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가입한 연극관련 까페 회원인 서범원(하이텔 ID : 11wind )님의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현대연극에서 서사극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는 1920년대 독일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것의 이론적 연극적 개화는, Bertolt Brecht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서사극이라는 개념도 그것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의 완결과 미결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에 대한 것을, 미숙하지만, 포괄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글의 순서
1.서사란 무엇인가
2.서사극에 대한 개설적 개념
3.서사극의 발생 :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과 그것의 대응으로서의 서사극
4.Brecht 이전의 서사극 : Piscator의 서사극
5.서사극의 목적 :Brecht의 서사극을 중심으로 하여
6.서사극의 주요 범주
(1) Aristoteles적 희곡과 비Aristoteles적 희곡
(2) 낯설게 하기 (생소화) : Verfremdung
(3) 자세
7.서사극의 주요 기법
(1)해설자 : 설화자
(2) 노래
(3) 서언과 발문
(4) 관객을 향한 대사
(5) 극중극과 재판장면
(6) 장면제목과 내용설명
(7)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8.서사극과 리얼리즘
위에서 언급한 여러 사항들은 서사극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개념들이지만, 이 글에서는 Bertolt Brecht의 서사극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파악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서사극이라는 '연극의 분지'가 Brecht에서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Brecht 이후의 서사극이 발전되어 각별한 모습을 독일을 비롯한 서구와, 제3세계에서 이루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이 중 서구의 서사극이 Brecht 서사극의 형식적 부분의 계승이라는 측면이 강하다면, 제3세계의 서사극은 Brecht 서사극의 정치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수용되었다고 할 것이다. 제3세계에서는 사회주의 극작가인 Brecht의 연극이 그 지역의 사회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거나 현재 수행하고 있다. 이런 다기한 서사극의 발전이 있지만, 발전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 'Brecht의 서사극과 리얼리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사극에 대한 파악은 Brecht 서사극에 대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1. 서사란 무엇인가
서사 : Epic에 대한 개념을 먼저, 가장 친숙한 용어인 서사시에서 시작해보기로 하자. 본래의 서사시란 민족적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장중 웅대한 결구의 운문시지만, 문예의 기본형태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으로 사건 전
개를 객관적 서술 형식으로 표현하는 종류의 작품전체이다. 문예학에서는 이것을 서술예술이라고도 한다. 이 이름이 표시하듯이 서사시적 문예는 서정시와는 반대로 주관적인 상태의 표백이 아니라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사건 서술을 주로 한다. 또한, 범인류적이고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서사물은, 현실 또는 허구의 사건과 상황들을 하나의 시간연속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각별히, 서사극에서의 이 용어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산물로서, 그 시대의 주도적 시인들 - 괴테와 실러 등 - 은 자신들의 극 개념을 정의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리에서 ... 극의 이야기 방식의 차이점에 대해 상당량 언급했다.
"서사(이야기)시는 사건들을 과거의 그곳 그때에 발생했던 것들로 제시한다."
이상에서 본다면,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 방식으로, 사건을 객관적이고, 감성적이지 않게, 역사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개념의 일부분은, 뒤에 기술하는 생소화 효과(낯설게 하기))와 연관된다.
2. 서사극에 대한 개설적 개념
여태까지의 극이 Aristoteles적인 극이라고 한다면 서사극은 비Aristoteles적 극이다. 즉, Aristoteles가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교류, 동화작용, 그리고, 카타르시스, 사건의 시작과 그 결말에 반해, 서사극은 극에서의 이성, 판단, 객관성을 주장했다. 서사극은 관객이 극중 사건이나 인물 속에 적극적으로 몰입되는 것을 반대, 극과의 거리, 불연상태를 주장하여 Verfremdung(영어로는 alienation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뜻은 못된다.), 즉, 유리작용을 내세웠다. 관객은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등장인물과는 밀착해서는 안되며, 유리적 입장을 취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무대를 대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Brecht는 무대에서의 사건이나 어디까지나 그것이 '연극적인 것'이지, 사실 그 자체나 현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관객은 현실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떤 '예'를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도록 하며, 그러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사건의 원인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객관성,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에 감정적 몰입이나 교류는 금물이다. 배우들 역시 Stanislavsky가 주장하는 극중인물과의 동화작용을 배제, 전통적인 의미의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물의 모습을 예시 : 시위(demonstrating)하는 행위를 하여야 한다. Brecht는 연극에 있어서의 Verfremdung, 즉 유리작용을 위해 극의 내용도 가능하면 현재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을 택하여, 이른바 '역사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냉정한 객관적 태도로, 만약 내가 그 당시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판단력을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관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모습을 보고 현대에 있어서의 가능한 사회개혁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 서사극의 발생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과 그것의 대응으로서의 서사극 독일의 표현주의 연극은 그 주제의식이나 형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단명하였다. 사회 정치문제에 촛점을 두었던 이 표현주의 연극이 쇠퇴하자 대신 등장한 것이 서사극이었다. 이 표현주의 연극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었는데, 우선, 표현주의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겠다.
