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제 2 장 인연(因緣) 그 날은 특이한 날이었다. 늘 보는 석양이지만, 오늘처럼 유별난 적은 없었다. 서녘 하늘이 온통 불타오르듯이 시뻘겋게 타올랐다. 그 붉음으로 인해 바닷물이 온통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한 여인이 석양에 홀린 듯 해변가에 나타나 해변을 천천히 거닐었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치렁한 머리와 얇은 나삼을 스쳤다. 잠자리 날개같이 얇은 나삼이 몸에 밀착되며 젊은 처녀의 싱그러운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그녀는 그런 사실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시선을 저 멀리 석양에 고정한 채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우령화(雨零花)! 보슬비에 핀 한 송이 꽃이라고 했던가! 석양이 인간의 눈을 홀린다면, 그녀는 사내의 혼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석양을 바라보는 우령화의 크고 맑은 두 눈은 암울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진한 슬픔의 빛이 그녀의 큰 두 눈에 떠돌고 있었다. 왜일까? 무엇이 한창 꽃다운 나이의 그녀를 이렇게 슬픈 눈빛을 간직하게 했을까?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적시는 만큼 석양이 지고 있었다. 우령화의 크고 맑은 두 눈에 감돌던 생기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쏴아아---!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다. 바닷가에는 폭풍우에 휩쓸려 온 온갖 물건들이 파도에 출렁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간간이 시체도 눈에 띄였다. 우령화는 흠칫 몸을 떨었다. "짐승 같은 인간들…! 또 약탈을 하다니…!" 우령화는 바닷물에 출렁이는 시체와 부서진 배의 널빤지 조각, 그리고 배에서 쏟아져 나왔음직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치를 떨었다. 사실 이제는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그녀는 초연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심성이 너무 착하고 깨끗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이 섬은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자귀도(紫龜島)! 동해의 심해에 떠있는 이 섬은 동해혈랑단의 본거지였다. 우령화는 본래 이곳 자귀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종의 임무를 띠고 이곳에 잠입한 여인이었다. 본의는 아니라 하나 아무리 끔찍한 일도 자주 겪다 보면 일상이 되는 것이 필연, 우령화도 어쩔 수 없이 동해혈랑단의 만행을 보며 익숙해진 상태였다. "휴우! 오늘밤은 또 끔찍한 밤이 되겠지!" 우령화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듯 전신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처연했고 두 눈은 진한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밤[夜]이 무서운 그녀,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슬픔에 젖게 만든 것일까? 이때 상념에 젖어 걷고 있던 그녀는 발 끝에 무엇인가 걸리는 물체에 걸음을 멈췄다. 해초로 잔뜩 뒤덮여 있는 정체 불명의 물건! 우령화는 허리를 숙여 해초를 걷어 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다리던 그 일이 실현되는 것일까? 일 년 전 그녀의 사문에서는 표류한 선박을 가장해 그녀에게 비밀지령을 전했었다. 사문에서는 그녀에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무엇을 전하겠다는 전갈을 하는 적이 없었다. 불시에, 그리고 우연을 가장해 모든 것을 그녀에게 지령했다. 일 년 전에 그녀가 습득한 목궤(木机)가 대표적이었다. 목궤 안에는 황금이 들어 있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황금이었다. 그 외에 이상한 색깔을 띤 환단(丸丹)이 담긴 옥병도 들어 있었다. 옥병을 열었던 우령화는 실망하고 말았다. 환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던 것이다.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훗날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것을 품에 넣어 돌아왔다. 하지만 처소에 돌아와 다시 한 번 환단을 살핀 그녀는 경악하고 말았다. 각 환단마다 한 자씩 새겨진 암호문! 사문에서 그녀에게 보낸 비밀 지령이었다. 그것을 해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명심할진저, 일 년 안에 연자가 당도할 것이다. 그에게 이 환단을 복용시키도록 하고 그를 인연(因緣)의 문으로 안내하라! 그것이 너의 임무이니라! 그 후 폭풍우가 치는 날이면 우령화는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이 일상화가 되었다. "악!" 해초를 걷어내던 우령화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혼비백산해 비명을 내질렀다. 해초를 걷어내자 희고 멀쑥한 소년의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자기보다는 조금 어린 소년 같았다. 소년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비명에 놀란 것일까? 소년의 몸이 한차례 꿈틀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우… 움직였어!" 우령화는 질겁하고 말았다. 당연히 시체일 거라 생각했던 소년이 살아 있었으니 그녀의 공포가 어떠했을 것인가? 하지만 소년을 자세히 살핀 우령화는 문득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잘 생긴 소년도 있을까? 마치 하늘의 선동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이승에 떨어진 것 같아.' 그랬다. 창백하도록 흰 안색에 비례해 시원하게 뻗은 소년의 검미는 너무도 검었고, 창백한 이마는 왠지 고결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들게 했다. 