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대담
순은(純銀)으로 빛나는 추억의 집
오탁번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번 시와 세계 창간호에 선생님을 모시고 독자와 함께 하는 만남의 자리를 만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많은 문학적 업적을 이루시고 언제나 순수한 열정으로 후학들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과의 만남이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선생님의 시를 보면 농촌 풍경이 잔잔하게, 때론 재미있게 등장하면서 자연을 미적으로 승화시킨 토속적 경향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학교 때부터 아주 뛰어난 문학적 소질을 발휘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떠한 계기로 처음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오탁번:나는 원주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는 한국 전쟁 후의 휴전직후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집에 라디오가 있는 학생들도 얼마 없었으니까요. 충북 제천군 백운면 백운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낮선 도시의 원주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학원이라는 청소년 잡지가 있었는데 지금 내 또래 시인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들, 적은 사람들은 1950년대 학원이 차지했던 비중을 지금도 향수로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직접 사지는 못하고 서점에 가서 보곤 하였는데 학생들의 작품이 실리면 조지훈, 박목월 선생님이 뽑아 총평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산문을 한편 보냈는데 그것이 학원에 실리게 되었고 원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가 실렸습니다. 그 당시 친구 마종하의 작품도 실렸습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우수작으로 뽑히면 상품을 주었는데 월요일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단상에서 호명하면 나가서 상을 전달받고 그랬습니다. 내 작품에 토속적인 것들, 자연 친화적인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내 문학의 정신적 ,물리적 고향의 터전인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 안에 그 시절 함께 했던 나비, 잠자리, 느티나무들이 등장하며 도시적 문명의 시적 변형 보다는 늘 자연 친화적인 것이 많이 나오고 그럽니다. 어린 시절에 남다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가난하지만 국민 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졸업하면서 도지사 상을 받았고 국민 학교 4학년이었을 때, 교장선생님이 문학을 좋아하셨는지 시골학교에서 문예반을 조직해 가지고 한 학년에 두 명씩 뽑아서 글짓기 지도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제 작품 중에 「바람이 옥수수를 만지면서 불어옵니다」라는 글을 보시고 교장선생님께서 많이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몰랐고 다만 어느 집이나 그랬겠지만 선비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선비답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가정교육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가난을 합리화 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르죠. 어릴 때 보면은 중학교를 다닐 때도 치악산이나 모든 산들을 궁핍의 대상으로 보았을 뿐이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그 산들이 문학적 생애에 버팀목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시의 고향 “내가 가장 불행할 때 나의 생명을 지탱해준 것은 시였다” “나를 마지막으로 구원해주는 것이 시였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소설로도 신춘문예에 당선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과 시가 갖는 문학적 의미는 어떻게 다른지 그 의견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오탁번:내가 늘 말하는 시와 소설은 표현 방법의 차이일 뿐이지 문학으로의 시나 소설은 같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를 읽고 그게 왜 시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는 것을 나는 안 믿고 시인도 어느 소설이 왜 좋은가 이걸 모르는 사람이 나는 시인이니까 시만 안다는 것도 나는 가짜다 라고 믿습니다. 표현방법의 차이일 뿐 분류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쓰는 것 자체가 노동을 필요로 하며 한꺼번에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나도 삼사십 대에는 소설을 많이 썼었고 몇 권의 창작집도 냈고 그 때 쓴 소설을 굉장히 아끼는 것도 있지만 시단으로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한 것은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40대 후반 인 것 같은 데 그러면서 시집으로는 겨울 강 1 미터의 사랑 벙어리장갑의 세 권의 시집을 묶어 낸 것입니다. 나를 구원해준 것, 내 생명을 지탱해준 것이 시란 것은 세상을 살면서 어려운 것이 많고 배신과 모반에 휩쓸리고 당하는 것이 많은데 나! 라는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아직 더 좋은 시를 써야 된다는 것을 소명으로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시는 바로 자기 구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것은 백 년을 못살고 가는 것이지만 작품을 특히 어릴 때부터 써 온 시라는 것은 내 고향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순수의 우주적 상상력 선생님께서는 동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등 많은 문학적 업적을 이루시고 “시는 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진실과 참된 시는 不二”라고 말씀 하셨는데요. 