20세기에 나타난 여러 연극형식에 관?臼?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표현주의 희곡에 대한 공통적인 요점은 그것이 매우 엄격한 반리얼리즘 (Anti-Realism) 연극이라는 것이다. 표현주의는 아주 거친 신낭만주의로 시작되어 변증법적 리얼리즘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이런 출현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1910년대의 젊은 독일 극작가들의 극과도 많은 연관을 갖고 있고, 이 사조에 반기를 들고 나온 오늘날의 서사극에서도 표현주의의 강한 영향력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사상적으로 초기 독일 표현주의 연극은, 일종의 저항극으로서 31차대전 이전의 가족제도와 관료제도의 권위, 확고한 사회질서, 종국적으로 산업사회와 삶의 기계화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의, 권위에 대한 자유의 항거를 담은 격렬한 극이었다. 당시의 예술은 시민세계 전체와의 대결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미적 규범들도 반시민성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Brecht의 초기 작품세계 역시 '반시민성'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의 표현주의 예술과 일맥상통하지만, 사물의 '본질'이나 '인간' 그 자체에만 관심을3 집중했던 표현주의 작품들과는 달리, 가장 초기의 작품에서부터 이미 역사적, 사회적 요소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표현주의 작품세계와 다른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몰락'의 모티브나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주제로 삼고 있는 점에서는 표현주의 작품과 Brecht 초기 작품이 비슷하지만, Brecht 초기 작품세계는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언어적 측면에서도 표현주의 작품들과는 현격하게 다른 리얼리즘적 특징을 보여준다.
Brecht는 표현주의의 시대를 거쳐왔지만,3 표현주의가 지니는 '모순'과, '변덕', '혼란', 그리고, '무기력한 자들의 저항'을 비판했다.
"표현주의란 조악화를 의미한다. ... 알레고리가 다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정신과 이념적인 것의 축출과 과장이 주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학에서는 (우연히) 새 의회는 있되 새 의원은 없는 정치에서와 마찬가지의 경우가 되므로 이념에 대한 환희는 있되 이념은 없고,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운동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외적인 것에 집착했다. 즉, 육체를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능3한 한 색색으로) 정신을 위한 껍질을 사들였고 육체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의심을 품고 추측하기를 : 오인된) 영혼을 제시하는 대신에 영혼을 조악화하고 정신을 물질화하기까지도 했다."
서사극은 표현주의 연극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각별히, Brecht의 경우는 자신의 서사극과 표현주의 연극과의 차별성을 리얼리즘의 성취정도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표현주의적 기법을 구사하는 작가의 경우도 리얼리스트일 수 있으며, 리얼리즘적인 수법을 구사하는 작가라도, 그가 작품 속에3서 만들어내는 현실이 리얼리스틱하지 않을 경우는, 표현주의 작가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의 비판을 한 것이다. 결국, Brecht에게 있어서, "문제는 리얼리즘이었던 것이다."
4. Brecht 이전의 서사극 : Piscator의 서사극
마르크스 주의자 연출가인 Erwin Piscator(1893~1966)는 좌익'선동'을 위한 표현주의 연극을 발전시켰다. 연극에 처음 입문할 당시 Brecht와 함께 일했던 Piscator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공개적인 광장으로서의 연극 형식을 구상했다. 그들은 이 새로운 형식의 극을 서사극 : epische theater이라고 불렀다. Piscator는 1919년에서 1930년 사이 서사극 양식의 토대를 마련한다. 서사극이란 용어는 그것을 쓰는 연출가에 따라 그 뜻을 달리해 왔는데, Piscator는 이 용어를 Aristoteles적인 개념으로 시간과 장소의 일치를 지키지 않고 이야기되는 설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사극은 리얼리즘 연극의 제약과, 특히 견고하게 '잘 구성된 연극'이 갖는 제약으로부터 탈피한 자유로운 공연을 의미하게 되었다. 서사극은 감정이입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이며, 사회적 정치적 주제에 대한 보고서이어야 하며, 리얼리즘으로부터 자유롭고, 그 내용은 완전히 공개되어 관객의 검토를 가능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서사극의 양식과 개념을 구축해가던 Piscator는, 새 양식에 걸맞는 새로운 기법들을 실험해갔다. 그 기법들은 후에 서사극을 완성시킨 Brecht에 의해서도 거의 수용되는 것들이었다. 그 기법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는 극의 주제에 관한 글을 담은 두툼한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독립된 설명적 장치로서 영화가 이용되었으며,....여러가지 영상이미지....환등기와 플래카드 그리고 게시판 등이 극의 분위기를 위해 혹은 배경으로 사용.....회전무대, 콘베이어벧트, 트레드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전동화된 다리, 상하이동식 무대 등을..... 증폭된 음향과 음악.....확성기와 서치라이트를 관객 쪽을 향해 설치하기도 하였다."
