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포항에 있었다.
( 친구 이 일 화 만남 )
부산에서 9시 30분 약속. 진교에서는 일찍 서둘러야 한다.
새벽 기도 드리고 선식으로 아침 대용식 한 후 7시 30분에 차를 탔다.
흩틀어지게 피어 산에서 몰려 내려오는 개나리는 아침을 상쾌하게 만든다.
며칠 전 추위에 움츠리고 있다가 급하게 만개를 하는지 곳곳에 피어 있다.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많은 꽃이 핀다.
봄꽃은 숨어서 핀다고 한다. 개나리 말고도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 있다.
동래역에 도착하자 정확히 9시 30분이다.
친구들은 벌써 도착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만남의 반가움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영철이, 성구, 재혁, 경숙 그리고 나다.
포항에 있는 이일화에게는 12시까지 간다고 하였다.
이일화는 요봉에 살던 친구다.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오빠가 이귀남으로
우리보다는 몇 해 선배로 원주 교도소에 근무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나는 마차장로교회에서 친구 이규상이와 함께 활동했던 기억이 어설프게
남아 있다.
포항으로 가는 우리의 차 속에는 이일화의 추적으로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잠시 후면 만나게 되겠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를 찾아가는
마음은 이일화에 대하여 모두가 궁금하다.
조금 후 제천에 봉연이가 출발해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 할 것 같다고 성구가
말 한다. 친구가 뭔지, 그리움이 뭔지 이렇게 달려온다.
포항에는 11시 30분에 도착하여 이일화에게 전화하자 5분이 체 지나지도
않아 예쁜 딸과 함께 나타난다.
검은 정장으로 수수하게 차려 입은 이일화가 우리 앞에 온다.
경숙이는 “ 어머, 옛날 그대로야 ” 하고 알아보는데,
재혁이, 성구와 나는 “ 잘 모르겠는데...”
이일화는 영철이를 제일 먼저 알아보고 반긴다.
“ 어머, 영철아, 너 정말 보고 싶었는데... 너, 영철이 맞지?!”
그리고는 “ 어머, 경태야! 너도 알아보겠다. 너는 누나하고 함께 다녔지?“
나를 알아본다. 내가 이일화를 기억 못하여 미안해 하자.
재혁이가
” 야! 사택 3구 화약고 위에 살던 사람들은 너나 나나 기억하지 못해.
그 밑에 살어야지“ 하기에 우리는 웃었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풀었는지 모르지만 운명을 달리한
장세민이로부터 오빠 이귀남, 김영만 친구, 김종주, 봉연이, 밤치 친구들 등
한꺼번에 쏟아진다. 지금까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않고 어떻게 살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 중에서도 일화는 경숙이에게
“ 우리 엄마만 무섭지 않았어도 너희들이 목욕탕 벽에서 탄차 기다릴 때
우리집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 한 게 지금까지
마음에 걸렸어.”
경숙이는
“그래 그랬지. 그곳에서 차만 지나가면 차 태워 달라고 인사 꾸뻑하고,
태워주면 타고 가고 아니면 더 기다고 그랬지. 두-세 시간 기다린
때도 많았어. 그 때 너희 집에서 된장찌개 냄세가 얼마나 구수하던지"
눈시울이 일화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얼마나 마음에 걸렸으면 40년이 지나 잊을 만한데 지금 이야기를 할까?
대답은 일화의 눈이 말을 한다.
12시에 도착하는 봉연이를 기다리면서 우리들은 포항을 마차로
만들고 있었다. 웃고, 또 웃고 또 웃으며 그리움의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봉연이가 도착하여 한 번 더 만남의 기쁨을 나눈 뒤 포항 북부 해수욕장
마라도 횟집으로 향했다. 포항 북부해수욕장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고 깨끗하기로도 유명하다. 바다와 함께 이루어진
포항은 봄을 맞이하여 더욱 많은 연인들이 찾아 들고 있었다.
마라도 횟집 2층에 자리를 잡고 다시 이야기꽃은 피어난다.
이일화는 3녀 1남으로 자녀는 딸딸딸 아들이다.
급기야 마지막 안타를 쳤다고 한다. 막네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남편은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포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 둔다. 살아 온 삶이 공통점이 많은 가 보다.
서로서로 비슷한 어려움과 기쁨이 있었는지 이일화 이야기에 모두 공감을 하고
수긍을 한다. 이일화는 우리가 무척 그리웠는가 보다.
“ 나는 친구들 모임에 오래 전 처음 한번 갔을 때 서로 따로따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 지금까지 친구들을
잊고 살았는데, 오늘 너희들이 오니 너무나 반갑다.”
경숙이가
“그래 그 때 노래자랑 하고 돈으로 상품 받을 때였지.
오만원인가? 멀리서 왔다고 노래 실력과는 관계없이 줄 때,
그 때 왔었지.”
“ 그래 그 때 너도 갔었구나.”
영철이가 말을 받는다.
“ 지금은 잘되고 있다. 우리 모임이 성숙하지 못 했을 때었잖아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포항의 마라도 횟가 나온다. 진수성찬이다.