요즘 문학에서 시의 정직성이나 순수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오탁번:그것은 꼭 내가 한 말은 아니지만 어린이의 시선을 회복하는 것이 시인의 길이예요. 두 분도 시를 쓰시니까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첫돌보다 조금 더 어릴 때 촛불을 켜면 아이는 촛불이 예쁘니까 만지고 혀를 대고 하는데 좀더 크면 자나 깨나 불조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촛불이 예뻐서 만지고 혀를 대서 먹으려는 것이 시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시를 쓰는 것은 그런 어떤 것, 순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을 배우기 전에 어린아이는 '촛불'이란 단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만지고 혀를 대고 먹고 싶은 것입니다. 말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어디에 먼지 낀 것이나 수도 파이프에 녹이 슨 것과 똑 같거든요. 샘에서 물이 퐁퐁 올라오는 것처럼 모래도 같이 올라오는 것이 시인이지, 수돗물 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전에 산이나 바다를 무엇으로 보았을까. 하나 예들 들면. 서정주 작품 중에 「멀리 서 있는 바다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우리는 바다를 서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강릉가서 보면 정말 바다가 서 있어요. 상식을 깨뜨리고 순수하게 보는 것, 우리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보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우주적 상상력까지 나아가는 것이 시인입니다.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누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영원한 직선은 없는 거예요. 직선을 계속 그으면 지구가 둥그니까 결국 동그라미가 그려지듯 앞을 내다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다가 중간시험을 볼 때 몇 문제 중에 한 문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치욕적인 경험을 써라” 하면 학생들이 수영장에 그냥 소변을 보았다 하면 C학점 밖에 못 받아요. 그것보다 더굉장히 치욕적인 것을 드러내야 점수를 제대로 받아요. 글을 쓰는 것도 아이들의 마음처럼 아무 스스럼없이 치욕적인 것까지 드러내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시는 좋고, 나쁜 시는 정말 나쁘다”라는 선생님의 말씀 중 좋은 시란 어떤 시이며 나쁜 시는 어떤 시인가요? 오탁번:이것은 현대시학에 1년 연재하고 오탁번 시화라고 해서 책으로 묶여 있는 곳에 맨 마지막 장의 결론으로 말한 것인데 좋은 시가 뭐냐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지만 삶의 진실성, 원초성, 원형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썼다”거나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정말 그렇다”하고 일깨워서 공감대을 형성해주는 시가 좋은 시입니다. 어떤 느낌이 지나갔는데 그 느낌을 일깨워 주는 것, 자기 성찰을 연달아 주는 것 이런 것이 좋은 시입니다. 소설로 이야기 하자면,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으면 그 사람은 나하고 민족도 다르고 국가도 다르고 본 적도 없는데 나의 약점, 치욕적인 취약점을 다 폭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읽다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의 고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익스피어도 그렇고 윤동주, 정지용이나 서정주의 어떤 시들을 보면 진짜 그렇습니다. 지금도 내 작품 중에 「백두산 천지」 같은 몇 편의 시를 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썼나” 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작품을 쓸 때 보면 거의 신들린 것 같아요. 그런데 나쁜 시가 정말 나쁘다는 것은 분명한 데 독자들이 잘 모르니까 어떤 문단의 세력이나 그룹에 의해서 좋다고 하면 좋은가 보다 하는데 그것은 참 안 좋거든요. 읽어보면 공감도 안되고 그러니까 독자들이 시를 자꾸 떠나요 좋다고 하는데 읽어보면 안 좋잖아 하면서 말이죠. 한글로 쓴 시는 한글만 독해할 수 있으면 좋은 시인지 알아야 해요. 고전작품을 보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참 괜찮다” 라는 느낌이 있죠. 시도 그런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현대시는 난해하다 모호하다 해서 대강 써놓고 자기들도 왜 이렇게 썼느냐? 할 때 대답할 수있어야 해요. 시를 안 써도 되는 사람이 쓰면 시인이 아닌 것이지요. 영혼과 마주보며 1994년 여름에 나온 네 번째 시집 겨울강 서문에 “시를 생각하며 새벽잠을 깨고 시를 쓰며 자정을 넘길 때처럼 내 영혼과 가장 똑바로 마주 볼 때가 없다” 라고 밝히셨는데 요즘도 그러실 때가 많으신 지요. 그리고 아주 적절한 새로운 시어를 발견하시면 밤잠을 설칠 만큼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선생님만의 독특한 시작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오탁번:「벙어리 장갑」이란 시에서도 ‘목화솜’이란 단어를 쓸 때, 목화를 따서 벙어리장갑을 떠주는 그런 내용도 다 백과사전 같은 것을 찾아보고 씁니다. 그런 것을 내가 시로 안 쓰면 쓸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허둥지둥 밥을 먹었다” 라는 말에서 ‘허둥지둥’ 이란 부사가 너무 크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하동지동’이란 작은 단어가 있어요. 아주 곱고 좋은데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을 내가 사용해서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것입니다. 