그 아래, 뚜렷한 윤곽에 준미수려한 소년의 용모는 그녀의 방심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우령화는 소년을 유심히 살폈다. 소년의 머리에는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친 듯, 머리가 움푹 패인 상처에서는 아직도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누굴까? 혹시 그 악마 같은 동해혈랑단에게 해를 입은 사람이 아닐까? 맞아, 틀림없을 거야.'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이 소년을 이대로 두면 과다출혈로 죽던가, 아니면 동해혈랑단의 마귀들에게 발견되어 죽게 될 거야. 동해혈랑단은 생존자를 절대로 살려 두지 않잖아! 살려야 해!' 소년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두근거림은 더욱 심해지고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또 반대의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그저 아름다운 여인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실은 비밀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동해혈랑단주 능각표의 조카를 미인계로 홀려 활동거점을 마련한 당찬 여인이다. 만일 그녀가 이 소년을 살린 게 알려진다면, 동해혈랑단주의 조카인 능사(凌邪)는 질투심에 그녀를 죽이려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문의 명령 역시 지엄한 것! 우령화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구해야 해!' 이성은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바보. 그를 구한 것이 알려지면 네가 죽을 수도 있어!' 그런 악마의 속삭임도 들렸다. '일각만 지나면 그는 죽을지도 몰라. 머리에 난 상처에서 출혈이 너무 심해! 우령화, 그를 구해. 어서 구해야 해!' 우령화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쿵, 쿵! 심장의 박동소리도 자신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로 거칠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어… 어떻게 해야지? 내가 이 소년을 구한 게 알려지면 능사는 나를 죽이려 할 거야! 그럼 사문의 명령은 어찌되는 거지? 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문에서 내린 임무도 지엄해!" 우령화는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소년은 그대로 죽을 운명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저만치 멀어졌던 우령화가 홱 돌아서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양심을 속일 수는 없어. 일단 나만이 아는 동굴에 숨겨 놓고 치료를 한 후 이 사람의 인생은 이 사람에게 맡기는 거야." 우령화는 소년을 힘겹게 업었다. 그 후 그녀만이 아는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년은 생각 외로 무거워서 우령화의 고운 얼굴에는 비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저 멀리 바닷가에 석양이 지고 만월이 둥실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소년을 동굴에 데려다 놓은 우령화는 황급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녀의 거처는 아주 크고 화려했다. 그녀를 본 시녀들이 급히 허리를 숙여 공손히 예를 취하고, 험악하게 생긴 무사들 역시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행여나 능사가 돌아왔을까 두려운 우령화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능사는 아직 귀가 전이었다. "휴우!" 방문을 꼭 닫은 후에야 우령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만일 그녀의 행동이 발각되면 그녀는 변명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오늘은 약탈을 한 날이니까 능사 그 악마는 지금쯤 잔뜩 술에 취해 있을 거야!' 우령화는 생긋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내 다시 짙은 음영에 가려지고 말았다. '걱정이야. 약탈이 있는 날은 그 짐승같이 포악한 놈이 더욱 광폭해지는데… 오늘은 또 어떻게 그 자를 따돌리지!' 지금쯤 능사는 해적들과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것이고, 잠시 후면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짐승처럼! 생각만 해도 두려운 것일까, 우령화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쾅! 방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비틀거리는 그림자 하나, 술 냄새가 확 끼치며 이십 후반의 건장한 사내가 그녀를 향해 돌진해 왔다. "끄윽!" 트림을 연발하며 다가오는 자는 다름 아닌 능사였다. 동해혈랑단의 두목인 능각표의 조카이자 부두목인 그의 얼굴은 취기로 잔뜩 달아올랐고, 붉게 충혈된 눈은 짐승의 그것처럼 포악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눈빛만으로도 우령화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능사는 숙부인 능각표보다 더한 흉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언제나 피에 굶주린 야수였다. 살인을 밥먹듯이 하고 하루라도 여자 없이는 밤을 보내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방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그는 우령화에게 달려들었다. "흐흐흐! 수많은 계집을 섭렵했지만 역시 너만한 계집은 없어. 오늘도 그래. 다섯 년을 해치웠거든, 그런데 아냐. 네가 눈가에 어른거려 도저히 기분을 낼 수 없어!" 주절거리는 능사를 보며 그녀는 뱃속이 느글거리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이제는 웬만큼 면역이 될 법도 하건만 언제나 그는 구토증을 유발시키는 그런 존재였다. 