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중세도시-뻬루쥬
리옹은 우리나라의 대전 쯤에 자리 한 파리 다음으로 큰 대도시에 속한다. 그 리옹에서 북동으로30K 지점에 있는 중세 도시 뻬루쥬의 상시주민은 90명 정도에 불과하다. 리옹으로 출퇴근을 하거나 현지에서 장사를 한다. 작은 도시 뻬루쥬는 1911년에 유적으로 지정된 이래 유럽 각지에서 연간 4~5O만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언덕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중세 도시의 전형 뻬루쥬는 장인들의 도시다. 일찍이 1200년대 초부터 농업과 직물 제조를 수공업방식으로 이어오다가 이름난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이끼가 낀 돌담, 무너져 내린 벽체 위를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 강(江) 자갈이 촘촘히 깔려 있는 골목길들이 지금도 중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페르쥬 어느곳에서도 호화로움은 찾아 볼 수 없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울퉁불퉁한 보도 위로 귀족들의 저택과 수수한 장인들의 집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이다.
한번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족할 이 도시는 삼총사, 무슈 뱅상 같은 프랑스 영화의 배경으로 나왔고 관광객 말고는 너무나 조용해서 고즈녁한 분위기에 젖다 보면 내 자신이 중세의 한 장면을 기웃거리고 있는 환상에 젖게 된다.
페키지 투어로 프랑스 고성을 둘러 본 적이 있지만 이곳 만큼 마음에 와 닿는 곳은 없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폐허의 거리를 거니는 기분은 내가 자주 오르는 북한산 코스중 백화사에서 의상봉으로 넘어가는 등산길에 만나는 미쳐 복원되지 못한 퇴락한 북한산성 한자락을 거니는 기분과도 흡사하였다.
우리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극락전이 고려 말 건축양식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은 수차레에 걸친 몽고의 침입과 임진왜란 그리고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어버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남아 있는 낙양읍성이나 서울 북촌 같은 것이라도 더욱 소중하게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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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쥬 뒷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