니까? 수기치인(修己治人) 나를 닦고 남을 다스려야겠다. 자리이타(自利利他)랑 똑같죠. 이 뜻을 세울 때가 15세라는 겁니다. 지우학(志于學). 그럼 30대 뭐라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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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이. 립(立) 뭐가 섰냐면요 학문이 섰다는 겁니다. 학문이 섰다는 건요 전체 뼈대가 탁 나온 겁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게 딱 보인 겁니다. 이론적으로 선 거죠 학문은 아직. 그래서 40이 되면 뭐가 됩니까? 불혹(不惑). 옛날 왜? 30은 옛날 대학 졸업할 나이거든요. 그래서 10년 현장에서 뛰면 불혹에 이릅니다. 그 들었던 이론을 현장에 적용해 봤더니 막힘이 없더라가 불혹입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이게 안 되는 거 아시겠죠. 그 맛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이 사단(四端)이 갖고 있는 이 4(四)라는 수리에 맞는 어떤 느낌은 있지만 이걸 정확히 구현하는 거는 이걸 공부를 해줘야겠죠. 자, 이 느낌으로 보시라는 겁니다. 인욕(忍辱)은요 진리를 들으면 알아버려요. 이제 뭐가 뭔지 알아요. 다 못해요. 그래서 4지보살이 돼야 정진(精進), 그걸 실제 실천하는 힘이 엄청나게 정진력이 커집니다. 한번 볼까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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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는 아까 2주는 치지주(治地住). 수행의 토대를 즉 계율을 잘 지키는 걸 말합니다. 3주는요? 출세간의 지혜를 얻어버려요. 수행주(修行住)는 진리를 깨쳐버립니다. 그래서 이 6바라밀을 잘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4주는요 생귀주(生貴住). 출세간의 지혜에 근거하여 세간법을 알아버립니다. 이거 좀 어렵죠 말이. 그냥 제가 읽고만 갈게요. 이거를 다 하다 보면 10지를 못하겠어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마는 이 생귀주라는 거 왜 생귀주라고 하냐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6바라밀 잘 실천하는지 정확히 알아버렸고 6바라밀의 보편법칙이라고 합니다 저는. 6바라밀을 어떻게 하면 적용을 잘하는지 6바라밀의 법칙을 알아버렸어요. 알고 실제 실천까지 잘하게 되니까 알고 실천하고 알고 실천하고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1지에서 알고 2지에서 실천합니다. 3지에서 알고 4지에서 그걸 해버려요. 하니까 생귀주라는 거는 이제 부처 집안에 진짜 온전히 부처 집안에 태어난 것 같다. 귀한 집에 태어난 것 같다 해서 생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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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는 게요 이게 불혹의 경지이기 때문에 생귀주(生貴住)입니다. 6바라밀에 맞게 살아요 매사에. 아까 3지는요 3지 3주는 6바라밀 어떻게 하면 제일 잘한다는 건 아는데 잘 못한다 그랬죠. 4주(住)는요 다 해버려요. 매사에 불혹, 의심이 없기 때문에 뭔 일 생기면요 딱 이 노트만 분석하면 다 답을 찾아내요. 뭔 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쭉 6바라밀만 딱 체크하면 딱 답을 찾아버려요. 어떻게 체크하냐면요 여기 나온 질문이 있는데 보시는 뭐냐 하면요? 이거 미리 한번 읽어드릴게요. 9페이지 보십시오.
[* 6바라밀의 점검, 매사에 참나의 뜻인 6바라밀을 온전히 구현했는가?
(깨어있는 마음으로 에고를 내려놓고, 참나의 반응을 관찰하라. 내면에서 자명하고 뿌듯한 느낌이 일어날 때와 찜찜하고 불편한 느낌이 일어날 때, 6바라밀로 점검하여 보면, 참나가 늘 6바라밀로 굴러가고 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선정바라밀 (참나의 고요함)
: 평정심을 유지하는가?
② 보시바라밀 (참나의 욕심 없음)
: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익도 배려하였는가?
③ 지계바라밀 (참나의 청정함)
: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상대방에게 가했는가? 욕심의 유혹을 이겨냈나?
④ 인욕바라밀 (참나의 조화로움)
: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수용하였는가?
⑤ 정진바라밀 (참나의 성실함)
: 6바라밀을 실천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⑥ 지혜바라밀 (참나의 자명함)
: 나의 선택과 판단은 찜찜함이 없이 자명했는가?
(①~⑤ 방편바라밀 / ⑥ 반야바라밀)]
여러분 안에 참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 그려놨습니다.
보이시죠. 참나 안에 무욕(無慾), 욕망이 없음이 밖으로 나오면 보시바라밀이고요. 청정함이 밖으로 나오면 지계바라밀. 참나는 정말 조화롭겠죠. 9페이지요. 참나는 너무 조화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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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금방 수용하고 남하고도 금방 남의 입장을 수용하게 됩니다. 참나는 너무나 성실하기 때문에 쉬지 않기 때문에 정진바라밀을 밖으로 나오면 정진을 표현하고요. 참나는 늘 고요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면 선정을 표현합니다. 참나는 모르는 게 없고 늘 명쾌하기 때문에 밖으로 펼쳐지면 지혜바라밀이 나와요. 자명하다 찜찜하다를 그냥 알아내요. 여러분이요 1+1=2입니다. 그렇죠. 1+1=2인지 지금 아시는 분은요 여러분 안에 참나가 지혜바라밀을 표현한 겁니다.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이 길 가다가 “아이고 저 사람 불쌍해라”라고 하셨다면 여러분은 지금 보시바라밀을 인욕바라밀을 표현한 겁니다. 뭔 일이 있는데 “저건 아니지”라고 싶으셨다면 지계바라밀이 튀어나온 겁니다. 여러분은 사실 일상에서 계속 바라밀 튀어나오고 있어요. 왜냐하면요 참나 없는 분이 없으시기 때문에요. 참나가 양심입니다. 양심적인 마음이 계속 일어난다는 건요 참나가 바라밀을 계속 여러분 안에서 지금 성실하게, 그게 성실바라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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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바라밀. 쉬지도 않고 여러분 안에서 계속 바라밀들을 표출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안 봐주고 있는 겁니다. 관심을 잘 안 주고. 근데 견성을 하신 분은 이제 거기다 물을 주기 시작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이제 6바라밀들 내 마음에서 지금 들려오는 참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응원해 줄 수 있나요? 보십시오. ①선정바라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가?”라고 본인한테 한번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는 평정심 유지하고 있는가? 지금 제 강의 듣는데 평정심 유지하고 계십니까? 의식이 흐려지십니까 지금? 조금만 버티자 이런 마음이십니까? 아니면 의식이 명료하십니까? 체크해 보세요. 선정바라밀을 쓰고 계십니다. “모른다” 하시면 돼요 그냥. ②보시바라밀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십니까? 상대방의 이익도 배려하십니까?”라고 물어보십시오. 오케이. 동그라미면 자명입니다. 세모 자찜이나 찜자 둘 중에 하나겠죠. X 찜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면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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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 저 생각하니까 지금 조용히 앉아 계신 거잖아요. 그렇죠. 보시바라밀을 하고 계신 겁니다. ③지계바라밀 “내가 당해서 싫은 일을 상대방에게 가했는가? 욕심의 유혹을 이겨냈는가?”라고 물어보십시오. 지금 벌떡 일어나고 싶으신데 앉아 계신다면 지계바라밀을... 근데 지계(持戒)와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차이는 뭐죠? 일어나고 싶은데 앉아 계시는데 체면 때문에 억지로 앉아 계신다면 지계입니다. 무심하게 앉아 계신다면 지계바라밀. 확 일어나고 싶었는데 “몰라” 했더니 갑자기 확 편해지면서 내면의 청정함이 나와서 그냥 일어난 일이면 지계바라밀입니다. 바라밀은 완성, 긍극이라는 뜻입니다. 궁극의 지계, 궁극의 보시. 궁극의 인욕은 뭘까요? 억지로 참는 게 아니고 상대방 입장이 그냥 나와 둘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 진심으로 수용해버리는 걸 ④인욕바라밀이라 그럽니다. 인욕(忍辱)은 화병 생겨요. 인욕바라밀은 병이 안 생기는데 인욕은 화가 생겨요. “왜 자꾸 나만 이렇게 참아주고 있을까?” 하는 이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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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마음이 생깁니다. 울화가 치미는 게 인욕이고요. 인욕바라밀은 그 울화마저 “몰라” 하고 녹여버린 겁니다. 그럼 참나가 참은 게 돼서 화가 안 나요. 에고가 참으면 화가 나는데 참나가 한 거면 화가 안 납니다. 참나가 나오고 에고가 거들 뿐이었으면 화가 안 나죠. ⑤정진바라밀도요 “지금 6바라밀 나는 실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나?” ⑥지혜바라밀 “지금 자명한가? 찜찜한가?” 참나가 뭐라고 지금 하는지 빨리 들으시라는 겁니다. 지금 자명하다고 하시는지? 이 6개를 매사에 체크해서 움직이시면 기가 차겠죠. 그런데 1지보살은 여전히 이걸 다 적용한다고 해도 오류가 나더라는 겁니다. 잘한다고 해도요. 3지 오면은요 이걸 잘 적용하는 힘이 생긴다는 겁니다. 안목이 딱 생겨요. 얘들 간에도 우선순위가 있어야 되잖아요 사안마다. 그게 잘 보입니다. 3지 가면. 4지 가면 그걸 더 실천 잘하게 되는 4지까지 가버리면 불혹, 막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 오셔서요. 