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 글 읽던 곳을 노래하다. 병서(幷序)
한산(韓山)의 숭정산(崇井山)은 내가 태어나서 2세 때에 부모(父母)가 고향으로 돌아갔으므로 8세 이후에 있었던 곳이고, 교동(喬桐)의 화개산(華蓋山)은 14세 때에 있었던 곳이며, 한양(漢陽)의 삼각산(三角山)은 17세 되던 해 봄에 있었던 곳이고, 견주(見州)의 감악산(紺嶽山)은 그해 가을에 있었던 곳이며, 청룡산(靑龍山)은 그해 겨울에 있었던 곳이며, 서주(西州)의 대둔산(大芚山)은 18세 때에 있었던 곳이고, 평주(平州)의 모란산(牡丹山)은 19세 때에 있었던 곳이며, 중국의 국자감(國子監)은 무자년(1348, 충목왕4)부터 시작하여 신묘년(1351, 충정왕3)에 마쳤는바, 그 사이에 어버이를 뵈러 귀국한 적이 있었다. 일곱 산[七山]을 먼저 쓰고 태학(太學)을 나중에 쓴 것은 바로 일곱 산에서의 성공(成功)을 거두어 태학에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왜 하는고 하면 자손(子孫)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잠깐잠깐 붙여 있었던 승사(僧舍)도 또한 적지 않으나, 그 승사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잊어서가 아니라, 학업(學業)을 이루고 못 이루는 데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산 승경(名山勝境)이 인물을 배양하여 기질(氣質)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고금의 사람들이 칭도(稱道)하여 마지않았으므로, 내가 그 때문에 이것을 노래하여 장차 악부(樂府)에 올려서 무궁한 후세에 전하려는 것이니, 당세에 시(詩)를 잘하는 이는 따라서 감탄하는 일이 혹 있으리라.
한산의 숭정산엔 소나무에 구름 걸쳤고 / 韓山崇井松浮雲
교동의 작은 섬엔 속세의 들렘이 없었네 / 喬桐小島無塵喧
삼각산은 하늘에 꽂혀 암학이 우뚝하고 / 三峯揷天聳巖壑
감악산은 높이 솟아 장단을 내려다보네 / 紺嶽高壓長湍村
청룡산 얼음 절벽은 오두막을 썰렁케 하고 / 靑龍氷崖小屋冷
서림의 대둔산은 연기 낀 창이 어둑했지 / 西林大芚煙窓昏
모란산은 옛 전쟁터를 굽어보고 있는데 / 牡丹俯視涿鹿野
외론 구름 지는 해에 천원이 희미했었네 / 孤雲落日迷川原
함께 글 읽던 동료들은 모두가 호걸이라 / 同游儕輩盡豪傑
광대한 학문 세계에 근원을 궁구했는데 / 學海浩瀚窮淵源
서로 보아서 착하게 연마해도 부족하고 / 相觀而善尙不足
높이 날아 봤자 뱁새는 울을 넘을 뿐이었네 / 高飛斥鷃才踰藩
때마침 중국 천자가 학교를 중히 여겨 / 中朝天子重學校
태학의 선비들이 한창 경전을 토론할 제 / 璧水縉紳方討論
동인으로 취학한 이는 매우 적었는지라 / 東人鼓篋亦甚少
조관의 자제는 어찌 그리도 존귀했던고 / 朝官子弟何其尊
나는 선군이 봉훈의 반열에 오른 관계로 / 先君簉跡奉訓列
전례에 따라 태학에 유학할 수 있었는데 / 援例得以游橋門
훌륭한 교화 받은 지 한 해도 안 지나서 / 螟蛉變化不閱歲
글 지으면 이따금 뛰어나단 칭찬 들었네 / 綴文往往稱高騫
고국에 돌아와 선군 상중에 있을 적엔 / 歸來東海居憂中
번쩍번쩍 흐르는 세월 번개처럼 빨랐어라 / 流光飄忽如電奔
현릉의 초과 때엔 마침 복을 마치고서 / 玄陵初科服適闋
응시한 게 우연히도 장원을 차지했는데 / 射策偶耳叨狀元
중서당의 급제자 환영연엘 참여했더니 / 鹿鳴往會中書堂
