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명 이야기
산동-이룡산 |
청주에 있는 산적이 횡행하는 악명높은 세산중 하나. 산꼭대기에는 보주사라는 절이 있다. 산에 오르는 길은 하나밖에 없는 데다 절의 관문은 세겹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을 모두 잠그면 안으로 침입 불가능한 요새. 절 좌우엔 험준한 산이 우뚝솟아 있고 세 개의 관문에는 포석, 강궁, 경노 등과 죽창이 늘어서 있다. 이 절은 등룡이 수하의 오륙백명과 함께 근거지로 삼고 있었는데, 후에 양지, 노지심에게 빼앗긴다. |
산동-와관사 |
고찰. 상당히 큰 절인데 단이 없는 탁침사. 최도성이란 행각승이 구소을이란 도인을 데리고 와서 절의 주지로 앉히지만 그들의 극악무도한 행동 탓에 절은 황폐해진다. 그 모습을 보면, 종루는 쓰러지고, 당은 다 무너져 이끼가 끼었으며, 관음상에는 가시나무가 엉켜 자랐고, 산문의 인왕상은 다 망가졌을 정도. 최도성과 구소을은 절의 방장으로 살며 술과 재물과 여자로 둘러 싸여 있었는데 노지심과 사진이 이를 퇴치했다.
|
산동-양산박 |
이야기의 중심지. 제주 관하의 늪. 황하의 범람으로 생긴 구덩이. 수심은 낮지만 북쪽 3백리, 동서 백리의 거대한 곳으로, 이야기 속에선 주위 8백리로 표현되어 있다. 안에는 완자성과 육아와 가 있고, 산채에는 금사탄으로 상륙한다. 처음엔 왕륜이 근거지로 삼았으나 조개에게 빼았겼다. 후에 송강이 산채의 주인이 되어 108명의 호걸과 함께 체천행도-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라 의 깃발을 올렸다. 현재는 간척으로 소멸되었다.
|
양산박(梁山泊) |
어느덧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한 양산박 호걸들이 마침내 108명에 달하게 된다. 이 때, 송강은 호걸들과 함께 그 동안 싸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은 무수한 영혼들을 위한 위령제 겸 이레에 걸쳐 충의당에서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이레 째가 되던 날 새벽에 송강이 꿈도 생시도 아닌 듯한 몽롱한 상태에서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충의당 밖 땅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 곳을 파 보니 비석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양산박 108호걸들의 이름이 차례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말 할 나위 없이 송강은 양산박 통령이 되고, 나머지 호걸들도 이미 하늘이 정해 준 대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양산박 산채를 새롭게 구축한다.
108명의 호걸들이 새로운 각오를 다짐한 양산박에 언제 뇌성 벽력이 칠지 모를 먹구름이 낀다. 추밀사 동관이 동경에서 10망 대군을 몰고 양산박을 정벌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진을 펼치고 신출 귀몰하는 양산박 호걸들 앞에서, 동관은 참패를 당하고는 도망쳐 동경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태위 고구가 20만 병력을 동원하여 다시 양산박을 토벌하러 오지만, 고구도 무참히 패하고 포로가 되는 수모를 당하며 송강에게 목숨을 구걸하여 동경으로 간다.
그 후, 간신들의 농간에 눈멀고 귀 멀어 지내던 휘종 황제가 연청을 만남으로써 그 동안 간신들이 저지른 기막힌 사실을 소상히 알게 된다.
그리하여 선화 4년 봄 2월, 황제는 이윽고 송강을 비롯한 108명의 양산박 호걸들에게 대특사령을 내린다. 칙사 숙원경은 제주에 이르러 태수 장숙야를 데리고 양산박 수호에 도착하는데, 이 사람들이야말로 청렴하고 학처럼 맑은 선비들이었다.
왕륭이 양산박 수호에 산채를 세우고, 송강이 탁탑천왕 조개의 뒤를 이어 통령이 되어 替天行道의 기치를 내걸고 호걸들과 의롭게 살아온 보람이 있어, 양산박에는 마침내 특사령의 광명이 비친 것이다.
3월도 지난 어느 날, 양산박의 재산을 정리한 송강을 비롯한 108호걸들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드디어 그 파란 많던 義의 물가를 떠나 동경으로 향한다.
「양산박은 산동성 제주에 있는 수향(水鄕)으로 그 주위가 몇 백리인지 모른다. 어림잡아 800리라고 할 뿐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 때에는 무섭기까지 하나, 맑은 날에는 산을 에워싼 흰 구름, 태고의 밀림, 그리고 끝없는 갈대 숲과 물가는 마치 당나라 시대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경치이다.」
양산박은 <수호전> 본묵 속에 이렇게 그려 져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양산박은 하북성과 하남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동성 서쪽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해발 179미터인 양산을 중심으로 동평호(東平湖)라는 호수 일대의 400 제곱 킬로미터에 걸친 지역이 수호전의 무대인 양산박이다.