오후 1시가 넘어서자 점촌에 있는 현자가 2시쯤 도착 한다는 전갈이 온다.
술이 그리움과 함께 돌고, 맛있는 찌개다시 접시가 비어지고
술을 못 먹는 성구, 영철이 내가 얼굴이 빨개진다.
일화는 제법 한잔 한다.
“ 야! 완샷이다” “ 박으라고 할 때 박 어! 나중에 후해 말고”
“술술 잘 넘어 간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던 웃음부터 나온다. 이야기는 멈춤이 없다.
잠시 후 현자가 도착한다. 점촌에서 9시 30분 차를 탓다고 하면서
“ 차가 우찌나 삥삥 돌던지 내가 돌겠다. 지랄도...”
하며 들어온다. 우리는 다시 인사를 나눈다.
현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주도 한다.
“ 봉연이 저 가시나가 전화 안 했으면 안 왔다.
너 꼭 간다고 했다면서 하고 악을 쓰는데, 어찌하겠노?
남편 밥은 차려주고 와야제 그래 늦었다.”
“차는 어찌나 삥삥 돌던지. 지랄도...”
올 때 얼마나 고생을 했느니 다시 말을 한다.
점촌을 출발하여 여러 군데 정류하는 차를 탄 모양이다.
그래서 4시간 30분이 걸린 것이다. 그래도 친구가 좋은지 즐겁기 만 하다.
현자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사탕 장사를 했던 친구라고 한다.
하얀 설탕이 땅콩을 덮은 맛이 제법 있는 과자를 학교 올 때
입 삐뚤이네 집에서 한 봉지를 갖고 와서 학급 학생들에게 파는 것이다.
그 때 사먹을 돈이 없었던 학생들은 외상으로 사먹었다.
현자는 외장장부를 만들어 누구는 얼마치 외상으로 사먹었는지 세밀하게
기록을 하였다. 장사가 쏠쏠하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악명 높은 면도날 이종기 수학 선생님에게 걸리어 외상장부가
발각되고 장부에 올려 있는 사람들은 학생과로 불리어 가게 되었다.
그 때 수 많은 사람 중에서 증인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경숙이도 5원어치
외상값이 있었다고 한다. 20원 이상이 되는 학생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
정학 된다고 하는 바람에 정말 정학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특히 미안하거나 쑥쑥러울 때 몸을 비비꼬면서 말하는 이순희는 학생과로
불리어 가서 역시 몸을 꼬면서 “ 저는 5원인데요” 라고 하자
호랑이 면도날 이종기 선생님은 막대기로 이순희 배를 찌르면서
“ 5원은 돈이 아니냐? 돈이 아니여!” 라고 했단다.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 강냉이 죽으로 점심을 먹던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다.
지금의 자대로 보면 화도 나는데 그 당시는 그럴 수 있었다.
현자 친구들은 현자가 크면 수퍼마켓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다.
웃고 웃으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는 일화내 집 근처의 노래방으로 옮기었다.
그리움이 즐거움으로 풀어진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35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내려 올 줄 모르고
있다. 다시 생활 속으로 각자 돌아갈 시간이다.
오후 6시가 넘어서자 현자가 서두른다. 점촌까지 가려면 대구로 가야 한다.
포항에서는 이미 차가 없다. 성구가 택시를 잡고 6만원을 주고는 대구북구 역까지 대절한다.
부산 가서 자고 가자는 경숙이 의견과 자기의 집에서 자고 가라는 일화의 의견에,
봉연이와 현자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차를 놓친 것이다.
봉연이는 택시 값을 차창으로 던진다. 성구는 다시 택시 대절비를 기사에게
주고는 차를 보낸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받고 안 받고 보다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다.
부산 팀도 그 길로 일화네 집을 나왔다.
만날 때는 그리움을 보고 좋았는데 헤어질 때는 그 그리움과 헤어져야 하니
아쉬움이 크다. 현자와 봉연이도 그랬지만 우리도 가기가 싫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일화의 건강을 빌고는 굳은 악수로 헤어짐을 인사 했다.
우리차가 경주쯤 지나오는데 일화에게 전화가 왔다.
“ 경태야! 나 지금 홀린 것 같아. 너희들 봉연이 현자 보내고
밥이라도 해 먹여 보낼 걸 그랬나봐, 먹고 갈 시간 되잖아.
정신없이 봉연이가 가는 바람에 너희들 보내고 나니 이제야 생각나네,
차 돌릴 수 없지? 오늘 너무나 고맙다. 포항까지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뿌듯해, 오늘 딸년이 친구들이
찾아온다고 하니 엄마 인생 헛살지 않았네 하더라.
아마 그런가 보다. 너무나 고마워. 모두 잘 가자. 다들 안부 전하고”
일화는 울고 있었다.
그리움이 이렇듯 포항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다.
우리는 그 그리움을 케어서 만나고 왔다.
생활 속으로 돌아 간 시간이 12시가 넘고 있다.
성구가 사진을 올릴 것이다.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일화에게 갔으면 한다.
“ 일화야 건강해라. 그래야 또 만나지. 오늘 너의 대접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