관복과 한림 제수로 특별한 은총 입었고 / 賜緋玉署承殊恩
뒤이어 초천 발탁으로 삼중까지 이르러 / 因之超擢至三重
한가히 관록 먹으며 자손 행복케 하였네 / 閑居食祿榮子孫
당시 글 읽던 곳에 머리 돌려 회상하노니 / 回頭當日讀書處
지금도 푸른 이끼에 나막신 자국 남았으리 / 蒼苔至今留屐痕
산신령이 앎이 있다면 내 의당 감사하리 / 山靈有知我當謝
천지와 같이 인물을 배양했으니 말일세 / 養出人物同乾坤
후일 명성의 좋고 나쁜 평판은 차치하고 / 流芳遺臭且不問
우선 노래를 불러 후손에게 남겨 주노라 / 歌之直欲貽後昆
[주-D001] 서로 …… 연마해도 :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서로 보아서 착해지도록 하는 것을 절차탁마라 한다.[相觀而善之謂摩]”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여러 제자(弟子) 가운데 유능한 이 한 사람을 자문역으로 삼아 혼자서 스승에게 질문을 하게 하고 기타 사람들은 그의 문답(問答)만을 듣고서 각각 해득(解得)할 수 있게 했던 수업 방법을 말한다.[주-D002] 높이 …… 뿐이었네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의하면, 붕새는 9만 리나 날아올라 가는데, 뱁새는 날아올라 보았자 고작 두어 길도 더 못 오르고 다시 내려와 쑥대밭에서 뱅뱅 돈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여기서는 식견이나 안목의 협소함을 의미한다.[주-D003] 나는 …… 있었는데 : 옛날 태학(太學)에는 사대부(士大夫)의 자식까지만 유학(遊學)이 허용되었는데, 이때 저자의 부친 이곡(李穀)이 마침 원조(元朝)의 봉훈대부(奉訓大夫) 작위에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주-D004] 현릉(玄陵)의 …… 차지했는데 : 현릉은 공민왕(恭愍王)의 능호이다. 공민왕 2년인 계사년(1353)에 초과(初科)를 실시했던바, 이때 지공거(知貢擧) 이제현(李齊賢), 동지공거(同知貢擧) 홍언박(洪彦博)의 주관하에 저자가 을과 제일인(乙科第一人)으로 급제한 것을 이른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1
牧隱詩藁卷之十七 / 詩 / 讀書處歌 幷序
韓山崇井山。予生二歲。父母歸于鄕。八歲以後所居也。喬桐華蓋山。十四歲所居也。漢陽三角山。十七歲春所居也。見州紺嶽山。其秋所居也。靑龍山。其冬所居也。西州大芚山。十八歲所居也。平州牡丹山。十九歲所居也。大都國子監。始於戊子。終於辛卯。其間有省親之行。前書七山。後書璧雍。所以收七山之成功。而進於大學也。歌之何。示子孫也。暫寓僧舍。亦且不少。然不及者。非忘之也。不足以關學業之成虧也。名山勝境。能養人物。以變氣質。古今人稱道之不置。予故歌之。將以播之樂府。傳之無窮耳。當世之能詩者。其有以從歎之哉。
韓山崇井松浮雲。喬桐小島無塵喧。三峯揷天聳巖壑。紺嶽高壓長湍村。靑龍氷崖小屋冷。西林大芚煙窓昏。牡丹俯視涿鹿野。孤雲落日迷川原。同游儕輩盡豪傑。學海浩澣窮淵源。相觀而善尙不足。高飛斥鷃才踰藩。中朝天子重學校。璧水縉紳方討論。東人鼓篋亦甚少。朝官子弟何其尊。先君簉跡奉訓列。援例得以游橋門。螟蛉變化不閱歲。綴文往往稱高騫。歸來東海居憂中。流光飄忽如電奔。玄陵初科服適闋。射策偶耳叨壯元。鹿鳴往會中書堂。賜緋玉署承殊恩。因之超擢至三重。閑居食祿榮子孫。回頭當日讀書處。蒼苔至今留屐痕。山靈有知我當謝。養出人物同乾坤。流芳遺臭且不問。歌之直欲貽後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