방금 그게 6바라밀 노트 체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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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입니다. 5지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5지는 유교에서요 5지보살은 지천명(知天命) 그럽니다. 천명이 그냥 들려요. 이 얘기는 뭡니까? 6바라밀 노트를 안 쓰셔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쓰면 더 좋겠지만 그냥 그 상황에 딱 만나면요 6바라밀이 분석이 돼서 딱 답이 나와 버려요. 지천명이라는 게 이겁니다. 하느님의 명령이 그냥 들린다는 겁니다. 오죽하면요 얼마나 잘하길래요. 이 4지는 보십시오. 6바라밀을 이론을 알고 6바라밀을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 현실에 전체적인 균형을 잘 잡는 그 법칙을 알아냈는데 실천을 잘하고 나니까 5지 정도 오면요 “눈 감고도 한다”까지 갑니다. 그래서 응용능력이 어마어마해져요. 그래서 이때는요 그냥 내면에서 참나가 6바라밀을 그냥 그대로 딱 안에서 어떻게 하라고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내면의 움직임에서 이미 답이 다 나와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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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분석을 안 해도. 그런데 자 뭘까요? 분석을 안 해도 알면 여기서 이미 부처가 돼야 되는데 왜 5지일까요? 이게 잘 못해요 안에서 시키는 거를. 그러니까 분석해서 잘하는 능력은 얻었는데 내면에서 쫙 울리는 그 참나의 소리를요 다 못 따라가요 아직 5지는. 욕망이 아직 아집과 무지가 다 벗겨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 5지는요 정말 잘할 수 있는 능력은 갖췄는데 뭔가 하나가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5지는요 거기 뭐라고 돼 있죠? 5지보살은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방편이라는 거는 아까 말씀드렸죠. 7지보살이 제일 비슷합니다. 5지 정도 오면요 응용능력이 어마어마해져요. 그런데 뭔가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그 참나의 소리를 다 못 따라요. 세간에서는 문제 안 되게 다 잘 처리할 수 있는데, 이 인간의 눈에서는 잘 처리하는 분인데 참나에서는 뭔가 미진한 겁니다. 참나가 제시한 6바라밀의 가장 근원적인 어떤 울림에는 반응을 잘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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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는 못 따라가요. 그래서 6지보살이 되면요 그거를 꽤 따라가요. 똑같죠. 5지는 참나의 그 6바라밀이 내가 분석한 6바라밀이 아니라 6바라밀 자체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요. 어떻게 하라는 게. 그거를 6지보살 정도 되면 따라가요. 그래서 6지보살은 뭡니까? 정심주(正心住)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걸 따라가요. 따라가기 시작해요. 그래서 거기에 완벽하게 이 천명의 소리랑 딱 하나가 될 때가 7지입니다. 그래서 유가(儒家)에서 뭐라고 했죠 6지를? 이순(耳順). 욕을 먹어도 귀가 순하다 이게 아니고요. 그게 천명 안 뒤에 할 얘기입니까? 그래서 그건 당연히 그전에도 별로 남의 의견에 무심한 분들은 이순이 될지 모르겠지. 그게 아니고요. 천명을 알았으면 천명을 잘 귀로 듣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천명에 순종하기 시작해요. 이제 에고가 분석하는 6바라밀 아닙니다 5지부터는. 뭐가 다르냐면요 5지 이전이랑 5지 이후가 틀려요. (5지 이전은) 학문을 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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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열심히 한 거고 이거(5지 이후)는 천명이 들리기 시작했죠. 유교의 이론으로 보더라도. 즉 5지부터는 6바라밀이 나를 끌고 가기 시작해요. 내가 항거하기 힘들 정도로 끌고 다녀요 6바라밀이. 5지 이전은요 내가 하려고 해야 돼요. 그 차이입니다. 5지 이후는 끌고 다녀요. 그래서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라고 그러는 게 능수능란해졌다는 게요 6바라밀이 끌고 가니까 나를. 여유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5지보살에, 화엄경 5지보살조에 가면요 점술도 배우고 의학도 배우고 세간의 모든 걸 다 배워요. 세간사, 세간에 푹 빠져도 이분들은 이제 전혀 이제 장애가 없다는 겁니다. 6바라밀이 끌고 가니까요. 그래서 이 5지보살 정도 돼야 사회에 중진이 돼서 진출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거는 화엄경에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나중에 제가 5지조에 가서 설명 다시 드릴게요. 그럼 6지는 마음이 딱 거기 이제 마음이 바르게 된다는 건 그 천명에서 들려오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6바라밀의 끌림에 내 마음을 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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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해요. 거부하지 않고 온몸을 맡기기 시작해요. 이순(耳順)이 그겁니다. 따라가기 시작해요. 그럼 7지 가면요 따라간다는 것도 없습니다. 둘이가 딱 하나가 돼버려요. 그래서 7지 가면 불퇴주(不退住), 다시는 이제 물러나지 않는다가 돼버립니다. 자 보십시오. 이 10주를 하겠습니까? 이게 그냥 1지 전에 할 게 아니죠. 불퇴주는요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광명을 얻어서. 이 무생법인이라는 건요 이 참나가 환하게 드러났다는 걸 말합니다. 무생법인이 뭔지는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참나가 환하게 드러나서 끌고 가니까 그대로 따라가 버리기 때문에 7지보살부터는요 이젠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가 없다. 7지 아래로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럼 8지 되면요? 자 7지는 이것도 음양입니다. 7지에서 이미 참나의 소리를 온전히 반영하게 됐는데 온전하게 6바라밀을 실천합니다. 7지보살은요 어떻게 해도 6바라밀을 어기지 않아요. 그런데 8지는 뭔 차이일까요? 8지는요 조금도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6바라밀이 완벽하게 구현돼요. 그러니까 완벽이라는 말을 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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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10지에다 붙일 테니까, 온전하게 구현돼요. 약간 완벽과 온전을 좀 느낌을 다르게 쓸게요 제가. 이해되시죠. 8지는요 8지부터는요 조금도 잘하려고 안 해도 6바라밀이 계속 나와서 나를 끌고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에야 진정한 원(願), 중생을 위한 마음이 자연스러운 원이 그때 나와요. 그 전에는요 에고가 좀 더 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이때는 노력을, 8지부터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8지 이후는요 노력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참나가 나를 진정하게 끌고 다녀요. 8지보살부터는 완벽하게 참나가 나를 끌고 다닙니다. 근데 8지는 참나를 다 구현 못하죠. 8지도요. 그래서 9지 10지가 또 있는 겁니다. 근데 8지부터는 노력을 안 해요.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해가는 겁니다 무럭무럭. 그래서 8지는 동진주(童眞住)라고 하는 게 동진(童眞)이 아이처럼 순수하다 참되다는 뜻이죠. 조금도 어떤 손을 안 대도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8주는요 거기 노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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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돼 있죠. 공성에 대한 노력 없이 안주하며. 늘 공성에서 머물며 노력이 없어요. 자연스럽게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접화군생(接化群生) 그러죠 우리말에. 그냥 접하는 중생들을 다 구제해 줘버려요 그냥. 8지만 해도 엄청납니다. 8지까지 가시면요 불교 이론상 7지에서 8지인데 8지가 정확하죠. 8지는 이제 지구에 더 이상 안 와요. 8지부터는요 빠르면 5지부터도 안 옵니다. 공덕을 쌓은 게 많으면. 근데 정식으로 이론상에서는 8지 보살부터는 여기 안 오고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고 최 고차원 영계로 가서 거기서 사십니다. 부처가, 이제 부처가 되고 화엄경으로는 10지보살 돼서, 된 뒤에도 여전히 거기서 사시면서 우주를 구제하러 다니십니다. 관세음보살 살고 거기 사시는 데로 가버려요. 8지부터는 이 욕계에 안 태어납니다. 그 몸을 다 갖춰요. 다른 몸이 생겨요. 우리가 말하는 신비한 에너지의 다른 몸이 생겨서 8지 보살의 다른 이름이 색자재지(色自在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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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서 색자재지라고 그래요. 8지보살부터는 여기로 안 오고 오신다면 뭐로 오시나요? 구제하러요. 중생을 구제하러 부러 오실 수는 있어도 여기가 이제 주 본거지는 아니게 됩니다. 그렇게 아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나하나 드리는 사소한 얘기도 잘 체크해 놓으시고요. 이거는 불경을 엄청 보셔야 지금 하나하나 건질 수 있는 것들이니까 체크해 놓으시면 나중에 불경 읽으실 때 편하실 겁니다.