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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 치악산(1,095m: 원주)
*일 시 : 2004. 11. 7(일), RTNAH 제5차 산행(16명), 날씨(코발트색 하늘)
*코 스 : 황둔교-갈림길-밤나무골-876봉-971봉-고개-매봉-1054봉-1055봉-갈림길
-975봉-920봉-전불골-서낭당-합수곡-높은다리-상원산장(매표소)
*소 시 : 오전 10시 00분~오후 2시 10분 완료 → 총 4시간 10분 소요
가을은 우리를 詩人으로 만듭니다.
하늘을 우러르게 만들고
가슴에 손을 얹게 만듭니다.
단풍잎 하나를 따서
소중히 책갈피에 끼워 넣게 합니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배운
아름다운 구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이는 바람에 날려 쌓이는
색색의 나뭇잎을 보며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겠지요.
오늘은 잎 지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이성선 시인의 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지난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시의 날을 맞아 오늘날 횡행하는 언어의 난무를 대상으로 조선일보 사설이 밝힌 <詩의 날, 政治의 언어를 생각한다>라는 일부를 옮긴다.
「오늘은‘시(詩)의 날’이다.
“詩여,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지난 주말 부산의 ‘명시 낭송축제’에서 낭독한 ‘시인 선언’에서 김종해 한국시인협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위로를 주고 인간의 격(格)을 높이는 언어의 힘에 대한 찬사이다.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날을 기념해 1986년 만들어진 ‘시(詩)의 날’이 올해로 18회 째다. 해마다 오는‘시의 날’이지만 올해 유난히 시의 존재가 고맙고 그리운 것은 갈수록 막말이 판치는 세태 때문이다.
특히 이 정부 들어 “깽판”“양아치”에서 시작해 “까불지 마라"“내 손아귀에 있다”에 이르기까지 열거하기에도 숨차게 이어지는 정권 실세들의 막말은‘시정잡배’들이 듣기에도 이미 도를 넘어섰다. 언어가 갖고 있는 소통과 이해의 미덕은 실종된 채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공격과 파괴의 언어만 횡행하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은 황폐해지고 그 언어가 지시하는 이념과 당파성에 따라 찢길대로 찢겨가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9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독선과 무지의 언행은 현 정부 출범 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인 반(反)지성주의의 결과”라고 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선동과 영합의 포퓰리즘 정치세계에서 언어는 상대에 대한 전투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막고 언어의 질과 격을 높이는 것은 지성(知性)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 지적(知的) 행위의 끄트머리에 시가 존재한다.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용광로와 같은 구실을 한다.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일상에 파묻혀 사는 국민들을 미래로 이끄는 힘은 정치가의 언어를 통해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진흙탕을 헤매는 정치로 인해 언어마저 막되어가는 시대다. 시의 언어는 생명과 창조, 관용과 절제의 언어다. 이런 미덕들을 정치는 시에서 배워야 한다.」
RTNAH 카페에 실린 치악(雉岳) 매봉(罵峰)에 대한 개관설명이다.
<경유지> 5:30 김포 사우리 홈플러스 앞
5:35 김포 풍무동 입구
5:50 방화동 개화역
5:52 LG 전자 앞
5:55 가양동 신촌복집 앞
5:57 가양동 사거리
6:00 발산역 공항 웨딩부페 앞
6:05 우장산 역
6:10 화곡 역
6:13 강서구청 앞
6:15 하이웨이 주유소
6:20 강서 보건소
6:30 당산역
<코스>
: 황둔교-밤나무골-876봉-990봉-971봉-안부-매봉-서능-높은다리(상원사매표소)
<개관>
: 치악 매봉은 치악산 국립공원 동남방 가장 끝머리인 성남리 동쪽 선바위봉에서 남쪽 감악산(紺岳山)으로 향하던 굵직한 능선이 싸리재 못 미쳐서 동쪽으로 새로이 가지를 쳐 멀리 주천면 서만이강 까지 길게 갈라져나간 능선상의 첫 번 째 최고봉이 치악 매봉이다.