능사는 흔들리는 몸을 가눌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그래서… 딸꾹! 결심했지.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너를 해치우겠다고 말이다." 우령화는 간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내색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능사를 다룰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에 내가 지닌 비밀은 영원히 묻힐 것입니다. 내 순결과 천 년의 비밀,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그대에게 달렸어요!" 우령화는 극히 냉담한 척 싸늘하게 말하며 능사를 노려보았다. 능사가 주춤했다. "이 년이 왜 사람을 뻔히 뜨고 노려봐? 너 죽고 싶어? 그 가는 목을 확 졸라 줄까?" 우령화는 공포심을 느꼈다. 포악한 능사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밀리면 만사 끝장이었다. "마음대로 해요. 거듭 말하지만 선택은 언제나 그대에게 달렸으니까!" 능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 짝 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며, 붉은 피가 입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령화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능사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능사도 오늘은 모진 마음을 먹은 것인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썅년! 이제는 더 이상 안 속아? 뭐 쌍령쌍봉(雙靈雙鳳)의 전설이라고? 너를 처치하려 할 때마다 그럴듯하게 변명을 늘어놓아 겁탈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아! 벗어! 당장!" 우령화는 입가에 냉소를 머금으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인가요?" "크크! 사실이다. 이년아!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오늘밤 네년을 반드시 품고 말겠다. 죽여 버리기 전에 빨리 홀랑 벗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작자가 자신의 말대로 오늘은 정말 모진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그녀가 주춤하자 능사가 음침하게 웃으며 옷가지를 잡아 사납게 당겼다. 찌익! 비단옷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뜯어져 나갔다. 수밀도처럼 풍만한 젖가슴이 뭉클 모습을 드러냈다. "카아! 그년 거 정말 멋진 몸매를 지녔는데? 야 이년아! 그 아까운 몸을 놔두고 웬 공염불만 씨부렁거리고 있냐? 서로 좋으라고 하는 짓 오늘은 이 능사님에게 순결을 바쳐라!" 능사가 징그럽게 웃으며 다가왔다. 우령화는 무공을 몰랐다. 사문에서는 그녀에게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동해혈랑단의 단주인 능각표의 이목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위기를 당하자 그녀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찌익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능사가 치맛단을 잡고 낚아챈 것이다. 우악스런 힘에 비단은 경쾌한 음향을 울리며 찢어지고, 그녀의 희고 늘씬한 다리가 달빛 아래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악! 이 더러운 인간이…!" 우령화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능사를 힘껏 밀었다. 그러나 음침한 능사는 뒤로 물러서는 순간 우령화의 풍만한 유방을 덥석 움켜쥐었고 그 결과 우령화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능사에게 안겨 버리고 말았다. "크크크!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능사는 번개같이 우령화의 혈도를 제압해 버렸다. 우령화는 능사를 향해 반항하던 자세로 굳어지고 말았다. 능사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눈을 가늘게 뜨고 우령화를 바라보았다. "크크크! 정말 아름답구나!" 달빛을 받은 그녀의 몸은 정말 아름다웠다. 신이 정성을 다해 빚은 조각상이었다. 얼음처럼 투명하고 매끄러운 두 다리는 날씬하게 쪽 뻗어 있었다. 날씬하면서도 적당히 살이 오른 두 허벅지가 만나는 교차점의 비지. 거뭇거뭇 불거웃이 무성히 우거진 그녀의 비지는 백옥 같은 피부와 흑과 백의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사내의 색욕을 강렬히 자극해 댔다. 능사의 숨결이 점차 거칠어졌다. "해적질을 하며 얻은 전리품 중 네년이 최고야! 너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단 말이다." 꿀꺽! 능사는 군침을 삼켰다. 색기로 그의 두 눈은 활활 타올랐다. 그는 손을 내밀어 풍만하기 그지없는 우령화의 젖가슴을 와락 움켜쥐었다. "아악!" 우령화가 비명을 질렀다. '이 짐승 같은 놈이…!' 울컥 살심이 솟구쳤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항거할 능력이 없는 그녀로서는 능사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우령화는 이를 악물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숱하게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능사는 우령화의 고통은 관심 밖인 듯 투박한 손길로 우악스럽게 젖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작은 유실을 손가락으로 잡아서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키키! 이게 이름하여 여체의 비밀문이라는 거다. 어느 년이든 이곳을 공략 당하면 버틸 수가 없지!" 우령화는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여린 속살들이 무자비한 야수의 손길에 거칠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우령화는 이를 악물었다. "짐승 같은 놈! 하긴 너 같이 천한 놈은 천 년의 비밀을 간직한 쌍령쌍봉의 진가를 알 리가 없지!" 