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보세요. 법왕자주(法王子住) 9주(住), 이게 일반 이게 9주가 일반 급수(級數)가 아니라는 증거죠. 단수(段數)라는 증거입니다. 9단이면요 9주면 9단인데 법왕자주는 법왕(法王)이 부처를 말합니다. 하느님, 비로자나불을 말합니다. 하느님이라고 말할 만한 게요 우주의 하느님이에요. 불교에서 묘사하는 하느님을 비로자나불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는 태양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빛, 빛 자체예요 비로자나불가. 불(佛)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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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적으로 이렇게 절에 가면 이 수인(지권인智拳印)하고 있는 양반이거든요 손가락을. 그래서 절에 이렇게 앉아 계신 분이 있으면 비로자나불인데 그분은요 인격이 아니고 우주의 대법신(大法身)을 갖다가,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불성 자체를 그려놓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건 개성이 없이 그냥 신이라고 보시라는 겁니다. 이분은 그냥 불성 자체예요. 그러니까 불자(佛子)라는 건 결국 뭡니까? 불성을 얼마나 구현하느냐 입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은 성부예요. 비로자나불은 성부이자 성령입니다. 절에 가면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그러고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하는데 노사나라는 뜻이랑 비로자나 뜻이랑 같아요. 비(毘)는 강조어거든요. 그래서 노사나불이라고, 불경 읽다가 제가 유명한 학자분인데도 아주 틀어지게 번역한 글들을 많이 봅니다. 뭐냐면요 노사나라고 하면 노사나불로 번역해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비로자나를 그냥 노사나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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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써요. 왜냐하면 원래 원 뜻이 같아요. “빠사나” 하면 관찰하다인데 “위빠사나” 하면은 투철히 관찰하다입니다. 그냥 강조어예요. 비로자나나 노사나나 빛입니다. 빛. 그래서 노사나라고 하는 거는 기독교로 치면 성령입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빛을 노사나라 그래요. 우주 불성 자체를 비로자나.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을 노사나. 그래서 원만보신이라 그럽니다. 그 노사나를 다 구현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성자가 됩니다. 성부 성령 성자랑 맞게 돼 있습니다. 성자가 누구냐면 예전에 석가모니불, 지금 여러분이 다 성자가 되셔야죠. 불자가, 지금 성자라는 게 불자입니다. 이 불성을 온전히 구현한 인격, 에고를 불자라고 합니다. 온전히 구현한 중생, 그래서 깨달은 중생, 보살이야말로 불자고 우리가 추구할 거는 보살이라는 겁니다 부처가 아니라. 화엄경 입장입니다. 제 입장이랑 같기 때문에 강조하는 거겠지만 화엄경의 입장이 저는 맞다고 봅니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보고 철저히 끝까지 보살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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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마지막 갈 때까지. 부처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등장한 모든 부처도 비로자나의 다른 모습들이에요 그냥.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 화엄경이 끝나는데도 이세간품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끝나는데 이세간품에서 원래 그게 부처의 경지를 묘사한 거라고 쓰여 있는, 모든 학자들이 주장하는 그 품인데 그 품에서마저도 절대 처음부터 끝까지 보살이 그렇다라고 얘기하지 부처가 그렇다는 얘기를 안 합니다. 보살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 보살은 이것도 할 수 있다. 다 보살에 대해서만 화엄경의 모든 이런 능력의 주체는 다 보살이에요. 그러면서도 화엄경은 꼭 그 얘기를 합니다. “보살하고 부처는 천지 차이다”라고 합니다. 그럼 왜 부처 되라는 말을 안 할까요? 보살과 부처는 10지보살도 부처에 비하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된다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10지보살을 목표로 하라고 하지 부처를 목표로 하라는 얘기를 안 합니다 화엄경은. 뭔 얘기인지 아시겠죠. 우주 불성 자체랑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부 성령이랑 성자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 역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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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에고에서 구현된 그 신성과 신성 자체랑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화엄경은 그 얘기를 정확히 알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읽으시는 분도 정확히 알고 읽어주셔야 화엄경 쓰신 분 의도를 정확히 아실 겁니다. 그래서 법왕자주(法王子住)면요 9지 보살이면 이미 역량이요 전지전능 전 단계죠. 전지전능하면요 지금 화엄경은 두 가지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화엄경은요 두 가지 얘기를 하는데요. 이 10지보살의 경지에 가면 아까 말씀드렸지만 거의 인격신 같은, 비로자나불의 화신, 자 비로자나의 화신인데 어떤 의미입니까? 비로자나, 거의 신, 신으로서의 존재가 있고 중생성이 강조돼서 10지, 궁극의 보살이긴 하지만 여전히 부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입장이 있고요. 10지보살이 좀 둘로 갈려서 묘사가 돼요. 그래서 실제로 화엄경10지품에서 10지 묘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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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요 여래랑 동등하다고 얘기하다가 또 한편에서는 여래에 비하면 힘이 뭐죠 한 주먹 땅하고 전체 대지랑 이 차이가 난다라고 또 차이를 둡니다. 이 두 가지 부분을 다 아셔야 돼요. 그래서 이 전지전능한 어떤 신으로서의 모습의 10지보살들은요 관세음 보현 문수 다 그분들은요 사실은 비로자나의 인격적인 모습들이죠. 이 차이 아시겠습니까? 비로자나가 인격적으로 묘사될 때의 10지보살과 진짜 중생이 쌩으로 공부해가지고 올라가서 궁극의 부처에 한없이 다가간 그런 모습으로서의 이 두 가지 묘사가 다 나온다고요 화엄경에서만 해도 벌써.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알아두시면 결국 이 지혜바라밀은 전지전능해져야 되는데 전지전능하다고 해놓으면서도 중생성을 강조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10지보살이라고 보통 묘사했을 때 비로자나불의 다른 모습인 10지보살, 비로자나불은 우주를 초월해 계시니까 비로자나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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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계 안에 어떤 모습을 나타낼 때의 신적인 모습의 10지보살과 진짜 우리 중생이 밑에서부터 공부해서 올라간 10지보살을 좀 구별해서 보시라는 겁니다. 그 묘사를 정확히 보면 알 수 있어요. 차이가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어요. 그래서 관세음보살 같은 분은 10지보살인데 성불할 리가 없죠. 그분들은 성불 안 해요. 그럼 좀 웃기지 않습니까? 어떤 부처는 성불해서 부처가 되는데 어떤 분은 성불을 안 해요. 이런 이상한 모순이 나옵니다. 그걸 제가 또 해명해 드릴 텐데 뒷부분에 글로도 적혀 있습니다. 거기까지 진도를 지금 나갈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시면 지금 법왕자주라는 건요 지금 이 10단계를 거의 부처 단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9지를 9지를 법왕자주(法王子住)라고 하는 겁니다. 법왕은 부처죠. 법왕의 자식이라는 겁니다. 즉 태자(太子)에 해당되는 주(住)입니다. 법왕자주는요 태자에 해당되는 주라는 겁니다. 경지. 그러니까 진리의 태자, 황태자에 해당되는 경지가 9지입니다. 그러면 10지는 부처의 경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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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지를 꼭 부처의 경지처럼 묘사한다는 겁니다 화엄경이 계속. 그러면서도 또 중생성을 강조한다는 거예요. 중생의 모습을 한 부처라고 이해하시면 좋겠고요. 그래서 법왕자주는요 세간과 출세간을 자유롭게 설법하는 법왕의 태자가 되고요. 10주 관정주(灌頂住)가 되면은 관정을 받아서 여래의 지혜를 성취해버린다고 묘사가 돼버립니다. 아까 그 정수리에 물 부어지면요 부처예요 이미. 그거 웃기죠. 다른 경전은 절대 10주보살한테 정수리에 물 안 부어줍니다. 화엄경만 지금 물을 부어주고 있는 거예요. 화엄경은 10지에서 끝내고 싶기 때문에 10지 보살한테 물을 부어주면서 어떤 직함을 주냐면요 수직위(受職位)라 그래요. 받을 수(受) 직책 직(職). 화엄경에서 10지는 정말 독특합니다. 10지의 경지는 수직위(受職位), 여래의 직책을 하사받은 사람 그래요. 즉 “10지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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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로 친다”라고 화엄경은 인가를 해버립니다. 