Piscator의 이런 연극적 실험은 그가 의도한 바, 정치집회장으로서의 극장을 만들기 위하여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Piscator는 자신의 무대가 '연극기계'가 되기를 원했다. Piscator가 실험한 이런 서사극에 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Brecht는, Piscator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과, 자신의 서사극과 Piscator의 서사극과의 차별성을 이렇게 말했다.
"비Aristoteles적 희곡이론과 생소화 효과의 정립은 극 쓰는 사람-Brecht 자신을 의미한다.-의 업적으로 보아야겠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은 이미 Piscator가, 그것도 상당히 독자적으로 사용하였네. 무엇보다도 연극이 정치로 전향한 것은 Piscator의 업적이네. 이와 같은 전향이 아니었다면, 극작품 쓰는 사람의 연극이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네."
그러나, Brecht는 1928년 [쉬베이크] 공연을 계기로Piscator와 결별하게 된다. 그것은, Piscator의 괄목할 만한 개혁이 무대의 전력화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그가 사용한 각종 기법은 형시적인 적용에 머물러서 희곡창작이나 극장을 생산수단으로 관장하는 정책에 이르지 못했다는 Brecht의 판단 때문이었다.
5. 서사극의 목적
Brecht의 서사극을 중심으로 하여서사극은, 사회비판과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비판과 개혁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인 대안으로서 서사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비판적인 태도가 예술적인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이 서사극 이론의 요점이며, 비판적인 태도는,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집행성을 띤 비판을 의미한다. 서사극은, 복잡한 내용과 사회적인 목표를 가진 지극히 예술적인 연극인 것이다.
"인간은 돌을 내던질 때 왜 그것이 달리 안 떨어지고 그렇게 떨어지는가를 알고 있지만, 그 돌을 던지는 인간이 달리 안 던지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네."
따라서, Brecht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동기에 대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일어난 사회적 사건에 대한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예감한 것도 보여주어야지요."라고 말한다. 즉, Brecht가 지니는 낙관적인 역사관과, 그가 지닌 마르크시즘에 대한 관념에 비추어, 연극은 예술적인 수단을 통해 세계상을 도안해 내고, 인간 공동 사회생활의 모형을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연극은 줄거리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관계의 역사적 현장이 허용하고 있는 감정이나 통찰, 충동만을 가능케 하는 연극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역사의 현장을 변경시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연극이다. 이것이 Brecht가 만들어낸 서사극의, 목적이었다. 이것을 떼놓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비판의식을 상실한 채 형식과 기법만이 남은 '서사극', 그리고, 정치의식만이 난무하여 예술성을 상실한 내용만이 껍데기로 남은 '서사극'은, 이미 서사극이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사극은 Brecht가 추구하는 바 사회비판과 실천에 대한 지향과, 예술에 대한 지향이 통일된 결과물로서 남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극은 당연히 자체의 예술적인 완결을 위해, 그리고, 예술적 실천을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었다. 서론에서 언급한 제3세계의 서사극이 지니는 의미가 이제는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드러내 보여주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비춰줄 불빛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 있다."
6. 서사극의 주요 범주
Brecht의 서사극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관객에게 연극에서 모사되는 세계를 변화가능한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서사극에서 나타내기 위하여 Brecht는 서사극에만 고유한 범주를 만들어 내었다.