무송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은 경양강, 완소이, 완소오, 완소칠 삼형제가 살았던 석갈촌(지금의 지명은 석묘촌이다.) 채원자 장청과 손이랑이 주막을 차리고 있던 십자파 등의 지명도 현재 남아 있다.
물론 황화의 수로가 그 당시와는 다르므로 지난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볼수는 없지만, 중국에서는 양산박 일대의 복원 공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양산 기슭에 '수호 진열관'이 개관되어 주요 등장 인물들의 상과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또 산위에는 단금정, 흑풍정이 세워져 잇으며, 쌍도끼를 손에 들고 있는 흑선풍 이규의 거대한 상도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산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108개의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108명의 호걸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
산동-등주 |
산동 반도의 끝인 발해 연안에 있는 주. 앞바다에는 귀양지인 사문도가 있다. 병마제할인 손립은 성내의 병영에 살고, 등주 관청내에선 악화가 간수를 서고 동문밖 십리패에서는 손신 고대수가 선술집을 운영한다. 등주성 밖의 산은 많은 이리, 호랑이, 표범류가 있어 주위 사람들을 겁주었는데, 그것을 잡아 생계를 꾸리던 자가 바로 산기슭에 사는 수렵꾼 해진과 해보이다. 무고하게 옥에 갇힌 형제를 구출하기 위해 손립, 손신이 등주 성내를 소란스럽게 한다.
|
등주(登州) |
어느 날, 등주 관아에서는 기한부로 호랑이를 퇴치하라는 엄명이 내린다. 사냥꾼 해진과 해보는 기한의 마지막 날 문제의 호랑이를 퇴치하라는 엄명이 내린다. 사냥꾼 해진과 해보는 기한의 마지막 날 문제의 호랑이를 화살로 명중시켜 죽였으나, 그 호랑이는 마을의 악질 부호인 모중의의 집 뒤뜰로 떨어진다. 해진과 해보가 호랑이를 찾으로 모중의의 집으로 갔으나, 모중의는 호랑이를 감추고 오히려 누명을 씌워 관아에 고발하여, 해씨 형제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공목인 왕정은 모중의 집안의 사위인데다가 관아의 부윤 이하 모든 관리들에게 뇌물을 받친 뒤였으므로, 해진,해보의 목숨은 바람앞에 등불처럼 위태롭다.
그런데 그 때, 해씨 형제를 알아보는 옥졸이 있었다. 옥졸의 이름은 악화로서, 그는 마침 해씨 형제와 친분이 있는 손신의 형 손립의 처남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악화로부터 해씨 형제의 소식을 들은 손신이, 등주 수비대의 제할로 있는 손립은 물론 등운산의 산적 추연, 추윤과 힘을 합쳐, 해보를 감옥에서 구출하는데 성공하여 일행이 함께 양산박으로 떠난다.
|
산동-도화산 |
청주에 있는 산.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산 주위는 깎아지는 절벽들이다. 산에 오르는 길은 하나밖에 없고 주위는 풀로 뒤덮여 있다. 이충과 주통이 산채를 갖추어 수하의 오륙백명을 인솔하고 주위 마을을 황폐케 만드는데 관군은 손도 못대는 실정. 산록에 있는 도화촌의 유태공의 딸을 주통이 강제로 아내로 삼으려 하나, 노지심에게 저지당한다. 이 때 이충 일당은 노지심을 산채로 맞으려 하지만 노지심은 산채의 금품을 가지고 나가 절벽을 굴러 떨어져서는 도망쳐 버린다.
|
산동-동평부 |
양산박의 동쪽에 있는 도시. 성밖 40리에 안산진이 있고, 성내 서쪽에는 사진과 친숙한 기녀 이서란이 있는 유곽이 있다. 초두에 등장하는 부윤 진문소는 통찰력이 예리한 사람으로, 형의 원수를 죽인 무송을 감형시켜 준다. 후반에 등장하는 부윤은 동관의 이전 가정교사였던 정만리로 지위를 이용해 주민을 괴롭힌다. 병마 도감인 쌍창장 동평은 정만리의 딸을 아내로 삼고자 하나, 정만리가 전혀 승낙해 주지 않자, 둘의 사이는 나빠졌다.
|
산동-등운산 |
등주교외에 있는 산. 추연, 추윤이 산채를 갖추나 규모는 작아서 수하엔 팔구십명 정도. 그 중에서도 추연이 신뢰할 수 잇는 자는 20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들은 손신에게서 등주성의 감옥파괴에 참가할 것을 의뢰받고 승낙, 산채를 걷어치우고 수하의 20명을 데리고 손립, 손신과 함께 해진, 해보 형제를 옥에서 구출, 양산박으로 향한다. 후에 '수호후전'에도 등장하고, 등주를 시끄럽게 했던 손립, 난정옥, 완소칠이 버티고 있는 이야기 전반의 중심지 중 하나다.