치악 매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回峰山(766m)에 이르러 그 여맥을 서만이강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히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으로는 전인미답의 계곡으로 느껴지는 영월 땅 수주면의 두산리 당골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당골계곡 너머로는 치악산맥의 최고봉인 비로봉과 그 오른쪽의 매화산이 시원하게 시야에 와 닿는다. 동으로는 뱀골과 협곡을 이룬 서만이강 너머로 사자산과 백덕산이 보이고, 남으로는 용가메기골, 창골, 그 너머로는 감악산, 석기암산, 용두산 줄기가 거대하게 보인다. 서쪽으로는 제천 봉양면과 백운면 경계를 이루는 주론산, 구학산 비롯해서 삼봉산, 십자봉, 백운산이 와 닿고 백운산 오른쪽으로는 매봉의 母山인 치악산 남대봉이 있다.
새벽 3시.
어제 오후 강서-양천교총지부 계양산 산행과 회식 뒤끝이 남긴 거북한 속앓이는 새벽잠을 일으켰다. 화장실을 들락이던 새벽은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다. 다시 누운 잠자리를 뒤척거리다가 TV를 켰다. 액션 영화에 시선을 고정시켜 피곤하게 만들면 1시간이라도 눈이 붙여질 것이란 생각이다. 5시 정각에 머리맡에 둔 시계 벨을 맞춰뒀으니 혹시 영화내용이나 여우잠에 빠져도 금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그래도 불안하여 간혹 시계를 힐끗 바라보는 여유도 있었다.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본 시계는 여전히 늦걸음이다. 갑자기 창밖에 희뿌염하게 밝아왔다. 이웃집에서 보안등을 켰을 것이라 짐작했다. 자주 있는 일이니까 편리하게 생각했다.
불현듯 이상한 예감이 들어 일어나 다른 시계를 확인했다.
머리맡 시계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6시 50분이다. 취침전이면 으레 핸드폰을 끄고, 기상과 더불어 켜는 습관대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핸드폰에 가장 먼저 뜬 김총무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산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당혹한 회원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5시 55분이면 승차지점에 있었어야 할 내가 1시간이 지나도록 침대에 누워 TV영화에 빠졌으니......
이런 낭패를......
당황, 腐心, 초조, 불안, 그리고.......
해서는 안될 짓을 하다가 들킨 소년처럼 바지와 옷, 그리고 열려진 바지지퍼와 배낭을 걸쳐 매고 大路로 나왔다. 마침 승객 한 사람을 태운 택시가 엉거주춤하고 절박한 자세로 택시를 찾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선뜻 앞에 멎는다. 뒷좌석에 올라 양말을 신고, 바지지퍼도 올리고, 허리띠도 여미고, 배낭져크와 내용물도 확인하고......
34년 산행에서 만난 엇박자다.
당산동으로 향하는 택시는 왜 그리 느리고, 신호등 교체 시간은 왜 그리 길던고.
새벽 찬바람에 승차지점에서 기다리는 회원들의 불편함을 무엇으로 보상할런가.
혹시 기다리다 지쳐 되돌아간 회원들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작은 실수가 빚은 물여울은 감당하기조차 버겁다.
오만가지 잡다하고 불안한 생각들이 새로운 파문을 연발한다.
7시 20분.
정시보다 50분 늦은 시각이다.
어떤 변명도 허락하지 않는다. 큰절이라도 올리며 양해를 구할밖에......
동작동에서 1시간동안 떨었던 吳이사님 부부가 승차한 15명의 시선이 바늘 끝보다 예리하게 정수리를 누른다. 모두가 안도의 시선이지만 정작 당사자 입장은 좌불안석이다. 새벽을 신뢰감 하나로 기다린 회원들의 따습한 마음이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다행이 식구들만 참여한 오늘이 그나마 변명같지만 위안이 됐다.
20명 예약에서 4명이 펑크다.
지내다보면 오늘같이 어지럽고 힘든 날도 있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도 중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차츰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새벽은 버스마저 20분 이상 지각했으니 회원 각자마다 겪었던 새벽의 불안이 어디 말로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선두대장인 양경태씨도 마침 집안 일로 통영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불참했으니 산행리더가 없던 새벽을 당한 회원들의 갈팡질팡한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와중에도 회원간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도타운 배려가 아침햇살보다 뜨겁다.