(1)Aristoteles적 희곡과 비Aristoteles적 희곡
비Aristoteles적 희곡이란 Aristoteles적 희곡을 근거로 해서 생겨난 정의이며,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Aristoteles적 희곡이란 시학에 나오는 비극에 대한 정의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맞게 씌어진 희곡을 말한다. 여기서는 Aristoteles가 비극의 목적으로 설정한 카타르시스가, 다시 말해 비극이 공포와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을 모방함으로써 관객을 그 공포와 연민으로부터 정화시킨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관심거리가 된다. 이 카타르시스는 특수한 심리적 작용을 통해, 즉, 관객이 배우가 모방하고 있는 인물들 속으로 감정이입되어 그들처럼 느낌으로서 이루어진다. 이 감정이입이 이루어졌을 경우 Aristoteles가 요구하는 법칙들이 준수되었건 안되었건 간에 그 희곡을 Aristoteles적이라고 규정한다. 이와 같이 규정되는 Aristoteles적 희곡이 작용하는 바는 Brecht가 추구하는 연극의 목적, 즉, 사회에 대한 예술적 전유로서의 연극이라는 것에 위배된다. 따라서, Brecht의 희곡은 Aristoteles적 희곡을 비판하는 곳에서, 즉, 감정이입을 통한 극적환상을 관객에게 주어, 결과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객의 작용을 무화시키는 연극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우선, 희곡적 연극과 서사적 연극을 구분하여 보기로 하자. 다음의 도표는 Brecht가 자신의 연극과 희곡적 연극 ---Aristoteles적 연극, 즉, 감정이입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 --- 의 변별을 제시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Brecht의 서사극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다. 희곡적 연극
서사적 연극
무대는 하나의 사건을 '구현'한다.
관객을 사건 속에 몰아 넣는다.
관객의 능동성을 소모시킨다.
관객의 감정을 일으킨다.
관객에게 체험을 전달한다.
관객은 줄거리 속에 감정이 이입된다.
극적 환상이 주요 도구.
감정의 축적.
인간은 이미 알려진 존재로서 전제된다.
인간은 변화 불가능한 존재.
결말에 대한 긴장감.
다음 장면을 위한 장면.
직선적인 사건 진행.
진화적인 사건 진행의 필연성.
현존하는 세계.
인간 행위의 필연성.
충동(본능)
사유가 존재를 규정.
무대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 한다.
관객을 관찰자로 만든다.
관객의 능동성을 일깨운다.
관객에게 결단을 강요한다.
관객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관객은 줄거리를 마주 대하고 있다.
논증이 주요 도구.
인식의 단계까지 몰고 간다.
인간은 연구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가변적이고 변화시키는 존재.
사건 진행에 대한 긴장감.
장면마다 독립.
곡선적인 사건 진행.
사건 진행의 도약성.
변화되어야 할 세계.
인간이 해야 할 일.
(행위의) 동기.
사회적 존재가 사유를 규정.
여기에서 희곡적 연극은 앞에서 언급한 바, 감정이입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이다. 이 연극 속에서는 관객이 단지 자기 자신을 연극 속에 내어 맡긴 채 같이 경험하고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희곡적 연극은 연극의 상연에 있어서, '제4의 벽'이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이 '제4의 벽' 안에서 연극은 극적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연극을 할 때 무대에 벽이 세 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4개있는 것처럼, 즉 관객이 앉아 있는 곳에 제4의 벽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어떤 사건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우리 인생에서 정말 일어나는 일이며, 저쪽에 관중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또 그 느낌을 고수해 나아간다. 제4의 벽을 두고 연기를 한다 함은 다시 말해 관객이 없는 양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연기를 하는 경우, 관객은 극적환상을 갖게 된다. 즉, 관객은 능동적으로 연극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객은 아무도 자기를 알아본 채 안 하니까 무언 중에 자신이 극장에 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즉, "관객은 열쇠구멍 앞에 앉아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하여 관객은 극적 환상을 지닌, 연극에 피동적으로 관여하는 존재가 된다.