내년에 내 시 전집이 나오면 그런 말이나 단어를 각주처럼 뜻을 달아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안 하면 그냥 시인이 새로 만들어 낸 신조어라 생각하거든요. 순수한 우리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내 시에는 그런 것을 많이 생각하고 쓰는데 그것은 시인의 임무라고 생각 합니다. 사색의 항아리 선생님께서는 동화, 시, 소설 세 부문의 신춘문예 당선 타이틀을 가지고 계셔서 아주 특별하게 기억 됩니다. 선생님이 당선하셨던 그 시대의 신춘문예와 현재의 신춘문예에 대한 흐름이나 차이를 듣고 싶습니다. 오탁번:내가 대학 2학년 때 동화가 당선 되고 3학년 때 시가 되고 졸업할 당시에 소설이 되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있던 잡지가 현대문학하고 사상계 정도였으며 모든 대한민국 문학 지망생들이 신춘문예에 응모를 하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세 부문에 연이어 당선 되니 신문에도 나오고 사람들에게 이름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굉장한 영광이다” 라고 생각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멍에’도 되고 신춘문예에 안 된 사람에게는 영원히 미움을 받게 되지요. (웃음) 나는 시를 쓰나 소설을 쓰나 밤새 코피 흘려 가며 쓰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재주가 있어서 쉽게 그냥 쓰는 줄 알고 있어요. 그것이 전혀 아닙니다. 벙어리 장갑 시집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런 시를 어떻게 금방 도저히 못써요. 몇 번 읽어보고 다시 고치고 사전 찾아보고 그럽니다. 요즘에는 매체도 많고 잡지도 많고 그전에 비하면 신춘문예의 격이 떨어진다고 그럴까요. 그래서 새로이 창간된 어느 잡지에서 저보고 글을 써 달라고 했는데 신춘문예가 그렇다고 필요악이고 없애 버려야 되는 거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각 신문사들이 특성화를 해서 어떤 곳은 소설만 해서 그 작가를 지원을 한다든지 시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신문사마다 분야별로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문사가 다 당선시켜놓고 “다 나 몰라” 하는 식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신춘문예 미아’ 라는 말까지 있어요. 당선되고 나면 청탁 한 번 안 오고 혼자서 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재주 있는 문학도들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문예 창작이 많이 기능화가 되어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문예창작학과나 문화교실이 많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어요. 시는 손으로 쓰지만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하는 것만큼 씁니다. 만약 내가 시 창작 전권을 부여 받아 교육을 맡게 된다면 일 년 동안은 시를 읽게 하지도 않고 전혀 다른 것, 물리학 책이나 생물학 책이나 선(禪)책이나 읽게 하고 무언(無言)으로 말을 일주일 동안 안 하게 하는 것이죠. (웃음) 그러면 생각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나비가 날아가는 것도 다시 보이지 않을까요. 시도 다 구조잖아요. 기승전결이 있고 초장 중장이 있듯이 생각이 뒷받침 되면 시도 달라지고 잘 써 질 것입니다. 내가 시골에 가서 있다 오면 완전 신춘문예 응모할 때보다 더 절대적인 시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모임 같은 데도 잘 나가지 않고 사람 만나는 것도 잘 안하는 것은 그런 곳에 가면 시간이 그냥 가고 생각할 틈이 없지요. 그래서 여행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뭐를 떠나서 어디를 가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자기 집 앞이나 시장 앞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면 아무렇지도 않는데 여행하면서 보면 그 때 처음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것이 시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죠. 선생님의 시 경향은 정지용 시인의 영향을 직접, 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하는데요 . 그 당시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힘들었던 시대로 알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을 연구하신 것에는 무슨 특별한 깊은 의미가 있는지요? 오탁번:정지용이 해금되기 직전에 대학원에서 최초로 정지용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그 때 까지는 정지용 하면은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미지스트로 알려져 있으나 시집을 연구하다보니 그 보다 더 강한 그 무엇, 동양의 고전이랄까 사서삼경 시경 등의 그런 영향이 굉장이 많았어요. 특히 「백록담」 「장수산」 「춘설」이란 시를 보면 그 중에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다”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한시(韓詩)적인 발상 아닙니까. 동양 고전의 영향이 많다는 것을 논문으로 발표하고 나니까 정지용 같은 시인이 월북을 했느냐 납북을 했느냐가 거론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잘못 배우고서 흥분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저도 해방 후에 학교를 다녔으니까 교과서로도 배운 적이 없고 책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 때 교육받은 현대시사는 반 토막, 반쪽 짜리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 속에서 복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정지용 시인은 아주 큰 시인이고 아주 훌륭한 시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정지용과 미당일 것입니다. 