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모두 불길한 것으로 누구나 항상 싫어하는 것이니 도를 아는 사람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군자가 자연에 따라 일할 때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라는 것은 불길한 것이므로 군자가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군자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욕심 없이 담담한 것을 제일로 삼고 승리를 거두어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승리를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는 짓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는 장례의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기 때문에 슬픈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고 승리를 하였다 하여도 장례식과 같이 예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도는 한결 같고 이름이 없으며 이름을 초월한 것이다. 도는 손대지 않은 통나무처럼 그대로인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천하도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군왕이 만일 이러한 도를 따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장차 저절로 보배가 될 것이고 천지가 서로 화합하여 단비를 내리고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히 평등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통나무가 잘리고 쪼개져 많은 기구들이 생기듯 이것저것 분별하는 이름을 가진 제도가 생겨나면 이름을 가진 것의 한계를 알게 된다. 변하는 이름에 붙들려 있지 말고 변함없는 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도 있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산골짜기의 개울이 시내가 되어 자연히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넉넉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 지속하고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
큰 도는 넉넉하여 한 곳에 못 박혀 있지 않아 좌우로 없는 곳 없이 자유자재 한다. 만물은 도에 의해 생겨나지만 한 마디 자랑도 하지 않고 만물을 이루어 낸 공이 있지만 그 공을 내 것으로 하지 않으며 만물을 길러 내면서 그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상 욕심이 없고 아무 것도 갖지 않으므로 작다고도 볼 수도 있으나 세상 만물이 그 품에 돌아와 안기어도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므로 크다고도 말할 수 있다. 도는 자신을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에 그 큰 것이 참으로 큰 것이 되는 것이다.
도를 지켜 살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방해하는 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지만 무위의 진리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다. 눈 여겨 바라보아도 볼 수가 없고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들을 수가 없고 그 것은 써도 끝이 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
장차 움츠리게 하려면 잠시 펴지게 해준다. 장차 약하게 하려면 잠시 강하게 해준다. 장차 없애버릴 생각이면 잠시 흥하게 해준다. 이것을 미명이라 한다. 모든 유약한 것은 모든 강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나오면 살 수 없듯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기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나가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식하지 않으므로 덕이 있는 것이고 정도가 낮은 덕은 덕에 얽매이기 때문에 덕이 없다. 최상의 덕은 무위이며 자연스럽고 정도가 낮은 덕은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인은 유위이며 자연스럽고 최상의 의는 유위이며 부자연스럽다. 최상의 예는 유위이고 그 예에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 붙이고라도 예로 이끈다.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덕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된다.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초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어보는 지식이란 것은 도의 알맹이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이며 세상을 어리석고 못나게 만드는 시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두터운 쪽에 머물러 있고 엷은 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알맹이 있는 곳에 머물고 겉치레 쪽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와 지를 버리고 도를 택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를 받아 얻은 것이 있으니 하늘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맑고 땅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편안하며 신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신령하고 골짜기는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가득 차며 만물이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생겨나고 임금은 그 하나를 받아 얻음으로 천하를 곧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 곧 그 하나이다. 하늘이 맑지 못하다면 아마도 찢어질 것이고 땅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꺼질 것이며 신이 영험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신의 기능이 끝날 것이고 골짜기가 가득하지 못하다면 아마도 세상이 메마를 것이며 만물이 생겨나지 못한다면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만일 임금이 곧게 하지 못하고 높은 것만을 귀하게 여긴다면 아마도 그 나라는 파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낮은 것을 귀하게 하여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 외롭다 덕이 부족하다 선하지 못하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칭송 받는 명예를 원하게 되면 도리어 명예는 없어지게 되나니 찬란하게 빛나는 옥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대굴대굴 돌처럼 구르는 것이다.
老子 제40장 -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 도지동, 약자, 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세상의 만물은 천지음양의 기운인 유에서 나오고 유는 형체가 없는 도인 무에서 나온다.