이런 극적환상을 목적으로 하는 연기에 대해 언급을 할 때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Stanislavsky이다. Brecht는 Stanislavsky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Brecht는 Stanislavsky의 연기이론이 지니는 긍정적인 측면도 충분하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Stanislavsky 후기의 발언 내용을 보면 베를린 앙상블 --- Berliner Ensemble : Brecht와 그의 부인 H.Weigel에 의하여 1949년 동베를린에 창단된 극단. 창단된 이후 공식적으로는 H.Weigel이 1971년 사망시까지 단장으로 있었다. 그후 1977년까지는 Ruth Berghaus가, 1977년 이후에는 Manfred Wekwerth가 이 연극단을 이끌어 왔다. 이 극단은 특히 Brecht의 희곡작품 모형연출을 중점적으로 하였다. 특히, 1954년 6월 파리연극제에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공연으로 1등상을 받은 후 그 성가와 예술적 수준이 널리 알려졌다. --- 이 아마 사실적인 구현형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Stanislavsky의 이론에서 시작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직접 관객과 접하게 되면 그는 이미 살아있는 인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보고자로 변하게 된다는, 즉, 이러한 관계는 공연의 진실성을 붕괴시키고,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그리고, 등장인물의 삶의 영역 속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Stanislavsky의 연기론과 Brecht의 연기론은 대립될 수 밖에 없었다. Brecht는, 서사극 연기의 개연성은 배우에게 주어진 진실 속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배우가 참조해야 할 기준은 항상 극의 의미여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Brecht의 방법론은 Stanislavsky의 사실주의적 환각 연극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배우는 관객을 몰아상태에 몰아넣지 않기 위해 자신이 몰아상태에 빠져서는 안되었다. 또한, Brecht는 Stanislavsky와는 반대로, "관객에 대한 배우의 관계는 무엇보다 자유롭고 직접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는 관객에게 무언가 전달하고 또 보여 주어야 하며, 이렇게 전달해 보여 주고 있다는 자세가 모든 면에서 나타나야 한다."즉, 보고자로서의 배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Brecht가 Stanislavsky의 연기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이면서도, Stanislavsky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있는 서사적 연기를 위해서이다. 서사적 연기의 목적은, 배우의 연기가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자기가 이야기를 던지고 있는 관객들과 더불어 토론을 벌리는 토론장을 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관객이 극적 환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2) 낯설게 하기 (생소화) : Verfremdung
낯설게 한다는 것은, Brecht의 문학이론의 중추적 범주로서 서사극의 기본구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서사극에서 낯설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의 과정을, 아니면 하 나의 성격을 낯설게 한다는 것은 우선 간단하게 말해서 당연하고 잘 알려져 있는 자명한 사실에 대해 놀라움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소화 효과는 묘사하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눈에 띄게 하고,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기법을 말하는 것이다. 생소화 효과는 모든 일을 수긍하는 관객의 몰입적인 태도를 비판적인 태도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생소화 효과 사용의 전제 조건은 무대와 관객석에서 모든 '마술적인' 요소를 말끔히 씻어내고 '최면'에 걸릴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뒤에 설명할 서사극의 여러 기법은 이런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생소화를 통하여 Brecht가 이루려는 것은 '역사화'이다. Brecht는 생소화를 역사화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Brecht 연극 이론에서의 역사화란, 현재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과거의 역사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바로 특수하기 때문에 무상한 어떤 사건의 성격을 의식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생소화'와 '역사화'는 서로 상관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낯설게 한다는 것은 결국 역사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건이나 인물을 지나간 일로 그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연극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이 관객에게 변경 가능한 것으로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생소화 효과의 순수하고 효과적인 사용은 사회가 그 현재의 상황을 역사적이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여길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순수한 생소화 효과는 투쟁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3) 자세
서사극에서 배우는 자신의 자세 : Gestus, 즉, 자신의 사회적 태도 혹은 기본적인 성향을 관객에게 분명히 제시하여야 한다. 이 '자세'라는 말은 Brecht의 중요한 미학적 개념 중의 하나다. 연출가로서 그는 여러 곳에서 이 개념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명확한 정의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술을 수반하는 여러 가지 개별적인 몸짓의 총체를 뜻함에 틀림없다. 즉, 어떤 의미를 강조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손동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적 태도'를 뜻한다.
"자세란 몸짓 손짓으로 이해되어서는 않된다. ; 이것은 강조하거나 설명하는 손짓이 아니라, 총체적 태도와 관계된다."
또, Brecht의 자세는 인간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사회적인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자세란 사회적 상황 및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서 나타나는 태도와 관계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세를 제시함으로써 그 사회의 특성을 표현할 수 있다. J.Knopf에 의하면, 자세란 주관적인 것, 예컨데 주관적 태도, 주관적 자세 등에서 분리되어 상대적 주관주의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이는 자세가 인간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Brecht는 자세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세는 인간상호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예를 들자면 작업수행은 그것의 착취나 협동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지 않으면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Brecht는 자세가 말로만 표현되어도, 예를 들면 라디오로 방송되어도 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함으로써 자세라는 개념이 은유적으로 언어에 전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세적 언어'는 언어의 자기표현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며, 사회적 행동과 태도와의 연관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세적 언어'는 현실의 실재상황을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사회적 자세를 시위한다. 배우가 자세를 시위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관점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선택한다는 것은 연기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되며, 그 관점은 연극 밖에서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연극이 사회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하게 된다. 즉, 연극의 정치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언급한 서사극의 목적과도 관계하게 되는 것이다.