예민한 성격 탓으로 잠자리를 놓칠까봐 취침 전 핸드폰을 끄던 습관을 산행 전날은 예외로 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충분한 운영위원 상호간 전화연락체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실수는 단 한번으로 끝내야한다는 다짐이다. 톨게이트를 통과한 버스(신백승여행사 영업부 김창수 기사, 011-712-2215)는 일사천리로 고속도로를 가른다. 고속도로에 짙게 깔린 아침안개가 맑은 오늘의 날씨를 짐작한다.
10시 정각.
황둔교에 정차했다.
황둔리 창골정류장 옆 황둔교 만남의 광장(033-761-3230) 식당 앞에 이르면 우측은 감악산 들머리고, 좌측은 매봉 들머리다. 1997년 2월 16일[황둔교(10;30)-Y자 합수지점-밤나무골-876봉-정상(13시)-공터 바위지대-용가매기골-원점회귀(14;30)] 산행기록을 확인한 바 있으니 만 7년 9개월만의 재회다.
아주 달라진 88번 도로 주변과 마을을 바라보는 뜨악한 표정은 천상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그 변화의 大河에 이곳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잖은가. 3~5년 전의 답행기록을 남긴 코스를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 들머리에 설 때마다 항상 당혹스럽다. 없던 건물이 생기고, 새로운 포장도로나 콘크리트 다리가 신설되고....... 과거 뇌세포에 입력된 정보는 이미 낡고 부패한 지식으로 전락한다. 그냥 억지로 잔상을 끄집어내기에도 때로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변화무상한 세상은 광속도처럼 쉽게 잡히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세상을 너무 오래 산 건가? 자전하는 地球도 이런 몸살을 견뎌내는지 모를 일이다.
매봉은 늦가을 낙엽산행의 白眉다.
밤나무골을 들머리로 매봉산 정상에 오른 뒤 서남쪽 헬기장을 경유해 남동쪽 능선을 타는 하산길이 일반적인 코스다. 이 구간은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빽빽이 들어 찬 樹林지역이어서 낙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 매봉(산)이다. 밀양(775m), 문경(820m), 영월(806m), 인제(1,271m)에 있는 매봉산 등 무려 60여 곳이 있다는 보고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매우 흔한 이름인데, 이곳은 옛날 정상 일대에서 주민들이 매를 길러 꿩과 토끼 등을 사냥하였다고 해서, 매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이면 치악산에서 매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진 오색단풍은 秋설악에 비길만하며, 산이 깊고 우거져 멧돼지와 노루 등 산짐승이 많은 산이기도 하다. 특히 진귀한 풀과 나무, 야생초나 야생화의 군락지에 드물게는 산삼까지 발견된다고 한다.
황둔2리 노인정 단층건물 옆으로 트인 시멘트포장 대로를 따라 들어섰다.
<매봉산장 1Km>
대형버스도 운행이 가능한 너른 도로는 1997년의 그런 소로는 아니었다. 주변엔 여러 유흥업소 건축물이 자랑하듯 들어섰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한 정묵연 선생님과, 그네의 직장동료인 전은숙 선생님이 코발트색깔보다 진한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국가의 가사내용 일부를 인용한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티 하나 없이 깔끔한 하늘은 오늘의 축복일 성싶다.
'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고려말기 나옹선사가 남긴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기상청이 밝힌 오늘 일기예보다.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맑겠음.
야외활동하기에는 좋은 날씨가 되겠음.
바다의 물결은 토요일 오전까지 다소 높게 일겠으나, 이후에는 점차 잔잔해 지겠음.
<일년 중 가장 개성 없는 달이 11월이라고 했던가...
이번 주말은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주말이 되시기를 바라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으로 인한 건강관리에도 유의하시기를..>'
11월이 가장 개성이 없는 달이라는 말에 "2월도 그렇지요" 라는 대꾸다.
