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회장께서 지난주 20일(수요일) 재경 조대부고 총동창회를 마치고 동아시아 평화문제 연구소 활동차 40일간 중국으로 출국하였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수석자문위원과 수석부회장께 알려 드린후 여러 회원님께도 알려 드릴려고 하던차 청도의 소식이 너무나 자상하고 감명이 깊어 널리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청도의 생활상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을 살려 보름회의 발전에 기여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면서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01.25 부)총무 정종수 배상
-이재형입니다. 지난 1월 20일 중국 청도에 도착했습니다. 2월 말까지 여기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중국어도 익히고 연구활동도 하고 여행도 해 보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청도가 있는 산동성이 남한지역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한중 양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여기에 온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 산동반도는 과거 백제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진시황이 불로초를 채취하기 위해 제주도로 5,000명의 동자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고, 가깝게는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이 부근에서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여기 있으면서 앞으로 산동성 사람들의 생활상도 둘러보고 그들의 생각도 담아 몇 편의 글과 사진을 보내 드릴 생각입니다.
- 청도의 이모저모 청도시는 10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된 젊은 도시로써, 청나라 말기인 1891년(청나라 광제17년)에 이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공식 행정편제로 출범하였다. 1897년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산동에서 피살되는 교안사건(교안이란 지방관리와 지방의 선교사, 지방민과 지방의 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구실로, 독일군에 의하여 점령되어 통치되었으며,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을 독일이 일으키면서, 이 지역을 조차형식으로 관할하던 독일군을 대신하여, 일본군이 점령하여 통치하다가, 중국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1919년 “5.4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22년 12월 10일, 중국은 청도지역을 수복하였으나, 7년 후인 1938년 청도는 다시 일본에 강점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1945년 국민당정부에 접수되어 특별시로 되었다가,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가면서 1949년 6월 2일 청도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고, 1986년부터는 국가단독계획시로서 성급 경제관리 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 청도에는 한국기업의 투자가 1989년부터 시작되었고, 1992년 한중수교이후 투자업체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한 때 8,000여개에 달하던 것이 지금은 5,00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유학생을 비롯하여 한국인 장기거류자가 4만 여명에 이른다. 그 동안 한국인들이 이곳에 진출하였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경우도 많았지만, 이곳에서 성공적인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수교 이후 한국이 중국과 경제교류협력을 하는데 있어서, 청도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기업 또는 한국인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청도를 발판으로 삼는다면, 광활한 서부내륙에로의 진출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과의 거리, 항공교통, 해운교통, 한국과 유사한 기후, 청도시정부의 적극적인 한국기업 유치활동 등등의 것도 있겠지만, 청도는 2008년 북경올림픽의 유일한 동반 개최도시로써(요트경기 등 해양 스포츠경기가 청도에서 치루어졌음) 올림픽이 끝난 후엔, 전세계인이 기억하는 국제도시로써의 면모를 완벽히 갖출 것이다.
- 지리위치와 자연환경 산동반도의 남쪽과 황해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청도는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기후가 좋은 특색 있는 해변도시이다. 청도에는 많은 섬들이 있으며, 해안선의 총 길이가 87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한반도의 서해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들이 이곳에서 모두 나오며, 가격 또한 저렴하다. 청도시의 면적은 1.102평방 킬로미터이고, 인구는 237만 여명이다.
- 역사와 문화 청도는 역사문화도시로서 중국 도교의 발상지이다. 2500여년전 노자가 창시하고, 장자가 체계적으로 이론을 정립한 도교의 발원지가 청도에 있는 노산이다. 6000여년 전부터 인류가 이미 여기서 거주해왔으며, 동주(東周)시기(기원전 770-256BC)에는 산동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던 즉묵(卽墨: 지금의 지모시)이 만들어졌다. 진시황(秦始皇)은 중국을 통일한 후 지금의 교남(膠南: 죠난)시에 위치한 양야대(瑯牙臺: 량랴타이)에 세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었으며, 진나라 때 서복(徐福)이 함대를 거느리고, 양야대(瑯牙臺)에서 출항하여 한반도, 일본까지 항해한 사실이 역사기록으로 남아있다.