7. 서사극의 주요 기법
서사극에서는 위에서 말한 서사극의 목적과 범주의 연극적 실현으로 몇가지의 기법을 사용한다. 그것들은 Brecht가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어져 내려온 기법을 재해석하여 사용한 것도 있다. 다음에 설명하는 것들은 Brecht가 서사극에서 중요하게 사용한 기법들 중에서 몇가지 대표적인 것들을 간추린 것이다. 원래 연극에서 쓰이는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기법이 쓰이는 작품을 세세하게 예로 들어야 할 것이지만, 사정상 극히 간략하게만 예로 들었다.
(1)해설자 : 설화자
해설자 : 설화자는 원래 서사시나 소설에 등장하여 서사적 작품을 독자에게 중계해주는 허구적 인물로 주석적 서술의 구성요소이다. Brecht의 작품에서 해설자가 주요 서사극적 기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코카시아의 백묵원]이다. [코카시아의 백묵
원]에서는 해설자가 극에서 그의 독립된 위상을 갖고 나타난다. 여타의 작품에서도 해설자는 나타나지만, [코카시아의 백묵원]의 경우처럼 주요하게,독립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사천의 선인]에서는 극의 등장인물들이 관객을 향한 대사를 사용하여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의 작품의 예에서 해설자가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도, 해설자가 수행하는 역할은 동일하다. 즉, 두가지 경우 모두 해설자가 사건진행의 시간적인 연속성을 파괴하고 이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관객은 사건 진행과 직접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해설자는 관객에 대해서 우월한 위치에 서서 사건전반에 대한 개관을 하고, 이에 대해서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음유시인과 같다.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리워지는 해설자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중개자이며 무대의 사건진행을 "위에서" 관찰하고 해설한다. 그는 그의 성찰을 직접 관객에게 호소하며 관객을 그의 관찰에 끌어들인다'. 즉, 해설자는 생소화 효과를 유발한다.
(2) 노래
Brecht의 희곡에 있어서 독특한 요소는 노래 : Song이다. 그의 작품에서 노래가 쓰인 것은 그의 첫 작품인 [바알 : Baal]에서부터 인데, 노래는 1928년 Kurt Weill이 노래를 작곡한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쓰였다.
Brecht는 노래에 대하여 설명하는 곳에서, 대화로 이루어지는 희곡의 내면적인 차원과 해설하는 노래의 차원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무대상의 배열, 조명의 교체, 제목 등을 통하여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기타의 다른 희곡 진행과 시각적으로 구별되도록 배려해야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래가 "제시의 자세"로 불려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Brecht 희곡에 쓰이는 노래는 극에서행하는 역할에 따라서 몇가지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사천의 선인]에서 노래들은 해설적 기능과 비유적인 성격을 띤 관객을 향한 대사의 성격의 형태로 나타나고,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는 노래가 자체적으로 희곡과 내재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일반화와 해설의 역할을 한다. Brecht의 희곡에 쓰여진 노래는 그 기원을 고대 희랍극의 코러스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고대 희랍극 코러스의 기능, 즉, 주인공에 대한 코러스의 개입, 관람자의 태도 규정, 노래가 극과는 무관한 삽입구를 이룬다는 것 등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Brecht의 희곡에 쓰이는 노래는, 관객을 일깨워 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적 사건에 몰입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 것을 요구했다. 즉, 노래는 연극의 환상을 파괴하며 연극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이를 비판적 거리를 둔 해설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3) 서언과 발문
서언 : Prologue은 고대 희랍극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수많은 희곡에 여러가지 변형으로 적용되고 있는 기법 중의 하나로, Brecht의 서사극에쓰이는 서언도 이런 전통에서 쓰이는 것이다. 서언은 다양하게 사용되어 오다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와서 중단되었다. 그러나, Brecht는 일찍부터 그의 희곡에 서언을 사용했는데, 몇 가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푼틸라 씨와 그의 하인 마티]에서는 여배우가 연극의 주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할 수 있었던 출세]에서는 사회자가 등장하여 연극 내용이 역사적 사실임에 대한 설명, 주요등장인물들을 관객에게 소개하면서 극을 시작한다. 