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저탄소 전원 확대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에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지만, 원자력발전에 대한 논의는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저탄소 혹은 무탄소 발전원으로 인식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모두 경직성 전원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경직성 전원이란 전력 수요의 증감에 따라 발전량을 즉각 조절할 수 없는 발전원을 의미한다. 원전은 기술적 한계로 발전량 조절이 어렵고, 재생에너지는 날씨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발전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력계통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유연성 전원 확보 방안이 각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전력계통의 안정성은 온실가스 감축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더라도 국가별 실질적인 전원 믹스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력 공급과 수요는 항상 일치해야 한다. 전력수요가 공급을 초과해도 문제지만 공급이 넘쳐도 주파수 급변동 등의 영향으로 대규모 전력망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적은 3~5월, 9~11월, 그리고 연휴와 같은 경부하기간에는 공급 과잉 우려로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의 출력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거나 송출하지 못해 강제로 발전을 중단하는 조치로, 최근에는 원전에도 출력 제한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20년 5월 신고리 3·4호기에서 처음 시행된 이후, 연휴 때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1) 적정 수준의 유연성 전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원전의 출력 감발 조치가 한계에 도달해 가동 중단까지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단위 용량이 크고 실시간 수급 조절이 어려운 원전은 사고 발생 시 전력시스템 안전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개선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2)
이와 같이 에너지 전환 및 전력계통 안정성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서는 국가 에너지 전략을 총괄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내에서 다루어지는 에너지 부문을 분리하여 독립된 ‘에너지부(가칭)’를 신설하는 등의 정부 조직 개편이 요구된다. 미국의 경우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가 존재하며, 영국도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부(Department for Energy Security and Net-Zero, DESNZ)'를 운영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RE100, 에너지 안보, 에너지 전환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에너지는 단순히 산업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 에너지 정책은 산업 발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비전을 결정짓는 중심 축임을 인식해야 한다.
<각주>
1) https://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424 전력계통 초유의 원전 출력 감발 (이투뉴스)
2) 이 문제를 자산 포트폴리오에 비유하자면, 위험도가 높은 투자와 함께 이에 따른 리스크를 헷지할 채권이나 저축 수단을 함께 보유하는 것과 유사하다. 전력설비 역시 경직성과 유연성이라는 특성이 존재하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