- 경제 청도는 중국의 중요한 방직, 경공업 및 화학공업 기지의 하나이다. 가전제품, 전자, 고무, 자동차 제조 및 식품 가공능력이 우수하다. 청도는 양곡, 과일, 축산, 수산물 생산 기지로서 농업자원 또한 풍부하다. 그중 평도(平度)의 대택산(大澤山:따저산: 품질 좋은 건축용 석재가 많이 생산되며 석재도매시장이 있음), 포도가 국내외적으로 유명하며, 평도의 명산품인 고추, 생강 등은 한국, 일본 등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청도는 포구가 많고 간척지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미생물이 풍부하다. 도미, 농어, 생복, 굴, 소라, 황어, 왕새우, 해삼, 참게, 말린 조개관자 등 수산물 또한 풍부하다.
- 청도에는 중국에서 명성이 높은 하이얼(海爾)그룹(가전제품), 청도맥주 주식회사, 하이신(海信)그룹(가전제품), 오크마(澳柯瑪)그룹(가전제품), 쌍성(雙星)그룹(신발), 이중그룹(담배), 화동(華東)포도주 주식회사, 대양(大洋)식품그룹 등 저명한 기업이 있다. 독일이 세운 청도맥주는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맥주축제에서 금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청도는 25개의 해양과학연구, 교육 및 관리기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종합대학인 해양대학이 있다. 청도는 중국해군의 중요도시중의 하나이며, 해양 관련 과학자의 50%이상이 있고, 해양과학연구, 국제학술교류와 인재배양에 힘을 쏟고 있는 해양과학도시 이다. 또한 청도는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써 가발, 전자, 섬유, 봉제, 식품, 완구, 기계, 가구, 자동차부품 등 거의 모든 품목의 제조업체들이 진출하여, 청도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청도에는 한국음식점을 비롯하여, 싸우나, 미용실, 중국어학원, 한글학교, 세탁소, 한글신문, 광고잡지 등 한국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편의시설 들을, 한국인 또는 조선족들이 경영하고 있어, 한국사람들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 교통과 통신 청도는 중국 4대 항구 중의 하나이며, 세계 130여개국가와 지역의 450여개 항구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으며 세계 20대 항구의 대열에 진입하여, 중국대륙의 최대 컨테이너 수송항구가 되었다. 한국과는 인천, 부산, 평택, 군산 등과 화물선이 운항되며, 여객선이 인천과 군산으로 주 2-3회 운항되고 있다. 육상교통은 고속도로를 통해 외부와 긴밀히 연결하여 사통오달의 교통망을 이루고 있어, 철도와 함께 여객 및 화물 수송이 매우 편리하다. 청도국제공항은 일본의 동경, 오사카, 후쿠오까, 한국의 서울, 부산, 대구, 태국의 방콕, 그리고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 10개의 국제 및 지역항로와 56개의 국내항로를 개설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공항의 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완공후엔 시설면에서도 국제공항으로써의 기능에 손색이 없을것이다. 청도는 인터넷 전용선이 2002년 말 시내 전 지역에 구축되었고, 해저광케이블이 1996년 충남 태안에서 청도로 연결되면서, 태평양의 광케이블 망에 연결되었다. 최근에는 한국의 정보통신업체들도 청도에 진출하여 이곳의 통신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문화와 관광. 청도는 중국 내에서 관광도시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으로 청도는 1920년대부터 관광도시, 여름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독일사람들이 유럽풍으로 지은 빨간색지붕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초록의 나무숲들과 어울려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청도시가 보존하고 있는 팔대관(빠다관) 지역은, 갖가지 유럽식 건축양식을 한곳에 모아 놓은 듯한 저택들이 들어서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중국의 유명 인사들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 청도의 노산 노산은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바다에 인접한 산으로는 가장 높은 산으로써, “해상절경의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정상은 해발 1,133m이고, 1,800km 중국 해안선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노산의 남쪽은 절벽을 이루며 바다에 접해있고, 숲과 온천 및 폭포가 어우러진 국가급 공원이다. 노산 은 또한 노자가 창시하고, 장자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도교의 주요 근원지 이다. 당나라(신라 때), 송나라(고려 초), 원나라(고려중기), 명나라(조선 초), 청나라(조선중기) 때도 청도의 노산에는 도원(道院)이 많이 지어졌는데, 노산 북동쪽에 위치한 태평궁 위쪽의 천동굴은 도인들의 수련장으로 쓰였다고 하며, 바다를 향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절벽과 어울려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풍광이, 가슴을 확트이게 하는 절경이다.
- 청도의 대외관계 1979년 10월 일본의 시모노세끼시와 자매결연도시 관계를 맺은 이래 한국과는 1993년에 대구시와 자매결연도시 관계를 맺었고, 95년에 인천시, 99년에 평택시와 친선협력관계를 맺었다 외국 공관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청도에 있다.