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왓밸리라 불리우는 곳, 옛날 알렉산더가 이 강을 건너 인더스 강까지 진출하기 위하여 교두보를 쌓았던 우데그람과 비리 콧, 그리고 간다라 미술이 시작된 곳이 바로 밍고라입니다.
여기 하루 답사하느라고 생수 1.5L 3개를 먹었습니다.
19일차 (8월 4일 목요일) 밍고라 주변 돌아보기
06: 40 기상
밤새 푹자서 그런지 다행히 한결 몸이 나아졌다. 허리와 다리의 신경 아픈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몸살이라도 안났으면 좋겠다. 찬물에 샤워한 후에 오늘 동선을 그려보았다. 아무래도 니모그램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론니에도 그곳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한다고 한다.
아침은 사과와 복숭아로 때웠다.
08: 40 호텔 나옴
어제 끊어진 시계줄을 호텔 옆의 노점에서 갈았다. (시계줄/20루피)
08: 35 럭샤타고 스왓 박물관으로 출발(20루피)
08: 42 스왓 박물관 입장
개자식들이 어제 부카라에서 받은 입장료를 보여주니 않된다고 한다. 자기들은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곳이란다. 그래서 티켓을 보자고 하니 어제 받은 입장권과 똑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제 부카라에서 이거 하나면 다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도 스왓 박물관 발행이라고 적혀있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뭐라고 변명을 하는데 이해도 않될뿐더러 구차한 변명같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하니까 발행 넘버가 다르다고 억지를 부린다. 넘버야 당연히 다르지 않느냐니까 어쨌든 않된단다. 표 형태라도 다르게 하고선 돈을 받아야지 이건 너무한다싶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200루피 내고 입장권을 사서 들더갔다,
안에 들어가니 탁실라는 부처상 중심이었지만 여기는 경전과 석가의 일대기를 작은 부조로 새긴 것이 너무 정교하고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주로 부카라와 니모그램, 샤이두 샤리프 스투파에서 나온 것이 중심이었다. 관람객들이 없어서 그런지 관리인이 옆에 달라붙어 사진을 못찍게 철저히 감시햇다. 아마도 따졌다고 복수하는 거겠지.
09 : 05 박물관 나옴
사진을 못찍어서 도록이나 화보집이라도 살려고 하였으나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파키스탄은 박물관 도록이나 화보집이 거의 없다. 있어도 사진의 질이 마치 60년대 수준이어서 너무 조악하다. 게다가 값은 얼마나 비싸던지... 그나마 괜챦다 싶으면 1200루피 정도 한다. 누가 그 돈내고 마치 늙은 기생이 짙은 화장한 듯한 사진을 사겠는가?
박물관을 나오니 입구에서 럭샤꾼 하나가 접근하더니 자기는 이곳의 유적지를 잘아는 전문가라면서 무슨 증명서도 보여준다. 그러면서 7군데를 700루피에 가자고 한다. 내가 300루피에 가자고 하니까 600루피 이하는 않된다고 한다. 그럼 우린 간다하고선 럭샤를 불러 우체국을 가자고 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영어를 못하는지, 아님 잘못 알아들었는지 조금 가더니 내가 20루피 맞냐니까 100루피란다. 웃기고 있네하고선 세워서 내려버렸다. 다른 럭샤를 잡았는데 이 친구 역시 영어를 못한다.
※ 파키스탄을 여행하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럭샤꾼들이 영어를 못하면 타지 않는게 좋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럭샤꾼들이 언어 소통 문제로 가격이나 목적지를 멋대로 해석하거나 요구하기 때문이다. 날도 더운데 열받고 바가지 쓰기 십상이니 피하는게 좋다. 어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지나가는 사람중에서 영어하는 사람을 잡아 통역해 달라고 한 후 가격과 목적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타야한다. 우리도 이번 여행에서 대여섯 번을 당했다. 나중에는 노이로제 걸린다.