서언이 서막 : Vorspiel의 형태로 더 확대된 경우도 있다. [둥근 머리와 뾰족 머리], [서푼짜리 오페라], [코카시아의 백묵원], [사천의 선인] 등에서는 서언이, 서막의 형태로 관객에게 제시된다. 이런 서언 또는 서막을 통해서, 관객들이 지금부터 관람하게 되는 것이 "연극의 공연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관객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시켜 주며 제시 : 시위의 기본자세가 철저하게 확립된다."발문은 서언과 연결되어 희곡을 앞뒤로 감싸고 있다. 발문이 쓰인 예는 [서푼짜리 오페라]에서의 피첨의 대사, [사천의 선인]의 재판에서의 현실적 미해결을 발문으로 관객에게 관용을 바라는 부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발문은 서언과 연관되는 형식적인 부분 이외에도, 관객에게 무대상의 예술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해결책을 현실에서 찾을 것을 요구한다. 즉, 관객에 대한 발문의 실천적 요구는 동시에 제시된 사건의 연극성을 강조함으로써, 관객이 실제의 사건을 본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4) 관객을 향한 대사
연극에서 제4의 벽의 제거는 배우가 관객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된다. '관객을 향한 대사'는 희곡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데 앞에서 다룬 노래가 그 중의 하나이다. 관객을 향한 대사는 방백이나 독백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Brecht는 '관객을 향한 대사'가 방백이나 독백처럼 애매하지 않고 뚜렷이 드러나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관객을 향해서 대사를 할 때 "배우는 그의 역을 벗어나서 자신과 관객을 위해서 무대의 환상을 깨뜨린다. 극중 인물들은 그렇게 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설명하며, 보고하며, 요약하며, 앞일을 예고하고, 일반화하며, 내용의 종합을 한다."
(5) 극중극과 재판장면
극중극이라는 희곡형식은 Brecht의 전 희곡작품에서 쓰여지고 있는 기법 중의 하나이다. 극중극은 사건진행을 중첩시켜주기 때문에 관객은 연극적 사건을 이중으로 체험하게 된다. 즉, 관객은 무대 위에서 또다시 연극과 관객의 관계가 제시되는 것을 보면서 관객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게 된다. 관찰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극중극은 생소화 효과를 내는 중요한 서사적 기법의 하나인 것이다. 즉, 희곡을 이중화함으로써 두 배의 긴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극중극과 틀극이 서로 상대화 작용을 하면, 연극적 장면으로서의 실현에 대한 가능한 요구를 서로 부정하며, 연극적 환상을 완화시키게 된다.
Brecht의 서사극에서 극중극과 유사하며, 빈번하게 사용되는 기법이 재판 장면이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은 [코카시아의 백묵원]과 [사천의 선인]이다. 재판장면은 소송당사자와 이를 참관하는 방청객이 있음으로 해서, 극중극에서의 연극과 관객이라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특히, [코카시아의 백묵원]의 경우는 전체작품이 극중극의 형식을 띠고 있고, 그 안에 또하나의 극중극이 들어 있으며, 재판장면이 쓰임으로써, 다중의 생소화 효과를 만들어낸다.
(6) 장면제목과 내용설명
대부분의 Brecht의 희곡은 각 장면마다 간단한 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세한 내용설명이 붙여져 있다. 이러한 제목이나 내용 설명은 막에 투사되거나 현수막을 이용하여 연극적으로 실현된다.이것의 역할은, 교훈을 이끌어내고 내용을 요약하며 바깥세계의 사건을 사적인 영역으로 이끌어들일 수 있고, 또,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드러나 있거나 감추어진 설화자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연극적으로 제시될 내용을 미리 이야기해 주는 내용설명이라는 서사적 기법은 연극적 사건에 대한 긴장을 해소시켜준다. 이렇게 될 때 관객의 관심은 '무엇?'보다는 '어떻게?'라는 진행에 대한 것에 쏠리게 된다. 즉, 생소화 효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7) 관객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비유극의 서술자는 자기의 비유극에 필요한 모든 것, 사건 경위를 합법적으로 진행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 즉, 비유극의 무대장치가는 비유극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조명등, 악기, 가면, 벽, 문, 계단, 의자, 식탁 등을 공개적을 보여준다." 공개적으로 보여주기의 효과는, 관객에게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연극적 사건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명기구를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불필요한 극적환상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Brecht가 연출했던 실제 공연의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겠다.