대로를 따라 북진하는 양지바른 계곡 좌우 둔덕엔 대한민국 어느 골짜기에서라도 흔히 만나는 펜션건물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이젠 깊은 골짜기마다 이런 펜션건물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느끼게 되는 세상이 됐으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일이다.
15분쯤 북쪽으로 옮기면 왼편으로 용가매기골, 오른편으로 밤나무골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빈 농가도 보이고 묵밭도 나온다. 한참만에 만난 매봉산장(☎033-761-2282, 김형태, 1997년에 받은 명함) 건물 옆 작은 주차장엔 소형차 몇 대와 3~4명의 숙박객들로 추측되는 젊은이들이 消時삼아 포커놀이를 하고 있다. 밤새껏 즐기고 아직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그 혈기와 정렬이 놀랍다. 벽돌색 루핑지붕의 단층건물인 매봉산장에라도 들려 인사라도 나누려던 당초 예정은 포기했다. 지연될 행보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산장을 지나 얕은 경사를 따라 몇 발자국 옮기면 정면에 가로쇠막대가 보이고, 바로 좌측 얕은 비탈에 두릅나무를 재배하는 너른 밭이 나오는 등 1997년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지금은 앙상한 가시가 박힌 줄기지만 지난해의 풍성함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
10시 18분.
두릅나무 밭이 끝나는 Y자 갈림길이다.
우측은 용가매기골로 일행들이 하산할 코스고, 좌측 밤나무골을 우측에 두고 올라가는 지능선 입구다. 깊고 맑은 계곡에 억새꽃이 화사하다. 가슴이 후련하고 상쾌하게 열린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문 능선은 생각 이상으로 한적하며 주변경관 또한 아름답다. 강태영 고문님이 미처 준비 못한 식수를 구하기 위해 60m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정상에 올라 일행들에게 라면맛을 주려는 그의 배려다.
오희숙-강세진 두 이사님의 행보가 시작부터 흔들리는 눈치다.
아마 처음부터 매봉 산행을 포기하고 건성으로 뒤따라 왔던 게 아닌가 한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는 알고 있지만 정상에 올라 맛보는 즐거움을 共有하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지능선은 차츰 경사도가 가팔라진다. 우측엔 과거에 없던 철책이 둘러쳐 있지만 녹이 슬어 낡은 상태다.
무덤 지대를 통과했다. 이미 머리와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적셔있다.
새벽기온은 쌀쌀했지만, 낮 기온은 따끈한 봄 날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절기상 入冬이다. 입동(立冬)은 입기일(入基日)은 11월 7일경이다. 상강(霜降)후 약 15일, 소설(小雪)전 약 15일에 해당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25。일 때 입동이 들고, 음력으로 10월 절기다. 이날부터 겨울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르고,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3개월을 겨울이라고 한다. 늦가을을 지나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살 속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김장 시기는 입동전후 1주일간이 적당하다고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맞지 않는다. 김장철이 늦어져 가는 것도 새로운 세태다.
옛 중국사람은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정하여, ①물이 비로소 얼고 ②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③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또 입동날이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춥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렇게 따스한 걸로 미뤄보면 금년겨울의 난동을 예고하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어쨌거나 서민들이 어려운 이 시대를 견디는데 날씨부조라도 있었으면 싶다.
RTNAH산악회 결성 이후 노종택씨와 박금희씨 커플이 처음 참여해주었다.
특히 박금희씨의 산행이 다소 어려울 것으로 염려했지만 좋은 출발을 보인다. 무난한 산행이 되길 기대했다. 그런 저런 전차로 오늘 산행 코스도 치악산 성남매표소가 아닌 물안동골 좌측능선을 타고 황둔2리로 내려오는 ∩자 코스로, 당초 6시간에서 4시간 안팎으로 줄였다.
무덤 지대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송림능선 비탈은 제값대로 한 땀을 쏟아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질펀하게 깔린 갈잎능선에 엄나무 잎이 언뜻 보인다. 홍기오 후미대장님의 전언에 따르면 예상했던 두 사람(오-강)은 적당한 지점에서 하산할 예정이란다. 이를 두고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는 각 회원들의 표정은 높고 푸른 하늘보다 더 싱그럽다고 생각했다.