격장지계, 그러나 능사는 징그럽게 웃었다. "크크! 맞아! 다 필요 없어. 네년을 품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향락이 될 테니까! 허나 이건 알아야 할 걸? 여자란 말이야, 일단 몸을 버리면 그 남자에게 종속되고 마는 거야. 즉 쉽게 말해서 쌍령쌍봉의 비밀은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온단 말이지!" 능사는 우령화를 침상에 내동댕이쳤다. 아울러 번개같이 자신의 하의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의 매끄러운 양다리를 움켜쥐고는 거칠게 벌렸다. 저항하고 싶었다. 그러나 평시라도 사내의 완력을 당할 수는 없을 터, 더욱이 혈을 제압 당한 상태에서 무슨 수로 대항한단 말인가? 백옥같이 미끈한 그녀의 다리가 벌어지며 원초적인 밀림지대가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했다. 극심한 치욕감에 우령화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저 자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정말 순결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우령화가 갑자기 키득거리며 능사를 향해 이죽거렸다. "해봐! 이 우멍거지(포경) 새끼야! 네까짓 놈의 그 작은 물건으로 나를 만족이나 시킬 것 같아? 커다란 솥에서 죽 한 숟가락 떠낸 것밖에 더 되겠어?" 능사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우령화는 용모만큼 행동도 조숙한 여인이었다. 한 번도 상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 순결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저질스런 상소리가 마구 튀어나오는 것이다. 능사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 우령화를 바라보았다. "이… 이 년이!" "웃기고 자빠졌네. 야 이놈아. 스스로 네 물건을 봐! 그게 사내의 물건이냐? 열 두 살 소년도 너보다는 크겠다!" 능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어흥 소리를 내며 우령화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가녀린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런데 우령화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비명이 아니라 야릇한 기음이었다. "하으음!" 기묘한 일! 능사가 놀라 손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자 우령화는 살며시 눈을 감고 다시 묘한 신음을 흘렸다. 눈부신 흰 살결!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꿈꾸듯 나른한 눈동자! 쾅! 벼락이라도 맞은 듯 능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년, 너 왜 그래? 너 걸레 아냐?" 우령화는 색기가 철철 넘치게 웃었다. 자귀도에 침투하기 전 언젠가 이런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부끄러움도 잊고 스스로 익힌 방중술이었다. 연습의 효과가 있어 일단 독한 마음을 먹고 행동하자 삽시간에 그녀는 닳고닳은 창녀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이런 쓰벌, 밥맛 떨어지게 만드네!" 능사는 기겁해서 그녀에게서 떨어지고는 지력을 날려 우령화의 혈도를 풀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령화가 벌떡 일어나 능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왜 겁이 난 거냐? 이 자라 새끼야! 나를 능욕하겠다고 방방 뜨더니 이제는 겁이 나서 손도 대지 못하겠냐?" 우령화가 표독스럽게 외치자 그렇지 않아도 작고 보잘것없는 능사의 그것이 번데기처럼 오그라들었다. 우령화는 냉소를 날리며 벌떡 일어나 옷을 걸쳤다. 그리고는 문 밖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시녀를 불렀다. "매향!" 문이 드륵 열리며 이십 초반의 제법 요염한 시비가 대령했다. "벗어!" "예?" 매향이 놀란 눈으로 우령화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 자식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서 벗지 못할까?" 싸늘하게 말하는 우령화에게서는 조금 전과는 달리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흐르고 있었다. 능사는 표변한 우령화의 기세에 눌려 멍히 바라만 보고 있고, 매향 역시 질린 얼굴로 옷을 벗었다. 대단한 몸매였다. 투실한 유방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살며시 처져 있었고, 둔부는 마치 커다란 박을 엎어놓은 것처럼 풍만했다. 거기에다 작고 아담한 체구는 사내라면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 능사는 벌써 우령화에게 당한 일을 잊은 듯 입을 헤 벌리고 매향의 몸매를 훑고 있었다. 우령화가 능사를 향해 돌아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능사, 일각만 버텨 봐라! 만일 매향과 일각 동안만 그 짓을 할 수 있다면 내 너에게 스스로 몸을 바침은 물론, 천년신비를 알려 주지!" "크크크!" 능사가 기괴하게 웃었다.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만일 내가 실패하면?" "스스로 너에게 몸을 허락할 때까지는 나를 건드리지 말 것!" "크크크! 좋아, 내가 손해볼 것은 없군! 네년이 날 우멍거지라고 얕보는 모양인데. 흥! 이래도 침상에서는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몸이다." 능사는 홀랑 벗은 매향을 침대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그녀의 밀림지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밀림지대 깊은 곳에 자리잡은 밀문 속으로 사라졌다. "하으응!" 매향이 달짝지근한 비음을 터뜨렸다. 상당한 남자를 거친 듯 그녀의 비음은 지극히 농밀했고, 사내의 욕정을 단숨에 고조시키는 끈적거림이 있었다. 능사는 여인의 밀문을 우악스럽게 점령했다. 어지간한 여인이라면 비명을 지를 것이나 매향의 눈은 몽롱하게 풀리며 더욱 농염한 몸짓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아아! 어서… 어서 빨리요!" 