10지보살부터는 여래로 친다. 10지보살은 머리에 정수리에 물까지 받았기 때문에. 10지경 가면요 이제 10지조에 가면은 머리에 정수리에 물 부어주는 거를요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어떻게 되냐면요 미리 말씀드리면 10지보살에 딱 여러분이 등극하시면요 여러분의 미래일 수 있으니까 잘 들으십시오. 10지에 딱 올라가면 우주만한 연꽃이 핍니다. 황홀한 연꽃이 여러분을 둘러싸서 여러분이 연꽃 가운데 딱 앉으면 무수한 보살들이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옵니다. 여러분을 빙 둘러싸서 무수한 보살들이 여러분을 칭찬해 주면서 여러분이 그 연꽃의 중심에 딱 앉으시면요 온 우주의 여러분의 몸에서 나온 빛이 육도(六道)를 다 환하게 합니다. 화엄경의 그 얘기는요 영화로 꼭 그래픽으로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다음에 온 우주의 부처들이, 그러니까 비로자나불의 여러 모습들이겠죠. 온 우주의 부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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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에서 빛을 쏩니다. 그래서 그 빛이 모여서 여러분 정수리로 들어오면 여러분은 10지보살에 등극을 하고 수직위, 여래랑 동등한 직함을 받습니다. 명함에 거의 여래급 준여래, 뭐 이렇게 해서 뭐가 여래대우 뭐 이런 식으로 하나 받는 겁니다. 10지보살부터는 여래로 쳐줘요. 이게 화엄경입니다. 다 그런데 능가경을 가면요 능가경(楞伽經)에서는 10지에서 그걸 못 해요. 10지보살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11지 될 때 똑같은 사건이 묘사됩니다. 11지보살이 연꽃이 피면 연꽃에 앉아서 딱 앉으면 화엄경을 보고 그대로 베낀 듯하면서 살짝 다른 게 10지가 그걸 하는 게 아니고 11지가 해요. 그래서 11지가 그렇게 연꽃에 앉으면 능가경은요 연꽃 가운데 궁전이 선대요 연화궁이라고. 그 궁전에 딱 앉으면, 살짝 묘사가 틀립니다. 온 우주의 부처들이 이번엔 손바닥에서 빛을 쏴줘요. 쫙 해서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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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를 딱 치면 여러분은 부처가 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자가 돼요. 이게 일반적인 경전입니다. 능가경 대승기신론 다 부처가 되라고 결론을 끝내는데 화엄경만 10지에서 관정을 받아버려요. 이런 얘기 어디서 못 들어보셨죠. 그래서 이거 정확히 아셔야 됩니다. 저는 화엄경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렇게 강조를 드리는 겁니다. “중생성이 없다면 현상계에서 중생을 구제할 수가 없다”라고 화엄경은 본 겁니다. 이 입장을 저는 존중한다는 겁니다. 대승기신론이나 능가경은 전지전능해져야만 중생을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인 겁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해져 버리면 아까 말한 모순에 빠집니다. 여러분은 전지전능자가 되고 싶으시죠? 왜냐? 에고가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전지전능해지려면 조건이 에고를 버리셔야 됩니다. 그럼 뭘까요 이건? 모순에 빠집니다. 전지전능 여러분이 해지고 싶다면 에고를 놓고 나면요 여러분이 전능해진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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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를 위해서 하나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전지전능은 안 하겠다”라고 하시면 화엄경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중생성을 절대 안 버리는 겁니다. 에고가 있고 전지전능이 있다는 겁니다. 에고가 있어야 완벽한 전지전능은 아니더라도 한없이 상대적인 전지전능을 얻어서 중생을 위해서 마음껏 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초월해 버리면 이미 비로자나불이 있는데 내가 에고를 버리고 비로자나불과 합류한 것밖에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비로자나불의 능력이 늘까요? 뭔가 좀 이상하죠. 이 모순에 빠진다는 겁니다. 이걸 정확히 이해하셔야 됩니다. 저도 이거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지금 이 화엄경을 또 한 것도 있거든요. 목표를 뭐로 정하실 건지? 영적 성숙의 단계, 10단계 가면 나는 뭘 이룰 거야가 분명하지 않으시면, 난 전지전능해질 거야 그럼 뭔가 모순이 있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전지전능해지시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성을 포기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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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원하시는 건지? 중생으로서 최고의 중생이 될 거야 인지? 여러분은. 이걸 게임으로 치면 여러분 만렙을 목표로 하실 겁니까? 최고의 궁극의 레벨을 목표로 하실 겁니까? 빨리 게임 때려치우고 게임을 넘어서서 게임관리자를 지금 목표로 하실 겁니까? 대승 경전들은 게임관리자를 목표로 하라고 합니다. 관리자가 돼서 마음대로 들어와 가지고 막 황금 아이템을 두르고 와가지고 중생 구제해 주고 사라지고, 이런 슈퍼맨을 대승기신론이나 능가경을 그리는 겁니다. 하지만 화엄경은요 그게 아니고 같이 게임을 해오면서 만렙의 경지까지 간 그 존재를 그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 게임 안에 머물면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그 게이머들을 도와주고 다닙니다. 힘들면 가서 아이템 하나 주고, 힘들어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면은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는지 법을 가르쳐 주고. ①법보시(法布施)와 이 ②재보시(財布施)를 마음껏 하면서 ③무외보시(無畏布施)라고 하는 건 좌절하고 있는 친구한테 가서 어떻게 다시 해보라고 힘을, 무외보시, 걱정을 없애주는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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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보시를 무한하게 하면서 그 게임의 세계, 이 사이버 세계 안에 존재하는, 그 존재를 화엄경은 그린다는 겁니다. 이걸 이해 못하고 화엄경을 읽으시면 계속 혼동이 옵니다. 대승의 일반 체계를 가지고 화엄경을 접근하시면 안 돼요. 너무 그건 하나의 도식이 됐고 다른 대승경전들이 아무리 그걸 노래하더라도 화엄경이 이렇게까지 밖에,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사정을 아셔야 된다는 겁니다. 빨리 오늘 10행 10회향까지도 끝내야 되니까요. 10행도 한번 볼게요.
[3. 10행行 (보살의 실천, 참나의 뜻대로 실천)
① 환희행歡喜行(환희에 가득 찬 실천, 보시) ② 요익행饒益行(중생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실천, 지계) ③ 무위역행無違逆行(참나의 뜻을 어기지 않는 실천, 인욕) ④ 무굴요행無屈橈行(굽히고 꺾임이 없는 실천, 정진) ⑤ 무치란행無痴亂行(어리석고 어지러움이 없는 실천, 선정) ⑥ 선현행善現行(공성을 세간에 잘 나타내는 실천, 지혜) ⑦ 무착행無著行(집착이 없는 실천, 방편) ⑧ 난득행難得行(얻기 어려운 공성에의 노력 없는 안주를 얻는 실천, 원願) ⑨ 선법행善法行(세간ㆍ출세간법을 자유자재로 설법하는 실천, 역力) ⑩ 진실행眞實行(진여 그대로의 실천, 지智)]
똑같지 않습니까? 1지가 환희지(歡喜地)인데 1행이 환희행(歡喜行)이에요. 그럼 이게 어떻게 급수(級數)입니까 단수(段數)지. 그쵸. 환희행. 참나를 깨쳤으니 얼마나 환희에 가득 차서 보시를 하겠습니까. 남한테요 기분 좋게 쏜다는 겁니다. 이 환희행은요 보시 닦는 얘기가 나와요 실제로. 행 안에 보시 지계 이걸 그대로 설명하면서 잘 쏘는 경지, 어마어마하게 쏘는 경지, 기뻐서 쏘는 경지가 환희행인 겁니다. 이제 계율을 잘 지키면 뭐가 될까요? 중생을 위해서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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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롭게 해주는 요익행(饒益行) 넉넉히,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고 하죠. 우리 홍익인간의 불교식 표현입니다. 요익중생 넉넉할 요(饒)자입니다. 배부르게 도와준다. 중생을 배부르게 도와주는 행위를 해요. 실제 실천을 하기 때문에 이 말을 써놓은 겁니다. 실제 실천을 안 하면 중생, 다른 사람들 도와줄 수가 없잖아요. 3행에서는요 무위역행(無違逆行) 거스르지 않는 행위가 인욕이랑 같다는 얘기 아시겠죠. 인욕을 하니까 남을 참아주니까 남만 참아주는 게 아니고 아까 뭐도 참아준다 그랬죠? 진리도 참아준다고 그랬죠. 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삽니다. 그래서 무위역행 조금도, 위가 거스를 위(違)자고 역이 거스를 역(逆)자죠. 거스르는 행동을 안 합니다 인욕바라밀을 닦았기 때문에. 4지는 뭡니까? 4행이 4지가 닦는 건데 정진바라밀을 잘하죠. 쉬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굴요행(無屈橈行) 굴은 굴복하다 요는 굽히다인데 조금도 굽히거나 꺾임이 없이 실천하는 힘이.. 너무나 6바라밀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요 실천에서 불혹(不惑) 의심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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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5지, 5행에 가면은 무치란행(無痴亂行). 선정바라밀을 끝내주게 잘하기 때문에요 이 5지 정도 가면요 참나랑 이미 참나가 내면에서 울림이 있다고 그랬죠. 참나랑 합일돼서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완벽하게 합일 안 됐을 뿐이지 끊김이 있을 뿐이지 합일 되는 때가 많아요. 