억새밭이 어떻고, 갈대밭이 어떻고......
10시 42분. 전망대처럼 생긴 돌올한 지점에 올랐다.
남쪽으로 보이는 감악3봉의 위용이 퍽 부드럽게 들어왔다. 마치 다정한 형제애를 보는 것 같다. 굴참나무 교목과 진달래 관목이 어우른 능선이다. 이른봄이면 무성할 진달래꽃을 연상하며 그룹산행에 가까운 일행들의 행보를 조절하며 올라갔다. 따끈한 태양볕과 가파른 오르막에서 쏟아내는 한땀이다.
10시 57분.
876봉 삼거리에 올랐다. 좌측 능선을 따라가는 완만한 능선은 이내 가팔라진다.
좌측 11시 방향으로 정상과 1055봉-1054봉이 고만고만한 키재기다.
11시 11분. 주능선 3거리다.
한차례 일행들이 모였다. 땀을 씻으며 사위경관을 마친 후 내리막 고개로 이동했다.
안부지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이다.
11시 38분.
974봉에 올랐다. 잠시 한담을 나누는 휴식이다.
맺힌 이마의 땀과 뜨끈해진 머리가 금새 식는다. 겨울의 전령사다운 입동의 서늘한 바람이다. 지척의 지점에 암반에 똬리를 틀고 숱한 인고를 안고 살아온 노송 한 그루가 들어온다.
'澗松寒轉直 山菊秋自香'
계곡의 소나무 추위 속에 곧게 자라고, 들국화 늦가을에 홀로 향기 풍기네.
국화는 서리를 맞아도 꺾이지 않는다는 사군자의 하나다.
唐의 문인 王積의 시구다. 앞 부분의 '澗'자 대신 '巖'자를 넣으면 더 사실적인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필가이며 영문학자였던 이양하(李敭河/1904~1963.2.4)님의 <나무>를 보면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구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첫째, 나무는 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
둘째, 나무는 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
셋째, 나무는 훌륭한 堅忍主意者요, 고독의 哲人이요, 安分知足의 賢人이다. 」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는 이양하님의 소망, 그것은 그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初冬之節을 맞아 벌거벗은 裸木들을 바라보며 흩어지는 橫說竪說이다.
거칠 것 없이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산자락이 너르게 보이고 매봉산 정상이 보인다.
후미를 위해 잠시 휴식을 가졌다. 진달래 나목 능선을 통과했다.
11시 50분.
고개 3거리다. 아늑한 평화가 목덜미를 간지른다.
서늘한 입동바람에 잠깐 몸을 움추렸다. 정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동시 하나를 암기하고 시험지에 써넣으라고 했더니 80%에 가까운 학생들이 동일한 동시를 써내더란다.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두 개가 흔들린다...... '
아이나 어른이나 쉽고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마음만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래서 몇 차례 웃었다.
12시 2분.
990봉이 눈썹 위에 걸쳐있다.
정상을 향한 능선은 오르내림의 반복이다.
다시 얕은 내리막을 지나면 971봉 아래 안부에 내린다. 햇살이 正午를 가르고 있다.
마른 철쭉이나 싸리나무 등 키 작은 나무들이 동풍에 흔들거린다. 평지나 다름없는 능선길과 얕은 경사로를 10분쯤 가면 주능선에 철쭉과 싸리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평지를 지나 오솔길에 접어들어 잠시 오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12시 6분.
헬기장은 그 동안 이용되지 않았는지 마른 잡초만 보인다.
헬기장이 나타나면 정상이 지척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이정표다.
家爲驛如舍(가위역여사) 집이란 여관 같고,
我如當去客(아여당거객) 나는 길가는 나그네와 비슷하다
去去欲何之(거거욕하지) 가고, 가고 또 어디로 가는가
南山有舊宅(남산유구택) 남산에 나의 집이 있구나
중국인들의 死生觀이 한눈에 보이는 남조시대의 문인 도연명의 5언絶句다.
남산은 무덤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12시 10분. 매봉 정상이다.