1948년 스위스 추르의 소읍에서 공연했던 자신의 소포클레스 작 [안티고네]무대에서, Brecht는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무대 위에 있도록 했다. 그들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서 석간을 읽거나 샌드위치를 먹거나 그들 자신의 의상을 매만지는 등의 모습이 드러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등장할 차례가 다가오면 그들은 일어나서 등장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는 게 보였고, 그들이 연기 지역의 경계선을 건너가게 될 때에 이르러서야 배우들이 인물의 자세나 동작을 나타내는 순간을 관객은 사실상 경험할 수 있었다.
8. 서사극과 리얼리즘
Brecht의 서사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창작과정에서 작용한, 보다 근원적인 요인으로서의 현실파악 방법과 현실묘사의 방법이 문제돼야 한다. 이는 바로 Brecht의 리얼리즘론과 직결된다.
"자네들이 리얼리즘이라고 했던 것이 리얼리즘이 아닌가 보네. 자네들은 사진과 같은 식으로 모사한 것을 리얼리즘적이라고 한 것이네. 이러한 식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소위 리얼리즘보다 더 사실적이었네. 그리고는 새로운 요소가, 즉, 현실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등장했지. 이러한 요소가 자연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했고, 단지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리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네."
위에 있는 Brecht의 언급에 비추어보면 리얼리즘이란 단순하게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Brecht에게 제기되는 리얼리즘의 문제는 현실극복이라는 새로운 요소며, 이것이 Brecht가 자신의 서사극을 만들어가면서 생각하던 리얼리즘에 대한 인식의 기저에 있는 것이다. 또한,Brecht에게 있어, 리얼리즘은 결코 형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현실을 여러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리얼리즘이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작가가 리얼리스틱하게, 다시 말해서 현실로부터 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현실에 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글을 쓰고자 할 때 갖게 되는 새로운 사회적인 기능이 분명히 밝혀진다면, 우리들은 기법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한 기법에 대한 자유로운 입장을 견지할 수도 있게 된다."
Brecht의 리얼리즘에 대한 견해는 1930년대 루카치와의 표현주의 논쟁에서 표명되고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 논쟁에서 Brecht는 루카치에 반대하여, 진정한 리얼리즘은 민중성에 기초해야 한다든가, 특수한 전형적 양식보다는 현실과 변화, 즉 문학작품의 기능과 효용성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서사극이 이런 리얼리즘적 견해의 실천적 결과물임은 당연하다. 그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서사극의 목적을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서사극에서 비판한 바 있는 Aristoteles적 희곡에 대한 자유로운 입장, 그와 Piscator와의 결별, 그의 다양한 서사극적 기법에 대한 실험과, 그가 표명한 서사극의 목적도 이런 바탕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적인 것은 사회적인 인과관계의 체계를 밝히면서, 지배자들의 관점이 지배자들의 관점이라는 점을 폭로하며, 인류사회가 처해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인 방안들을 마련하는 계급의 관점에서 글을 쓰며, 발전의 계기를 강조하며, 구체적이면서도 보편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현대연극의 여러 곳에서 서사극적인 요소를 본다. 형식과 내용을 동시에 포함하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서사극을 표방하며 공연되는 대다수의 극들은, 서사극이 내용적 목표로 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관객들의 실천적 비판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과는 무관한, 형식적 의미에서의 '서사극'이다. 혹은, 서사극이 지니는 예술적 목표를 간과하고, 정치성만 난무하는 '선동물'이거나. 이런 류의 극들은 현대적 의미의 서사극이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서사극의 내용만이, 목적만이 남은, 서사극의 예술적인 부분이 거세된 극도 서사극의 계승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서사극의 형식만이 남은 극도 서사극의 계승은 아니다. 그것을 이미 우리는 Brecht의 리얼리즘에 대한 견해에서 본 바 있다.
Brecht의 연극, 즉, 서사극이나 변증법적 연극이라고 불리는 것의 목적을 이탈리아의 연극운동가 스트렐러는 말한다.
"풍요롭고 포괄적이면서도 자기 목적으로서의 연극이나 연극을 위한 연극이 아닌 인간의 연극이며, 인간을 즐겁게 하되 그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인간을 위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연극....., 역사와 시대의 밖에 있는 연극이 아니고 태초로부터의 연극이 아닌 연극, 역사와 연극, 생과 세계가 부단히 힘겹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변증법적 상호관계 속에 있으면서, 항상 적극적이고 일반적인 생성을 목표로 하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