참으로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하고 아주 정도가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숫제 같잖다는 듯이 크게 웃고 만다.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면 참다운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격언이 있다. 참으로 밝은 길은 얼른 보기에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얼른 보기에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펀펀한 길은 얼른 보기에 울퉁불퉁한 것처럼 보인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처럼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희고 깨끗한 것은 얼른 보기에 우중충해 보이며 참으로 넓고 큰 덕은 얼른 보기에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확고부동한 덕은 얼른 보기에 구차스러워 보이고 참으로 진실한 덕은 얼른 보기에 절조가 없는 것처럼 보이며 다시없이 큰 네모 난 것은 그 구석을 가지지 않는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그 성취가 늦고 다시없이 큰 소리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며 더없이 큰 형체를 가진 것은 도리어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말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도는 숨어서 모양이 보이지 않고 사람의 말로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란 것은 만물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그러면서 그 존재를 온전히 해준다.
도가 하나의 기운을 낳고 하나의 기운이 나뉘어 음과 양 두 기운을 낳고 음과 양 두 기운이 합하여 제 삼의 기운이 되었고 그 세 기운이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의 기운을 등에 지고 양의 기운을 앞에 안아 충화의 기운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부덕하며 선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지만 임금은 스스로 외롭고 부덕하며 불선함을 숨기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손해가 이익이 되기도 하고 이익이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는 것을 나 또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힘을 믿고 앞세우는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가르침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르고 연한 물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단단한 쇠며 돌을 마음대로 다루고 자신의 일정한 모양을 갖지 않는 물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마음대로 스며든다. 물의 예로 나는 부드럽고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삶 무위의 처세의 유익함을 아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가르침과 무위의 삶의 유익함의 예로 이 세상에서 물을 따를 만한 것이 없다.
명예와 생명 중 어느 것이 절실한가. 생명과 재산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괴로운가. 지나치게 바깥 것에 집착을 하면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너무 많이 재물을 쌓아 두면 결국은 그 만큼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변을 당하는 일이 없고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위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 오래도록 편안히 있을 수 있다.
참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어딘가 잘못 되어진 것처럼 보이나, 아무리 써도 못 쓰게 되는 일이 없으며, 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언뜻 비어 있는 듯 보이나 쓰고 또 써도 부족함이 없다. 참으로 곧은 것은 도리어 굽은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잘하는 것은 어딘가 서툴러 보이며, 참으로 잘 하는 말은 어눌한 것처럼 들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가 물러가게 된다. 그러므로 맑고 고요하면 천하의 기준이 된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며, 창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 알게 된다. 밖으로 알아보려고 나가면 나갈수록 참 지식은 작아져 아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돌아다니지 않아도 참다운 것을 알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힘쓰지 않아도 절로 이루게 된다.
성인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성인은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으로 선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성인의 덕이 참다운 진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자기 개인의 주의와 주견을 세우지 않고 다만 온 백성의 마음을 모아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 그래서 백성은 모두 성인의 이목을 주시하지만 성인은 모든 백성을 무지 무욕의 어린아이 같게 한다.
사람들은 삶에서 나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오래 사는 사람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또한, 오래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너무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을 잘 지켜 길러나가는 자는 육지를 여행해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갑옷을 입지 않는다. 외뿔소도 그 뿔을 들이밀 틈이 없고, 호랑이도 발톱을 들이댈 틈이 없으며. 병사도 칼날을 쓸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게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만물은 도에서 나오고 덕이 그들을 기르고 물체마다 형체가 있게 하며 환경에 따라 그들을 성장시킨다. 만물은 도를 존경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를 존경하는 것과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에서 태어나고 덕이 그를 기르고 생장시키고 육성시키며 형태와 질을 주어 기르고 돌봐 준다. 도는 만물을 낳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자랑하지 않고 길러내면서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한다.
