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7일(수)
내일 수능 치는 날이다. 우리 학교는 고사장과 건물이 붙어 있는 탓에 오늘 오후부터 내일까지 업무를 중단한다. 보너스로 하루 특별 휴일을 얻는다.
덕분에 승용차 없이 기차를 타고 다시 하양까지 갈 수 있다. 이번에는 환승 할인이 되지 않는 시간대인 15:15 포항을 출발하는 무궁화 호 기차를 이용해 보기로 한다. 15:50 경주 도착이고. 경주에서 15:52 출발하는 동대구행 기차표를 따로 따로 끊었다.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보니 종착지가 순천인 열차가 서있다. 아, 예전에는 없었는데 올해 새로 생긴 노선이다. 동해 바다와 남해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멋진 코스인데, 실제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이 기차를 타고 가면 신김치 선생을 만날 수 있구나!
모두 다섯 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객차는 네 량이다. 역시 손님은 많지 않다. 1호차와 3호차에는 다섯 명. 2호 차에는 40여명. 4호차는 텅 비어 있다. 포항역에서 발매하는 좌석은 대부분 2호차로 모은다. 쉰 남짓 되는 승객을 태우고 정시에 출발한다.
인터넷으로 예매할 때 이 열차는 노트북 석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구형 객차로 노트북을 놓을 거치대는 없지만 220 볼트 콘센트가 객실마다 붙어 있어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다. 무선 인터넷은 되지 않는다. 2009년도에 개조한 무궁화 호 객차에 비해 구형 객차는 유리창이 넓어서 훨씬 시원한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이 기차로 순천에 도착하는 시간은 22:24이다. 일곱 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코스다. 하지만, 순천까지 갈 거라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열차에는 판매승무원이 없으며 자판기도 없다. 다시 말해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다. 그래서 미리 먹을 것, 마실 것을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코레일은 역구내로 잡상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실제로 이런 노선에 판매승무원을 배치하지 않는다. 판매승무원을 배치해도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매상 때문인 것은 안다. 그렇다면 음료수를 제공하거나 자판기라도 설치해야 한다.
15:21 효자역에 도착한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한 여인이 뛰어와 1호차에 오른다. "이거 부산 가는 거 맞아요?"라고 한다. 포항에서 부산까지 기차 타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시간이 덜 걸리는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1박 2일 포항과 부산을 기차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짜도 좋을 듯하다. 동해남부선 여행길도 상당히 운치가 있다.
마침 "고객님의 의견을 소중히 반영하겠습니다."라고 쓰여진 고객의 소리 우편엽서가 있어 한 장 빼들었다. 나는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할 말이 많다. 주소는 물론 전화번호, 이메일까지 쓰도록 되어 있다.
15:33 안강역에 도착. "마주 오는 열차와 서로 비껴가기 위하여 잠시 정차후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잠시후(15:37)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 기차가 들어오니 우리 기차는 출발한다. 동해남부선은 단선이라 늘 이렇다. 고속도로 건설 대신에 동해남부선 복선 공사하면 훨씬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아질 것이다.
15:50 경주 도착 예정 시간이다. 그런데 지금 나원역을 지나고 있다. 과연 15:52 경주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인가?
15:55 순천행 무궁화 호는 2번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동대구 방향으로 가려는 기차는 3번 플랫폼에 서 있다. 객실 승무원에게 동대구 방향으로 가는 저 열차를 탈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잘 이해를 못한다.
경주역으로 우리 열차가 들어서자 3번 플랫폼에 있던 열차는 바로 출발한다. 결국 표를 물려야 한다. 만약 순천행 무궁화 호가 4번 플랫폼으로 들어온다면 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누가 놓친 기차가 아름답다고 했는가. 저 멀리 사라지는 열차 꽁무니를 바라보는 심정은 을씨년스런 날씨만큼이나 서럽다.
터벅 터벅 경주역 대합실로 향한다. 이곳은 지하도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한다. 경주역에는 엘리베이터는 물론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대구나 경주나 이 동네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대구역에서 반월당까지 한 번 걸어보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선로를 질러 갈 수 있도록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하도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바삐 움직여야 하는 소수 사람들을 위해 그리 바쁠 것 없는 서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라는 말을 할 것이다. 안전이 중요하다면 역무원을 늘여서, 열차가 도착하고 승객이 내리면 건널목에서 안내를 하고 통제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늘리는 역무원 수만큼 일자리도 더 생기게 된다. 결국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다. 가진 자 편이냐, 못가진 자 편이냐.
