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서울에서 “나, 오늘, 뚝섬 갈비를 뜯었지.”라는 말이 있었다. 여기서 갈비는 고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뿌리, 배추줄거리를, 곧 김치를 먹었다는 말이다. 순전히 채식을 하고서 육식을 한 것 마냥 뚝섬 갈비라고 한 사연 좀 들어보자.
이전에 동대문에서 여기 뚝섬까지 기동차(전동차)라는 협궤열차가 있었다. 그러니까 전차가 1960년 중반까지 있었다. 지금 동대문 이스턴 호텔 자리가 출발점이고 창신동 청계천 8가 쪽으로 뻗어가면 영미교라는 다리(지금 동묘 근처)가 있는데 그 다리 곁을 지나서 왕십리로 들어가서 한양대 밑으로 해서 뚝섬에 다다른다. 이 뚝섬에는 서울 사람들이 먹는 무, 배추를 많이 심었다.
그러니까 뚝섬 갈비란 뚝섬에서 나는 채소를 이름이니 아주 검소하게 음식을 들었다는 말이다.
큰 깃발 뜻하는 ‘뚝’에서 유래한 이름 ‘뚝섬’
“아하, 그렇군요! 서울의 근대 현대사가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뚝섬을 왜 뚝섬이라고 하였나요? 강뚝이 있어서 그런가요?” 이런 질문을 한다.
여기에는 내력이 있다. 뚝을 한문으로 독이라고 쓴다. 독할 독(毒)자 아래에 고을 현(縣)자를 쓴다. 고약하고 지독한 동네라는 독(纛)인가? 아니다. 독(纛)은 큰 깃발이다. 임금님이 군대를 사열을 할 때 세우기도 하고, 사냥을 나갈 때 호위하는 군사가 세우기도 한다. 조선시대 임금님은 곧잘 서울의 동쪽인 지금 뚝섬 쪽, 마장동 쪽, 왕십리 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때만 해도 거기에 꿩도 있고 토끼도 있었다. 사냥을 할 매를 기르는 야산도 있었다.
“자, 그 왕십리 쪽 동교(東郊, 서울의 동쪽성 밖, 교외)로 사냥을 나가자. 거기에 독기를 세워라. 거기는 한강으로 들어가는 중랑천 하류가 있어 삼면이 물이 있으니 섬이라고 부를만 하구나. 그 독기(纛旗)를 세운 섬을 독도(纛島)라고 부르자.”
이렇게 된 것인데 사실은 독이 아니라 뚝이 원래 깃발 이름인 듯하다. 그래서 독도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뚝도, 또는 뚝섬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news.seoul.go.kr%2Fnewsmail%2Fupload%2Farticle%2F030627%2Fdduk.jpg)
매 길렀던 매봉, 말 기르던 마장동
뚝섬. 나는 지금 한강가에 나부꼈을 큰 깃발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성수대교 서쪽 편에 있는 역인 응봉 역(鷹峯驛)을 생각한다. 그 응봉이 곧 매 응(鷹)자, 봉우리 봉(峯)자, 임금이 사냥을 잘 하라고 매를 길렀던 매봉, 곧 응봉이니까 말이다. 성수대교 서편 정상에 정자가 있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들어올 때 성수대교나 한남대교에서 보는 봄철 개나리꽃이 예쁘게 핀, 그런데도 여전히 돌산인 응봉을 사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말(馬)이다. 물론 서울을 지키는 군사에게도 중요한 것은 말이다. 동대문 밖, 그리고 한강 가까이, 여기에 푸른 초장이 있어서 말을 길렀으니, 오늘날 말 기른 목장이라고 말 마(馬) 마당 장, 목장 장(場)이라는 마장동이다. 말과 관련이 있는 마장동. 말은 가축인데, 요즘은 여기에 가축을 잡아서 파는 축산물 시장이 되었으니 그 마장동이라는 이름값을 단단히 하고 있구나.
수원지(水原地)와 성덕정(聖德亭)이 있던 성수동
이름값을 말하자면 성수동(聖水洞)이나 한강 성수대교도 마찬가지이다. 어찌하여 성수(聖水)인가? 좋은 물이 나와서 그런가?
지금 성수동 1가 110번지에 이전에 정자가 있었다. 임금이 가끔 이 정자에 나와서 말을 기르는 것도 사열을 하고 군대의 훈련도 지켜보았다. 임금님의 덕이 넘치는 정자라고 하여서 성덕정(聖德亭)이라고 하였다. 이전 ‘진텃마루’(성수1동과 2동에 걸쳐 있던 마을)라는 곳이 있었는데, 군대가 진을 치고 무예를 연습하던 터를 말한다.
그런데 1888년 미국 사람이 서울의 상수시설을 여기에 만들고, 이듬해는 우리 나라에서 인계를 받아 공사를 마무리지은 바 뚝섬 수원지가 된 것이다. 이 수원지의 ‘수’자와 성덕정의 ‘성’을 한 자씩 따서 성수동이 된 것이다. 이래저래 뚝섬과 성수동 일대는 서울 사람을 지키고 물 마시게 해 주는 고마운 곳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