합일이 계속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분은요 선정을 정말 잘 들고 무치란(無痴亂)이라는 거는 어리석을 치(痴) 어지러울 란(亂)자죠. 마음의 어리석음이나 어지러움이 없어요. 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6지에 비하면 또 낮죠. 5지 가면요 5지 가면 왜 5지냐면 여러분이 6바라밀을 이해하려는 어떤 인위적인 노력을 엄청 하시다가 5지에 가면요 6바라밀이 계산 안 해도 그냥 알아지는 경지입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여러분 어느 분야나 달인들은 그렇게 하죠. 달인이 되기까지 어떻게 합니까? 엄청 고생하다가 탁 5지 정도 가면 딱 보면 압니다. 딱 보시면 제가 여러분 딱 보면 “이분은 다음에 뵙겠구나 못 뵙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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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 마지막이구나” 만약 이런 느낌이 누가 든다면. 그게 여러분 가게 하나 운영하셔도 다 아시겠죠.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6바라밀을 엄청 하다 보니까 5지 정도 가면요 딱 보여요. 근데 다 하지는 못하지만 5지는 이미 다 보여요 그냥. 계산 안 하고도 보여요 5지는. 그래서 마음이 늘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거. 6지는 그러고 살다 보니까 그걸 또 보이는 대로 하다 보니까 지혜가 이 반야가 어마어마해지면서 이해도가 높아진 겁니다. 성숙해진 겁니다. 그래서 6지 가면요 선현행(善現行) 공성을 세간에 잘 나타내요. 잘 드러내요. 6바라밀을요 정말 이제 근원에서 올라오는 6바라밀을 밖으로 드러내는 힘이 생깁니다. 근데 아직 완벽하지는 않죠. 7지 가면 온전해지죠. 7지 가면 무착행(無著行), 조금도 집착이 없는 실천이 나옵니다. 그다음 8지 가면요 8행 난득행(難得行) 정말 얻기 어려운 행동이다 이거는. 보십시오. 8지부터는 노력하지 않아도 6바라밀을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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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난득행, 참으로 얻기 힘든 행이다. 그럼 9지는요 선법행(善法行) 9지의 특징이요 이 힘을 아까 제가 말씀 다 못 드렸지만 이 9지의 특징은요 이 힘 역(力)자가 힘이 좋아진 게 아니고요. 9지의 특징은 이겁니다. 설법을 끝내주게 해요. 9지에 대한 묘사 가보시면요 사무애해(四無礙解)라고요 걸림이 없는, 어떤 개념에도 막힘이 없고 개념과 그 개념의 뜻과 그리고 그거를 표현하는 말로 담을 줄 아는 능력과 변재(辯才) 설법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론하는 능력, 이 네 가지 능력(①의무애해義無碍解 ②법무애해法無碍解 ③사무애해辭無碍解 ④변무애해辨無碍解)이 탁월해서 역(力)바라밀이고 9지입니다. 이걸 보면요 불교를 소승식으로는 대승불교를 이해 못하는 게 소승은 깨쳐서 자기가 열반에 안주하냐 못하느냐만 관심이 있죠. 선불교도요 상당히 소승과 비슷합니다 사실은. 견성하냐 못하냐에만 관심이 있는데 대승은 뭐에 관심 있나요? 설법을 잘하냐에 관심이 있어요. 끝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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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을 잘해야 돼요. 중생 근기를 금방 읽어내서 얘기해 주고. 다 터지게 해줘야 되니까 대승불교는 중생교화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 문제는 빨리 해결하고 그다음 중생을 얼마나 잘 도와줄 수 있느냐로 계제가, 사실 7지부터는요 다 이게 중생 얼마나 잘 도와주느냐는 능력치예요. 6지까지는 아까 자리(自利)라고 했죠. 자기 공부하느라고 바빠요. 7지까지 정도 해놓으면 자기 문제는 해결이 다 됐기 때문에 남을 끝내주게 도와주면서 다닙니다. 10은 전지전능까지. 10을 목표로 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9지는 선법행(善法行) 법을 정말 설명을 잘해요. 진실행(眞實行) 10지는요. 참나 그대로 그냥 우주를 전지전능하게 돌아가요. 거의 여래의 경지에 있으면서요. 이해되시죠? 10지 받아들이는 이제 느낌 아시겠죠? 비로자나가 모습을 나툰 인격신, 거의 신의 작용 같은 10지가 있고, 중생이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인 걸 10지라고 한다 하는 거 아시겠죠.
[4. 10회향廻向 (보살의 회향, 모든 공덕을 공양함)
①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보시, 일체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떠나는 회향) ② 불괴회향不壞廻向(지계, 자리이타의 견고한 토대를 갖춘 회향) ③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인욕, 모든 선근을 공양하여 일체의 부처와 평등한 회향) ④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정진, 선한 힘이 일체처에 이르는 회향) ⑤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선정, 다함이 없는 공덕이 갖춘 회향) ⑥ 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廻向(지혜, 일체의 평등한 선근에 들어간 회향) ⑦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방편, 일체의 중생을 자타일여로 평등하게 따르고 교화하는 회향) ⑧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원願, 진여의 형상을 한 회향) ⑨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著解脫廻向(역力, 얽매임과 집착이 없이 해탈하는 회향) ⑩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지智, 법계에 들어감에 한량이 없는 회향)]
10회향도 똑같습니다. 회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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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쌓은 공덕을 그냥 쏘는 겁니다. 돌려버려요 내가 안 받고. 수취인을 부처나 중생으로 해서 돌려버립니다. 뒤에 보시면 회향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 불교의 3가지 회향廻向
① 실제회향(참나에게 모든 공덕을 공양함), ② 중생회향(일체 중생을 자신처럼 사랑하여 공덕을 중생에게 공양), ③ 보리회향(공덕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바침)-최고의 영적 재태크!]
불교의 세 가지 회향. ① 실제 회향 참나에게 모든 공덕을 공양해버려요. 부처님한테 공양하는 겁니다. ② 중생회향 내가 쌓은 내가 한 선행 중생이 다 그 결과를 누리게 해주세요 하고. 독립운동하신 분들은 중생회향을 하신 거죠 사실. 그분이 위대한 게요 내가 사실 지금 총 맞아 죽거든요. 그런데 가서 하잖아요. 내가 죽지만 내가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 국민들한테 도움이 되길 바라고 합니다. 내가 누릴 수가 없잖아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이 누릴 수 없는 일을 한다면요 여러분은 중생회향을 하고 계십니다. 내 자식을 위해서 하건 누구를 위해서 하건 그런 중생회향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걸 꼭 내가 누리겠다고 안 해요. 재밌는 게 유교의 대동사회가 오면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가면 대동사회 묘사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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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옵니다. 그 대동사회 사람들은, 국민들은 노동력이 자기 몸에서 안 나오는 걸 싫어한다. 자기가 힘을 쓰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그 노동력이 꼭 자기한테 그 결과가 자기한테 돌아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중생회향을 잘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숙한 사회로 간다는 건요 내가 노력해서 다른 사람이 좀 재미 봤으면 하는 그 마음을 좀 깔고 간다는 겁니다. 내가 투입한 건 반드시 내가 먹어야 한다라는 게 자본주의에 맞지만 그렇게 하면 자본주의도 뭐죠 각박해져가지고 숨쉬기 힘들어집니다. 요 양심이, 이런 불성이 안 들어가면 어느 사회나 숨이 막히거든요. 근데 대동사회는요 양심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이제 회향이 좀 보편화돼야 서로 살기 편해져요. 남들이 조금씩 양보해줘야 살기 편해지듯이 보살들은 얼마나 또 잘하겠습니까. 1지는요 여러분이 지금 1지와 2지를 제가 목표로 하시라고 그랬죠 첫 단계로. 1지와 2지조를 특히 잘 들으십시오.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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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救護), 구제하고 보호한다 입니다. 일체 중생을 구원해 주고 보호해주되 중생을 내가 구제했다는 중생상을 떠난 회향. 내가 중생을 도왔다는 생각도 없는 회향. 이해되시죠. 여러분이 가족한테 하세요. 가족을 위하면서도요 내가 가족한테 이 고생, 가족 때문에 이 고생한다는 생각을 안 하는 회향. 이게 1지보살은 할 수 있다. 환희심에서 보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1지보살은 있어야 되니까요. 이렇게 하면 이제 학당 분들 “나는 이제 어떡하지?” 하는 학당에서 정회원 정도 하시려면 이 정도 하셔야 되지 않나요?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도 꼭 1지보살 목표로 하셔가지고 이걸 본인 걸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학당만 좋은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이제 우리 지구에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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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꼭 목표로 하시고요. 