|
경기-동경 |
대송국의 수도. 개봉부. 변수를 비롯 내기의 하천의 사방에서 흘러드는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인구는 백만 이상이라 하고, 밤에도 번화해서 불야성인 당시 세계 제일의 대도시이다. 성내 거리에는 동경의 화괴, 이사사의 집이 있는데 이 집과 왕궁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거리에서 동화문을 들어가면 왕궁이 있는데 이곳엔 시진전과 송강이 황제를 알현했던 문덕전, 그리고 송강, 왕경, 전호, 방랍의 사대 반란자 이름이 쓰여진 예사전 등이 있다.
|
동경개봉부(東京開封府) |
정치보다는 풍류를 더 즐기는 휘종 황제는 그의 유약한 성질과 풍류적인 기질 떄문에, 태사 채경, 태위 고구, 양전, 추밀사 동관 등 간신들 틈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그러므로 나라 안의 사정은 몹시 어지럽고 국운은 날로 기울어져 가고 있으나, 황제는 그러한 사정에는 너무나도 어둡기만 한 채 동경 마행가에 있는 이사사의 집에 드나들며, 성가신 나라 문제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한다.
선화 3년, 동관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양산박 토벌에 나섰으나, 그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동경으로 도망쳐 와 숨어 있으며, 다시 고구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양산박 토벌길에 오르지만, 그도 역시 백성들에게 온갖 피해만 입히고 지리 멸렬해진다.
결국, 고구는 온갖 파란 끝에 동경에 돌아가면 양산박에 특사령이 내리도록 힘쓰겠다면서 송강으로부터 목숨을 구걸하여 소양과 악화를 데리고 동경으로 데려오지만, 그는 본래 타고난 간신이었다. 고구는 동경에 도착하자 그 날부터 마음이 싹 변하여 양산박에서 데리고 온 소양과 악화를 구금한 채 갖은 음모와 모략을 펴는데, 휘종 황제는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아름다운 이사사의 집에 드나들며 심신의 피로를 풀며 지낸다.
그러나 양산박의 오용은 동경의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송강과 오용은 곧 대종과 연청을 동경으로 보내 갇혀 있는 소양과 악화를 구출하는 한편, 간신들의 음모에 대한 대책을 세우게 한다.
임무를 부여받은 낭자 연청은 그런 일은 참으로 잘 해 낼 수 있는 적임자였다. 신행태보 대종과 함께 동경으로 달령촌 연청은 이사사의 집에서 드디어 황제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그리하여 연청은 그 동안 양산박에 갔던 칙사며 동관과 고구에 대한 일들을 낱낱이 황제에게 고할 수 있었다.
연청에게서 모든 사실을 소상히 들은 황제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러나 휘종은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으므로, 그렇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간신들을 응징하지 못한 채, 단지 송강 이하 108명의 양산박 호걸들에게 대특사령을 내려, 드디어 문덕전에서 하례를 받게한다.
|
경기-맹주 |
귀양인 무송이 귀양간 장소. 주의 뇌성평안채인 전옥의 아들이 금안표 시은이다. 맹주성 동문박 사오십리에는 쾌활림이라는 시장이 있는데 상인들로 붐빈다. 예전엔 시은이 이 일대의 여인숙, 환전상, 유흥장등을 담당했는데 신임 단련사장과 장충에게 빼앗기게 되어 무송에게 도움을 청한다. 맹주 교외의 십자파에는 장청과 손이랑 부부가 노상강도 술집을 경영하여 여행자의 인육만두와 몽한약을 넣은 술을 팔고 있다.
|
맹주(孟州) |
무송은 양곡현에서 형수 반금련과 서문경을 죽이고 맹주 뇌성으로 유형되지만, 다행히 그 곳에서 관영의 아들인 금안표 시은의 도움을 받는다. 어느 날 무송은 시은의 간청을 받고 쾌활림의 유흥가에서 장문신을 내쫓고 유흥가의 세력권을 본래대로 시은에게 찾아 준다. 그러나 장문신은 총독의 직속인 장 군단장의 심복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송에게 해가 돌아와, 무송은 멀리 은주 뇌성으로 유형된다. 은주 뇌성으로 가는 길에는 무송을 죽이려는 무서운 함정이 있었으나, 무송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호송하는 두 포졸을 죽인 후에, 맹주 뇌성으로 돌아가 총독, 군단장, 장문신 등을 죽여 맹주성에 파란을 일으킨다.
복수를 한 무송은 맹주로 유형되어 올 때 변을 당했던 십자파 주막으로 가서 채원자 장청과 손이랑의 도움으로 행자 모습을 하고 이룡산을 향해 떠난다.
|
경기-우두산 |
별로 높지는 않으나 산의 형태가 소머리와 닮았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 산꼭대기에는 도원이 있는데 송강, 동해라는 두 산적이 오륙백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도원을 탈취, 본거로 삼고 있다. 그 두사람은 송강, 시진을 속여 형문진 유태공의 딸을 빼앗았다가 이규와 연청에게 처벌받는다. 이 당시 장강 연안 건강부의 남쪽에 우두산이 있었다. 또 <설악전전>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금군에게 쫓기어 도망쳐 들어간 우두산은 담주에 있다.
