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화폐, 자주적 협동운동의 도구
지역 화폐는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려낼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노동 성과를 외부로 빼앗기지 않고 지역 내에서 축적·순환하게 하는 뛰어난 도구이다.
시사 in [83호] 2009년 04월 13일 (월) 10:39:42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경제 공황기는 민초들에게는 대재앙이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는 모처럼의 대청소 작업을 통한 체질 강화로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자본가들과 부유층이 공황이라고 해서 민초들처럼 온갖 시련과 고통, 인간적인 모멸을 겪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들은 구제금융의 혜택을 누리고, 대대적인 해고·감원 조처를 마음대로 강행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풀뿌리 민중의 운명이다. 흔히 1930년대의 대공황이 극복된 것은 뉴딜정책 혹은 결정적으로는 2차대전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시기에 풀뿌리 지역 차원의 매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유럽과 미국의 많은 공동체에서 활발히 전개된 다양한 형태의 자립적 협동·연대 운동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지역 화폐 운동이었다. 지역 화폐는 국가 화폐 대신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돈을 구성원끼리의 합의에 의해 사용함으로써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려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역민의 노동 성과를 외부로 빼앗기지 않고 지역 내에서 축적·순환하게 하는 뛰어난 도구이다. 원래 인류 사회에서 돈은 교환 수단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새 치부와 축재, 권력 행사의 수단이 됨으로써 악덕의 근원이 되고, 지금은 인류 사회 전체의 존명을 위태롭게 하는 원흉이 된 것이다. 지역 화폐는 권력 수단으로서의 돈을 배제하고, 교환 수단이라는 돈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것인 만큼 당연히 이자(利子)가 붙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지역 화폐는 화폐를 오래 가지고 있으면 손해를 보도록 고안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32년 7월부터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뵈르글에서 시행된 실험이었다.
당시 인구 5000명 정도였던 이 도시는 심각한 불황 속에 실업자가 넘치고, 세수(稅收)는 격감하고, 도시 재정은 파탄 상태였다. 그래서 뵈르글 시의회는 지역 화폐를 발행키로 의결하여, ‘노동증서’라는 지폐를 찍어 보급했다. 증서의 뒷면에는 “여러분, 쌓인 채 순환하지 않는 화폐는 세계를 큰 위기에, 인류를 빈곤 속으로 빠뜨렸습니다. 노동을 하면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합니다. 돈이 일부 사람들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목적을 위해 뵈르글의 노동증서가 만들어졌습니다. 빈곤을 타파하고, 일과 빵을 주려는 것입니다”라는 글이 인쇄되어 있었다.
공공 시설의 정비와 건설에, 공무원의 급여에 이 화폐를 지불하자, 이 돈은 즉시 빠른 속도로 시 전역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소비가 촉진되고, 경제가 살아나고, 세수가 늘어났다. 그런데 이 신속한 화폐 순환의 비밀은 ‘노동증서’에 첨부된 스탬프에 있었다. 이 증서는 효력을 유지하려면 매달 초에 액면가의 1%에 해당하는 스탬프를 사서 첨부하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한 달에 1%씩 가치가 감소하는 지폐이기 때문에 소지자는 빨리 그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민초의 운명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거한 싸움을 통해서만 개선된다
‘스탬프 화폐’라는 아이디어는 원래 독일 출신 경제이론가 실비오 게젤(1862~1930)의 것이었다. 게젤에 의하면 “골수에서 만들어진 피가 순환한 뒤 역할이 끝나면 배설돼야 건강이 유지되듯이 돈도 경제라는 유기체를 순환하고 소멸돼야 건강한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 보유 기간을 설정해서 초과하면 세금을 무는 방식을 게젤은 생각했고, 이 아이디어의 실효성은 뵈르글에서 실제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뵈르글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주변 도시들이 늘어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화폐 발행이 국가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 지역 화폐 운동을 금지해버렸다. 이로써 뵈르글의 실험은 14개월 만에 중지되었다.
같은 시기에 북미에서도 지역 화폐 운동이 활발하여, 한때 미국 전역에서 발행된 ‘자주통화’는 3000여 종에 이르렀다. 그렇게 보면 대공황은 단순한 혼란과 시련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이 자주적인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창조의 시간이었다. 물론 국가권력은 기본적으로 분권지향적인 이 자주적인 협동운동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스벨트 정부 역시 지역 화폐 운동을 금지하고, 그 대신 뉴딜이라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전개했던 것이다. 만약 민중의 협동운동을 정부가 장려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계는 좀더 안정되고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것이 부질없는 몽상이든 아니든, 민초들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거한 싸움을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