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발현한 은총 의 땅
최원혜
2024년 10월 28일 새벽공기를 마시며 인천공항 가기 위하여 황금성당 앞으로 남편이 데려다주었다.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11박 12일로 성모 발현지로 유럽 성지여행 떠나는 날이었다. 유럽 성지에 가보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일 번 항목 중의 하나이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가느라 지구 끝에 붙은 유럽이라는 곳에 가 보는 것이란 언감생심 꿈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독일 LH719 비행기에 오른 나의 가슴은 부풀었다. 열세 시간이라는 장시간 비행 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염려도 되는 듯하였다. 고작 지난번 가 본 제주도, 일본행 비행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먼 장거리이다. 독일 뮌헨을 경유하여 독일 LH1816 비행기로 스페인 바로 셀로나로 가는길이다.
뮌헨까지 비행시간 13시간 30분 걸린다고 하였다. 자다 말다 몇 시간 비행 중인 것도 모른 채 갑자기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소분압이 떨어져 저 산소증이듯 하였다. 기진맥진한 듯 온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으며 흠뻑 젖은 식은땀이 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이고 죽는구나! 하는 기분 몇초 지나는 듯 하였다. 땀닦아 정신 차려보았다. 언제 그랬었나 하듯 금새 멀쩡 하였다. 기내식으로 배 채우고 커피타임, 와인 한잔하였다. 뮌헨 도착하여 바로셀로나 가기 위하여 환승 수속 하였다. 두 시간 오분 동안 비행 후 바로 셀로나에 내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행하였다. 성지에서 받은 은총이었던가 한국 들어오던 비행 중에는 저 산소 증 증상이 없었다.
둘째 날 가우디의 건축물 작품인 성가정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갔다. 세르반테스는 바로셀로나를 “유럽의꽃”이라고 하였다. 유명한 가우디는 “독창성이라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라는 말로 모든 것의 근원은 신이 창조한 자연을 강조한 인물이다. 가우디 사상의 씨줄이 종교이었다면 날줄은 자연이었다. 바로 셀로나 의 명물인 가우디 건축물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00년이 지난 가우디는 가고 없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출입구는 세 개의 거대한 문으로 구성되어있다. 1891년 만든 동쪽 문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네 개의 첨탑이 완성되었다. 남쪽 문은 영광과 부활을 상징하는 가장 큰 문으로 건축 중이다. 이는 열 두 제자를 상징하는 전부 열 두 개의 첨탑이고, 돔 주위의 네개의 높은 첨탑은 4대 공관 복음인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170m 높이는 중앙탑 주위를 둘러싼다.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탑도 건설 계획이다. 아랫 부분은 땅으로 가라앉는 듯하고 위 부분은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성당은 성경에 나오는 상징들로 물결치듯 이어져 있다. 종탑의 끝부분은 가우디가 즐겨 사용하였던 도자기 모자이크로 마감하였다. 가우디는 이 건물을 돌, 종교, 예술을 지탱하여 나갔는데 스스로 “속죄사원”이라 칭하여 자기희생의 과정으로 여기었다. 성스러운 건축을 위하여 가우디의 희생을 생각하여볼 때 왈칵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눈물을 훔치게 하였다.
셋째 날 구엘 공원 방문 후 몬세랏으로 이동하였다. “검은 성모님” 성상이 모셔진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검은 성모님”성상하나 사왔다. 거기서 호텔 휴식 후 사라고사로 세시간 이동하여 삘라르 성모성당 순례, 삘라르 광장방문 하였다. 성모님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버스로 국도 이용하여 여덟 시간 이동하였다. 루르드에서 묵주기도와 자유 순례로 나는 현시 성체조배 참여하였다. 그때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왈칵 올라오는 눈물은 정녕 회개의 눈물 인듯하였다. 그리고 호텔 휴식하였다. 루르드 야간 촛불 행렬 기도로 묵주기도와 “루르드의 아베마리아”와 같은 찬송가를 부르며 촛불과 마리아상을 들고 성지 산책로를 지나는 행렬과 기도로 이어졌다.
넷째 날 새벽기상하여 조식으로 밀빵, 과일, 음료등 양식으로 먹었다. 이 만보 정도의 도보로 전일 순례로 강행군하는 듯 너무도 힘들었다. 성모님 발현지 동굴 미사, 로사리오 대성당 비오 10세 성당, 성모 발현을 목격한 벨라뎃다 생가, 감옥 까쇼, 벨라뎃다 세례 성당 순례, 자유기도 와 피정하였다. 와인을 국물삼아 하였던 저녁 식사는 니글니글 거려 한식의 국물이 절로 생각났다. 그리고 호텔 휴식하였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님은 1858년 2월11일 첫 번째 발현은 교황 비오 9세가“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Immaculata Conception)”를 믿을 교리로 반포하신후(1854년12월) 3년2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가난한 물방앗간 집에서 출생한 13세 소녀“베르나데트”에게 굴속에 아름답고 어여쁜 한 부인이 계셨다. 그부인은 몸에 백설과 같은 흰옷을 입고 허리에는 하늘색의 띠를 두르고 손에는 묵주를 들고 깨끗한 맨발로는 두 장미꽃을 밟고, 눈은 황홀하게 하늘을 우러러 보고 계셨다. 베르나데트는 아름다운 모습에 즐거움으로 도취 되어 묵주를 꺼내어 영광송을 마치니 귀 부인의 모습은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 양친과 본당 신부께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베르나데트 의 말을 믿지 않았다. 2월14일 베르나데트에게만 발현하셨다. 귀부인의 발현은 2월11일부터 7월16일 갈멜산의 성모의 축일까지 18회나 되었다. 3월25일 주님탄생 예고 축일에 16회째 귀부인의 발현을 본 베르나데트가“오, 부인이여! 당신은 누구시며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옵니까?”하고 여쭈니 귀부인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고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때서야 발현 하신분이 “성모마리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한다.
발현 목적에 대하여도 “여기에 성당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사제에게 말하라”고도 명령하셨다. 또 “죄인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명령하셨다. 다시 베르나데트 개인에게는 “나는 반드시 너를 행복하게 하여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이다.”하고 고마운 약속을 하셨다. 고 한다.
2월 25일 9회째 발현에서는 “샘의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함께한 신자들이 부어준 물을 마시고 손에 받아 세수하였다. 크나큰 은총이었다. 그 때에 베르나데트는 샘이 보이지 않아 손짓 한곳을 파보니까 과연 물이 솟아 났다고 한다. 지금은 수돗물처럼 틀면 물이나온다. 샘이 후에 많은 병자를 영적으로 낫게 하고, 매일 12만2천4백 리터의 물을 내게 하는 루르드의 기적수의 시작이다. 1861년까지 3년 동안 이미 100건가량의 완치 사례가 있었고, 의사 단의 엄밀한 조사에 의해서도“그중 15건은 적어도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기적이다.”라고 결정 되었던것이다.
교회는 1862년 루르드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 발현하신 성모의 요청에 따라 성당 건립하였다. 이성당은 남프랑스의 가장 웅장한 성당의 하나가 되었으며 루르드는 유명한 성지가 되었다. 1891년 발현기념으로 “루르드의 성모 축일”이 제정되고 (2월11일) 1907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하여 공식적인 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하였다.
(20260111.1차작성) 다음글 계속↘
첫댓글 다섯장의 용지를 나누어 두편으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