참나의 힘이니까 이게 가능하지 이걸 억지로 “내가 중생 도와주는데 중생이라는 생각을 안 해야지” 하시면 그거 다 생각입니다. 그렇죠. “몰라” 하시면 돼요. 열심히 도와주되 “몰라” 하시면 돼요. 그러면 그냥 몰라 하는 거랑 뭐가 차이냐? 몰라만 하고 계시지 마라는 겁니다. 도와주면서 “몰라” 하시라는 얘기입니다. 잘 베풀면서 몰라 하시면 1지보살 가실 수 있어요. 자 2지보살은 뭘까요? 불괴회향(不壞迴向) 자리이타를 할 수 있는 이 계율을 청정하게, 참나가 시킨 대로 6바라밀을 하는 걸 생활화했기 때문에 이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힘으로 그 힘을 갖다가 회향해버린 겁니다. 아까 제가 그 회향을 하나 보다 말았죠. 2개. 참나한테 공덕을 돌리고(①실제회향), 하나는 중생한테 돌리고(②중생회향), 세 번째는 ③보리회향(菩提廻向). 깨달음을 얻는 데다 그 공덕을 써버립니다. 이 세 개는 하나예요. 보십시오. 사실은 참나한테 돌리는 겁니다 하나로 치면. 여러분이요 제가 여러분한테 만약에 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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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치죠. 그걸 제가 “참나가 했지. 에고는 거들었다” 하면 참나한테 회향한 거죠. 이건 참나가 한 거니까 이 결과물도 내가 받고 싶지 않겠죠. “중생한테 다 돌리고 싶다.” 중생회향. 그러면 저는 이 착한 일 한 걸 어디다 쓴 건지 아십니까 결국에는? 제 깨달음을 위해 썼습니다. 제가 더 영적으로 성숙되겠죠. 그게 깨달음 회향입니다. 한 행위에 세 가지가 다 들어 있는 겁니다. 중생한테 쏘고 참나한테 쏘고 났더니 내가 쓴 건 다 어디다 썼냐면 내 영성이 더 성숙해져 버린단 말이에요. 깨달음에다 쓴 게 됩니다 결국엔. 레벨이 더 올라가요 이렇게 자꾸 하시다 보면. 그래서 불괴회향(不壞迴向) 해서 이 무너지지 않는 공덕을 갖다가 또 회향을 해버리고요. 즉 앞에 있는 말이요 그 지(地)에서 닦는 겁니다 사실은. 그걸 회향하니까요. 자기가 닦은 걸 회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뭘 닦았는지는 그 앞에 있는 겁니다. 1지는 아까 뭐라고요? 중생을 구원하되 중생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거. 2지는요 무너지지 않는 일이 계율이죠. 6바라밀의 생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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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화를 이루는 거. 세 번째는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迴向) 이건 좀 맛이 다르죠. 일체의 부처랑 평등한 회향. 3지 정도 되면요 쓰여 있습니다, 모든 선근을 갖다가 일체 부처한테 돌리는 데 되게 능숙해진다는 겁니다. “부처 덕입니다. 이 모든 걸 참나한테 돌립니다. 깨달음한테 돌립니다” 하는 힘이 3지 정도 가면 커진다는 얘기고요. 등일체불회향 그게 이제 모든 부처님들하고 비슷하다. 부처들은 다 늘 참나나 깨달음과 중생한테 돌리겠죠. 자기가 한 일을 다 돌려버려요. 이런 부처들이 하는 거를 꽤 많이 배운다는 겁니다. 3지 정도 되면 이해가 안목이 넓어져서 6바라밀 하면서도 이제 집착을 안 해요. 6바라밀 되게 잘하게 됐는데도 집착을 안 하게 됐다는 겁니다. 4지는 좀 더 나가죠.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4지는 정진바라밀 되게 센 데죠. 그래서 쉬지 않고 노력해서 매사에, 불혹이니까요, 매사에 의심 없이 6바라밀하며 실천하는 힘이 커졌는데도 그 일체처에 모든 곳에 이르는 그 선근을 그대로 부처님한테 바쳐버린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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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한테 바쳐버린다는 겁니다. 5지는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迴向) 5지보살 정도 되면요 방편이 아까 능수능란해진다고 그랬죠. 무한한 공덕을 갖추게 돼요. 그걸 그대로 바친다는 거예요. 중생과 부처와 깨달음에다 바쳐버립니다. 집착을 안 한다는 얘기예요. 회향은요 내려놓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입일체평등선근회향(入一切平等善根回向) 6지보살 정도 되면요 지혜가 이제 높아져서 일체의 평등한 선근에 들어간 회향. 6지보살 정도 되면요 일체의 평등선근이라는 건요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선을 하는 겁니다. 6지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얻었죠. 반야바라밀은 뭡니까? 반야심경이 뭐라고 나옵니까?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오온개공(五蘊皆空) 모두가 공하다는 걸 알아버립니다. 그래서 이 6지보살은요 공을 알아요 정확히. 공을 정확히 이해해요. 그래서 평등선근이라는 거는 평등이라는 말이 나오면 공(空)입니다.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선을 닦을 수 알게 돼요. 아집이 많이 줄어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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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국 아집의 꼭지를 언제 뗍니까? 7지 가야 떨어집니다. 7지 가면요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6지 정도로,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선을 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직 방어하고 있지 공격은 아니다. 공격은 7지에 들어갑니다. 방편, 이제 우주는 공하다 하고 있는 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방편으로 뛰어 들어가서 뭘 합니까? 수순일체중생회향(隨順一切衆生廻向) 일체 중생들을 따라다니는 회향, 중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회향은 7지보살 가야 가능해요. 이해되시죠. 6지는요 아직 지금 자기 아집이 좀 덜 닦인 게 있기 때문에 평등하게 하려고 되게 노력하고 있는 단계고 7지는요 이제 이미 평등이 내 안에 흐르기 때문에 이제 적극적으로 중생이 술집 가면 같이 술집도 가고 이제 이런 능력이 생겨요. 중생을 따라다닌다고 이 양반은 이제 오염되지 않는 경지에 얻었거든요 7지부터는. 6지는 아직 위험해요. 7지가 안 됐으니까.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의 단계인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는 단계는 7지 이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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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7지부터는요 중생을 이제 따를 수가 있어요. 좀 모자란 중생도 따라줄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교화를 해요. 8지는 이제 더 나아가죠. 뭡니까?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 진여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어요. 8지는 아까 말씀드렸죠. 그냥 내 안에 있는 이 진여상이 이겁니다. 진여가 6가지 6바라밀을 갖추고 있는데 이게 그냥 드러나 버리기 때문에 진여상입니다. 늘 진여 그대로 살고 있어요. 아까 동진주(童眞住)라고 그랬죠. 천진난만한 아이, 순수한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그대로 살아갈 뿐인데 노력하지 않아도. 이게 여기서 이 참나가 나를 끌고 다니기 때문에 선을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진여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8지부터는. 그걸 그냥, 그것마저도 부처한테 바치고 중생한테 바쳐버려요. 조금도 자기가 안 가져요. “이건 우주 겁니다” 하고 우주에다 내놔버린다는 겁니다 회향은. 그다음에 9지보살 가면요. 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著解脫廻向) 무박무착, 결박 어떤 얽매임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 설법 자유자재한 힘이 생겼기 때문에 조금 더 걸림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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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인데 안목을 갖췄는데요 이걸 그대로 우주에다 바쳐버리는 거고요. 입법계무량회향(入法界無量廻向) 진리의 세계에 들어감에 한량이 없다. 전지전능해졌다는 겁니다. 거의 전지전능해진 그 능력을 회향해버립니다. 이렇게 어려울 줄 아는데도 지금 이렇게 10주 10행 10회향을 한번 같이 읽은 거는요 그 안에서 여러분이 이걸 남기셔야 됩니다. 나는 이렇게 10단계로 성숙될 거라는 걸 아셔야 되고. 확인해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10주 10행 10회향이 이렇게 병렬로 설 관계가 아니죠. 여기서 부처됐다가 다시 시작해요. 또 부처됐다가 다시 시작해서 또 부처됐다가. 그게 아닙니다. 1주 1행 내가 1지보살을 목표로 하신다면요 화엄경을 딱 펴서 어디를 보셔야 됩니까? 1주 1행 1회향 1지를 읽으시면 여러분이 영적 목표를 1지에다 설정하신 겁니다. 2지가 되고 싶다면 2주 2행 2회향 2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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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접근하시는 게 화엄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 법입니다. 아까 대승기신론식으로 보는 법도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 식의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화엄경식으로 보는 건 이렇습니다. 그래서 1주에 이미 견성을 제대로 하신 겁니다. 그 얘기를 10지로 가볼게요. 그럼 10지의 단계, 10지까지만 하고 바둑의... 대승기신론부터는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아니 다음 달에.