<성남리←매봉, 1095m→중봉, ↓창골,
설치 원주시계탐사대, 제작 삼도관광공사 731-3104>
정수리에 박힌 높이 7~80Cm의 스텐판으로 만든 이정표 앞에서 일행들은 모였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시선을 모았다. 상쾌한 찬바람이 한 땀을 씻어준다. 북으로는 선바위봉이 가깝게 다가서 있고, 남쪽 88번 도로 건너편 감악3봉은 보이는 그대로 실루엣이다. 서쪽으로는 손가락 숫자보다 더 많은 산 가지들이 치악산 남쪽 성남리 방향으로 어지럽게 내려간다. 남대봉-시명봉-수리봉 줄기가 치악재를 향해 줄달음이다. 동쪽 멀리로는 사자-백덕산 줄기가 장관이다. 사방이 막힘 없이 조망된다. 매봉산은 진수는 晩秋산행이라 하지만 겨울 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음식 백화점이다.
각기 배낭에서 쏟아낸 음식과 강고문님이 준비한 라면에 젓가락을 든 일행들의 시선들이 포식자답다. 지난 주 공작산에서 그 일미에 취한바 있는 그들이다. 집에서 끓여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곳에선 다른 얼굴들이다.
정상주라는 이름의 巡杯가 있었다. 끝내 거부하던 정상주를 동료후배인 정선생님의 강권을 뿌리치지 못하는 전은숙선생님이 못내 받아든 술잔을 비우는 품새와 등산 솜씨도 누구에게도 뒤지질 않았다는 생각이다. 잠시 뿌듯한 포만감은 새벽의 실수를 모두 鎔鑛시킨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만이 맛보는 마운틴 오르가슴(mountain orgasm)이 주는 상쾌하고 개운한 지금이다. 흔히 등산에서 얻는 이러한 마력을‘마운틴 오르가슴’이라 한다. 생리적인 오르가슴보다는 고행을 치르고 맞이하는 오르가슴의 참 맛은 오직 경험자만이 안다. 마운틴 오르가슴의 근거는 숲 속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바위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磁力을 함유하고 있는 바위에서 뿜어 나오는 자력기운은 광물질이라는 성분을 통해서 지상으로 전달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바위에는 이 광물질을 통해서 흘러온 자력기운이 넘쳐있다.
사람이 이러한 바위에서 장시간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이 자력이 인체의 혈액 속에는 내포된 철분을 통해 전달된다. 바위에 흐르는 자력이 혈액 속에 흐르는 철분을 매개체로 해서 사람 몸으로 흡입되는데, 마운틴 오르가슴은 바위에서 나오는 자력기운이 인체 내로 들어와 일으키는 일종의 화학반응이다.
혈액은 인체 곳곳을 순환한다. 바위에서 나오는 자력 기운도 혈액을 따라 뇌세포에까지 전달된다. 자력기운이 뇌에 전달되면 종교체험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통된 민속신앙으로 치성을 올리는 영지(靈地)의 대부분은 바위다. 조용헌 교수가 지적한 마운틴 오르가슴을 마음껏 즐기자.
12시 40분.
서쪽능선으로 내려섰다. 헬기장으로 이용되는 공터가 나온다.
1065봉을 지났다. 건들거리는 바람과 얼큰한 행보가 행복하다.
갈잎이 깔린 수평능선바닥은 봄볕처럼 포근하다.
禪家에 照顧脚下란 말이 있다. 자신의 행위를 잘 비춰보라는 뜻이다.
남의 허물은 들보처럼 확대해 부풀리고, 자신의 허물은 노름꾼의 패처럼 감추려고 하는 속성을 나무라는 말이다. 자신의 분수와 본분을 잊어선 안되고, 자신의 허물은 살펴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말라는 의미가 첨가된다.
일본 전후 문학의 기수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金閣寺)’는 1950년 교토(京都)의 금각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방화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젊은 학승(學僧)은 일본인들이 전통문화의 상징처럼 떠받드는 금각사에 불을 지른 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친다. 죽은 것은 그의 모친이었다. 아들의 방화(放火)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그가 경찰에서 되풀이한 말이 “여러분들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였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소운(金素雲)은 일본 여행 중 도쿄 스테이션 호텔에 묵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도쿄 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소가 잘못돼 호텔로 갈 전보가 그리로 왔다는 것이었다. 바빠서 찾으러 갈 시간이 없으니 읽어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역무원은 “폐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며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보니 그 전보는 서울에 있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었다는‘목근통신'의 기록이다.