매향은 능사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능사의 그것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밀문으로 유도했다. 능사는 우멍거지(포경)에 유난히 작았다. 말로는 수백 명의 계집을 섭렵했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지만 사실 그가 겪은 여자는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정도 남달리 빨랐다. 평상시에 항상 표피에 감싸져 있는 지독한 포경으로 인해서 귀두는 자극에 무척 약했던 것이다. 그 예민한 물건이 매끄럽고 뜨거운 매향의 밀문 속에서 제대로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몇 번 엉덩이를 꿈틀거리기도 전에 능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급히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매향이 그를 강한 힘으로 당겨 안으며 엉덩이를 기묘하게 돌렸다. 아울러 우령화가 능사의 바로 코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야릇한 기성을 토하며 입김을 뿜으며 요염하게 웃자! "어…?" 능사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련을 일으켰다. 벌써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에게 더욱 불행인 것은 매향이었다. 아무래도 능사의 작은 그것이 양에 차지 않는 듯 그녀는 두 발로 능사의 허리를 확 감고 요분질을 맹렬히 해댔다. 능사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으아…!" 능사는 비명같은 외침을 터뜨리면서 사지를 맹렬히 떨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병신!" 우령화는 싸늘한 한 마디를 내뱉고는 방을 나섰다. * * * 새벽! 우령화는 다급히 동굴에 들어섰다. 소년은 동굴 천장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워 있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본 우령화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년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한 채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는 것이다. "이… 이보세요, 정신 차려요." 우령화는 소년을 잡아 흔들며 외쳤다. 하지만 소년의 파리한 입술에선 잔떨림만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우령화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보았다. 차가웠다. 얼음처럼 싸늘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년의 몸을 만져 보았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흡사 꽁꽁 언 얼음인 양 싸늘한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싸늘히 전해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년의 코에 손을 대본 그녀는 미약한 숨결을 감지하고는 밝게 웃었으나 이내 난감해지고 말았다. "이… 이를 어쩌지…! 몸이 얼음덩이처럼 차가워. 곧 숨이 멎을 것 같아!" 우령화가 망설이는 이유! 불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연기가 동굴 밖으로 나가면 수상히 여긴 동해혈랑단의 포악한 자들이 몰려올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밖에 없어.' 우령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왜 이 소년을 위해 순결을 더럽히려 할까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녀가 이 소년을 위해 희생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 중에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 것인가? 우령화는 떨리는 손으로 소년의 옷고름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유지하려면 우선은 소년의 젖은 옷부터 벗겨야만 했다. 비록 결심을 했지만 우령화는 잠시 망설였다. 능사에게 시달림을 받았어도 그녀는 아직 순결한 처녀였고 당연히 사내의 옷을 벗겨 본 경험이 없었다. '해야만 해! 저 소년을 살려야만 해! 혹시 알아? 사문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인물일지!'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소년의 옷을 차례로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 끝이 잔잔한 떨림을 일으켰다. 벗겨지는 옷가지가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그녀의 손 떨림도 자연히 커졌다. 이윽고 소년은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멋있어!" 우령화는 절로 탄성을 흘렸다. 소년의 몸은 사내로서는 완벽했다. 단단한 근육질, 하지만 체구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살결은 자신의 살결 마냥 희고 고왔다. 잠시 기다렸지만 소년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얄미운 사람. 어서 눈을 떠요! 왜 그렇게 계속 눈을 감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당신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죠?" 그렇게 말하던 우령화는 돌연 눈을 감고 말았다. 번개처럼 그녀의 뇌리를 스친 어떤 생각! 지금 그녀는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아울러 맨몸을 비벼 마찰력으로 이 소년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그녀로서는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해야 해. 이왕 그를 살리려고 작정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 우령화는 입고 있던 옷을 차례로 벗었다.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으나 그녀의 손은 이유 모를 긴장감으로 후들거리며 떨렸다. 