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의 두얼굴 (원제:백인들이 좋아하는 것) - 크리스천 랜더
박사과정 중퇴자
'백인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 개설
2006년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그해의 인기강사로 선정
현재, 사진작가인 그의 부인 제스와 LA에 거주
당신은 까페나 레스토랑에서, 홀 좌석이 텅텅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이건 뜨거운 여름이건 왜 사람들은 테라스좌석에 굳이 앉으려고 해대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에서 간혹 눈에띄는 아프리카 난민문제나 제3세계관련 폭로 자료들을 퍼뜨리며 누군가가 나서서 뭔가 좀 해주기를 바라듯이 부추기는 사람들의 심리에 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채식을 자기포장의 도구로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과,
현대에 와서 '유기농, 로컬푸드, 천연, 수제, 공정무역' 같은 택도없는 수식어들을 입 싹 닦고 마케팅에 활용해대는 생산자들이, 때론 우습게 느껴지지 않던가?
스티브잡스와 그의 회사가 만들어낸 것들에 열광하는 부류들 중에 부화뇌동하는 과반수 이상은 '그냥 좋다'라는 대답을 빼고 왜 별다른 이유는 대지 못하는지,
아침은 못 먹어도 모닝커피는 꼭 마셔야 되겠다며 커피 유전자라도 박혀있는것 마냥 오바를 떠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많은건지,
다른 갈 곳 다 놔두고 어찌 그리 사람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도 좌석이 모자르다는 골목골목 까페에 들 모여앉아서 테이블위에 커피한잔 올려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지,
지금은 잠잠해 졌지만 모양만 예쁘지 타기는 불편했던 픽시가 왜그리 유행이었고,
어째서 대학교때 알던 백인(내지는 유대계)강사 아저씨는 퇴근한 후나 휴일이 되면 복장까지 갖춰입고 자전거 타러 가야 된다며 그렇게 강박적으로 굴었는지,
집에서 책이나 본다던 내게 이제 곧 스포츠의 세계로 뛰쳐나가려던 그 백인남자는 어째서 안타깝다는 눈빛을 던졌는지,
독립영화, 인디음악 따위는 어째서 일단 있어보이는지,
비디오가게에서 테잎 케이스의 내용소개를 보며 영화를 고르던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줄거리 얘기 한마디라도 할라 치면 '스포일러짓 하지마!!!!!!!!!!!'라며 치를떠는 정신병자들 틈에서 살게 됐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때가 한번 쯤 있지 않았나?
당신이 현재 사회문화 전반에 관한 몇가지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든, 남 일에 무관심하게 살고 있었든
이 책은 어느정도 생각할 여지를 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봐봐 이런게 너와 우리가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은 백인스러운 코드들이란 말야' 라고 반 조롱조로 열거해 보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현재의 문화적 양상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추측하게 만드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 각국의 문화로부터 자유롭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속에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일본문화와 더불어
우리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양대산맥의 또다른 하나인
북미/유럽 주류 백인사회의 취향과 트렌드에
알게모르게 거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잖은가.
솔직히 벨기에나 조지아, 소말리아, 무자헤딘들의 문화와 우리가 얼마나 긴밀한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는 전반적으로 흑인문화 (사실은 '백인들에 의해 재해석된 흑인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음악과 춤과 패션 그리고 인사까지.
다운타운 흑인들의 도시생활을 다룬 영화들이 유행이었고 심지어는 그 영화속에 등장하는 백인들조차 흑인들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서서히 유행은 저러한 방식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제 길거리에 나가보면 '흑인스러운' 것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는 흑인들조차도 흑인처럼 하고다니지 않고 흑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웨스트코스트니 이스트코스트니 이런것에 관하여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제 별로 없다. '흑인음악을 좋아합니다'라는 말 자체도 왠지 어색해져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흑인음악인가?
모든 것은 융합되어가고, 또다시 뭔가 획기적인 것이 터지지 않는 한 당분간 표면적인 유행은 몰개성을 기반으로 한 다양성으로 한없이 수렴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랩하는 모습은 이제 그저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을 통해 희화화된 모습으로 잠깐 나올 뿐이다.
이런 가운데 주류 백인들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도시문화나 유러피안 문화가 거리와 어느샌가부터 유행 전반을 잠식해 지배하는 듯 하다.
10년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어느덧 20대 초중반이 되어 어른이라도 된것같은 눈빛들을 하고 번화가를 꽉꽉 채운다.
이제는 한적한 낮시간 까페에 들어서면 데미안 라이스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레이첼 야마가타, 존 메이어, 프리실라 안 등이 흘러나와 그들의 bgm이 되어주고 있다.
밤시간 클럽에 가면 얼마전까지 흘러나오던 것은 LMFAO 였다. 클럽음악의 주류는 하우스, 트랜스, 덥 등 일렉이다.
젊은이들은 마치 검은머리의 뉴욕(백인)시민, 검은머리의 유럽(백인)인처럼 하고다닌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나이키나 에어조던, 하이테크 디자인의 농구화에 대한 열망에서 벗어나
다양한 브랜드의 스니커즈, 에스빠드류,백인스러운 뉴발란스나 런닝화들을 신기 시작했다.
어느틈엔가 서울시민을 포함한 대도시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이야말로 앞서가는 코스모폴리탄이라 지칭하며,
길이나 정류장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흡연이나, 무분별한 애완견 동반 외출등등에 관해 몇년 새 갑작스럽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평범한 사람들마저 마치 오래전부터 뉴욕 시민처럼 살아왔었다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모두들 자신을 위한 타인의 배려에 관한 문제는 갈수록 집요해 지는데 정작 타인이 배려를 요구해오면 세상 각박해졌다며 한탄한다.
까칠함으로 중무장 하거나 여유로움을 가장한 지능적 느긋함의 연출이 선진문화시민의 자세인 양 행동하고 있는데,
뭔가 전반적으로 이중적이며 설익고 유행처럼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모두들 평론가이며 모두가 에디터 근성에 젖어있다.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되어 온 걸까?
이 책이 부분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서 말하는 소위 '백인스러움'들이 비단 백인들에게만 국한된 특징은 아닐 것이다. 좀더 정확히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트렌드에 민감한 평균학력 이상의 젊은이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게 늙으려 바득바득 노력하며 어제보다 오늘 더욱 스마트해 지고싶은 중년들'
의 전반적인 코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작가로서의 권위를 가졌다 라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그저 평범한 대도시의 하찮은 블로거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권위가 저작물의 방패막이는 아니지만
이정도 커리어의 작가가 이런 주제로 책을 쓰면 자칫 취향존중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져, 저마다 자기 생각만이 최선이고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여기는 무수한 평범한 우리네들에게 '성급한 일반화나 하고말야'라는 난도질을 당할 수 있다.
작가는 백인을 키워드로 시니컬하게 주류문화를 꼬집고 있는데
저자 본인또한 그런 문화의 어쩔수 없는 부분이요 소비자일 뿐이면서 '나야말로 타인들 속에서 독특하고 싶어!'라는 오만을 억누르지 못한채 글을 쓴 것은 아닐지 독서하는 내내 경계하며 읽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이런 책을 낸 저자의 호기에 나 역시 쿨하게 박수를 보낸다.
무더운 여름,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칙 릿 계열의 소설을 펴는 정도의 부담으로 홀가분하게 접해보자.
첫댓글 항상 좋은 책소개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
많은 도움과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잘보앗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