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TV 9시 뉴스
2008.12.11 (21:00)_김효신기자
한국 현대미술계 1세대 화가로 우리나라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
배동신 화백이 88세를 일기로 어제 별세했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에 거주해온 배동신 화백은 근대 우리나라 서양화단의
형성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수채화의 외길을 걸어오며
한국 근.현대 수채화 1인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박수근 화백으로부터 금강산에서 그림을 배운 배 화백은
남도의 풍경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그린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 2000년 10월 16일 대한민국 문화훈장 공적내용
세계적인 수채화 작가로서 유화의 밑그림 정도로 인식되던 수채화를 회화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척박한 지방 화단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함
배동신(1920~2008)
1943년 배동신 일본 화단에 약관의 나이에 공모전으로 일본 자유창작가협회의 정회원으로 등단하자 당시 뿔뿔이 흩어져있던 동경의 조선 유학생들은 함께 모여 미술학도로써의 사기를 드높이며, 자축하였다. 한국 유학생들은 연일 축제분위기를 이어갔다. 당시 한국인에게 ‘자유미술창작가협회’의 입상이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며칠의 고민 끝에 동신의 실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천재였던 것이다. 실력 앞에서 정치력은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신문이 '조선의 천재 우에노에서 꽃 피다'라고 대서특필하자 억눌려오던 한국 유학생들은 자부심으로 뭉쳤다. 당시 일본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유학하고 있었다. 이중섭, 강용운, 양수아, 박고석, 신상옥 등 울분을 안고 있는 한국의 유학생이 20명이 넘었다. 입선 축하자리에서 이중섭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렀다. 고화흠(원광대 전 미술대학장) 씨에 의하면 한국 유학생들은 그 전엔 거의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각자 학비조달을 위한 신문배달 등의 온갖 잡일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배동신의 입상은 그 와중에서도 이들의 정신을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서로의 사정을 살피고 도우며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시 미술유학생들에게는 물감 등의 화구가 극도로 부족했다. 흰색이나 푸른색 물감을 선호하는 사람은 붉은 물감이나 녹색이 남아돌았으므로 이것들을 서로 나누는 방식들이 생겨났다. 종이를 구하기 힘들었으므로 자연스레 다른 화판을 구하는 방법이 모색되기도 했다.
배동신(1960년작)
그림을 전문적으로 콜렉션하는 사람치고 배동신 이름을 한번쯤 거론 안한 이는 없다. 그만큼 강하고 매력적이다. 그러므로 특히 그림 매니아층들이 선호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표현주의적인 양식기조에서 출발한다. 구상화 추상의 이원적 양식의 이중성을 적 절하게 배합하여 조화 시키고 있다. 어눌한 붓놀림, 처음엔 그리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작품세계, 그것은 그의 작품성향이 다분히 나이브 페인팅(소박화) 범류속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어릴적 내가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 같다"는 말들도 한다. 그렇지만 배동신의 작품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배동신의 매력에 쑥 빠져버린다. 일반적인 그림에 심오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절재와 숨 돌이킬 틈 없는 붓 놀림 그리고 맑고 오묘한 색채, 친근감 있는 소재이면 서도 약간의 부피와 깊이가 투시되고 전반적으로 평면적이어서 마치 엷은 망사를 씌운 듯 가라앉아 있다. 격이 배어 있는 구도와 형태가 수채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 국립현재미술관장 이경성씨는 "배동신의 수채화는 우리나라에서 1인자이며 박수근, 이중섭 반열에 오르는 화가"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현실과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전업 작가에 국전에 조차 관여한 적이없는 고집스러움, 창작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순수함을
잃지 않는 창의적 열정이 작품 성향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배동신(1953년작)
▶ 2008-12-11 15:09
한국현대화단 '큰별' 지다.
아시아경제 고선주기자 rainidea@gwangnam.co.kr
제목: 한국현대화단 '큰별' 지다.
2008.12.10일 타계한 배동신(裵東信, 1920~2008)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1세대 화가로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화단의 큰 별로 평가 받아 왔다.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온 화가 배동신 화백은 근대기 서양화단의 형성 과정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수채화 외길을 걸어온 수채화의 산 증인으로 70여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한국 근·현대화단의 ‘수채화 1인자’로 자리매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