이 친구에게 아들들에게 보낼 엽서를 보여주면서 우표사서 보내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조금 이해한 듯, 그러나 조금 가다가 로터리의 경찰에게 물어보기에 다시 엽서를 흔들었더니 경찰이 제대로 알려준 모양이다. 씨익~ 웃더니 우체국에 정확히 데려다 준다. 우체국은 스왓 뷰 호텔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300m쯤 올라가면 4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들어간 골목 안에 있다.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25루피씩에 엽서 3장을 보냈다.
09 : 40 우체국 나옴
우체국을 나와 스즈키를 타고 우데그람으로 가기위해 GT(일반 버스 터미널)쪽으로 길을 걸었다. 어제 그 쥬스가게를 지나다 사장과 얼굴이 마주쳤다. 반색을 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우리 갈 길이 멀다고 하니까 음료수 한잔식만 하고 가란다. 할 수 없이 들어가니 맹고 쥬스(난 별로다. 너무 달아서...)를 하나씩 준다. 우리보고 뭐할거냐고 묻기에 오늘은 우데그람하고 바리 콧 주변을 둘러볼려고 한다니까 이 동네 사람들 말 못 알아먹는다고 부득부득 자기가 같이 가야한다고 한다. 그럴 필요없다고 말려도 소용이 없다. 결국 GT 옆의 자기 형 가게에서 택시를 수배한다.
10 : 20 GT 출발
쥬스가게 사장 이름은 토라일이다. 토라일이 수배해 온 택시는 엑셀 GL이다. 내가 처음 샀던 승용차와 같은 것이다. 택시를 타고 출발하였다. 솔직히 택시타니 좋긴 좋았다. 우리끼리 아닌 말로 택시비를 내더라도 현지인이 교섭했으니 그래도 바가지는 쓰지 않겠다고 위안을 하였다. 이 곳에서 하루 대절하면 기름값 포함하여 3,000루피였다.
10 : 40 우데그람 동네 안쪽 공동묘지 도착
공동묘지 자리는 예전의 Ora's bazzar 자리다. 택시를 세운 후 길을 나서려니 토라일이 따라 온다는 걸 저 산꼭대기까지 가야하니 힘드니까 여기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가 다녀오겠다고 달래서 기사와 숲속에 있으라고 한 후 출발하였다. 올라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넓었으나 워낙에 날이 더워서 금방 땀이 흘러나온다.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공기가 칙칙하고 힘들게 한다.
올라가다가 목동아이 하나가 당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오고 있기에 10루피 줄테니까 모스크까지만 태워달라니까 그러자고 한다. 그런데 당나귀를 탔는데 아이가 아무리 달래고 때려도 굼쩍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난감해 하기에 괜챦아! 네가 그런 것은 아니쟎아 그러면서 그냥 올라갔다. 아이가 10루피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기에 그냥 가지라고 하였다. 당나귀가 잘못한거지 아이가 잘못한 것은 아니니까 지불할 것은 지불해야지...
11: 05 모스크 도착
그 아이와 헤어지자마자 작은 개울을 건너면서 길이 갑자기 가파라진다. 힘들게 올라가니 모스크가 보인다. 이 모스크는 11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어떤 청년이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를 자처하기에 정중히 거절했지만 막무가내다. 그래서 우리가 돈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앞장선다. 일단 모스크를 구경하고 시원한 물도 한잔 얻어 먹은 후 그 청년을 따라 나섰다. Ura까지는 그리 먼 길은 아니었지만 경사가 급하고 햇살이 사람을 푹푹 쪄서 상당히 힘들었다.