몸을 가린 얇은 옷들을 허물을 벗듯 벗어 던진 그녀는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두 다리를 바짝 밀착시키고 섬섬옥수로 유방을 가렸다. 얼굴에 홍조를 띤 그녀는 눈길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왜일까? 소년의 벗은 몸은 성결해 보인다. 능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가슴 설렘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살포시 감싸안고는 소년의 옆에 살을 맞대고 나란히 누웠다. 소년에게서 풍기는 냉기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우령화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소년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속눈썹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비록 의식이 없는 소년이지만 어쨌든 사내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사내를 끌어안은 것도 지금이 처음이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마치 정인의 품에 안긴 듯한 달콤함도 밀려들었다. '바보, 우령화 너는 바보구나. 지금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어서 서둘러야 해!' 스스로를 채찍질한 우령화는 소년을 끌어안고 온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으나 소년은 쉽사리 눈을 뜨지 않았다. "힘들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일까!"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우령화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우령화의 자세가 바뀌었다. 그녀는 소년의 배 위로 올라가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뒤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소년의 가슴과 맞닿으며 이지러졌다. 묘한 흥분이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가슴과 가슴이 마찰을 하며 그녀의 유실이 열기를 뿜었다. 투실한 가슴으로 연신 소년의 가슴을 문질러대고 하체를 바짝 밀착하자 그녀는 문득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몸 저 깊은 곳에서 까슬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야릇한 감각! "아아음……." 우령화는 나직한 비음을 흘리다가 스스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내가 왜 이럴까? 왜 내 몸에서 열이 나는 거야? 설마 이 소년을 좋아한단 말인가?' 그녀는 이 돌연한 감정의 변화에 당황했다. 능사는 물론 이곳에서 그녀를 노리는 자들은 많고 많았다. 그러나 우령화는 그들에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소년과의 마찰로 그녀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던 본능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우령화의 나신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고운 얼굴에도 땀방울이 한두 방울씩 흘러내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드디어 소년의 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소년의 몸이 따뜻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 그가 살아나고 있어!" 우령화는 기쁨의 탄성을 발하며 신기하다는 듯이 소년의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쿵쿵! 심장이 힘차게 뛰는 감각이 그대로 손 끝을 타고 전해졌다. '살아났어. 조금 더 하면 그는 더 빨리 깨어날 거야!' 사실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순진하기만 한 우령화는 소년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다시 열심히 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이렇게 가슴 벅찬 희열인 것이다. "으으으---!" 잠시 후 소년의 입에서 미약하나마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보세요, 정신이 좀 드세요?" 우령화는 격정 어린 음성으로 소년을 불렀다. 단궁비는 기이한 감촉을 느끼며 힘겹게 눈을 떴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가위에 눌린 느낌이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모든 물체가 희미하게만 보이는데 코끝을 자극하는 기이한 향! '란누이! 그녀의 냄새구나!' 빙그레 웃던 단궁비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진 것은 몸에 느껴지는 괴이한 느낌 때문이었다. 매끄럽고 뜨거운 몸!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기이한 마력을 지는 살덩이! 단궁비는 씨익 웃었다. '크크! 역시 여자란 분위기에 약해! 몇 마디 사탕발림에 이렇게 나를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는 걸 보면 말이야!'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초점이 잡히면서, 시야에 잡힌 여인!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다. 취란에 비해 조금도 처지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취란은 아니다. 취란은 아름답지만 조금은 각이 진 강한 개성을 풍기는 용모인 반면에 이 여인의 얼굴은 한 군데도 모난 곳이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고아한 분위기를 흘렸다. 더욱이 풍성하게 흩어진 검은 머리칼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은 보는 이의 넋을 흐뜨릴 정도였다. 