|
강남-항주 |
전당강 하구에 있는 도시. 주위 80리. 산천이 아름답고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와서 소주와 함께 하계의 낙원이라 전해진다. 성밖의 서호에는 소동파가 지은 고산이란 아름다운 절경이 있고, 남원과 영은사 등 명소도 많다. 방랍의 난 때 그 점령하가 되어, 태자 방천장이 지킨다. 그는 네명의 대장과 24명의 편장을 데리고 세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양산박군을 괴롭혔다. 항주는 송의 천도로, 그 수도 임안부가 되어 번영했다.
|
항주(杭州) |
항주로 진격하는 송강은 이미 동지를 11명이나 잃은데다가, 정찰을 나갔던 서녕과 학사문 까지 적의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어는 날, 장순의 영혼이 송강의 꿈에 나타난다. 이준과 함께 한쪽 진격로를 맡은 장순은 실제로 밤중에 서호를 헤엄쳐 가 항주성 밖 용금문에서 무참하게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노준의를 따라갔던 주통 또한 정찰을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원수를 갚으려던 동평과 몰우전 장청조차 독송관에서 전사한다.
송강은 노준의로 하여금 덕청현에 있는 호연작을 데려오게 하여 항주성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 준비를 하는데, 덕청현으로 가던 노준의는 봉구진에서 다시 뇌횡과 공왕 두 장수를 잃는다.
모든 군사를 한 곳에 총 집결 시킨 송강은 곧 항주성 공격에 나섰으나, 반란군 장수 석보의 유성추에 삭초와 등비가 목숨을 잃고, 유당과 포욱마저 석보에게 희생된다.
송강이 이렇듯 많은 장수를 잃으면서 반란군의 양곡선을 이용하여 성을 함락시켰을 때는, 완소칠을 따라갔다가 목숨을 잃은 후건과 단경주를 포함하여 양산박에 함께 온 형제를 14명이나 잃은 뒤였다. 결국 항주성에서 완강히 버티던 남천왕 방천장은 도망치다가 장횡의 육신을 빌려서 나탄난 장순의 영혼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
강남-소주 |
태호 동쪽에 있는 주. 동양의 베니스라 할 정도로 수운이 발달한 상업도시. 성밖에는 당나라 장계의 시로 유명한 한산사와 호구산이란 명소가 있다. 성벽은 견고하고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굴로 둘러싸여 있다. 강남의 반장 방랍에게 점령되어, 방랍의 동생 삼대왕 방모가 팔표기라 불리는 맹장을 데리고 지키고 있다. 양산박군은 무진현 공략 후 소주를 둘러싸고 유유장 비보의 협력을 받아 소주탈환에 성공한다. 방보는 오작교 근처에서 무송에게 살해된다.
|
소주(蘇州) |
방랍의 동생이 삼대왕 방모가 지키는 소주는 태호에 위치해 있다. 방랍 토벌에 나서 벌써 8명의 동지를 잃은 송강은 군사를 휘몰아 소주로 쳐들어간다. 윤주에서부터 도망쳐 단도현, 상주, 무석현을 거치면서 번번이 송강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여추밀은 여기서 결국 서녕의 창에 그 끈질긴 목숨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소주성의 수비는 여간 견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송강은 때마침 강음에서 승전 보고를 하러 온 이준에게 수군을 이용하여 공격할 길을 찾아보라고 명령한다.
명령을 받은 이준은 동위, 동맹과 정찰을 나갔다가 유류장에서 수적인 비보 등에게 붙잡혀 위기를 당하지만, 그들은 결국 서로 의형제를 맺게 되어 성을 빼앗는데 협력한다. 이준은 비보가 마련한 60, 70척의 어선과 어부들을 동원하여 마침 방랍의 아들 방천장에게로 보내는 수송선을 빼앗고는, 송강에게 기별하여, 계책을 세우게 한다.
그리하여 배 밑창에 이규, 포욱, 항충 등의 군사를 싫은 수송선은 반란군의 눈을 속이고 성 안으로 들어가 일시에 소주 성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함락시킨다. 이 싸움에서 방모는 무송의 칼에 목숨을 잃지만, 여기서도 송강은 또 추군마 선찬을 잃고 만다.
|
강남-유유장 |
태호 연안의 마을. 주변은 깊은 입강으로 되어 있고, 배를 사용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가호수 20여채의 이 마을은 비보, 예운, 상청, 적성이란 네 명의 어부가 잡고 있고 40-50척의 어선을 가지고 있다. 이준은 소준을 정찰할 때 비보와 만나 그들과 의형제를 맺는다. 비보는 관군의 소주 공략을 도운 뒤, 이준에게 관을 버리고 천수를 누릴 것을 진언한다. 이준, 동위, 동맹은 이 말에 따라 방랍 정벌 후 남쪽으로 가버린다.
|
강남-청계 |
목주 관아의 현. 강남의 반장 방랍의 본거. 방랍은 청계현의 방원동에 옥전, 내완, 궁궐을 조영하고 문무 장관을 임명, 왕을 자청했다. 방랍의 판도는 청계를 중심을 8주 25현에 이르고, 장강이란 천현의 호수가 있어 세력이 대단히 성했다. 후에 관군의 정벌을 받고 청계는 송강, 노준의에게 두 방향으로 부터 공격받아 낙성. 계속해서 방원동도 떨어 뜨렸으나 이때 완소칠이 위천자, 방랍의 황포를 걸치고 관병을 놀리는 일막도 있었다. |
회서-산남주 |
왕경이 점령한 주. 남쪽은 동정호 상수를 끝으로 하고 북쪽은 함곡관 낙수가 가까이 있는 초나라와 촉나라의 경계에 있는 요새지. 그러나 송 시대엔 지명이 없는 가공의 주다. 성벽은 견고하고 성밖엔 양수가 흐른다. 성의 수장은 왕경의 장인 단이.