세상에는 처음이 있으니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 한다. 이미 모체를 알았으니 돌이켜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이미 자식을 알고 돌이켜 그 어머니를 지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문을 잠그면 몸이 다할 때까지 근심이 없을 것이고 욕망의 구멍을 열고 번거로움을 더하면 몸이 다하도록 고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작은 것을 잘 보는 것을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켜 나가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그 빛을 이용하여 밝음으로 돌아간다면 몸에 재앙이 닥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떳떳한 도를 지키는 것이라 한다.
나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다면 무위의 큰길을 거닐며 오직 사도에 잘 못 빠질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깨끗한데 농촌은 황폐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엔 날카로운 칼을 찾으며 맛있는 음식을 싫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러한 것을 도둑의 사치라 한다. 어찌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확고히 세운 것은 쉽게 뽑히지 않고 제대로 안은 것은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도를 지키어 나가면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도로 몸을 다스리면 그 덕은 참된 것이 되고 도로 가정을 다스리면 그 덕은 여유가 있게 되고 도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도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은 나라를 풍족히 하고 도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그러므로 몸으로 몸을 보고 가정으로 가정을 보고 고을로 고을을 보고 나라로 나라를 보고 도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본다. 무엇으로 세상이 그리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도의 광대무변한 효능에 의해 알 수 있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곧 막힌다.
덕을 두터이 품은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 벌도 전갈도 뱀도 쏘거나 물지 않고 맹수도 덤비지 않고 사나운 새도 덮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럽지만 쥐는 힘은 강하다. 암수의 교합에 대해 아직 모르지만, 생식기가 저절로 일어서는 것은, 정기가 극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종일을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극치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조화를 아는 것을 변함이 없는 도라 하고, 변함없는 도를 아는 것을 밝은 지혜라 한다. 무리하여 연명하는 것을 좋지 못한 징조라 하고, 마음으로 기를 다스려 쓰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만물의 기세가 너무 왕성하면 곧 쇠퇴하는 것을, 일컬어 영원히 변치 않는 도가 아니라 한다. 자연의 도가 아닌 것은 금방 그치고 만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 감각의 구멍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예리함은 무디게 하고 복잡함은 풀어 없애며 앎의 빛을 흐리게 하여 혼탁한 먼지와 동화된다. 이것을 도와의 현묘한 합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묘한 합일을 이룬 사람은 얻어 친근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이롭다 여기지 않고, 해롭다 여기지도 않으며 얻어서 귀히 여기지 않고, 천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에 더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
나라는 정의로 다스려야 하고 전쟁은 기이한 계교로 한다. 하지만 천하는 행하지 않음으로 얻을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것에 의해서다. 세상에 규제하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가난해 지고 백성에게 문명의 이기가 많을수록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이 기교를 많이 부릴수록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법령이 많이 정비되면 될 수록 도둑은 더 많이 늘게 된다.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위로 대하면 백성들은 감화되고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이 바르게 되고 내가 무위무사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풍족해 지고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통나무처럼 순박해진다.
정치가 대범하면 백성들이 순박해 지고 정치가 분명하면 백성들이 다투게 된다.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은 화가 숨는 곳이다. 누가 그 궁극을 아는가. 절대적인 올바름이란 없다. 바른 것이 기이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요사한 것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상대성을 깨닫지 못한지 오래다. 그래서 성인은 반듯하지만 남에게 그리 되라 하지 않고 자신이 청렴하다고 남 또한 그렇게 만들려 하지 않고 자신이 바르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하지 않고 영지의 빛을 간직하고도 내 비치지 않는다.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검소함이다. 오직 검소한 것을 일찍 도를 따른다 하고 일찍 도를 따르는 것을 덕을 쌓는다고 한다. 덕을 많이 쌓으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고 극복 못할 것이 없으면 아무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 무한한 기능을 가지게 되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다. 나라의 어머니인 검소함이 나라를 오래 보존한다. 이것을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굳게 하여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도라 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물고기를 삶는 것과 같다. 도로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신령한 힘을 잃는다. 귀신이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귀신의 힘이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더러 성인도 역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귀신과 성인이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그 덕이 어울려 백성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