5분 연착하여 기차를 타지 못했기에 표를 반환하러 매표 창구로 갔다. 나는 한 시간 뒤인 16:52 출발하는 다른 무궁화 호로 탈 수 있는가 물어보았다. 50분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기차가 5분 늦어 내가 갈아타지 못했다고 했다. 창구 직원은 안쪽에 알아보더니 그건 안 되고 이미 끊은 표 반환을 받아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포항에서 출발하여 15:50 도착하는 열차에서 15:52 출발하는 다른 열차로 환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전 방향으로 가는 무궁화 호 기차가 4번 홈으로 들어오면 3번 홈에서 대기하는 동대구 방향 기차로 환승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결국 동해남부선은 단선이기에 포항 방향에서 오는 열차가 들어와야 부전 쪽에서 동대구로 가는 열차도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2 분이면 바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런 실랑이를 창구 직원과 더 이상 하는 건 무의미하다. 일단 수수료 400 원을 제하고 반환을 해주겠다고 한다. 컴퓨터에서는 반환 수수료가 500 원으로 나온다. 아마도 기차 출발 후라서 그런 모양이다. 직원은 100 원을 현금으로 돌려준다. 고맙다.
이제 버스를 타고 경산으로 갈 것인가? 다음 기차를 타고 갈 것인가 고민한다. 일단 경주역 대합실에 앉았다.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되는지 확인도 할 겸 컴퓨터를 켰다. 무선 인터넷 서비스는 되지만 유료다. 역시 돈 없으면 안 된다. 인터넷 연결이 되면 경주에서 경산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 수 있을 텐데... 괜히 버스 터미널로 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더 늦을 수도 있겠다. 한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기차를 타야겠다.
경주역 안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 물어보았다. 경주역에서 관광객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가. 현재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관리가 힘들어 유료로 운영되던 컴퓨터도 철거해 버렸단다. 지금 경주역에서는 무료는 물론 유료로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인다. 안내소 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동대구역이나 서울역, 부산역, 대전역에는 KTX 라운지가 있어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가 있고, 대부분 고속도로 휴게실에서도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천 공항에서도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하며 대부분 공공 도서관에서도 무료로 서비스한다. 우리 나라 최고의 관광 도시를 기대하는 경주는 추세에 한참 뒤처져 있다. 가까운 포항에 살면서도 경주에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다. 경주역에서 이미 이미지가 일그러진다. 그렇기에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갈수록 줄어든다.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는 이런 곳에서도 나타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있으면 훨씬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세오녀는 스마트폰이 아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건 세오녀이므로 나는 마음 속으로만 궁리를 한다.
대합실에 비치된 텔레비전 앞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화질도 엉망이다. 저런 것은 왜 고쳐지지 않을까?
다시 16:52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린다. 부전에서 오는 무궁화 호인데 오늘은 3분 지연이다.
나는 대구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 버스보다 기차를 이용하는 걸 좋아하지만, 세오녀는 승용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걸 더 선호한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기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기차를 타면 훨씬 자유롭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노트북을 이용해 기차 안에서 작성하고 있듯이, 컴퓨터를 활용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바깥 경치를 보면서 명상에 잠기도 한다. 버스를 타면 답답한 실내 공기로 인해 독서는커녕 그냥 눈을 감고 잠자는 게 상수다. 요즘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안에서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세태가 그렇게 변했다.
17:44 정시에 하양역에 내렸다. 버스를 타고 영남대학교까지 가서 강의실에 들어갔을 땐 이미 10여분이 지났다.
<코레일에 요구 사항>
-포항에서 15:15 출발하는 무궁화 호 열차 운행 시간을 조절하면 경주에서 동대구 방향으로 환승이 가능하다. 환승을 허용하여 포항-동대구 사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포항-순천 무궁화 호에 판매 승무원을 배치하거나, 자판기를 설치하라.
-경주역 시설을 보완하라. 인터넷 무료 이용, 철로 횡단보도 설치 등 교통 노약자를 위한 시설을 증설하라.
첫댓글 순천가는 기차가 있었네요 ! 시간 나면 한 번 여행겸 이용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