성 교외에는 융중산이 있고, 관군인 선본동푱, 주명은 왕경의 장 미성을이 산록에서 일축하고 본대의 도착을 기다렸다가 산남주로 향한다. 산남주는 중추절 달밝은 밤 양산박군 수군 두령의 활약으로 함락된다.
|
회서-방산 |
방주성 밖의 정산보 서쪽 20리에 있는 산. 산에는 천연의 석실이 있는데 ㄱ것이 방옥처럼 되어 있어 이 이름이 생겼다. 원래 산적이던 요립이 수하의 오륙백명을 데리고 성채를 갖추고 있었는데, 관병에게 쫓기어 온 왕경 일당에게 살해당하고 산채는 빼앗기게 된다. 왕경은 방사을 근거지로 관병과 싸울 때마다 이것을 파괴하는 데다 주변 지역을 약탈하기도 한다. 산채의 병력은 증대되어 왕경은 겨우 2개월 만에 이만명을 거느리게 된다.
|
회서-남풍부 |
회서의 반장 왕경이 방주 다음으로 점령한 거리. 왕경은 이 땅을 본거로 정하고 궁전을 짓고 문무백관을 임명한다. 연호를 바꾸고 자신을 초왕이라 칭한 후 오만여 수병을 남풍부에 둔다. 후에 양산박 군에게 정복당해 하남부, 형남부 등을 관군에게 빼앗기자 왕경은 출진하여 남풍부 교외에서 싸움에 임한다. 그러나 남풍부를 빼앗기고 퇴각하다 청강에서 붙잡히낟. 관군은 성내에 모여 태평연을 베푼다. 송시내의 남풍은 부주가 아니라 건창군 관하의 현이다.
|
회남-축가장 |
운주 관하의 마을. 독룡산 기슭에 있고 넓이는 사방 30리. 가호수는 육칠백호인데 모두 소작은으로 마을주인은 축조봉. 저택은 독룡산 바로 앞의 독룡강 위에 있다. 그의 세 아들은 축씨의 세 호걸이라고 칭해지는데 모두 무예에 뛰어나다. 저택엔 그 외에 무예사범인 난정옥과 이천명정도의 강한 남자들이 있다. 마을 주변의 숲속길은 구불구불하여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을 동쪽에는 이가장, 서쪽엔 호가장으로 서로 동맹을 맺고 있다.
|
회남-이가장 |
운주관하의 마을. 독룡강의 축가장 동쪽에 있다. 주인장은 박천조 이응. 그의 거처는 외곽이 수로로 둘러싸였고 흰 벽과 큰 버드나무 수백그루에 뒤덮여 있다. 축가장과 그 서쪽의 호가장은, 서로 동맹을 맺고 있고 세 장의 병력을 합하면 2만여명에 이른다. 하지마 시천이 축갖아에서 닭을 훔치고 이응이 이것을 도우려 했던 일로부터 동맹은 깨진다. 축가장이 양산박에 공격받자 중립을 지키다가 축가장이 패하자 양산박으로 입성한다.
|
회남-망탕산 |
서주 패현에 있는 산. 한나라 고조 유방이 큰 뱀을 베고, 병사를 일으킨 땅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유방이 조정으로부터 표적으로 의심 받고 숨었던 장소. 혼세마왕 번서가 항충, 이곤과 함께 수하의 약 3천명을 거느리고 노상강도, 도적질 등을 하고 있다. 그들은 양산박을 합여하고자 하나, 그것을 들은 양산박에게 오히려 공격 당한다. 초반전은 항충, 이곤의 분전으로 승리하지만 다음 전투에서 충분한 준비를 하고 등장한 번서의 요술이 공손승에게 패해 결국은 양산박에 합병된다.
|
호북-황문산 |
무위군에서 양산박을 향해 삼일 거리에 있는 산. 구붕, 장경, 마린, 도종왕이 수하의 사오백명을 이끌고 산채를 갖춘다. 그들은 송강을 만나려는 마음으로 강주와 무위군을 떠들썩 하게 했던 양산박 군의 동향을 살피고, 군단이 황문산 기슭을 지난다는 것을 알고는, 산채의 모든 사람이 나가 맞이한다. 무위군 습격을 끝마치고 다섯 부대로 나뉘여 차례로 도착하는 호걸들을 산채로 안내하여 환대한 그들은, 송강의 권유로 양산박에 몸을 맡기기로 하고 황문산을 뒤로 제 6대를 편성키로 했다.