더욱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을 본 여인이 살며시 웃자 단궁비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멍하니 여인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낭자는 누구요?" 단궁비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단궁비는 넋이 나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들기는 들었는데, 이거 다시 정신을 잃을 것 같습니다. 설마하니 극락에 든 것은 아닐 것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소저를 안고 있다니 말이오!" 그제야 우령화가 놀라 후다닥 일어났다. 출렁이는 유방과 풍만한 엉덩이가 그리는 묘한 곡선을 본 순간 단궁비는 갑자기 몸의 기운이 한 군데로 쏠리는 것을 느끼고는 창피함에 옷을 입을 생각으로 벌떡 일어났다. "크윽…!" 절로 흘러나오는 신음! 몸은 마음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에 우령화가 놀라 바라보자 단궁비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다급히 소리쳤다. "어서 옷을…,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소!" 우령화는 단궁비의 난처한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의복을 걸쳤다. 아울러 단궁비에게도 옷을 입히려고 다가서던 그녀가 주춤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세상에!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보기에는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단궁비의 사내는 우람하게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무성하다고 하기에는 이른 하초의 갈기에서 당당하게! '이상해! 가슴이 막 울렁거려!' 우령화는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단궁비를 겨냥해 옷을 던졌다. "우선 몸이라도 가리세요. 나중에 다시 입혀 드리겠어요!" 그렇게 말한 우령화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다급히 동굴을 나갔다. 단궁비는 우령화의 늘씬한 뒷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기억하는 것은 금룡백화주를 찾기 위해 선실 아래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폐혈제맥수가 발작해 금룡백화주를 마시고 가부좌를 튼 행동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상을 당해 이름 모를 여인의 간병을 받는 환자로 변해 있었다. 익숙하던, 그의 시중을 들던 시비와 취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단궁비는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우령화, 그녀였다. 그녀는 단궁비를 바라보며 조금은 창피한 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몸이 불편한 그대를 두고 이대로 간다면 인간의 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옷을 입혀 드리고 가겠어요!" 단궁비는 멍하니 우령화를 바라보았다. 그는 참으로 많은 여인들을 보았고 그녀들의 미소를 보았지만 지금 우령화의 웃음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지 못했다. "그대는… 정말 아름답구려!"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 말을 뱉어 놓고 단궁비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에게 다가오던 우령화가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단궁비는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사과를 했다. "낭자의 도움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이번에는 단궁비가 멍해지고 말았다. 우령화의 표정이 기묘한 것이다. 그랬다. 차라리 웃지나 말 것이지. 천하에 단궁비의 웃음을 보고 제정신일 여자가 몇이나 될 것인가? 순진한 우령화였기에 망정이지 일반 아낙이라면 옷을 벗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서둘러 단궁비에게 옷을 입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만치 뛰어나가던 우령화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물었다. "공자의 성함을 알 수 있나요?" "단궁비!" "단궁비! 궁비, 참 멋진 이름이네요." 한 번 되뇌어 본 우령화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우령화라고 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쏜살같이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굴 밖은 이미 여명이 어둠을 밀어내며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우령화는 그 빛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 단궁비는 모르고 있었다. 중원을 향해 가던 중 동해혈랑단의 습격으로 동행한 일해무룡의 무사들이 거의 전멸하고 다행히 침몰한 배에서 살아남은 자신이 바로 동해혈랑단의 소굴로 흘러 들어온 사실을. 그리고 그를 구해 준 소녀가 혈랑단의 부두목인 능사가 좋아하는 여인이란 사실을! 우령화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던 단궁비는 문득 취란을 떠올리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이를 물어보는 걸 깜빡했군! 누굴 첫 번째 부인으로 정할지 나이를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때였다. 쏴아아---! 마치 솔잎을 훑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동굴 저편에서 울린 것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단궁비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맙소사! 저건…!'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