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 남자는 누구일까?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와 그의 아내 이효재 씨.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무언가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살림에 유난을 떨었다는 이효재 씨는 서울 삼청동에서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다. 용인 산속에 있는 집에서 삼청동까지는 버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2시간 넘는 거리. 고단할 만도 한데 “시골길을 걸어 다니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결혼 후 깊은 산골에 집을 지었다. 밤낮 피아노에 매달려 있는 남편이 이웃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 연습실과 살림집, 효재 씨가 좋아하는 만화와 책들로 가득 찬 만화방이 서로 뚝뚝 떨어져 있는 집이다. 최대한 적게 움직이며 편리를 누리려는 현대인의 삶과는 정반대 원리로 지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길에 도라지나 나물을 캐고, 고추나 깻잎, 연잎을 따서 밥을 짓는다. 작품을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는 남편을 따라 해인사나 거창, 문경 등에서 구해온 식재료들도 많다. 이런 재료들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게 효재 씨의 기쁨. 그렇다고 거창한 밥상은 아니다. 임동창 씨가 반찬 가짓수 늘리는 것을 싫어해 찬은 잘해야 세 가지를 넘지 않는다.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자연의 맛과 향취를 그대로 살리는 게 이효재 식 요리의 특징. 그가 자신의 독특한 생활과 살림법을 공개한 책 《효재처럼》을 내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출간 열흘 만에 2쇄를 찍었을 정도. 된서리가 몰아친 날, 그의 삼청동 한복집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
쇼룸도 없이 소박한 간판 하나뿐인 집.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흙과 야생화로 채워진 아담한 한옥 마당이 나타난다. 표주박이며, 놋대야, 디딤돌 위에서 나란히 볕을 받고 있는 빨간 고추. 어디에도 문명의 이기라곤 보이지 않는다.
“숨겨 놨어요.”
화장기 하나 없는 말간 얼굴의 안주인 이효재 씨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명함은 놋그릇에, 전기 콘센트와 다리미는 수놓은 헝겊 밑에, 전화기는 대나무 상자 안에 숨어 있었다. 갓 닦아놓은 듯 윤기가 잘잘 흐르는 놋쇠 요강이 쓰레기통이란다.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자연을 곁에 두고 싶은 바람을 담아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나간 집이라고 한다. 싱크대 대신 용인 집에서 캐낸 돌들을 붙여 차실 주방을 만드는 식이었다.
“100년 전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다들 편안해하시네요. 탤런트 김수미 선생님이나 화가 김점선 선생님도 가끔 와서 쉬다 가세요.”
김수미 씨는 “마음이 잡동사니로 채워져 부대낄 때, 수습하기 힘든 감정이 일 때 효재네 집에 간다”고 책에 적었다. 용인 집이나 삼청동 한복집이나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차 내고, 먹을 것 준비하느라 손발을 놀릴 새가 없다. 그는 그게 또 즐겁다. 누구에게 뭘 만들어 줄까, 선물할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찬다. 먼 거리를 오가며 생활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힘들어요?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아요. 시골 살림은 마약 같아요. 밤엔 내 얼굴의 주근깨처럼 박혀있는 별들을 보면 얼마나 행복한데요. 여름엔 손톱을 발갛게 물들여 줄 봉선화도 실컷 구경하고요.”
남편 아호는 ‘그냥’ 아내 아호는 ‘지금’
올여름에 손톱에 봉숭아물을 열세 번이나 들였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예쁜 것을 좋아했다. 나들이 때마다 틈틈이 사기 주전자며 찻잔을 사다 모으고, 쓸모없는 브레지어 패드는 예쁘게 수를 놓아 물고기 모양의 장신구로 만들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집 주변의 꽃잎이나 솔잎을 따서 상을 꾸미며, 과일 하나도 마당의 돌 위에 푸른 잎을 깔고 내놓아 ‘예쁘게’ 먹는다. 임동창 씨는 예쁘게 싸놓고 간 도시락을 까먹고, 치우지도 않을 정도로 살림에 무심하다. 그는 그러나 불평하는 대신 ‘난 어쩜 이렇게 살림을 잘하고 남편을 공경할까. 마치 정경부인 같아’라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고. 매일 ‘예쁘게’ 죽는 연습도 한다.
“핑크빛 윗도리 입고, 하얀 이불을 곱게 덮고 자요. 오늘 밤 갑자기 죽어도 예쁘게 보이도록.”
옷차림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킨다. 그는 항상 고무줄이 들어간 긴 치마를 입는데, 죽을 때까지 그런 옷만 입을 거라고 말한다.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대신 그는 지인들이 사다준 인형에게 매년 어린이날마다 새로 옷을 지어 입힌다.
삼청동 한복집 |
이 부부의 사랑 표현법은 독특하다. 임 씨는 효재 씨를 “각시” 라고 부르고, 효재 씨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한다. 민머리인 임 씨는 긴 머리를 싫어하는데, 효재 씨는 긴 생머리를 고수한다. 그 때문에 남편 앞에선 두건을 쓰고 있을 때가 많다. 5년 전 그도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고 한다. 3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굶고 있는 남편은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사흘 후 아내가 “선생님, 나 부활했어요” 하자 임 씨는 “음, 빨리 했네” 한마디만 했다 한다.
“남편은 제가 힘들어하면 ‘씨앗이 대지를 뚫느라 지진을 만난 거다. 이제 대지를 뚫고 나왔으니 하고 싶은 걸 해봐라’ 이렇게 말해요.”
그는 스스로도 남편 공경에 유난을 떤다고 표현한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음악 한다고 어릴 때 부모 곁을 떠나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요. 제대로 한번 대접받으며 살게 해주고 싶어요. 남편과 형, 동생 하는 분이 우리 집에 다녀간 후 ‘형이 이제야 대접받으면서 사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는 편지를 보내왔더라고요.”
산골 외딴집 |
효재 씨는 나지막한 음성이지만 다변가였다. 다소곳한 여인상을 기대했는데, 씩씩한 여전사 같은 모습도 있었다. 벌레를 발견하면 임동창 씨가 “각시야, 벌레 나왔다” 하고 부르고, 효재 씨가 “어디, 어디” 하면서 달려가 잡는다고. 어렸을 적 그의 꿈은 ‘주렁주렁 주머니 달린 건빵 바지 입고 험한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종군 사진기자였다고 한다.
그의 생활과 이야기에 반한 사람들도 많다. 소설가 이외수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외수 씨는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서울로 차를 보내 효재 씨를 강원도 춘천으로 모셔 간단다. 효재 씨가 이외수 씨의 문하생들과 대화 나누는 걸 조용히 듣고 있다가 “압권 아니냐” 하며 글을 쓴다고. 그는 ‘효재의 손끝에 닿으면 누더기 헝겊도 선녀의 날개옷이 되고 초근목피도 진수성찬이 된다’고 붓으로 써주었다.
임동창 씨의 아호는 ‘그냥’인데, 효재 씨는 자신의 아호를 ‘지금’이라고 짓고 싶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인터뷰가 끝날 때 그는 ‘지금’ 내 앞의 손님이 소중하다며 동행한 사진기자와 필자에게 야생화 수를 놓은 면 행주에 뽕잎차를 정성스럽게 싸서 선물로 주었다.
부부의 아호를 합치면 ‘그냥, 지금’. 치열한 현대인의 삶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듯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불현듯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의 군상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사진 : 이창주
사진제공 : 중앙M&B
첫댓글 선생님처럼 남편 공경하다가도 가끔은 삐리리 하다는거~ 아니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