|
호북-게양진 |
심양강 연안에 있는 거리. 인가가 밀집되어 있어 번화하다. 지역 유지는 목홍, 목춘 형제. 거주지는 변두리의 시골집으로 부친이 건재하다. 교외의 게양진 정상부터 기슭일대의 두목은 이준과 이립, 심양강은 장횡, 장순이 두목으로 이들을 세 곳의 두목이라 한다. 강주로 귀양을 가게 된 송강은, 게양진에서 고약장수 설영과 만나지만 설영이 유지인 목형제의 허가 없이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송강의 명성과 이준의 중개로 무사히 넘어간다.
|
호남-강주 |
심양강 연안에 있는 거리. 현재의 구강. 강주는 인구가 많고 생산물도 풍부해서 세금 수입이 짭짤한 땅. 부윤은 채경의 아들 채득장. 그의 인품은 사치스럽고 교만하여 권력을 등에 업고 행동하는 일이 많다. 송강의 귀양지에서 옥지기 대종과 만난다. 거리에서는 이규가 배회하고 장순이 생선 도매상을 경영한다. 또 강 연안에는 백락천과 관계된 비파정과 강주의 명소 심양루란 요정이 있다. 송강은 심양루의 벽에 모반의 시라 할 수 있는 시를 써서, 호걸들이 강주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
하북-분양 |
하북의 반란군 수령 전호에게 빼앗긴 주. 전호는 분양에 궁전을 짓고 문무백관을 임명, 자신을 진왕이라 칭했다. 전호는 위승주를 본거로 하고 분양은 전호의 동생 전표가 지키고 있었는데 노준의는 분양 입성 후 전호군의 신구동대에게 공략받아, 그 요술 때문에 고생한다. 그래서 송강은 공손승과 교렬을 지원군으로 보내 마령의 요술을 파괴시킨다. 마령은 노지심에게 붙잡혀 조정으로 귀순한다.
|
하북-북경 |
대명부. 송의 4도 중 하나. 하북의 대도시로 양지가 귀양간 땅. 유수사 양세결은 태사 채경의 사위. 태수는 왕모, 병마도감은 이성과 문달. 성내에는 취운루라는 명소와 노준의의 거처가 있다. 양산박 군은 노준의를 산채로 맞으려고 대명부를 소란케 한다. 성밖 25리에 노준의가 죽을 뻔 했던 괴수파가 있고 35리에는 비호욕이라는 산록이 있다. 그 앞에는 유가탄이 있고 관군과 양산박군은 여기서 서전을 시작했다.
|
하북-증두시 |
3천여 가옥의 거리로 동쪽에는 법화사가 있다. 천연의 호수로 둘러싸였고 호수 바깥으로는 버드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마을의 증씨는 금나라 출신. 사는 곳을 증두부라 한다. 증두부에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모두 무예에 뛰어나 증가의 다섯호랑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양산박에 대항의식이 있어, 병사도 7천여명을 모으고 호송마차도 50대를 만들어 양산박의 두령을 붙잡을 거라 호언 장담하고 있다. 양산박이 공격해 오면 4개의 산채를 갖추고 북쪽 산채를 본거로 해 공격을 맞는다.
|
증두시(曾頭市) |
능주 서남쪽에 위치한 증두시에는 '증가의 오호'라고 불리는 용맹한 오형제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사문공이라는 병법가와 소정이라는 무술 사범까지 두고, 증가네 성을 중심으로 하여 증두시를 요새로 이루고 있으며, 양산박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려고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금모호 단경주가 명마 한 필을 양산박에 헌납하려고 가지고 가다가, 증두시에서 증가 형제들에게 빼앗기고는, 양산박에 가서 증가 형제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소식을 접한 양산박에서는 평소에 항상 양산박을 넘보아 온 증가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뿌리뽑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증가 토벌에 나선다. 증두시 토벌에 나선 조개는 5000여 병력을 거느리고 출동하는데, 갑자기 대장기의 깃대가 부러지더니, 끝내 조개가 사문공의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는다. 조개는 양산박에서 치료받던 중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난다. 얼마 후에 양산박 호걸들은 증가 형제들에게 맺힌 원한을 풀기 위해 다시 증두시를 공격하여, 증가 일족을 몰살시키고 사문공을 생포하여 양산박으로 끌고가, 그의 목을 조개의 제단에 바쳐 영령을 위로한다.
|
하북 - 음마천 |
배선이 등비, 맹강과 산채를 갖추었던 장소. 수하엔 300여명. 비축 재산은 열수레 이상, 양곡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들의 병력은 대종의 중개로, 모두 양산박에 흡수, 합병 되었다. 음마천 이름의 유래는 산의 형태가 아름다운데다 강이 봉우리를 둘러싸듯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산 뒷편에 있는 단금정으로부터의 경치는 '망망한 들과 물, 은은한 청산. 수많은 노을에 비치고, 구름에 나부끼네' 라고 할많큼 절경이다.