[5. 10지地 (보살의 단계, 참나를 밝힌 단계ㆍ영성을 계발한 단계)
① 환희지歡喜地 ② 이구지離垢地 ③ 발광지發光地 ④ 염혜지焰慧地 ⑤ 난승지難勝地 ⑥ 현전지現前地 ⑦ 원행지遠行地 ⑧ 부동지不動地 ⑨ 선혜지善彗地 ⑩ 법운지法雲地
1지 이름이 뭡니까? ①환희지입니다. 참나를 깨치고, 보시를 잘하고 6바라밀이, 내가 해야 된다는 걸 알고. 너무나 내 안에 그 6바라밀의 능력이 잘하지는 못하지만 6바라밀이 내 안에 이미 갖춰져 있다는 것에 감동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환희지(歡喜地)입니다. 이구지(離垢地). 뜻이 분명합니다. 알고 있던 6바라밀을 이 본성을 현실에서 실천해 봅니다. 부족하지만 실천을 많이 해봅니다. 그래서 힘들 때도 참나로 이겨내 보고요. 보십시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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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누가 어떤 이쁜 이성이 유혹한다. 지계바라밀로 실천해 보는 겁니다. 매순간 매사에 실천해 보는 겁니다. 누가 뇌물을 준다. 지계바라밀로 실천해 본다. 누구 때문에 좀 화가 났다. 인욕바라밀로 실천해봅니다. 몰라 해가지고 인욕이 튀어나오는 거를, “몰라” 하셔야 됩니다. 몰라 하고 참나랑 접속을 해야 참나에서 이 힘이 나오죠. 그 힘을 가지고 견딜 만한 마음을 만들어서 견뎌내면 인욕바라밀입니다. 또 뭡니까? 정진 게을러, 마음이 한없이 게을러지고 이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데 그 에고랑 싸우는 게 아니고요 참나의 힘으로 해야 바라밀 아닙니까. 몰라 했더니 참나에서 힘이 나와서 다시 의욕이 솟아나는.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무위법(無爲法). 참나가 내 안에서 역사하게 해야 됩니다. 이게 능수능란해져야 2지가 됩니다. 내 힘으로 어거지로 하는 게 아니에요. 몰라 했더니 힘이 나면 정진바라밀. 아까 그 유혹도요 유혹이 심각하게 오는데 “저 돈을 받으면 내가 우리 가족이 사는데” 하는데 몰라 했더니 내면에서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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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라고 해서 그냥 안 하면 이게 지계바라밀입니다. 또 선정바라밀은요 억지로 마음을, 에고가 요동을 하는데 억지로 고요하게 해야지 하면 그건 가짜 선정입니다. 엉터리 선정이에요. 참나는 원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어요 고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고요한 내면의 참나를 몰라 하고 만났더니 마음이 평화로워지니까 선정바라밀입니다. 인간은요 죽을 때까지 망상을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망상 없는 시절은요 얼마 안 돼요. 그걸 선정바라밀이라고 하면 평생 공부 얼마 못합니다. 망상이 요동하는 중에도 고요할 줄 아셔야 선정바라밀입니다. 내 에고는 혼란하고 시끄러운데도요 고요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이 내 안에 있으면 선정바라이에요. 그다음에 지혜바라밀. 매사에 자명한 거와 자명하지 않은 거를 가를 수 있는 안목이 몰라 하면은요 사리분별이 정확하게 됩니다. 이게 이거는 과학적인 얘기입니다. 예전 어른들이 이렇게 어렵게 얘기했는데요 이건 과학인 게요 지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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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요 전두엽이 우리 뇌의 사령탑인데 충동을 억제하고 뭔가에 몰입하고 인간관계를 윤리적으로 끌고 가는 건 다 여기 전두엽에서 합니다. 이 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사이코패스가 돼요. 선천적인 겁니다. 전두엽에 문제가 돼서 구현이 잘 안 되는 겁니다. 근데 전두엽에 문제가 없더라도 건강한 전두엽과 건강하지 못한 전두엽이 나뉩니다. 건강할 때 이 뇌를 측정해서 건강한 전두엽 상태에서는요 몰입능력이 좋아집니다. 선정바라밀이 나와요. 집중력이 좋아지고. 그러니까 집중을 잘 못하면 우리 애가 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체크해 보셔야 돼요. 전두엽이 건강하면은요 그러니까 명상을 잘하시면 전두엽은 건강해지게 돼 있는데 몰입력이 좋아지고 공감능력, 보시바라밀 나옵니다. 그다음에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이 나옵니다. 지계바라밀. 그다음에 남에 대한 인정이, 인욕바라밀이 많아집니다. 그다음 사리분별을 정확하게 하게 됩니다. 지혜바라밀. 이런 게 좋은 덕목들이 그냥 나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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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쳐보시면 전두엽 이런 거 전두엽이 활성화된 상태 비활성화된 이런 거 쳐보시면요 그냥 6바라밀 그대로 쓰여 있어요. 이거는 과학인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명상을 통해 몰라 하시면 나오는 이유가 몰라 하시면 뇌가 건강해져서 그런 힘들이 나오는 겁니다. 물질적으로 얘기하면요. 마음으로 얘기하면 몰라 하시면 진아, 이 참나가 작동을 해서 이 6바라밀이 여러분 에고가 6바라밀로 움직이게 몰고 갑니다. 이걸 알아야 이기죠. “나는 6바라밀을 끝내주게 해” 하고 에고를 하고 계시면요 그건 2지보살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 특징은 참나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를 많이 지적하고 계실 겁니다. “나는 되게 잘하는데 쟤들은 참 아닌 것 같아.” 이런 얘기하면 참나로 한 게 아닙니다. 참나로 하는 힘이 엄청 나오시면 6바라밀이 온몸으로 하게 돼요. 그래서 ②이구지(離垢地)라고 합니다 2지를. 때가 벗겨지는 경지. 때 구(垢)자에 떠날 이(離)자입니다. 때가 조금씩 벗겨져요 에고에서. 3지 ③발광지(發光地) 이제 진리를 들으면 그대로 이해하는 안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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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에서 생깁니다. 경전을 들으면 그냥 알아요. 여러분이 3지보살이라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냥 알아요. 이걸 그냥 아까 말씀드린 부분적인 자명함으로 아는 게 아니고 전체 그림 상에서 이 말이 왜 맞는지를 전체적인 그림이 이해가 잘 돼요 3지부터는. 3지부터는 이제 진리를 탐구할 만한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4지 정도 되면요. ④염혜지(焰慧地) 지혜가 불타오른다. 3지에서 얻은 그 발광의 그 지혜가 빛나는 지혜가 4지에서는 더 불타올라요. 그래서 정진바라밀 거기에 위치한 거죠. 더 열심히 정진하게 된다. 그다음에 5지는 난승지(難勝地) 이길 수가 없다 5지는. 못 이긴다. 5지 정도면요 방편이 무한해져요. 침술 점술 의학 과학 다 동원해서 써버립니다. 이 응용능력이 4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때문에 그리고 내면에서 참나가 인도하기 때문에 5지 정도 가면 사회에 나가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 중생교화는 잘 못해요 5지는. 7지 가야 교화하겠죠. 5지는 자기 문제가 아직 안 풀린 게 있기 때문에 중생교화에서는 손을 대면 잘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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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부터 이상하게 중생들이 말을 잘 들어요. 이상하게, 여러분이 지가 낮아서 그런 겁니다. 이상하게 내가 말하면 주변이 싸늘해지고 말을 안 듣는다 하면 더 닦으셔야 돼요. 온몸에서 이 6바라밀이 풍기셔야 말하기 전에 교화가 됩니다. 7지보살은 방편바라밀, 말하기 전에 이미 제압이 돼요. 말하기 전에 상대방이 많이 이걸 수용하려는 마음이 생겨요. 참 감화라는 게 어렵습니다. 늘 어려운 게 이제 이 부분이 어려워요. 자리(自利)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타(利他)도 참 어렵습니다. 근데 재밌는 건 이타를 잘하려면 또 자리를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도 다 겸해서 알아두시고요. ⑤난승지(難勝地) 못 이겨요 5지는. 수완이 너무 좋기 때문에 5지는 못 이깁니다. 6바라밀을 정말 자유자재로 잘 써요. 근데 아직 아집이 많습니다. 그래서 6지 가면요 ⑥현전지(現前地) 늘 진리가 눈앞에 나타나 있습니다. 6바라밀이 날 끌고 가기 때문에 6지는 현전지, 늘 공성과 6바라밀이 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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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늘 눈앞에 떠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눈앞에 이게 떠 있다는 겁니다. “이거 해야지 이거 해야지”가요 선명히 보이고 그 마음과 이제 거의 끊어짐 없이 아직 완벽히 하나는 안 됐지만 거의 이걸 이제 느끼면서 살아가요 하루하루를. 그다음에 7지 가면 이거랑 완전히 하나가 돼버려서 ⑦원행지(遠行地) 멀리 가버린다. 7지 가면 이 자리를 떠나요. 이타. 중생 구제를 하기 위해 떠나기 때문에 멀리 가버린다. 다시는 이제 소승이나 이런 나약한 이제 아집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멀리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7지부터 성인(聖人)이라 그래요. 그래서 정식 성인은 7지 이상 돼야 인간이 좀 성스럽습니다. 7지 아래는 좀 중생성이 너무 많아요. 8지 가면 ⑧부동지(不動地) 8지 가면요 흔들림이 없습니다. 늘 참나 그대로 살아가니까 애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9지 가면 ⑨선혜지(善慧地) 설법을 너무 잘해요. 10지 가면 ⑩법운지(法雲地) 법운지가 끝내주는 이름인 게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사실은 묘사한 겁니다. 진리의 구름이라는 건요 움직이면 진리의 비를 내려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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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에 진리의 비를 뿌릴 수 있는 존재를 법운지 그럽니다. 그 진리를 머금고 있는 상태가 구름이라고 묘사한 겁니다. 진리의 구름의 존재. 죽이죠. 여러분이 10지보살 되시면 진리의 구름 같은 존재가 되시는 겁니다. 건들면 그냥 비가 쏟아지는, 벼락이 치고 막 비가 쏟아져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깨어나게 해버리는 무한한 능력을 갖춘 자리입니다. 재미있으시죠.