남에게 폐(일본말로‘메이와쿠めいわく·迷惑’)를 끼치는 것은 일본인들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 중 하나다. 남을 언짢게 하고, 신경 쓰게 하고, 귀찮게 하는 게 모두 여기 해당한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 교육의 제1장이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아이 만들기’다. 교과서 첫 내용이 메이와꾸다. 어떤 사람이 눈사태로 계곡에서 조난당했다가 겨우 구출됐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이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였다.
이라크 내 테러조직에 납치됐던 일본인 고다(香田)씨가 끝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의 가족들이 “여러분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족이 비명에 갔는데 이처럼 냉정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며칠 전 니가타 지진 때도 두 살배기 유타군 모자(母子)가 바위 더미에 묻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할머니 반응은 “명랑하게 집을 나갔던 유타가 건강하게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여러분께 폐 끼쳤다”는 말만 안 했지 같은 얘기일 것이다.
죽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바닥에는 나도 남이 폐 끼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이 일본이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인간관계의 룰이다. 자기 감정의 분출도 자유롭고 남의 생각에 대한 간섭도 자유로운 한국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란 김태익·논설위원의 칼럼이지만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들의 얘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2시 48분.
삼거리다. 좌측은 용가메기골로 내려가는 하산로다.
바위지대로 내려서는 삼거리 갈림길 좌측에 나무막대가 놓여있다.
상원사로 직진하는 어느 산악회 리더가 회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놓아둔 막대기다.
12시 58분.
1054봉 갈림길 삼거리다.
성남리로 향하던 서쪽능선을 마감하고 좌측에 물안동골을 끼고 내려가는 남쪽능선으로 좌회전이다. 통행이 뜸한 능선인지 매달린 리본도 많이 바랜 상태다.
각종 참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덮인 내리막이다. 눈사태가 아닌 낙엽사태라도 맞을 것 같다.
소년이나 소녀처럼 들뜬 기분이 되어 흘러 내려가는 행보가 경쾌하다. 때론 稚氣도 보이면서 말이다. 염려했던 박금희씨는 노종택씨의 보살핌으로 무난한 행보다. 무엇보다 행운이란 생각이다. 어린 잣나무와 송림, 능선 좌우 산 사면에 들어선 이깔나무 노란 단풍이 서늘한 나목을 제치고 돋보인다.
오후 1시 30분.
내리막 능선상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산행을 포기하고 식당에서 기다리기가 무료했던 오희숙씨의 채근전화다.
혼합림과 송림지대, 갈잎지대를 지나면 이내 88번 도로가 배꼽 아래로 보인다.
마을을 안고 있는 뒷동산이다. 무덤, 고추밭이 있고 세상물정을 알리 없는 산촌의 흰 하룻강아지 한 마리가 일행을 반기며 꼬리를 흔든다. 모처럼 만난 사람들을 보니 반가운 강아지는 마냥 행복한가보다. 정작 농가 마당에서 목줄에 묶인 어미 개들은 일행들을 향해 사납게 짖어댄다. 두 눈만 끔뻑거리며 외양간을 지키는 韓牛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도 느긋하다. 疏開된 마을처럼 산촌의 주민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진공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름과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풍접초와 한련초도 제 생을 다했는지 다가오는 최후를 다소곳이 맞고 있다.
오후 2시.
88번 도로에 내려섰다. 황둔2리 물안동 마을이다.
