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대생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 대신 ‘페리에(Perrier)’ 한 병을 주문한다. 골프장 VIP 라운지에서는 일본산 해양심층수 ‘마린파워(Marine Power)’가 팔리고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오스트리아산 유아용 생수 ‘와일드알프(Wildalp)’가 회자된다.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길러 왔다는 ‘피지워터(Fiji Water)’는 미국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즐겨 마시면서 유명세를 탄 물이다.
먹는 샘물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물시장도 저가와 고가 제품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농심 ‘제주 삼다수’와 롯데 ‘아이시스’, 진로 ‘석수’ 등으로 대표되는 국산 생수 브랜드가 대형마트에서 가격 경쟁을 펼치고 있다면, 백화점과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더 비싸고 진귀한(?) 수입 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유가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지만 기름값보다 더 비싼 게 수입 생수값이다. 비교적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미네랄워터의 경우 기본적인 물류비와 중간 유통마진만을 더해도 국내 소매점에선 한 병에 이삼천원을 훌쩍 넘는다.
초기에 에비앙(Evian), 페리에, 볼빅(Volvic) 등이 수입 물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면 3~4년 전부터는 해양 심층수인 마린파워와 암반수인 피지워터 등 건강기능성 생수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캐나다산 빙하수 ‘휘슬러(Whistler)’, 프랑스 화산 지대에서 채취한다는 ‘이드록시다즈(Hydroxydase)’등 수십 종이 가세해 시중에 유통되는 외국산만 60여 가지가 넘는다.
마린파워는 일본 최초의 해양심층수 취수지인 고치현 무로토의 깨끗한 심층 해수를 원재료로 하고 있다. 수심 3000m 이하에서 오랜 기간 분해되고 숙성된 물은 현대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각종 미네랄 성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한다.
피지워터는 ‘위기의 주부들’, ‘섹스 앤 더 시티’ 등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젊은층의 인기를 받게 된 제품. 피지의 자연을 나타내는 듯한 이국적인 병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500ml, 1600원)이 주부층에도 어필했다는 게 판매사의 분석이다.
다량의 미네랄을 함유한 캐나다 청정지역의 빙하수 휘슬러(500ml, 1500원) 또한 단기간에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 화산 지대에서 채취한다는 이드록시다즈는 기능성을 강조한 생수답게 가격이 200ml 한 병당 4400원 선으로 높은 편이고,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서 나오는 물로 만든 유아용 생수 와일드알프의 경우도 500ml 용량이 5000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구입해도 병당 2만원
핀란드 자작나무 수액으로 만들었다는 ‘버치셉(Birch Sap)’은 미네랄과 아미노산이 풍부한데다 인체 체액과 유사한 조직으로 구성돼 흡수가 빠르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터넷으로 구입해도 한 병에 2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들 수입 물 가격이 그다지 부풀려진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과거 일부 소비자들이 자기 과시용 수단으로 수입 생수를 즐겨 마셨다면 최근에는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에서 일부러 찾는 고객들이 많다”며 “특히 시중에 다양한 생수 제품이 나오면서 몇몇 제품의 경우 이미 가격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고가의 가격 탓에 선뜻 수입 생수를 사 먹는 사람들이 많을까 싶지만 최근 2~3년간 매출은 해마다 40~50%씩 성장하고 있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집으로 박스째 배달시켜 마시기도 하고, 어학학원이 밀집한 지역 내 편의점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건너 온 원어민 강사들이 특정 브랜드의 물을 찾는 경우도 있다.
2∼3년간 매출 연 40∼50%씩 성장
마시는 사람이 늘다 보니 파는 곳도 많아졌다. 수년 전부터 백화점 식품코너 음료 진열대에 수입생수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 종류만도 평균 30~40여 종에 이른다.
국내 브랜드까지 포함해 총 50여 종의 먹는 물이 한자리에서 판매되고 있고, 백화점의 특성상 전체 생수 판매량 가운데 수입 생수의 판매비중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기도 한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커피전문점 등에서 수입 생수 매출도 급격히 늘어났다.
프라자호텔 마케팅팀 김수연 씨는 “지난 해부터 호텔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음료 메뉴에 수입 생수를 포함시켰는데,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찾는 분들도 많아 현재는 그 종류를 10여 가지로 늘려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량으로 구매할 때는 직접 배달까지 해주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편이 손쉽다. 옥션, G마켓과 같은 오픈마켓, 각 백화점의 온라인 몰은 물론 생수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물 쇼핑몰도 너댓 곳이 성업 중이다.
옥션 식품담당 고현실 과장은 “옥션에서 판매하는 60여 가지 생수 가운데 에비앙, 휘슬러 등 수입 생수의 판매비중이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며 “특히 수입 생수 판매량은 올 들어 전년동기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전체 먹는 물시장에서 수입 생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때문에 수입 생수의 고급화·차별화된 이미지를 살려 각 상품별로 소비자층을 넓혀가기 위한 마케팅도 가지각색이다.
휘트니스센터나 스파 등에서 회원들에만 제공하는 특정 브랜드의 생수라든지, 고급 호텔에서 숙박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생수가 수입 브랜드인 경우가 그러하다. 유아용 수입 생수의 경우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에게 분유를 타 먹이는 물로 제공함으로써 이후 엄마들이 자연스레 구매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들의 시장 경쟁도 예사롭지 않다. 롯데칠성음료는 한 병에 1600원 하는 페리에의 모양을 본 따 지난해 탄산수 ‘트레비(Trevi, 330㎖, 1100원대)’를 출시했고 최근에는 동해안 심층수로 만든 ‘블루마린(500ml, 1400원)’도 선보였다. CJ제일제당 역시 울릉도 심해에서 개발한 해양심층수 ‘울릉미네워터(500ml, 1200원)’를 판매 중이다.
//이코노믹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