※ Udegram 찾아가는 법
밍고라에서 바리 콧 가는 스즈키나 봉고를 타고 우데그람 간다고 차장에게 말한다. 출발하여 10분쯤가면 우데그람 마을이 나온다. 길 왼쪽에 Jamal 영어학교가 보이면 내릴 준비를 한다. 그 학교를 조금만 더 지나면 파키스탄 국립은행(PNB)이 나오면 하차한다. 내려서 오던 길을 되짚어 10m쯤 가면 긴 골목길이 나온다.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그 골목길을 따라 쭉 들어간다. 대략 500m쯤 들어가면 마을 끝나고 넓은 공터가 나온다. 길게 패인 마른 냇가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공동묘지, 건너편에는 시원한 숲이 보인다. 거기서 숲을 보고 11시 방향으로 길을 따라 가면 비교적 잘 정돈된 넓은 산길이 나온다. 그걸따라 죽 올라가면 된다. 모르겠으면 목동아이들이 있다. 우데그람 어디냐고 물어보면 가르쳐 준다.
큰 길에서 바라보면 뒤의 더 큰 산 능선 앞에 작은 삼각형 언덕이 보이고 그 꼭대기에 무슨 건물터가 보일 것이다. 거기가 Ura 즉, 고대 그리스 인들이 세운 도시 유적이다. 우라 밑에는 나중 시기에 지어졌던 모스크의 건물 터가 남아있다.
11: 25 URA 도착
우라의 정식 이름은 Raja Gira's castle 이다. 생김새는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2000년도 더 지난 세월치고는 꽤 개끗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건물 터나 담의 모습도 완연하다. 꼭대기에 서니 시원한 바람이 비오듯한 땀을 상큼하게 씻어준다. 요새의 끝에 서서 스왓 강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 전망대치고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건 분명하다. 상당히 먼 거리까지도 뚜렷하게 보였다. 요새 주변의 산자락이나 능선에도 많은 건물터가 옛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산 중턱에 도시같은 형태로 사람들이 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요새에서 내려와 그늘 밑에서 담배 한대 피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청년은 하키 선수였는데 다리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둔 모양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니까 한국의 하키 실력이 상당하다고 치켜준다. 무슨 이야기냐 파키스탄이 그래도 전통적인 강호아니냐고 하니까 활짝 웃는다. 천천히 오던 길을 되짚었다. 모스크에 와서 물 한잔 더 얻어 마시고 청년과 헤어져 내려오니 토라일이 헐덕거리며 올라온다. 우리가 안내려와서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택시로 가서 다음 코스인 부다상으로 출발하였다.
12: 06 출발
12: 10 메인 로드에 도착
12: 17 (Ghaligai Budda) 부다 상 도착
부다상은 도로 바로 옆에 있었다. 무슬림들이 우상이라고 얼굴을 도려내서 정확한 형태는모르겠으나 좌상의 형태는 완연하다. 그 옆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텅빈 작은 동굴만 남아있다.
12: 23 출발
조금 가다 슈퍼에 들러 생수와 음료수를 사서 나눠 먹었다.
12 : 28 상기르가르 스투파 도착
상기르가르 스투파는 어제 밍고라 가던 길에 보았던 길가의 거대한 탑이다. 내려서 스투파에 가보니 규모도 엄청나지만 형태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이주형 교수의 책에서도 비교적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던 스투파였다. 책에서 본 걸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한바퀴 빙 둘러보고 나왔다.
12: 38 출발
12: 48 바리콧(Bari kot)의 Bazira 유적 도착
바지라 유적은 옛날 페르시아의 표로가 되었던 그리스인들의 후예인 박트리아 인들이 세운 도시유적이다. 작은 규모지만 비교적 도시 형태는 잘 갖추어져 있다. 이 유적지는 바리콧 중심지에서 페샤와르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시 외곽의 강 다리를 건너 150m쯤 가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경사진 밭 가운데 있다. 이 유적지 건너편이 360도 전망이 쥑여준다는 언덕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1시간 정도 올라야 한다고 한다. 더워서 포기했다.
12: 55 출발
12: 58 바리 콧의 시내 슈퍼에서 생수를 다시 샀다.