|
음마천(飮馬川) |
100일 동안 휴가를 받고 고향으로 떠난 공손승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신행태보 대종이 그를 찾아 나선다. 대종은 도중에 금표자 양림을 만나 공손승을 찾아가다가 음마천에 들른다. 음마천에는 배선, 등비, 맹강이 산채를 구축하고 산적 노릇을 하고 있는데, 거기 가면 공손승 소식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양림의 말에 따라 두 사람이 음마천으로 갔지만 헛걸음만 친다.
|
하북 - 동창부 |
양산박의 북쪽, 황하 건너편에 있다. 자금과 식량이 풍부한 곳. 태수의 이름은 모르나 청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병마도감은 몰우전 장청이고 부장은 공왕, 정득손의 투기 트리오가 성을 지킨다. 자금과 식량이 풍부하여 양산박의 공격을 받지만, 장청의 활약으로 세 번이나 격퇴에 성공한다. 또 동창부는 명시대의 명칭. 송시대엔 박주라고 했고 요성, 고당, 당읍, 박평 네현을 다스렸다. 양산박과 대명부에 가까워 그 이름은 종종 등장한다.
|
하북-고수산 |
구죽관하에 있는 산. 상문신 포욱이 산채를 구축하고 있고 수하인이 육칠백명. 좋은 말도 이 삼백두 있다고 한다. 포욱은 이규, 초정을 맞아, 이규의 설득으로 양산박에 들어가기로 결의한다. 관승의 능주공략에 가담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나 도중에 관군에 붙잡혀 호송중인 선찬, 학사문을 구출. 능주에 도착해선 북문으로 성내에 난입하여 불을 지르고 관군의 금전과 식량을 빼앗아 퇴각한다. 고수산에 속하는 구주는 송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가공의 지명이다.
|
하북-고당주 |
고당주란 원시대의 명칭. 송에서는 고당현이다. 주의 성은 크지 않지만 사람은 많아 군사력도 크다. 성내에는 시진의 삼촌 시황성의 거처가 있다. 지부 고렴은 고구의 종형제로, 권세를 빌미로 안하무인격인 행동거지를 일삼는다. 시진을 붙잡음으로 양산박 군과 결전하게 된다. 고렴은 주성의 장병외에 비천신병이란 직속 정예 부대 300을 이끄는데 고렴의 요술로 비천신병은 비길데 없는 강함을 발휘해 양산박 군을 희롱한다.
|
고당주(高唐州) |
창주에 있던 소선풍 시진은 숙부인 시황성이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이규를 데리고 고당주로 달려온다. 그러나 시황성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고당주에는 시진을 엄청난 사건으로 몰아 넣는 무서운 모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규가 고렴의 처남이며, 시황성을 죽게 한 은천석을 도끼로 쳐서 죽이자, 시진은 스스로 포졸들에게 몸을 맡겨 고당주 감옥에 갇힌다. 그리하여 시황성의 저택은 고렴의 별장이 되었고, 고렴에게 원한을 산 시진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한편, 이규에게서 시진의 소식을 들은 양산박에서는 여러 두령들이 7000여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고당주로 달려온다. 그러나 고당주 부윤인 고렴이 비천 신병을 거느리고 환술을 부리며 대적하는 바람에 양산박군은 오히려 패전만 거듭한다. 이 때, 대종을 따라 고당주로 달려온 공손승이 도술로써 고렴의 환술을 무찌르고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리하여 고당주 성을 점령한 양산박군은 여기저기 시진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며칠만에 드디어 시진이 깊은 우물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이규가 밧줄을 맨 소쿠리에 앉아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시진을 구출한다.
|
하북-능주 |
대도 관승의 고향이다. 능주단련사인 성수장 단정규, 신화장 위정국은 관승의 전 부하. 조정으로 부터 양산박 토벌의 칙령을 받으나, 반대로 관승이 이끄는 5천의 병사에게 공격당한다. 단정규, 위정국 등은 각각 5백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성밖에서 공격을 맞는다. 능주군은 선찬, 학사문을 잡는 등 선전하지만 고수산의 산적 포욱이 능주에 난입하면서 상황은 일변한다. 결국 단과 위 두 장사는 관승의 설득으로 양산박에 들어간다. 송시대에 능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
하북 - 계주 |
당시엔 요나라령이었으나 이야기 속에선 송나라 령으로 등장. 성내에는 양웅이 살고, 계주 관하의 구궁현 이선산 기슭에 공손승의 친가가 있다. 이선산에는 자허관이란 도관이 있고, 공손승의 스승 나진인이 있다. 후에 요나라는 계주를 점령하고 요 국왕은 동생 야율득중에게 지키게 했다. 양산박 군의 요나라 정벌 때, 양웅은 '계주는 조세 수입도 많고 쌀과 밀 등도 풍부해서, 말하자면 요나라의 보고이다. 계주를 차지하기만 하면 그 다음엔 쉽게 손에 들어온다' 라고 그 중요성을 말했다.