도로를 따라 약 800m 동쪽으로 내려갔다. 산촌보리밥집, 치악산 明珠寺, 고판화박물관을 거쳐 황둔교 <만남의 광장> 감악산막국수(033-761-3230) 주차장에 닿은 시각은 2시 10분이었다. 구독점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일이던 보람이 있어서 좋다. 비록 한 나절 산행을 통한 힘든 旅程일지라도 宇宙에서 겪을 비엿한 것 모두를 경험했다. 그 안에는 내가 있고, 또 다른 나와 타인이 공존하고 수다한 생각들이 널려있다. 그 수다한 생각들이 자신을 지키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성긴 식사이긴 해도 白居易의 <對酒>를 음미하며 하산주를 나누는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百歲武多時壯健 [백세무다시장건] 백세를 산들 건강한 때 얼마이며
一春能幾日晴明 [일춘능기일청명] 봄철이라 한들 맑은 날 얼마이랴
相逢且莫推辭醉 [상봉차막추사취] 이렇게 만났으니 마다 말고 마시며
聽唱陽關第四聲 [청창양관제사성] 양관의 서글픈 이별가나 듣세나
감악산과 매봉을 좌청룡-우백호로 거느린 황둔리 주차장을 떠난 시각은 3시 13분이었다.
귀로는 제천 박달재-감곡IC(4시 3분)-여주-이천휴게소(4시 50분)를 거쳐 화곡역 화이트하우스 맥주집에 도착한 시각은 10분전 7시였다. 이른 귀경에 모두가 희희낙락이다. 오이사님 부부, 노종택-박금희씨 커플, 홍영미씨를 제외한 11명이 합석한 뒤풀이시간이다. 잡다한 이야기와 무용담들이 여과없이 쏟아지는 식탁 앞에 오늘 모두를 씻었다. 세상이 취하고 네가 취하고 또 내가 취한다. 그리고 세상과 너와 내가 흔들리던 밤은 강세진 이사님과 자리한 마지막 술잔에 녹아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2~3회 접하는 중앙일보의 '詩가 있는 아침' 난을 애독한다.
그리곤 동감하는 생활시를 발견하면 스크랩한다. 1960~70년대 김현승 시인의 작품을 애송했는데, 그 이유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천연덕스럽고 부담없이 노래했기 때문이다. 50대 초반연령의 이은봉(1953~) 시인, 그가 뱉은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의 부분을 음미했다. 귀가하는 발끝에 차이는 어떤 여인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맵디매운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중략)
한 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장독대 같은 여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
맵고 짠 여자
가 있었다 어쩌다 내 품에 안기면
푸드득 잠들던 여자가 있었다.
신살구를 잘도 먹어치우던, 지금은
된장찌개 곧잘 끓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 ……」
송수권 시인의 寸評이 寸鐵殺人이다.
'그 여자가 애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련하고 슬프고 코스모스 꽃잎에 이슬이 맺히듯 가냘픈 감수성에 온 몸을 떨었던 여자,
그 여자가 '아내'라는 이름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시금털털한 糟糠之妻로 변했다.'
애인은 늙지 않아도 아내는 늙는다는 말일까.
*교통 :
·기차[청량리~원주 간 수시 운행, 원주시외버스터미널~황둔리행
동신운수 21번 버스로 황둔교 하차, 1일 6회 운행]
·버스[東서울~원주 간 수시 운행, 황둔리 행 버스 이용]
·승용차[영동고속도로 南원주IC-중앙고속도로 신림IC-신림 삼거리(주천 방면)
~싸리재~신림터널~황둔리(창골마을)]
*숙식 :
-성남매표소[상원산장(033-762-0066), 산골집(-762-5365), 솔밭집(-762-6067),
약수가든(-763-0051), 치악산민박(762-7979), 소롯길(-763-4071),
봉이민박(-762-3391), 낙원민박(-763-6339), 성남민박(-763-5409)]
-황둔2리[감악산막국수(033-761-3230), 산촌보리밥(-761-0755), 물안동쉼터(-761-1712)]
*기타 :
-성남매표소(033-762-5695)
첫댓글 순간 아찔~~그러나 우리는 회장님이 계셨기에 힘이되고 즐거운날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이제 놀란가슴 진정 되셨는지요? 끝 마무리를 즐겁게 해주신 감사님께도 또한 감사드립니다
아침시간... 기다림보다.. 무슨일?로 걱정이 먼저 ....회장님! 회장님의 밝은모습과 향기로운 산행후기 늘~~ 감상하면서 ...감사합니다.
매양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