이곳 바리 콧은 예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하러 온 길에 들렀던 곳이다. 당시 현지인의 저항이 완강하여 알렉산더도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리 콧을 둘러싼 전투에서는 원주민 7,000명을 죽이면서 피로 대지를 적신 후에야 이곳을 겨우 점령하였다고 한다. 그런 후 이곳 주변에는 그리스의 요새와 망루를 비롯한 도시문화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13: 13 gumbat stupa 있는 마을 도착
바리 콧에서 남쪽으로 가다가 나와가이 마을을 지나 학교가 나오면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 마을끝까지 갔다. 거기서 차를 세우고 마을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13: 30 굼바트 스투파 도착
상기르가르 스투파보다는 작았지만 산속에 홀로 서 있는 풍경이 좋았다. 문제는 너무 땀을 많이 흘리면서 걸었다는 것이다.
13: 54 마을 출발
14 : 10 점심 식사
바리 콧을 지나 밍고라쪽으로 가다가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해서 내렸다. 대우 버스를 영어 학교 통학차가 들이 받아 사고 처리하느라 주변이 부산하다.
식당에 들어가서 미트 라이스를 시켜 깻잎에 먹었다. 깻잎 맛으로 맛없음을 눈가림하엿다.
14: 38 식당 출발
15: 00 호텔 도착
토라일이 택시비를 계산한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대충 보니까 600루피 정도 주는 거 같았다. 우리가 탔으면 최소한 두배는 주었을 것이다. 호텔을 체크 아웃하고 자기 집에 가서 자라는 걸 겨우 겨우 달래서 저녁에 식사하는 걸로 합의를 보고 숙소로 들어왔다. 7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너무 담을 많이 흘려 기진맥진하다. 샤워기를 트니 물이 핫 샤워다. 더워 미치겠다.
씻고 친대에 누우니 스르르 잠이 온다.
18: 00 기상
충분한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 다시 샤워를 한번 한 후 약속한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18: 30 호텔을 나옴
시간이 남아 인터넷 상황을 파악해 보고자 찾아나섰다. 호텔을 나와 길 건너편을 따라 오른쪽으로 100m쯤 가니 하나 있고 거기서 100m쯤 가니 하나 더 있다. 그러나 둘다 win98인데 한글이 깨져 나와 쓰기는 커녕하고 볼 수도 없었다.
19: 00
시간이 되어서 쥬스 가게로 가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근처에서 식사를 하는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자기 집으로 가는 거란다. 당황해서 그건 곤란하다고 하였더니 이미 집에 전화를 해 놓았다고 한다. 집이 얼마쯤 떨어져 있느냐니까 한 15분쯤 가면 된다고 한다. 토라일의 조카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공과 대학생인데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의 IT산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삼춘의 영행이겠지...
19 : 30 가게 출발
일을 마무리하고는 종업원에게 가게블 맡긴 후 자기 오토바이로 가자고 한다. 럭샤타고 가는거 아니냐고 하였더니 여기는 오토바이에 3명가지 탈 수 있다고 한다. 일단은 타고 출발하였다. 시내를 지나 외곽으로 나가더니 스왓 강을 따라 계속 달린다. 놀이동산도 지나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간다. 진자 납치되는 줄 알 정도로 멀리 갔다.
20 :00 토라일의 집에 도착
이렇게 멀고 한적한 곳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걸 하는 후회가 엄청 밀려왔으나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큰 길에서도 마을을 지나 한참을 왔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다. 집에 갔더니 1층의 큰 창고 옆에 응접실을 지어 놓았는데 거기로 들어갔다. 조금 후에 아들들이 인사를 온다. 아이들이 아버지같지 않고 예쁘장하고 착하게 생겼다. ^-^
자기가 한국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각종 증명서나 자료를 꺼내 보여주었다. 자신은 다시 갈 생각은 없으나 일가 친척들 중 가능하면 한국으로 보내야겠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한국에 간다는 것은 노다지를 캐러 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한달에 받는 월급이 3000루피인데 자기가 매달 송금한 돈이 최소한 6만 ~ 7만 루피가 넘었다고 하니 한국에서의 노동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알 수 있겠다. 동네사람들이 우리가 신기한지 괜히 지나가다가 토라일에게 인사를 하곤 한다.
