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두 번째 읽었지만, 왜 이 소설이 문학사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조에 있어서 화제의 작품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이 부빌이라는 항구도시의 한 도서관에서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의 인물인 드 로르봉 후작과 관련된 자료를 검토하며 일대기를 써 보려고 노력한다. 동시에 가끔씩 들르는 카페, 공원, 맥주 홀 등에서 떠올리는 생각과 브래상 거리, 데 발리에 거리와 투른 브리드 거리 등 이곳저곳을 거닐며 느끼게 되는 도시의 분위기를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한 일기가 소설로 묶어진 것이다. 또한 일기에서는 미술관에 들러서 보게 된 초상화 주인공에 대한 부르주아 의식의 비판과 도서관에서 알게 된 독서광과의 대화를 통하여 작가의 인생관을 피력해 나간다.
한국어 번역본(문예출판사, 1999)의 말미에 첨부된 작품해설로써 알 수 있는 사르트르는 1905년생으로서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열한 살에는 어머니가 재혼함으로써 고아처럼 성장했다. 나중에 그렇게 성장하게 된 사실을 그 자신은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하던 과정에서 그 자신의 자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자식을 소유하고 잔디밭의 돌덩이처럼 짓누르는 존재이지만, 사르트르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롭게 성장해 1921년과 1922년에 걸쳐서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1925년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고, 1928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그 소도시가 ‘구토’의 무대가 된 부빌인데, 그가 서른셋의 나이에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뒷표지에는 “사르트르가 자신의 실존주의 사상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주인공 로캉탱의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 소시민적 권태와 부르조아의 위선, 더 나아가 무의미한 대화들만 주고받는 모든 인간들의 비진정성을 드러내 보인다. 실존을 자각하는 순간 구토를 시작한 로캉탱은 철학교사로 있으며 작가적 명성을 열망하던 사르트르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실존주의 철학의 근저를 이루는 작가의 체험이며, 작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첫 장편인 동시에 앙티로망의 선구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라고 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는데, 두 번이나 읽고서도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독자로서 본인의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았던 문장들을 발췌해서 다시 정리해 봤다.
총 330페이지의 분량 중 중간의 시점인 116페이지에서 주인공이 소식을 끊은 지 5년째인 옛 애인의 편지를 받는다. 이후로 로르봉의 전기를 쓰던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다시 안니를 만나게 될 행복한 꿈에 젖어서 더 이상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로캉탱이 편지를 받은 시점을 중심으로 내용이 양분돼 있는데, 전반의 내용은 안니와 헤어진 이후로 5년 동안 바다를 건너고 여러 도시들을 방황하다가 부빌에 정착하여 로르봉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검토하고 전기를 쓰면서 도서관, 카페, 공원과 맥주 홀 등 그가 찾아가는 이곳저곳의 인상과 도시의 분위기를 일기로 기록한 것이다.
후반에서는 주인공이 안니를 만나 파리에서 새롭게 살아가게 될 꿈에 부풀어 로르봉의 전기를 쓰던 작업을 포기한다. 그가 방황한 5년간의 삶에 회의가 느껴지고, 과거의 무의미한 시간과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잉여적인 자신이었던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쓸모가 없었던 여분의 존재로서 살아 온 과거가 부조리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자체가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마디로 부조리는 아무리 삶의 의미를 찾아 보려고 해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사실이다.
그 사실로부터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게 된 새로운 사조가 사르트르로부터 시작된 실존주의이다. 이 사조의 핵심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사르트르 자신의 유명한 말 속에 함축돼 있다. 이전까지 정의된 존재의 본질적인 다양한 내용들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사랑이 하나님이나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말도 가능하다. 이후로 인간의 실존에 대한 탐구가 더욱 심화됐고, 예술분야에서는 전범(典範)을 중시하고 추종하던 과거로부터 탈피하여 대중예술로 발전했다. 그래서 실존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과 자유 그리고 책임인데, 그것도 삶의 의미가 찾아진 이후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주인공 로캉탱이 파리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된 안니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의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빌로 되돌아오게 된 그가 이번에는 소설을 써 보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 생각이 로캉탱에게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바로 그 소설이 ‘구토’인 것으로 암시되는 결말로 맺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손에 들고 느낀 구토와 공원의 나무 뿌리를 보고서 느낀 구토 등 어디에서든지 자신의 내부로부터 게워내고 싶은 구토는 불투명한 본질에 대한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적으로 실존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해 온 본질적인 이야기들이 주인공에게는 불투명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내용들뿐인 것으로서 구역질을 느끼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28페이지에서 구토의 이유를 "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인 것처럼 그 물체들과 접촉을 갖는 게 나는 두렵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라고 밝혀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