미당이 친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당을 시인으로만 보니까 말할 수 없죠. 시는 시로만 본다 말입니다. 황진이의 시조에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 이것은 기막힌 시거든요, 지금도 그 만한 시가 없어요. 그러니 황진이가 기생이라고 욕하면 안돼요. 시는 시로 보란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조의 기생들이 어떻고 저렇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것만을 하고 지식인의 현실적응에 관한 논문을 쓸 때는 서정주는 이렇게 저렇고 그런 것은 좋단 말입니다. 시는 그렇게 보면 안되지요. 시는 시로 보자는 말입니다. 선생님의 첫 시집에서 나오는 ‘은이후니’가 연애시절 김은자 시인님과 서로 부르던 애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선생님의 짧은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오탁번:대학 다닐 때 연애하고 그러면서 편지도 하고 엽서도 하고 그러잖아요. ‘후니’라는 것은 학원이란 잡지에 투고를 해서 글을 쓸 때 매번 오탁번이라고 하면 재미가 없어 그냥 ‘후니’ 그렇게 사용했어요. 학원을 찾아 보면 나와요. 이름에 멋 부린 것이지요. 이 ‘은이후니’라는 말이 「굴뚝 소제부」란 시에 들어있는데 신춘문예 당선되고 나서 대학 4학년 때 썼을 거예요. 고대신문에 실렸어요. 그걸 현대시 동인들이 봐가지고 좋다고 동인하자고 했었죠. 여섯 번째 시집인 벙어리장갑은 기존의 시집과는 달리 어떤 새로운 경향이 들어 있는지 소개 해주세요. 오탁번:겨울강에서 1미터의 사랑 벙어리 장갑 모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이 자연 친화적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데 그것이 사실이 된 것 같습니다. 가족애라든가 돌아가신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그런 어떤 것 그리고 겨울강에도 있는 현실 비판, 현실 풍자적인 것도 중간 중간에 있고 그렇습니다. 동심으로 가는 시 1미터의 사랑 시집에 들어있는 「1미터의 사랑」이란 시를 독자들이 좋아하는데 그 시에 대한 선생님의 시작노트를 듣고 싶습니다. 오탁번:「1미터의 사랑」 제목 밑에 내가 쓴 것처럼 1미터, 1그람이란 단위들은 그 기준을 국제 표준학회에서 정해 놓았잖아요. 우리는 대충해도 되지만 달나라 로켓트를 쏘는데 조금만 틀려도 아주 큰일 납니다. 1미터는 빛이 얼마큼 가는 거리라는데 아무리 정확하게 정해도 오차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는 언어로 표현 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죠. 진실은 표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이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꽃이 아름답다”하더라도 이미 그 말 속에 오차가 존재 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하면 이것도 가짜입니다. 진짜 사랑하면 말을 못하죠. 진짜 사랑은 하나가 약 먹고 죽던가 말을 못해요. 요즘 사람들은 이해 못하죠. 별을 보는데 별의 빛도 4년 전의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별이 사라진 후에 별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죠. 태양은 8분 전의 것을 보는 것이고요. 그래서 현재 보고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닌 것이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보면 ‘이데아’ 라고 하잖아요. 진짜는 하나입니다. 그 오차 속에 발견되는 순간의 진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시는 늘 새로워야 되고 익숙해지면 털어 버려야 합니다. 지금 고려대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젊은 조교수들보다 제 수업이 더 참신하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선생님께서는 현재 많은 후학들을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시며, 문학지 시안도 만들고 계신데요.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젊은 시인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오탁번:어린 아이의 시점을 회복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얼마든 자기를 죽이는 것이지요. 자기를 말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없애 버리자. 호적 등본의 자신의 이름을 없애 버릴 정도의 심정으로 세계와 맞서 보란 말입니다. 그러면 소나무가 다시 보이고 돌멩이가 다시 보이고 그러지요.〈어린아이의 시선을 회복하라〉이 말은 더 나아가면 우리의 생명이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헤엄치고 올챙이같이 작은 그것이 배꼽에서 영양을 받고 살아가잖아요. 그 올챙이같은 태아의 상태에서 밖의 소리를 어떻게 들었겠느냐.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르지만 그 때에 태아가 있는 자궁 속이 우주 전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자궁같은 우주 속에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을 지워 버리고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서 다시 쓴다는 그런 심정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꽃도 봄에 다시 예쁘게 피지요. 진달래도, 들꽃도, 장미도 그냥 해마다 피었으니까 대강 피자. 그러지 않습니다. 죽고 다시 피는 꽃도 완벽합니다. 거미도 거미줄 칠 때 완벽하지 않으면 잠자리가 걸리면서 끊어집니다. 대강은 안돼요. 그만큼 생명을 걸고 시를 쓰라는 것입니다. 바쁘신 중에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열정적이고 순수한 선생님의 시세계를 깊이 느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독자들에게도 소중한 만남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寫眞(사진) 과 (人生)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고을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