|
계주(계州) |
중국 대륙 북방 연경 근처에 위치한 계주 거리에서, 양웅이 군부대의 장보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을 때, 석수가 달려들어 양웅을 구해 준 게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석수는 양웅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석수는 양웅의 장인인 반 영감과 정육점을 운영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데, 어느 날 양웅의 아내 반교운이 보은사 중과 가까이 지내는 낌새를 알아채고 양웅에게 말해 주지만, 양웅은 석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석수는 양웅과 헤어져서 양웅의 집 동정을 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석수는 양웅의 집에서 반교운과 밤을 지새고 나오는 보은사 중 배여해를 죽이고, 밖에서 망을 보던 중까지도 죽인다. 그제서야 양웅은 석수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석수는 양웅에게 자기가 저지른 일을 사실대로 밝힌다. 그리하여 양웅은 아내 반교운과 하녀 영아를 취병산으로 데리고 가서 목을 벤 후, 석수와 함께 양산박으로 향한다. 이 때, 두 사람은 취병산 살해 현장을 목격한 고상조 시천을 어쩔 수 없이 양산박으로 데려간다. 그 후 세월은 흘러, 양산박 송강 일행은 나라의 초안을 받고 관군으로서 요나라 정벌길에 오른다. 그 당시 계주는 송나라 변경을 자주 침범하고 노략질을 일삼던 요나라 지배하에 있었다. 관군이 된 송강의 군사들이 단주성을 함락시키고 계주성을 공격하자, 계주성을 지키고 있던 요나라 장수 야율득중은 평욕현으로 나아가 몰우전 장청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맹렬히 반격한다. 그러자 송강은 계주에 오래 살았던 석수와 시천으로 하여금 성 안으로 몰래 들어가 불을 지르게 하고, 때를 같이 하여 맹공격을 가한다. 이에 기세 등등하게 버티던 적장 야율득중은 그만 전의를 잃고 도망치고 만다.
|
하북-개주 |
전호의 군이 점령한 다섯주중 하나. 병사 3만이 주둔하는 중요 거점. 수장은 전호의 군추밀사인 유문충. 성내 중앙에는 원사부가 있고, 북쪽에는 몇 개의 묘가 있다. 공지는 말먹이풀 두는 곳에 불을 질러 성내를 혼란시킴으로서 양산박 군이 그 틈을 타 성 공략에 성공하게 한다. 개주라는 것은 당시대의 명칭으로 송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하남-하남부 |
통칭은 서경. 송의 네 도시중 하나. 현재의 난양. 관군이 하북에서 전호를 정복하던 무렵, 회서의 반장, 왕경의 군에게 점령되었다. 성장은 공서와 해승. 노준의가 이끄는 양산박군의 별동대가 공격에 달려들어, 남문밖 30리에 있는 이궐산에 포진한다. 해승은 병법에 해박에 이정의 육화의 진을 펼쳐 공격하지만, 신기군사 주무가 펼친 제갈량의 팔진도에 패한다. 후에 교렬의 요술에 의해 낙성하고, 공서, 해승은 전사한다. 이권산의 서쪽에는 료홍곡이라는 깊은 계곡이 있다.
|
요 - 연경 |
요나라의 도시로 지금의 북경시에 해당한다. 연경이란 통칭으로 당시엔 남경석진시라고 했다. 요의 수도는 북쪽에 있는 중경대정부인데 이야기 중에는 요 국왕은 연경에서 싸움을 감시하고 있다. 요는 하북, 산서를 침략하였기에 양산박 군에 의해 정벌되지만 연경을 둘러싸이자 서둘러 송의 조정에 귀순을 신청했다. 송 조정은 이것을 받아들이고 양산박 군에게 빼앗겼던 모든 주를 요에게 반환한다. 후에 요를 멸한 금나라는 연경을 수도로 정하고 중도 대흥부라고 개칭했다.
|
섬서-화주 |
경조부(지금의 서안)의 동쪽으로 있는 주. 다섯 산중 하나인 서악화산이 있다. 화주성은 성벽이 높고 지형이 장대하며 넓고 깊은 호수로 둘러싸여 공격하기 어려운 성이다. 태수 하는 극악무도해서 화가인 왕의의 딸을 약탈하고 그를 도우려 온 사지을 잡은데다 노지심도 잡는다. 조정은 화산에 금령조괘를 봉납하기 위해 태위 숙원경을 화주로 보내는데, 양산박의 호걸들은 숙원경 일행으로 변장, 화주에 입성한 후 하태수를 죽이고 사진도 구출한다.
|
섬서-소화산 |
화주에 있는 산. 산록의 화음현 사가촌에는 구문룡 사진이 산다. 소화산에는 주무, 진달, 양춘이 수하에 오류백명을 모아 산채를 갖추고 주변을 황폐케 했기 때문에, 관청으로부터 머리에 상금 3천관이 걸린다. 그들은 식량 확보를 위해, 화음현의 습격을 꾀했지만 눈앞의 사가촌에서 사진에게 저지당한다. 이 때 사진과 교류를 맺으나 오히려 사진이 관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후에 소화산은 사진을 산채의 주인으로 맞아 한층 번성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