[* 1지의 단계 : 1주의 머무름, 1행의 실천, 1회향의 회향을 갖춤. 따라서 본래 1주 보살은 1지보살을 말한다. 초발심이 바로 견성이라는 것(初發心是便正覺)이 화엄도리.]
그래서 1지보살은 지금 밑에 써져있는 말은요 1지의 단계는 1주의 머무름, 1행의 실천, 1회향의 회향을 갖춘 단계고 따라서 본래 1주 보살은 1지보살을 말한다. 그래서 절에서 초발심, 화엄일승법계에도 이 말 나왔죠. “초발심이 이미 견성이다. 정각이다”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고요. 이 발심주가 이미 정각했다라고 보시면 되고요.
[* 10신(믿음, 信 / 10신 안에 또 신해행증信解行證이 있음)→ 10주(이해, 解)→ 10행(실천, 行)→ 10회향(실천, 行)→ 10지(증득, 證)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 그러나 화엄경의 본의는 아님. 이 견해에 의해서 볼 때도 이미 1주에 지관쌍운止觀雙運(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얻음)을 이루어 부분적 견성을 했다고 봄. 다만 법신을 부분적으로 봄. 온전한 견성은 1지보살에서 가능). 대승기신론도 이 견해를 주장함.]
10신. 10신 안에 또 신해행증(信解行證)이 또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도. 그리고 10주를 이해(解)로 보고요. 신해(信解). 10행을 실천 행(行)으로 보고요. 10회향도 실천 행(行)으로 보고 10지를 증득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데 화엄경의 본의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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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견해에 의해서 볼 때도 역시 1주에서 뭘 얻냐면 지관쌍운(止觀雙運), 선정과 알아차림이 지혜가 쌍으로 돌아가는 자리는 얻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미 부분적인 견성은 했다 합니다 1주보살이면. 1급이라고 그랬죠. 1급의 경지에 이미 참나가 늘 흘러야 됩니다. 확철대오(廓撤大悟), 절에서 확철대오 하는 게 이거예요. 참나가 늘 흐르고 있기 때문에 확철(廓撤)하게 참나를 깨쳤다고 하는 겁니다. 선불교에서는 에고의 조건을 안 봅니다. 6바라밀 잘하냐 못하냐를 안 봐요. 참나를 정확히 알았느냐만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확철대오가 1급입니다. 다시는 참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잡아요. 참나가 우리 안에서 늘 흐릅니다. 이걸 다른 말로 정혜쌍운, 지관쌍운 그럽니다. 참나라는 건요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정혜가 쌍으로 돌아다닌다 그럽니다. 그건 1급에 해당되는 얘기고요. 1지보살부터는 정혜쌍운이라고 안 해요. 지관쌍운은 1급에 해당되는 얘기고 1지부터는요 나중에 또 나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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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방편쌍운(般若方便雙運) 그럽니다. 반야는 반야바라밀을 말하고 방편은 나머지 다섯 바라밀을 말해요. 6바라밀을 늘 달고 다닌다고 해서 반야방편쌍운 그럽니다. 반야는 지(知)적인 거고 방편은 행(行)적인 건데 6바라밀 중에 선정 정진 보시 지계 그렇죠 인욕은 방편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방편은 그걸 가지고 중생을 구제할 때 쓰는 아이템들이거든요.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그 능력이거든요. 그 능력이 없으면 중생을 못 도와줘요. 여러분한테 제가 이렇게 설법을 하나 하려고 해도요 지혜바라밀 있어야겠죠. 알아야 되고요. 보시바라밀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되고요. 억지로 하면 저 병나겠죠. 몇 달 하다가 “그만합니다”라고 할 겁니다 아마. “그럴 기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면 끝나는 건데 제가 계속 하고 싶은 이유는 안에서 뭔가가. 제 에고로는 못합니다. 참나가 움직이니까 하지. 보시바라밀이 있어야 됩니다. 인욕바라밀, 하다 보면요 열심히 설명했는데 “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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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욱 하겠죠. “집어치울까 봐” 하다가 또 그거를 참고 하는 거는요 양심에 순응하는 겁니다 사실은. 참나가 시키는데 안 할 도리가 없어서 하는 겁니다. 보시 인욕. 이러면서 여러분과 저 사이에 지켜야 할 룰을 꼭 지켜야 되지 않습니까. 지계. 정진 제가 쉬지 않고 나아가야 되고 여러분도 나아가게 하려면 저도 계속 분발해야 되고요. 정진. 선정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올바른 강의를 해드릴 수가 있어요. 더 자명한 얘기를. 반야바라밀 늘 맞는 얘기만 해드려야죠. 틀렸으면 빨리 고쳐야 되고요. 제가 완벽하게 맞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성인이 아닌데. 틀렸으면 빨리빨리 고쳐드리는 게 자명한 거죠. 실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했으면 빨리빨리 수정해서 6바라밀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이 강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이거는 이 강의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가족하고 대화 한 번 할 때도 똑같습니다. 보시, 여러분 그분 이익도 생각해 줘야죠. 지계, 둘 간의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죠. 인욕, 참아줘야죠. 정진, 그래도 나태해지면 안 되죠.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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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맺으려는 의욕이 있어야죠. 선정, 평정심 유지해야죠. 대화하다가 울컥하시면 안 되죠. 지혜, 늘 올바른 얘기를 하려고 해야죠. 6바라밀 노트는 그걸 체크하시는 거고 그걸 총동원하실 때 아름다운 인격이 되고 “화엄(華嚴)” 꽃이 핀다라고 합니다. 참나는 이미 꽃 피어 있는데 에고를 통해 꽃피지 않으면 우주가 화엄세계가 못 됩니다. 참나는요 이미 퍼펙트합니다.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하죠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진리의 도장 진리의 바다에 이미 우주는 들어있어요. 퍼펙트한, 이 먼지 하나에도 비로자나불이 다 들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은 공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완벽하니까. 문제는 우리 에고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면 이 에고가 문제거든요. 에고가 안 해요. 에고가 이 참나에 순응하고 6바라밀로 이 10단계를 통해 꽃을 피울 때 화엄, 꽃이 장엄하게 피면서 우주에 꽃이 하나씩 하나씩 피는 겁니다. 이게 화엄세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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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삼매(華嚴三昧)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이 단계를 밟아가는 게요. 그래서 이 해인삼매와 화엄삼매 두 개가 화엄경의 핵심 결론이고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 나가시면.. 대승기신론의 주장은 이제 제가 다음 달에 해드릴게요. 이렇게 1급부터 10주 10행 10회향 이렇게 올라가는, 아까 간략하게 말씀드렸지만 대승기신론에서 이미 했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요 제가 한 견성콘서트 중에 대승기신론 강의를 한번 듣고 오세요. 이해되시죠. 같은 내용을 또 할 거니까요. 그래서 이 화엄경의 이런 10주 10행 10회향 체계와 대승기신론의 체계를 비교해 보면서 이제 화엄경의 특성을 더 한번 구현해보고 다음에는 보살이 뭔지 부처가 뭔지 아까 10지보살과 부처 간의 그 오묘한 관계를 명확하게 한번 제가 여러 경전에 근거를 들며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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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홍익학당] 윤홍식의 화엄경 강의 2강 - 10지품( 보살의 길을 밝히다)(1:07:56)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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