21 : 20 저녁 식사
완두 콩같은 걸 넣은 파키스탄 쌀로 밥을 지었고 양파와 토마토를 잘게 썰어 섞은 생 야채와 닭찜을 내 놓았다. 가져간 고추장과 김치 캔에다가 맛있게 먹었다. 음식의 간이나 맛도 좋았다. 토라일이 밥통을 가리키면서 한국산이라고 자랑한다. 여기서는 한국제품은 일류 제품이란다. 후식으로는 맹고와 노란 복숭아가 나왔다. 서로 주소를 주고받았는데 자기 동생은 현재 김해의 박스공장에서 일한다고 하였다. 내가 귀국하면 전화하고 한번 만나서 격려해 주겠다고 하였다.(돌아와서 전화를 했으나 핸드폰이 정지된 상태였다.)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는걸 내가 몸이 아파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호텔에 약을 놓고 와서 반드시 가야한다는 핑계로 겨우 일어났다.
22:10 토라일 집 출발
큰 길까지만 태워주면 스즈키나 럭샤타고 간다고 했어도 부득불 밤에는 위험하다. 특히 운전기사들을 믿어서는 않된다는 둥의 이유를 들어 호텔가지 데려다 준다는 걸 놀이 동산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설득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서는데 전조등이 고장나서 왼쪽 깜박이를 켜고 달려야해서 조바심이 났으나 어절 수 없었다. 다행히 손 전등이 하나 있어서 내가 그걸 뒤에서 비추고 가는 방식으로 달렸다. 밤이라 강에서 부는 바람이 무척 상쾌했지만 달리는 동안은 그리 맘이 편하지는 않았다. 놀이동산에 도착하니 이제 영업이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인데 다행히 럭샤가 몇 대 보였다.
22: 35 놀이 동산 출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럭샤를 탔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로 초면인 우리에게 이렇게 까지 환대를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돌아오는 길에 신 선생과 토라일에게 지갑이라도 보내주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토라일이 자기 지갑이 한국에서 산 것이라고 무척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다.
럭샤꾼이 헤매기 시작한다. 스왓 뷰 호텔을 모르는게 분명해서 “GT 로드” “버스 스탠드”를 몇 번 외치니 그제서야 겨우 알아들은 듯 버스터미널 부근으로 왔다. 호텔 앞 3거리가 보이기에 손짓으로 가리켜서 3거리에 내렸다. 럭샤비는 35루피 주었다.
23: 00
숙소에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다. 더위를 먹었는지 몸이 한 없이 무겁고 만사가 귀챠니즘이다. 정염제 1알과 아스피린 1알을 먹고 잠이 들었다.
※ 파키스탄 여행시 정염제를 준비합시다.
이곳이나 마르단같은 스왓 밸리는 정말 습도높은 더위가 사람의 숨통을 꽉꽉 조인다. 땀은 비오듯이 하여 닦을 엄두도 못낸다. 오늘 하루 종일 1인당 1.5L 생수 3개를 넘개 마셨다. 그나마 한국에서 정염제를 사왔기에 틈틈이 먹어서 버틸 수 있었다. 파키스탄을 여름에 여행할려면 (물론 훈자 - 핀디 - 라호르 - 인도 코스로 가는 사람은 필수는 아님) 약국에서 포도당이 가미된 정염제를 반드시 사오길 바란다. 그거 없으면 더위먹고 몸살나서 여행이 무척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복숭아, 사과, 포도, 수박같은 과일들을 점심이나 저녁 대용으로 먹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일 값은 싼 편이다. 맛도 훌륭하다. |
첫댓글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